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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가리/山·名山산행기

축령산(879m),서리산(825m)

無碍人 2012. 3. 23. 08:24

2012년 3월20일 화요일 맑음 가인산님

 

축령산 서리산은 지난해 아버님이 병원에 계실때 잠깐 다녀온후 오늘은 두번째 산행이다.

특히 오늘은 가인산악회 시산제 산행이다.

가인산악회 애마는 어김없이 만수동을 출발하여(07:00)남양주시 수동면 축령산 자연휴양림에 이른 아침 산님들을 내려놓는다,(09:20)

주차장에 들어서고 이어서 대형차 대여섯대가 들어오더니 예쁜 주부 산님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인근 남양주 새마을금고 주부산악회에서 오늘 이곳에서 시산제를 지낸다고 ....우리 가인산님들은 괜히 싱글벙글 ....암튼 남자들이란...

일단 시산제 전에 우리 산꾼들의 주임무는 산행아닌가 시산제는 14:00시로 정해졌으니 부지런만 떨면 축령산,서리산 조우 산행이 가능할것같다,

축령산의 잣나무는 유명하다, 60년정도돼는 울창한 잣나무 숲을거니는 재미는 그 촉감이 부드럽고 아직 녹음전이지만 은은하게 코끝을 간지르는 잣향은 최고다.

잣나무 숲을 뒤로하고 암벽약수(10:30)에서 가파르게 고도를 높이면 독수리부부가 살았다는 수리바위다,(10:50)

축령산은 고려말 이성계가 이산에 사냥을 왔다가 하루종일 허탕을치고 내려오다가 한 노파를 만났는데 이산은 신성한 산이라 산신께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산신제를 지낸후 멧돼지를 잡았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산이다.

수리바위에서 능선을 잡아오르면 남이장군이 바위에앉아 호연지기를 키웠다는 남이바위다.(11:20)

남이바위에서면 북으로 주금산 운악산 명지산,화악산이, 코앞 남쪽으로 천마산이 동으로는 멀리 용문산이 시원스럽게 조망된다.

남이장군은 1441년 조선태종의 넷째딸 정선공주의 아들로태어나 17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여진족을정벌하고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여 젊은나이에 병조판서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유자광의 모함에의해 28세에 처형당했으니 그의 파란만장한 삶만큼 여기저기 그의 이야기가 많이 전해온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한 그의시 한편이 남아있으니 이시가 그유명한 "북방가"

 

白頭山石 碼刀盡 

豆滿江水 飮瑪無

男兒二十 未平國                   

後世誰稱 大丈夫

 

백두산의 돌은갈아 다없애고

두만강의 물은 말을먹여 다없애리

남아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못하면

누가 후세에 대장부라 부르리오

 

이시에서 유자광은 미평국(未平國)을 미득국(未得國)으로 바꿔 모함을 한것이다.가평 남이섬에가면 그의 유택이남아있다.

남이바위의 남이장군이 앉았다는 홈패인 바위에 앉아 독수리바위로부터 정상에이르는 천길낭떨어지기 단애를 구경하노라면 단애아래 아찔한 계곡과 주위의 경관이

시원하다. 남이바위는 서남으로 뻗어가던 능선이 서북으로 방향을 돌리는 어간에 자리하고 있어 마치 배의 선수에 선듯한 호방한 느낌을준다.

주부산님들의 재미나고 시끄러운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축령산 정상에 서면 북쪽의 주금산 운악산 명지산,화악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코앞이고 용문산부터 북한강까지

일망무제의 조망이 답답한가슴을 탁트이게한다.(11:50)

정상으로부터 급경사길을 내려서면 억새군락지가 있는 절고개에 이른다.

억새 군락지라 하지만 억새는 별로없고 요즘 산행이 그렇듯이 언땅이 녹아 내려가는 길은 못자리 길이다.

절고개 조금 남아있는 억새터에 자리잡고 정상주 한잔씩 하는 산님곁에서 과일하나 입에넣고 서리산 조우 산행을 원하는 산님 네명과 서리산을 오른다(12:30)

대부분 산님은 절고개에서 임도따라 하산할 예정이다.

