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한강기맥 1구간종주(상원사-북대사-두로령-두로봉-두로령-상왕봉-비로봉-중대사-상원사) 본문

이 또한 지나가리/한강기맥(完)

한강기맥 1구간종주(상원사-북대사-두로령-두로봉-두로령-상왕봉-비로봉-중대사-상원사)

無碍人 2017. 6. 1. 12:01

2017년 5월 29일 월요일 맑음(폭염) 천사랑


한강은 백두대간을 병풍삼아 한남정맥과 한북정맥을 좌청룡 우백호로 골골이 물을 몰아 충청 강원 경기도를 적시며 수도 서울을 관통하여

서해로 흐른다.

백두대간에서 발원한 물은 남으로 한남정맥이 물길을 막고,북으로 한북정맥이 물길을 몰아가다 백두대간 두로봉에서 뻗어나온

산줄기에 물길이 나뉘니 남한강과 북한강이다.

두로봉,비로봉,계방산,보래봉,오음산,용문산,청계봉으로 168km 산줄기의 북으로 흐르는 물은 북한강, 남으로 흐르는 물은 남한강,

이 두 물줄기를 나누는 산줄기가 비록 산경표에는 들지 못했지만 해발 1000m급 산을 10개나 보유하고 있는 한강기맥이다.

한강기맥은 두로봉을 출발하여 강원도를 남북으로 나누다가 강원도와 경기도 도계를 구분하며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맥을 다한다.

1대간 9정맥중 낙동이 아직 절반이나 남았으나 친구와 함께 시작한 산행이라 함께 마쳐야 할것 같아 일정 조율이 안될때 짬찌미로

다녀오려 상대적으로 집에서 가까운 한강기맥을 대타 산행지로 선택하고  오늘 천사랑 입학식을 치뤘다.

출발부터 교통편이 그리 나쁘진 않다.

짧게 짧게 거리를 조정하면 전구간을 당일 대중교통으로 이어 갈수도 있겠다 싶다.

남부터미널에서 7시 첫 버스로 진부에 이르고 진부에서 상원사행 버스로 환승하여 서둘러 상원사 동종을 찾는다.(10:15)

왜냐하면 지난 겨울 눈산행후 자료를 찾다보니 상원사동종이  할급휴서(割給休書)를 한후 안동도호부에서 이곳으로 올수 있었다는데

그 흔적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하산후 확인해도 돼는데 상원사동종이 유리벽에 안에 있고 오후 4시만 넘으면 셔터를 내린다는 정보가 있어서다.

할급휴서(割給休書)의 '할급(割給)'은  '가위로 옷을 베어준다'는 뜻이다.

조선의 양반사회에서는 내외가 갈라서는 이혼이 국법으로 엄중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평민들은 '할급' 즉, ‘저고리의 옷섶을 잘라줌’으로써 남편은 아내에게 이혼을 증빙 할 수 있었다.

부부가 살다가 도저히 뜻이 안맞아 서로 헤어질때 저고리 옷섬을 남편이 잘라 주면 그게 이별의 증표가 되었다.

그 할급의 증표가 상원사동종에도 있었으니......

상원사 동종은 원래 안동도호부에 있었다.

조카 단종을 왕위에서 몰아내고 왕이된 세조는 평생을 죄책감에 피부병에 시달렸다.

세조가 몸의 피부병을 낫게 하려고 전국의 물좋은 곳을 찾아 다녔는데....

세조가 어느날 상원사 입구에서 목욕을 하는데 동자승하나가 지나길래 등을 밀어달라 부탁을 했다.

세조의 불심을 잘 아는 동자승은 신심으로 세조를 씻겨 피부병을 낫게 했다.

세조가 고마움에 동자승에게 자기가 임금임을 밝히고 어디가서 임금을 목욕 시켰다고 말하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자 동자승이 빙그레 웃으며 임금님께서도 어디가서 문수보살이 목욕을 시켜 줬다고 말하지 말라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불심이 깊었던 세조는 피부병을 낫게해준 문수보살의 은공을 갚기위해 전국을 수소문해 안동도호부 문루에 있던 동종을 이곳에 모시게 했다.

그러나,안동도호부 남문루에 있던 상원사 동종은 무게가 3300근이나 됐다.

