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호남정맥 14구간(돗재-태악산-노인봉-성재봉-말머리재-촛대봉-두봉산-계기재-계당산-예재) 본문

이 또한 지나가리/호남정맥(完)

호남정맥 14구간(돗재-태악산-노인봉-성재봉-말머리재-촛대봉-두봉산-계기재-계당산-예재)

無碍人 2015. 5. 25. 20:03

2015년 5월22일 금요일 맑음 나홀로

 

광천터미널에서 택시로 이동 돗재 출발이다.(03:15)

돗재(315m)는 한천면 오음리에서 반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어미 돼지가 일곱마리 새끼에게 젓을 먹이고 있는 형상이라

돈치(豚峙)라 부르던게 돈재 돗재로 변음된 것이다.

돗재 표지석 옆에 박정희 대통령이 지원해 돗재 도로가 개설되었다는 낯간지러운 표지석이 있는데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이 도로가

개설된게 오로지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칭송 일색이다.

새마을 운동이 우리 농촌의 근대화에 분명한 공적이 있지만 그 경비의 70% 이상이 주민들의 부담이였는 다는 것은 간과하고 대통령이

특별히 이곳만 지원 해준 시멘트로 완공한 것처럼 기록돤 독재 시대의 표지석이 남아 암울한 시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

이 표지석 내용을 그대로 믿고 불철주야 근대화에만 혼신을 다한 대통령이라고 칭송하는 산행기를 본적이 있는데 정말 그렇게 믿는 건지

믿고 싶은 건지 첨예한 이념대결, 동서대결의 현주소를 보는것 같다.

한천면 오음리는 호남 탄좌가 있었던 곳으로 1960년대말 지어진 광부들의 터전 50여채가 남아 있다.

태악산(太岳山530m)은 산의 모양이 신선이 장구를 치고 노는 형상이라 하여 크게 즐긴다는 뜻으로 대악산(大樂山)이라 하였다가 변음되어

태악산이라 불리게 됐는데 그 와중에 한자음 까지 변질되어 太岳山으로 표기하게 돼어 산 이름 만으로는 그 유래를 찾을 수 없게 됐다.

태악산 오름은 등로 정비가 잘돼 있어 어둠 속에서도 편안하게 오를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어둠 속에서 산에 들면,들기 전 까지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편안해지는게 나는 이 순간의 느낌이 참 좋다.

해뜨기 직전의 어둠이 가시면 숲은 부산해 진다.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온통 숲의 잠을 깨우는데 요즘 처럼 산란기는 더 부산하고 다양한 새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예민한 산란기에 침입자를 경계하는 전통을 주고 받는 부산함 일거 같아 미안하다.(04:15)

태악산 정상을 지나면서 부터는 호남정맥의 트레이드 마크 가시덩굴과 쓰러진 나무들이 연속해서 새벽 산꾼의 발목을 잡는다.

다행인것은 지난밤 바람이 좀 불고 아직은 이슬이 내리는 계절이 아니라 숲은 쾌적하다.

아직 해뜨는 시간은 많이 남았는데 맑은 날이라 등로는 환하고 간간히 암릉길이라 잡목과 가시덤풀에서 해방 감을 맛본다.

바위 전망대에 서니 지나온 무등산이 어둠을 쫒고 있고 아래 동가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노인봉(529.9m)에서 성재봉(519m) 오름을 극복하면 등로는 다시 친절 해진다.

키큰 나무들로 인해 뚜렷한 등로가 선답자들의 산행기와는 사믓 다르게 편안하다.(05:44)

성재봉에서 편안한 등로를 40여분 오르 내리면 움푹파인 고갯길이 나오는데 좌측으로 벌목을 하여 등로를 어지럽게 막아 놨다.

말머리재(365m)다.말머리재는 한천면 고시리와 이양면 고암촌 마을을 연결하는 고개다.(06:24)

 

화순군은 동복현 화순현 능주현으로 하천에 따라 발달해 왔다.

동복현이 동복천()를 중심으로 동부를 남류하는 지점에, 능주현은 능주천()이 중앙을 북류하는 유역에 자리하고,

화순현은 화순천()이 북부를 서류하는 곳에 있다.

이들 하천유역에는 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나 화순천과 능주천이 합류하는 지석천 유역에 발달한 능주평야가 있다.

특히 이곳 능주현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인물로 이곳에 유배와 있다가 사약을 받고 죽은 조광조와 그와 사가독서()를 함께 했던

양팽손이다.

