지나리 부부 산방

검단지맥 4구간종주(태재-형제봉-불곡산-부천당고개-대지산-43번국도-법화산-물푸레고개) 본문

이 또한 지나가리/한남정맥의 지맥

검단지맥 4구간종주(태재-형제봉-불곡산-부천당고개-대지산-43번국도-법화산-물푸레고개)

無碍人 2011. 8. 8. 08:17

2011년 7월30일 토요일 맑음 천사랑

 

오늘 검단지맥 마지막구간이다.

석성산에서 할미성을거쳐 88CC에서 갈라진 검단지맥은 법화산-불곡산-영장산-왕기봉-검단산-남한산성-검단산을거쳐

팔당대교아래 한강까지 45km를 달려 그맥을다한다.

대간길로 치자면 45km는 2번정도 산행으로 마감할수있으나 대간종주중 몸풀기 산행으로 혹서기 짬짜미로 한 산행이지만 긴 장마틈에서 오늘

산행의 끝에 이르렀다.

검단지맥은 집 근처에서 가까와 충분히 여유를 가지고 쉬며 놀며 다녀온구간이 됐다.

그러나 석성산에서 할미성을 거쳐 내려온 지맥길은 88CC라는 거대한 골프장에 막혀 제대로 이어갈수없다.

아예 거대한 철조망으로 더이상 진입불가니 종주를 물푸레고개에서 마감해야 했다.

생어진천 사어용인(生於鎭川 死於龍仁) 이라는 말이있다. 그만큼 용인땅에 명당이 많다는데..

이제는 그명당터에 골프장만....혹자는 아름다운 그린이라 하지만 내가 보기는 어째 자연파괴 ???

이제는 "골프용인" 이 맞을것 같다.

死於龍仁이다 보니 용인에는 거대한 공원묘지도 많다.

법화산아래 천주교 공원묘지도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특히 김수환 추기경님이 계시는 곳이라 하니....

공원묘지 둘레를 4/3 이나  돌아걸어야 법화산으로 이어지는 용인 천주교 묘지 역시 이번 장마피해를 빗겨 갈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여기저기 곳곳에 장마로 흘러내린 묘지가 있고 비닐 가림막을 해놓은 모습이 안스럽다.

죽어서도 자연재해를 피해갈수는 없는 모양이니...생각이 참많다.

오늘 산행에는 무엇보다 운이 잘따랐다.

특히 불곡산 -대지산 구간은 분당동뒷산이라 여기저기 난해한 갈림길이 많아 알바하기 쉬운데 잘 해치고 나갔고 물푸레마을에서 죽전행

31번 버스를타고 그리고 보정역에서 환승후, 야탑에 내릴까? 모란에 내릴까? (야탑에서 1시간에 한대있는 부천행 직통이 모란거쳐부천) 고민했는데

이미 야탑 출발한 버스를 야탑에서 전철로 따라 잡는 행운?(산꾼들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대중교통 연결이...)모란에서 바로 이어타고

집에오니 오후 3시다. 2시간 거리에 있는 산행지를 14km 산행하고 3시이전에 집에오는 행운 쉽지않다.

 

1. 산행코스

   태재고개-형제봉(분당동뒤능선)-불곡산-부천당고개-성남,용인갈림능선-대지산-43번 국도-절개지 사다리-천주교묘지(도태굴고개)

   법화산-물푸레고개(88CC 철조망), (4시간,14km)

 

2. 산행경로

   05:30분 - 집출발

   06:00분 - 부천소풍터미널에서 성남야탑 터미널 직통 탑승(소요시간 30분)

                 (부평에서 성남행은 부천 안양 평촌을거침으로 시간 많이걸림)

                 모란하차후 119번 버스로 태재도착

   07:30분 - 태재출발

                 신현2리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하면 은고개 애마오리집 옆으로 마루금(성남시계종주 이정표)

   07:40분 - 형제봉(256m,분당동 뒤능선)

   08:00분 - 불곡산(313m)

                 부천당고개

                 성남,용인 갈림능선-성남시계종주갈림길은우측 휘남에고개로이어지고 지맥길은 좌측송전탑으로 이어진다.