800년이나 이 곳에 머물던 동종이 안동을 떠나 죽령을 넘으면 다시는 이곳에 돌아 올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풍기를 지나 죽령을 넘어 제천 원주를 거쳐 오대산까지 가는데 100년을 사는 사람도 그 이별에 아파하는데 800년을 한자리를 지켜온

동종이 안동을 떠날 수 없어 죽령을 넘기전 멈춰 버린것이다.

호송인원 500명 말 100필을 동원했으나 5일동안이나 꼼짝을 하지 않았다.

결국 남녀가 이별 할때 하던 것처럼 동종의 젖꼭지, 종유(鍾乳)를 잘라 남문루에 묻고, 제사를 지내고서야 움직 였다고 한다.

일본종이나 중국종에는 없는 종유는 한국종에만 있다.

4개의 종곽에 9개의 종유가 배열되어 36개의 종유가 있는게 특징이다.

그 종유를 하나 떼어 내고서야 이곳 상원사까지 올수 있었다.

찬찬히 살펴보니 4개의 종곽중 한곳 좌측 상단 첫번째 종유가 잘라져 있다.

훗날 상원사 동종의 할급휴서(割給休書)를 따라한 연인이 있었다.

퇴계 이황이 두번의 상처를 하고 단양군수로 부임해 있을때 관기였던 두향을 만났다.

두향의 나이 18세 퇴계는 48세

두향과 퇴계는 주로 강선대 위에서 거문고를 타고 함께 선경을 즐겼다.

그러나 두향은 관기였으나 몸을 함부로 굴리는 은군자(隱君子)가 아니였다

절개가 강하고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다.

퇴계에게 두향은 고독하고 적적한 인동의 긴 세월끝에 맞은 설중매와 같은 존재였다.

바람불고 비오는 운우의 쾌락(悅樂)을 알았다

두사람이 함게 했던 기간은 불과 9개월, 일장춘몽처럼 짧았으나 두사람의 정은 무산지몽(巫山之夢)처럼 깊었다.

풍기군수로 임지를 옮기는 마자막 밤 서로의 마음을  알리는 시를 건네고 거문고로 이별의 노래를 불렀다.

두향의 얼굴은 흘러내린 눈물로 젖어 있었다.

두향은 천천히 저고리를 벗기 시작하였다. 고름을 풀어 내리고 가슴을 헤쳤다.
“나으리, 젖꼭지 하나를 베어 내소서. 그래야만 나으리를 향한 소첩의 미련이 끊어질 것이 나이다.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전부터 이어진 나으리와의 천겁의 인연이 끊어질 것이 나이다.”
천천히 저고리를 다 벗은 두향이 은장도 하나를 꺼내어 방바닥위에 놓았다.

흘러 들어온 달빛이 두향의 가녀린 어깨를 감싸고 있었고, 풀어헤친 긴 머리카락 사이로 두향의 젖가슴이 흔들리고 있었다.
“정녕 가슴하나를 베어 달라는 것이냐.”
침묵을 지키던 퇴계가 마침내 입을 열어 물었다.
“베어주소서.”
결연한 목소리로 두향이 대답 하였다.

그러자 퇴계는 천천히 손을 뻗어 은장도를 집어 들었다.

비록 노리개로 갖고 다니는 작은 칼이었으나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퇴계는 칼을 들어 곁에 벗어둔 두향의 저고리를 펼쳤다.

저고리는 갑사 저고리였는데, 퇴계는 망설임 없이 칼을 들어 저고리의 깃을 잘라냈다.


상원사 동종의 할급휴서 흔적을 확인하고 버스종점으로 돌아와 우측 임도 따라 북대사 방향으로 임도 따라 오른다.(10:45)

임도따라 20분쯤 진행하다 좌측 산길로 가파른 오름을 오르면 북대산 직전 통신탑 앞 임도에 합류한다.

신축중인 북대사를 지나면 평지 수준의 임도가 두로령까지 2km정도 이어지고 두로령 표지석에 배낭을 내려 놓고 두로봉에 다녀 온다.

왕복 1시간이면 넉넉하게 다녀올 수 있다.