서리산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양지쪽이라 언땅이녹아 그야말로 무논을 연상케한다.서리산의 철쭉은 수천평의군락이 형성되어 5월이면 이곳에서 서리산 철쭉축제가

열린다.서리산은 수동면 외방리에서 바라보면 소한마리가 앉아있는 형상이라 하는데 철쭉 동산에서 화채봉이나 질마재쪽으로 하산할수 있으나 우리는 14:00시

시산제 시간에 맞추기위해 질마재길로 하산하다 좌틀하여 임도길따라 하산을 하기로한다.(13:40)

가까스로 시산제 시간에 맞춰 하산하고 가인 산악회 시산제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태양을 숭배하고 산악신앙이 이어져 내려와 산신께 지내는 제사는 고문서에도 많이 보이지만 요즘처럼 산꾼들이 시산제를 지내는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설악산 관광진흥을위해 예총 설악지부에서 1966년에 설악제를 지냈다는 기록이있고, 동국대 산악팀이 68년초에 북한산에서 시산제를 지낸게 시초라한다.

1971년도에 서울시 산악연맹에서 명성산에서 2월에 설제(雪祭)지내기 시작한게 오늘날 시산제로 발달한것이다.

시산제는 유교절차에 따라 지내는데 요즘처럼 다양한 시대에는 나름의 종교와 믿음에따라 지내는게 정답일게다.

시산제는 전통적인 산악숭배사상에서 시작됐으나 요즘은 회원의 단합을위한 행사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지나친 음주가 건강을해치는 수준은 아니였으면한다.

가인산악회 집행부에서 준비한 제수로 정성스럽게 올리는 시산제인데 시산제 순서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못한 집행부와 회원들로 시산제가 뒤죽박죽인게 흠이긴

하지만 정성과 단합을 최고의 가치로 친다면 그냥 이해해줄 만하다.

시산제 순서는 강신으로부터 시작된다.

강신은 회장이나 원로회원이 맞게되는데 산신을 모셔오는 절차다.

제사상이 모셔진 앞의 돗자리에 올라 향을피우고 좌우 중앙에 술을바친후(세번씩 술을붓는다) 산신을 모셔오는 절차다,

중앙에 절을올리고"축령산 신령님 인간세계로 오십시요"하고 좌우에도 이렇게 하면 된다,

강신이후는 참신이다.참신은 모두가 재배하며 신을 맞이한다.

참신이후는 초헌이다.

산신께 첫잔을 올리는 초헌은 보통 제주인 산악회장이 맡는다.산신께 술을올리고 재배를한다.초헌후에는 제주가 제문을 읽는 독축에 들어간다.

두번째잔을 올리는 아헌은 집행부 간부나 원로인사,초청인사간 맡게되는데 역시 잔을 올리고 재배를한다.

세번째 잔을 올리는 종헌은 집안 제사에서는 종손이 하게되는데 산신제에서는 가장 열성적인 회원이나 최고령자 또는 최연소자가 하면된다.

종헌을 마치면 누구나 분향 할수있는 헌작이 이어지는데 회원이나 임원 외부인사등 누구나 잔을올리고 재배할수있다,

헌작이 끝나면소지를 하는데 가장 중요한 제사 절차다.

소지는 제문이 쓰여진 기원이 산신령님께 전해지는것을 의미하는데 가장 경건하게 치러야하는 절차다,

소지가 끝나면 철상을 하게되는데  철상은 참석자 모두가 골고루 나누어 먹는 것이 중요하다.

소지후 철상을 끝으로 모든 제는 끝나게된다,

그런데 가인산악회 시산제는 집행부의 시산제 개념이 부족해 소지 의식도 없이 철상으로 마감하고 말았으니 ....

 

1. 산행코스

   제1주차장-잣나무숲-암반약수-수리바위-남이바위-축령산정상-절고개-억새군락지-서리산-철쭉동산-질마재갈림길-임도-제2주차장

    (4시간20분,7.1km)

 

2. 산행개념도

 

 

  잣나무숲

  암반약수

  수리바위

  독수리부부가 살았다고한다,

   남이바위아래단애

 

  천마산

  축령산정상(879m)

  주금산 운악산

   운악산 명지산

  서리산

 

  산에서 승화한 산님에대한 묵념

  산악인선서

 집사가 촛불을켜고

  강신

  중앙 좌우를 향해 술을붓고"축령산 신령님 인간세계로 오십시요"

  신을모셔온다

  참신

  초헌

  독축

  제문을올림

  아헌

  종헌 없이 헌작

  중구난방이다. 정성스럽게 모신 제물인데 이해가부족하다.

  헌작

 철상

 헌작후 소지가 있어야하나 모두 정신없다.

 소지는 우리의 기원이 신령님께 전달되는 중요한 절차인데 집행부가 우왕좌왕 술먹자.....으이구

 소지없이 바로 철상으로 들어가고 ...이왕 치르는 시산제인데 절차와 절차에대한 이해도 함께 했으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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