   08:50분 - 대지산(326m)

                 좌측은 숫돌봉으로 이어지고 마루금은 우측대지고개로 이어진다.

                43번국도(대지고개,산마루촌 식당)

                이곳에서 건너편 절개지 철재계단을 통해 정상의 송전탑으로 올라야한다.

                혹,레미콘공장 옆으로 마루금이 연결될까 찾아보앗는데 레미콘공장에소 철조망으로 차단했다고 마을사람이 알려줘 절개지로이동

   10:30분 - 천주교공원묘지(도태굴고개)

                 천주교 공원묘지를 4/3바퀴돌아 건너편 통신시설있는 곳으로 마루금이어짐

   11:00분 - 법화산(383m)

                 쉼터에서 3분거리 88CC와 할미성 석성산이 조망

   11:30분 - 물푸레고개

                 88CC 철조망에 막혀 진행불가 물푸레마을 3단지로 하산후 3단지 입구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죽전행 버스타고 보정역

   12:00분 - 물푸레3단지 보정역 31버스탑승

   13:30분 - 모란 부천행 직통탑승

   14:10분 - 부천소풍터미널

   15:00분 - 부개집도착(소풍터미널에서 도보로)

 

@ 교통편

    부천 소풍터미널에서 성남행 직통으로 이동 모란이나 야탑하차

    119번 버스로 태재이동(119번이 노선이가장 양호)

    물푸레마을 3단지입구에서 31번버스로 보정역

    모란이나 야탑에서 부천,부평행환승

 

 

 

 태재고개

 

 형제봉(분당동뒤능선)

 

 부천당고개

 

 

 대지산

 대지고개(산마루촌)

 43번국도

 

 

 43번국도에 있는 절개지 사다리

 3개월정도는 아무도 지나지않은듯...가시풀이 발목을 잡는다.

 

 

 

 용인 천주교묘지

 도태굴고개

 

 

 

 법화산

법화산은 불경 중의 하나인 법화경에서 따온 이름으로 구성 지역의 중심산이다.

산의 위치는 수지구 죽전동 · 기흥구 마북동 · 청덕동 · 언남동과 처인구 모현면 오산리에 걸쳐있다.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에서 문수산과 갈라진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청덕동으로 불리는 탄천(炭川)의 발원지 부근은 ‘옛날부터 물푸레나무가 많고 항상 맑고 푸른 물이 흘러 내린다’고 하여 '청덕리(淸德里)'

혹은 '물푸레골'이라 불리던 곳이다. 또한 마성터널을 사이에 두고 석성산쪽은 동백동, 법화산쪽은 청덕동으로 나눠있는 지역이다.

산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여러 마을들을 감싸안고 있는 형세다.옛부터 명당보국의 길지로 알려진 곳이다.

백두대간에서 뻗어나온 한남정맥이 속리산에서 북진해 경기 남부의 지형을 이루면서 정맥중에 으뜸인 간룡(幹龍)에 위치하며, 함박산부아산석성산→마성터널→

법화산으로 이어지는 산으로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라 하여 용인에는 명당이 많아 인재의 출생이 많다고 전해지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는 구한말 을사늑약에 항거해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의 묘와 병자호란 때 3학사의 한 사람인 충렬공 오달제의 묘, 연안부부인 전씨 묘(延安府夫人田氏墓) 등이 있다.

단국대학교를 감싸안고 있는 형국의 작은 무등치(무등재), 도태굴고개, 큰무등치, 응달길고개로 이어지는 법화산 자락에서 다시 천주교용인공원묘지의 능선을 따라

가다가 수지에서 광주 가는 43번 도로 대지산 대지고개에서 과협한 다음 북쪽으로 또 다른 산봉우리 하나를 만든다. 바로 불곡산(345m)이다.