백두대간 종주시 진고개 동대산 두로봉으로 이어지는 대간 능선 산행시 목에 담이 걸려 고생했던 생각이 새롭다.(12:45)

두로봉에서 백두대간 산신께 물한잔 올리고 무사 산행을 기원하고 두로령으로 돌아와 막초 한잔 따라 한강기맥의 모든 산신께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예를 갖춘다.(13:11~40분)

천사가 준비한 제육볶음과 상추로 맛난 점심을 해결하고 상왕봉의 완만한 오름을 3단으로 올라 상왕봉 정상에 선다.(14:25)

지나온 두로봉과 옆 동대산, 건너 비로봉 호룡봉 멀리 소황병산 그너머 황병산이 아스라하고....북으로 백두대간 구룡령길 넘어 점봉산,

설악산도 스모그에 흐릿하지만 윤곽이 뚜렷하다.

오대산은 주봉인 비로봉을 비롯하여 다섯개 연봉이 주축을 이루며 연꽃처럼 피어있어 산 자체가 사찰이라 '오대산 월정사'가 아니라

'월정 대가람'이라는 일주문의 현판이 다른 산의 사찰과 다르다.

오대산이라는 이름은 자장율사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살면서부터라고 하는데 자장율사 이후 신라 신문왕의 두아들 보천과 효명태자가 왕

위를버리고,이곳에 살면서부터 오류성중 신앙으로 발전하며  5만의 불보살이 상주한다고 하여 그리 불린다.

다섯봉우리 외에도 노인봉 계방산,복용산등 그만그만한 준봉들이 주요 산마루를 이루며 평정봉을 이루고 있어 우아한 여성의 풍치를 

보여주고 있고, 부드러운 그리뫼를 보여주는 육산이다.

산세가 여성스럽지만 계곡의 수려함은 깊은 골을 이루고 이곳이 우리산의 근간인 백두대간과 한강기맥의 분기점이다.

오대산은 산 그 자체가 거대한 사찰로서 비로봉을 중심으로 백두대간이 우백호를 이루고 호령봉을 이루는 한강기맥이 좌청룡이 되어

월정 대가람을 수호한다.

석가모니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는 적멸보궁을 중심으로 북쪽 상왕봉은 석가여래부처,동쪽 동대산은 관세음보살,남쪽 기린산에는

지장보살,서쪽 호령봉에는 아미타여래가 상주한다는것이 보천과 효명태자의 믿음이었으니 오대산은 불교의 성지인것이다.

비로봉 직전 지난 겨울 친구 B와의 앗찟한 경험도 지나고 나니 추억이다.

체감온도 영하15℃에 친구의 근육통으로 119를 호출하고 하산 하던때가 지금 생각해도 아직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비로봉에서 인증샷하고 다음구간 호룡봉 방향 마루금입구를 확인하고 적멸보궁을 거쳐 중대사 상원사로 하산한다.(15:20)

상원사에 들러 동종을 다시 살펴볼까 하고 종각에 이르니 사전에 얻은 정보처럼 동종은 셔터가 내려져 있어 다시 종유를

재확인하는것은 아쉽게됐다.

상원사에서 진부로 나가는 막차인 17:20분 버스로 진부터미널에 이르러 17:50분 남부터미널행 버스로 환승한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절대로 17:50분발 버스를 탈 수 없는데 고속도로가 공사중이라 주문진에서 출발한 버스가

늦게도착하여 운좋게 남부터미널행 버스에 탑승한다(18:00)


1. 산행코스

   상원사-북대사-두로령-두로봉-두로령-상왕봉-비로봉-중대사-상원사

   (5시간 55분,15.2km)


2. 산행경로

   05:10분 - 부펑집
   05:30분 - 부평구청역
   07:00분 - 남부터미널
   09:40분 - 상원사행
   10:15분 - 상원사
   10:45분 - 임도길산행
   11:50분 - 상왕봉갈림길-북대사
   12:15분 - 두로령
   12:45분 - 두로봉(1,421m) 
   13:11분~40분 - 두로령(점심)
   14:00분 - 북대사 삼거리 
   14:25분 - 상왕봉(1,491m) 
   15:20분 - 비로봉(1,563m)
   16:20분 - 중대사
   16:40분 - 상원사
   17:20분 - 진부행탑승
   17:50분 - 남부터미널행 탑승(고속도로정체로 18:00출발)


@. 교통편

   남부터미널-진부터미널(동서울터미널에 차 많음)

   진부터미널-상원사(진부출발 0830,0940,1050,1150분...)