정암 조광조가 유배된지 한달 만에 사약을 받고 사사 당하자 학포 양팽손이 정암 선생의 시신을 은밀히 거두어 쌍봉사 골짜기,일명 조대감골에

장사지내고 서운태(서원터) 마을에 모옥을 짓고 춘추로 문인 제자들과 함께 제향 하였다.

죽수서원은 이 두사람을 배향하고 있다.

또한 이곳 능주 출신으로

중국 국가를 작곡한 녜얼, '황하대합창'을 창작한 셴싱하이(洗星海)와 더불어 중국의 3대 음악가로 불리는 정률성이 있다.

1914년 이곳 능주에서 출생 능주 초등학교를 다닌,정률성은 19살에 옌안으로 건너가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중국의 아리랑격인

'연안의 노래'등 360여곡을 남겼다.
'팔로군행진곡'은 1949년 중국 건국과 함께 '인민해방군가'로 불려오다가 1988년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국군 정식군가로 비준 받았다. 몇해전 건군 60주년 때는 '신중국 창건 영웅 100명'에 뽑히기도 했다.

정율성의 한국에서의 이름은 정부은(鄭富恩)이다.

정부은이 화순 능주 관영리에서 태어나 능주초등학교 ,광주숭일학교, 전주신흥학교를 다녔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광주 동구 불노동에

그의 제적부가 남아 있다.

정부은의 아버지는 하동 정씨 정해업(鄭海業 1873-1931)이고 부은은 그의 넷째 아들이다.

다만 광복후 정률성이 북한으로 가 한국전쟁중인 1950년 10월까지 북한에서 활동 했다는 것만으로 그의 일생이 평가 절하 돼서는 안될 

능주가 낳은 큰 인물이다.

 

말머리재에서 촛대봉(522.4m) 오름은 여러개의 전위봉을 넘어야 하는 완만한 오름이 계단식으로 이어진다.

촛대봉 정상에 조망은 없고 촛대 모양을 닮아 촛대봉이라 하는데 산정에서 본 정상은 전혀 촛대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촛대봉이라는 이름을 헛투로 얻은 것은 아닐테고 산아래 어딘가에서는 촛대처럼 보일것이다.

숲이란 숲 가까이서 알 수 없듯이 산의 형상도 그 산에 들어서 보다는 한발 비껴선 산 아래서 보아야 하는 법이니 눈앞에 보이는 형상이

촛대 모양이 아니라고 타박할 일은 아니다.

등로는 편안하고 친절하며 간간히 등로에 튼실한 취나물이 유혹한다.(07:34)

두봉산(斗峰山630.5m)은 오늘 구간중 가장 높은 봉우리로 화순군 한천면과 이양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옛날 이산에서 파수를 봤다하여

'망방산'이라 불렸다가 나중에 음이 변해'말봉산'이 되고 이를 한자로 표기 하면선 말 '斗'자를 쓴 전혀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다.(08:30)

두봉산부터 장재봉 갈림길 개기재로 이어지는 등로는 오늘 구간중 가장 편안하고 친절한 구간이다.

등로는 연초록이 진초록으로 여름을 재촉하는 숲의 향연이 벌어지고 등로 곧곧에 손타지 않은 취나물이 산꾼의 발목을 잡는다.

개기재 직전의 급한 내림은 편안한 구간중에 애교 정도로 가볍다.

개기재(290m)는 보성군 복내면 진봉리와 화순군 이양면 옥리를 이어주는 고개다.

이제부터 정맥길은 본격적으로 이양면 한천면 면계에서 화순군 이양면 보성군 복내면의 군계로 이어진다.(10:00)

개기재로부터 계당산으로 오르는 정맥길은 완만하게 꾸준히 오른다.

그러나 계단식으로 전위봉을 올라가는 편안하고 친절한 등로가 계속되고 호남정맥 종주중 산꾼들의 원성을 사던 가시덩쿨의

정체가 들어난다.

가시덩쿨 이름을 몰라 긴가민가 했던 덩쿨이 탐스럽고 요염하게 계집아이 젖꼭지 같은 산딸기를 선사한다.

내가 흔하게 보던 복분자 나무와 비슷하긴 해도 뭔가 다르게 느껴지던 가시덩쿨이 산딸기 나무였다.

몇알 따 입안에 넣어보니 엄청 달다.

생긴 모양도 덩쿨 생김새도 뭔가 1%로 부족하게 생겼는데 맛은 엄청달다.

오늘 등로 옆에 비껴선 산딸기 덩쿨이 산꾼을 행복하게 한다.