경기도 용인 북부지역에 위치한 법화산은 기흥구 청덕동과 마북동으로 흘러 내리는 물로 탄천(炭川)의 발원지이다.

탄천은 옛부터 삼천갑자 동방삭의 전설이 내려오는 한강의 지류이다. 묘하게도 남에서 북으로 흘러 용인, 분당, 판교, 송파, 강남 지역을 관통하는 준용하천이다.

경기도 용인시에서 발원하여 서울 송파구강남구를 거쳐 양재천과 합해지면서 한강으로 유입되는 한강의 제1의 지류(支流)로 더 유명하다.

 88CC,할미성 석성산

 물푸레고개

 물푸레고개 88CC 철조망

  더이상 진행불가능하다 

@용인이야기

이곳 용인지역에는 지명에 얽힌 전설이 많다. 《조선지명지》에 읍내면 상마곡, 동변면 수청동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듯이 옛날 상마곡 마을에 마운사(痲雲寺)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그 사찰의 중이 마의를 입고 다녔고 이곳이 관할 면소재지의 북쪽에 위치한다 하여 마북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또한 항상 맑은 물이 계곡에서 흘러내려와 수청동(水淸洞)이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한편 이곳의 보호산으로 알려진 법화산(法華山)은 국보 185호으로 지정되어 있는 법화경(法華經, 일명 妙法蓮華經)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고구려 장수왕 63년 을묘(475)년, 장수왕은 3만의 대군을 이끌고 남정하여 백제의 아단성(아차산성으로 추정) 에서 개루왕을 잡아 참수하고, 그 여세를 몰아 한강

유역을 유린하고 백제의 영지였던 용인지역 뿐만 아니라, 한수 이남의 백제 강역 즉, 안성천 유역으로부터 아산만까지를 자국의 영토로 확장하고, 용인지역을 현으로

격상시키면서 이를 말굽모양의 성이 있다는 뜻의 구성현(駒城縣)이라 하였다. 이것이 용인지역 최초의 행정지명인데, 백제에서는 이를 까마귀가 슬퍼 죽었다는 뜻의

‘멸오(滅烏)’라고 적어 놓았다.

‘멸오’란 우리말의 고어로서 ‘크다’는 뜻의 말(馬)이나 구(駒)를 차음하여 표기한 것이지만, 일설에는 고구려의 원정군이 패주하는 백제군을 수없이 격멸시켰을 때,

그 시체가 마치 까마귀 떼와 같았다고 하여 ‘멸오’라 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고구려가 용인 지역을 자국의 영토로 하면서 이의 명칭을 구성이라 한 것은, 역시

‘크다’는 의미의 ‘말아’를 한자의 뜻으로 의역하여 표기한 것이 된다.‘말아’ 또는 ‘마라’는 마루(宗)와 동의어로서 ‘크다(大)’ ‘높다(高)’ (예 : 산마루. 종가. 종손)는

의미를 포함한 것이니, 구성(駒城)은 곧 ‘큰 성’ ‘높은 성’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것은 현재의 크고 높은 성을 뜻하는 것으로 법화산과 보개산(석성산)이

있는 지역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용인지방의 지리적 특성 중의 하나는 경안천, 탄천, 오산천, 청미천, 진위천, 안성천 등 대소 하천이 모두 용인에서 발원하여 인접 시. 군으로 흘러 나가고 있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현상은 용인지방이 분지를 형성하면서 인접 시. 군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멸오'나 '용구(龍駒)',

'구성(駒城)'이 ‘높다’는 의미에서 표기된 지명이라면, 이미 삼국시대에 이와 같은 용인(龍仁)의 지리적 특성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용인시(龍仁市)에서 '용(龍)'자가 들어가게 된 유래에는 이런 설화가 내려온다. 용인시의 좌측으로는 투구봉이 있고 우측으로는 칼봉이 자리잡고 있는데, 봉우리의

형상이 투구와 칼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투구봉과 칼봉 사이에는 넓은 터가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장군대지형의 땅'으로 믿고 있다. 장군이 무술을

연마하기에 꼭 알맞을 정도의 넓은 지형이다. 옛날에 남씨 문중에서 이곳에 묘를 썼는데, 그후 얼마 안 있어 그 문중 가운데 한 집에서 아기장수를 낳았다.