   상원사-진부터미널(상원사출발 1450,1620,1720분)

   진부터미널-남부(동서울)터미널(진부출발 35분간격 막차 2040분,남부행별도)


3. 산경표




백두대간 두로봉(한강기맥발원봉)


관대걸이



상원사

상원사동종

할급휴서 흔적


할급휴서(割給休書)의 '할급(割給)'은  '가위로 옷을 베어준다'는 뜻이다.

조선의 양반사회에서는 내외가 갈라서는 이혼이 국법으로 엄중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평민들은 '할급' 즉, ‘저고리의 옷섶을 잘라줌’으로써 남편은 아내에게 이혼을 증빙 할 수 있었다.

부부가 살다가 도저히 뜻이 안맞아 서로 헤어질때 저고리 옷섬을 남편이 잘라 주면 그게 이별의 증표가 되었다.

그 할급의 증표가 상원사동종에도 있었으니......

상원사 동종은 원래 안동도호부에 있었다.

조카 단종을 왕위에서 몰아내고 왕이된 세조는 평생을 죄책감에 피부병에 시달렸다.

세조가 몸의 피부병을 낫게 하려고 전국의 물좋은 곳을 찾아 다녔는데....

세조가 어느날 상원사 입구에서 목욕을 하는데 동자승하나가 지나길래 등을 밀어달라 부탁을 했다.

세조의 불심을 잘 아는 동자승은 신심으로 세조를 씻겨 피부병을 낫게 했다.

세조가 고마움에 동자승에게 자기가 임금임을 밝히고 어디가서 임금을 목욕 시켰다고 말하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자 동자승이 빙그레 웃으며 임금님께서도 어디가서 문수보살이 목욕을 시켜 줬다고 말하지 말라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불심이 깊었던 세조는 피부병을 낫게해준 문수보살의 은공을 갚기위해 전국을 수소문해 안동도호부 문루에 있던 동종을 이곳에 모시게 했다.

그러나,안동도호부 남문루에 있던 상원사 동종은 무게가 3300근이나 됐다.

800년이나 이 곳에 머물던 동종이 안동을 떠나 죽령을 넘으면 다시는 이곳에 돌아 올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풍기를 지나 죽령을 넘어 제천 원주를 거쳐 오대산까지 가는데 100년을 사는 사람도 그 이별에 아파하는데 800년을 한자리를 지켜온

동종이 안동을 떠날 수 없어 죽령을 넘기전 멈춰 버린것이다.

호송인원 500명 말 100필을 동원했으나 5일동안이나 꼼짝을 하지 않았다.

결국 남녀가 이별 할때 하던 것처럼 동종의 젖꼭지, 종유(鍾乳)를 잘라 남문루에 묻고, 제사를 지내고서야 움직 였다고 한다.

일본종이나 중국종에는 없는 종유는 한국종에만 있다.

4개의 종곽에 9개의 종유가 배열되어 36개의 종유가 있는게 특징이다.

그 종유를 하나 떼어 내고서야 이곳 상원사까지 올수 있었다.

찬찬히 살펴보니 4개의 종곽중 한곳 좌측 상단 첫번째 종유가 잘라져 있다.

훗날 상원사 동종의 할급휴서(割給休書)를 따라한 연인이 있었다.

퇴계 이황이 두번의 상처를 하고 단양군수로 부임해 있을때 관기였던 두향을 만났다.

두향의 나이 18세 퇴계는 48세

두향과 퇴계는 주로 강선대 위에서 거문고를 타고 함께 선경을 즐겼다.

그러나 두향은 관기였으나 몸을 함부로 굴리는 은군자(隱君子)가 아니였다

절개가 강하고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다.

퇴계에게 두향은 고독하고 적적한 인동의 긴 세월끝에 맞은 설중매와 같은 존재였다.

바람불고 비오는 운우의 쾌락(悅樂)을 알았다

두사람이 함게 했던 기간은 불과 9개월, 일장춘몽처럼 짧았으나 두사람의 정은 무산지몽(巫山之夢)처럼 깊었다.

풍기군수로 임지를 옮기는 마자막 밤 서로의 마음을  알리는 시를 건네고 거문고로 이별의 노래를 불렀다.

두향의 얼굴은 흘러내린 눈물로 젖어 있었다.