계당산(桂堂山 580.2m)은 보성군과 화순군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옛 기록에는 중조산(中條山)으로 기록 돼 있으며, 이 산에 불이 나면 비가

온다고 전해 내려 오며 기우제를 지내던 산이다.

산 정상에는 철쭉 군락지가 제법 넓게(3만)형성돼 있고 산아래에는 신라 경문왕때 철감(澈鑑)선사 도윤(道允798-868)이 세운 쌍봉사가 있다.

또한 한말 의병 활동이 활발했던 곳으로 의병들의 근거지로 쌍산의소(雙山義所)가 사적지로 지정돼 있다.(11:40)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계당산 에서 예재구간이 취 군락지라 봄에 이곳을 지난 산꾼들의 취 채취가 많았다.

본격적으로 취를 채취하기 위해 스틱을 접고 출발한다.

등로는 철쭉재를 하는 산이라 그런지 정비가 잘돼 있고 오르내림도 심하지 않아 친절하고 편안하다.

등로 정비를 해 취가 잘자랄 수 있어서 그런지 취가 많다.

비닐 팩 2개를 가득채우니 배냥에 더 담을 곳이 없다.

산행도 하고 취나물 채취도 하고 덕분에 계당산 예재 6km 구간을 어떻게 지났는지 금새 예재에 도착한다.

예재(禮峙)는 고개에 쑥이 많아 애재(艾峙)라 하였는데 한자음이 바뀌어 예재가 됐다.

화순군 이양면과 보성군 노동면을 이어주는 고개다.

"여지도"에 여점()은 중조산 아래 기슭에 있다.라고 기록된것으로 봐서 여점이 곧 예재다.

"해동 지도"에는 왜치()로 기록 돼 있다.

경전선 철도와 29번 국도가 지나는 터널이 2개 있어 옛길이된 예재는 승용차만 겨우 지날 수 있다.

 

1. 산행경로

   돗재-태악산-노인봉-성재봉-말머리재-촛대봉-두봉산-개기재-계당산-예재

   (11시간10분,23.6km)

 

2. 산행경로

   22:00분 - 집출발
   23:00분 - 인천터미널
   02:30분 - 광천터미널
   03:15분 - 돗재(315m) 822번도로 택시이동 광천-돗재 35000원
   04:15분 - 태악산(530m)
                  태악산오름 등로양호
                  노인봉오름잡목과 넘어진 나무로 등로 불친절
   05:20분 - 노인봉(529.9m)
   05:44분 - 성재봉(519m)
   06:24분 - 말머리재(365m)
                  촛대봉오름 계속된 전위봉이 계단처럼오름
   07:34분 - 촛대봉(522.4m)
   08:30분 - 두봉산(631m) 산불감시카메라
   08:52 분 - 장재봉갈림길(592m)
                   두봉산부터 개기재까지 오르내림없는 편안한등로
   10:00분 - 개기재(290m) 58번도로
                  완만하게 꾸준히 오름 친절한등로
   11:47분 - 계당산(580m)이정표.삼각점
   13:50분 - 편백나무군락지-헬기장(335m)-우측
                  계당선서 예재는오르내림없고 정비가 잘돼 편안한등로

                  취가 많아 스틱접고 본격적으로 취채취
   14:25분 - 예재(292m) 29번구도로/산행종료
                                    이양택시 콜 10000원 이양면
   14:55 분 -광주행(218-1번버스) 첫차 05:27분
   17:00분 - 광주출발
   21:30분 - 인천터미널
   22:00분 - 집도착

 

@. 교통편

   인천-광주 심야우동고속

   광천터미널-돗재 택시 35000원

   예재-이양면소재지 택시 10000원

   이양-광천터미널 218-1번 버스 30분간격배차

   광주-인천 우동고속

 

3. 산경표

 

 

돗재 표지석

옆에 말도 안돼는 박정희 각하의 치적비가 있다.

하도 어이 없어 무시 하기로 한다.

 

 

태악산 정상

 

 

 

 

 

노인봉

성재봉

 

 

일출이 한참 지나 잘 안잡힌다

연무에 같혔다.

 

말머리재

무등산이 뒤를 챙긴다.

 

촛대봉

촛대봉에서 본 두봉산

 

두봉산

 

 

출렁대는 호남정맥의 마루금

 

 

 

가시나무 정체가 산딸기다.

 

개기재

 

 

 

계당산 철쭉 군락지

뒤돌아본 두봉산

 

 

 

 

 

 

 

 

 

 

 

계당산 정상

 

 

비닐팩 2개가 가득하게 채취

편백나무 숲

 

 

 

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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