아기는 낳은 지 사흘 만에 옆구리에 날개가 돋아났으며, 힘 또한 장사여서 상대할 사람이 없었다.

아기장수가 태어날 무렵은 당파싸움이 치열하던 때로, 자신의 가문을 보존하기 위해 서로간에 암투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혹 다른 집안 자제 가운데 훌륭하게 될 소지가 있는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는 물론 그 집안 전체를 몰살하였다. 열세에 몰려 있던 남씨 문중에선 아기장수가

태어난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될 것이라고 불안해했다. 남씨 문중에서는 전체 회의를 열어 숙고한 끝에 아기장수가 성장하기 전에 처단할 것을 결의하였다. 워낙 힘이

센지라 여럿이 커다란 바위로 눌러 죽였다. 아기를 양지 쪽에 묻어 주려고 땅을 파보았더니 거기에서 투구와 칼이 나왔다고 한다.

한편 남씨 가문에서 아기장수가 태어날 때 장군대지형에서 마주 보이는 액교산에 있는 바위에서 용마(龍馬)가 나와 울었다고 한다. 이 용마는 아기장수가 죽자 태울

주인이 없음을 슬퍼하며 성산(城山, 석성산)을 향해 달려나갔다. 현재 고림리의 액교산에는 용마가 났다는 용마바위가 아직도 전하는데, 용마가 몸부림치며 울부짖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곳 지역은 이런 설화가 많다. 「고장군 묘소 전설」, 「아기장수와 용마바위」, 「유방리의 남씨네 아기장수」등이 내용이 비슷하다.

이것이 훗날에 조선시대의 남이장군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이런 전설들이 전해져 삼국시대의 구성현(駒城縣)이 고려 초 용구현(龍駒縣)으로 바뀌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외에도 떠내려온 산(浮山), 용바위, 홍수전설, 호랑이와 도깨비 같은 구비전승의 얘기부터 짐이나 사람을 실어나르는 작은 배인 거룻배가 있었다는 무등치 설화와

함께 둥둥배, 둥둥바위, 조개굴껍질이 붙어 었었다는 굴바위를 보았다고 하고 광교산에서 낚시를 하였다는 민담과 배 매는 고리가 있다는 전설로 옛날에는 용인

수원지역이 강이나 바다였다고 하는 토박이 주민도 있었다.

또한 이곳 지역에서 발원하여 흐르고 있는 탄천은 오래 전부터 동방삭의 전설이 내려온다. 동방삭(東方朔·기원전 154~93)은 한(漢) 무제(武帝·기원전 156~87)에게

스스로를 천거해 미관말직에 등용된 이래 평생을 조정에 ‘은거’했다는 익살과 해학의 정치가였는데 언젠가 한국에선 장수(長壽)의 대명사인‘삼천갑자 동방삭’으로 변했다.

원래 수명이 삼십(三十)이었던 동방삭은 십(十)에 한 획을 더 그은 천(千)으로 바꿔 삼천갑자를 살게 됐다. 이에 동방삭을 잡으러 온 저승사자가 성남 분당

탄천(炭川·숯내)에서 숯을 빠는 꾀를 냈다. 길을 지나던 동방삭이 “내 삼천갑자를 살지만 이런 기괴한 모습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가 신분이 탄로나 붙잡히고 만다.

이것이 전해오는 탄천 이름의 유래 중의 하나이다.  이같은 전설을 배경으로 용인시에서는 죽전 1,2동이 공동 개최하는 탄천문화제가 해마다 죽전체육공원과 탄천

일대에서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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