두향은 천천히 저고리를 벗기 시작하였다. 고름을 풀어 내리고 가슴을 헤쳤다.
“나으리, 젖꼭지 하나를 베어 내소서. 그래야만 나으리를 향한 소첩의 미련이 끊어질 것이 나이다.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전부터 이어진 나으리와의 천겁의 인연이 끊어질 것이 나이다.”
천천히 저고리를 다 벗은 두향이 은장도 하나를 꺼내어 방바닥위에 놓았다.

흘러 들어온 달빛이 두향의 가녀린 어깨를 감싸고 있었고, 풀어헤친 긴 머리카락 사이로 두향의 젖가슴이 흔들리고 있었다.
“정녕 가슴하나를 베어 달라는 것이냐.”
침묵을 지키던 퇴계가 마침내 입을 열어 물었다.
“베어주소서.”
결연한 목소리로 두향이 대답 하였다.

그러자 퇴계는 천천히 손을 뻗어 은장도를 집어 들었다.

비록 노리개로 갖고 다니는 작은 칼이었으나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퇴계는 칼을 들어 곁에 벗어둔 두향의 저고리를 펼쳤다.

저고리는 갑사 저고리였는데, 퇴계는 망설임 없이 칼을 들어 저고리의 깃을 잘라냈다.










북대사


두로령가는임도



두로령



두로봉

한강은 백두대간을 병풍삼아 한남정맥과 한북정맥을 좌청룡 우백호로 골골이 물을 몰아 충청 강원 경기도를 적시며 수도 서울을 관통하여

서해로 흐른다.

백두대간에서 발원한 물은 남으로 한남정맥이 물길을 막고,북으로 한북정맥이 물길을 몰아가다 백두대간 두로봉에서 뻗어나온

산줄기에 물길이 나뉘니 남한강과 북한강이다.

두로봉,비로봉,계방산,보래봉,오음산,용문산,청계봉으로 168km 산줄기의 북으로 흐르는 물은 북한강, 남으로 흐르는 물은 남한강,

이 두 물줄기를 나누는 산줄기가 비록 산경표에는 들지 못했지만 해발 1000m급 산을 10개나 보유하고 있는 한강기맥이다.

한강기맥은 두로봉을 출발하여 강원도를 남북으로 나누다가 강원도와 경기도 도계를 구분하며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맥을 다한다.





황병산




















연달래(수달래)가 지금 절정이다







상왕봉

백두대간 구룡령(잘록한 길)








땅벌(바도르라고 하는 땡별)

아직은 독이안올라 순하다

여름지나면 산행시 조심해야할듯


주목




비로봉













오대산은 주봉인 비로봉을 비롯하여 다섯개 연봉이 주축을 이루며 연꽃처럼 피어있어 산 자체가 사찰이라 '오대산 월정사'가 아니라

'월정 대가람'이라는 일주문의 현판이 다른 산의 사찰과 다르다.

오대산이라는 이름은 자장율사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살면서부터라고 하는데 자장율사이후 신라 신문왕의 두아들 보천과 효명태자가 왕

위를버리고,이곳에 살면서부터 오류성중 신앙으로 발전하며  5만의 불보살이 상주한다고 하여 그리 불린다.

다섯봉우리 외에도 노인봉 계방산,복용산등 그만그만한 준봉들이 주요 산마루를 이루며 평정봉을 이루고 있어 우아한 여성의 풍치를 

보여주고 있고, 부드러운 그리뫼를 보여주는 육산이다.

산세가 여성스럽지만 계곡의 수려함은 깊은 골을 이루고 이곳이 우리산의 근간인 백두대간과 한강기맥의 분기점이다.

오대산은 산 그 자체가 거대한 사찰로서 비로봉을 중심으로 백두대간이 우백호를 이루고 호령봉을 이루는 한강기맥이 좌청룡이 되어

월정 대가람을 수호한다.

석가모니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는 적멸보궁을 중심으로 북쪽 상왕봉은 석가여래부처,동쪽 동대산은 관세음보살,남쪽 기린산에는

지장보살,서쪽 호령봉에는 아미타여래가 상주한다는것이 보천과 효명태자의 믿음이었으니 오대산은 불교의 성지인것이다.









중대사




다람쥐가 참 많다.

상위 천적이 없는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사람주변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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