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관악지맥 3구간종주(갈현고개-3봉-육봉국기봉-팔봉국기봉-관악산정상-마당바위-까치고개-까치산정상) 본문

이 또한 지나가리/한남정맥의 지맥

관악지맥 3구간종주(갈현고개-3봉-육봉국기봉-팔봉국기봉-관악산정상-마당바위-까치고개-까치산정상)

無碍人 2018. 3. 19. 19:23

2018년 3월 19일 월요일 강풍 간간이 비 나홀로


갈현(葛峴)고개는 과천시 갈현동에 있는 고개로 가루개(葛峴)라 부른다.

제비울에서 찬우물 쪽으로 넘어가는 작은 고개를 '가루개'라 불렀다.

가루개는 아마도 '갈(칡)고개' 음운변화로 가루개라 한것 같다.

정부종합 청사역 6번 출구로 나와 삼남길 따라 인덕원 방향으로 가면 2번째 버스 정류장이 갈현고개 찬우물 정류장이다.

찬우물 정류장 직전 수자원공사 한강권역본부(kwater) 노란색 건물옆(맞은편 삼성아파트)으로 오르면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이내 과천 상수도사업소 맑은물 관리본부 도로와 만난다.

도로 따라 우측으로 가다 과천 중앙고등학교 직전 좌측으로 오르면 보광사가 내려다보이고 맑은물 사업소 담장 철책따라

마루금이 이어지고 폐 산불 감시탑이 있는 115봉이다.

찬우물은 정조가 화성으로 능행차를 가던 중 갈증을 느끼자 한 신하가 이 우물물을 떠다 바쳤다고 한다.

물을 마신 정조는 물 맛이 유난히 좋다고 하면서 이 우물에 당상(堂上)의 품계를 내렸다.

이때부터 이 우물은 '가자우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물 맛이 좋고 차다고 해서 이후 '찬우물'이라 불렸는데 아직 우물이 남아 있으나 도시 개발로 물이 나지 않아 인근 지하수를

끌어다 복원은 했다 한다.(09:36)

115봉에서 아기자기한 오솔길을 따르니 어느새 봄의 전령 생강나무 꽃은 만개를 했고 개버들잎도 활짝 폈다.

중앙공무원 연수원 담장과 마주하고 마루금이 연수원 안으로 이어지나 진행 할 수 없으니 죄측으로 우회하면

국군지휘 통신사령부 후문 다리를 건너고 야생화 자연학습장 중앙 통로를 지나 전통 줄타기 공연장뒤로 마루금을 찾아

오르면 중앙공무원 연수원뒤 개울을 다시 건너 마루금에 접속한다.(10:50)

지맥길은 이곳에서 관악산 육봉능선 삼봉 사봉 오봉 육봉으로 이어지는데 그 오름이 암릉에 급경사다.

급경사 바위지대를 오르다 보면 마당바위 처럼 넓다란 암반을 지나는데 무수한 총탄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곳에서 어느 젊은 청춘들이 총칼을 마주하고 처절한 운명의 순간을 맞이 했을까 생각하니 모골이 성연하다.

이곳은 한국전쟁 초반 1950년 6월28~7월4일 근간에 한강 방어를 위해 국군이 치열한 방어선을 폈던 과천 신사동 전투 구간이다.

찬우물 고개에 있는 고 김승철중위의 전적비와 관련있는 전투였는지.....

고 김승철 중위는 평북 선천에서 출생하여 단신 월남해 육사9기를 졸업하고 전쟁중에 이한림장군 부관으로 근무하다

이곳에 매복해 있던 북한군이 공격을 하자 이한림 장군을 몸으로 막아 구하고 전사한 참 군인이였다.

육봉 국기봉으로 오르는 암릉은 아기자기한 바위 능선으로 모처럼 바위를 타는 스릴이 있어 좋긴 한데 오늘 이곳 날씨

방해가 심하다.

강풍에 간간이 내리는 봄비가 바위를 적셔 여차하면 곤두박질 하기 십상이다.

육봉 국기봉의 국기가 바람을 타고 봄을 재촉한다.(12:20)

인천살이 40년에 관악은  수십번은 올랐다.

익숙한 육봉지나 팔봉능선 갈림길도 지나고 관악 정상에 든다.

검붉은 바위로 이루어진 관악은 그 꼭대기가 마치 큰 바위 기둥을 세워 놓은 모습으로 보여서 '갓 모습의 산'이란 뜻의 

'갓뫼(간뫼)' 또는 '관악(冠岳)'이라고 했다.
관악산은 옛 지도에는 '관악'으로 많이 나온다.
악(岳) 자체가 산(山)을 뜻하기 때문에 옛날에는 그 뒤에 다시 '산'자를 덧붙이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운악,북악,치악 등이 모두 그와 같은 예들이다.
이렇듯 관악의 산이름은 그 형상이 마치 관처럼 생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처음의 산이름은 주위 산세에서 으뜸 간다는 뜻이라고 한다.
예부터 개성 송악(松岳),가평 화악(華岳),파주 감악(紺岳),포천 운악(雲岳)과 함께 경기 오악(五岳)의 하나였다.
빼어난 수십개의 봉우리와 바위들이 많고, 오래 된 나무와 온갖 풀이 바위와 어울려서 철따라 변하는 산 모습이 마치 금강산과 같다 하여

'소금강(小金剛)' 또는 서쪽에 있는 금강산이라 하여 '서금강(西金剛)'이라 했다.

관악산 정상을 연주대(戀主臺)라고 부르는 건, 정상에 있는 응진전(應眞殿) 때문이다.

고려시대 이전에 지은 것은 추측되는 응진전은 용의 이빨처럼 날카롭게 솟은 바위틈에 30m 높이의 축대를 쌓아 터를 만들었다.

연주대는 원래 의상대(義湘臺)라 불렸는데 "연주암지"에 의하면, 677년(신라 문무왕17) 의상대사가 관악산의 수려함에 끌려 정상에

의상대를 짓고 동시에 현재 연주암 자리에 관악사를 창건했다.

의상대가 연주대로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은 고려가 멸망하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오빠 강득용이 이곳에서 통곡하며 고려를

연모한 데서 비롯되었다.

또 세종대왕의 둘째형인 효령대군이 이곳에 올라 시를 짓고 궁궐에 있을 때를 그리워하며 제일 높은 바위에 연주대라는

글씨를 친히 새겨 그 이름이 굳어졌다.(13:50)

평일 인지라 정상엔 등산객이 없다.

아마 날씨 탓도 있으리라 오늘 비와 강풍이 산행 하기엔 적당하지 않다.

가볍게 출발한 지맥길인데 익숙한 구간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관악산 정상에서 사당으로 하산 하는 길은 연주대 암릉구간이 언제 부터 데크로 새로운 길이 잘 만들어져 있다.

익숙한 마루금따라 까치고개에 이르고 남부순환선 육교를 건너 까치봉 정상에서 남성역으로 하산한다.

까치고개는 관악구 봉천동과 동작구 남현동을 오가던 고개로 숲이 깊고 큰나무가 많아 까치가 많아 '작현(鵲峴)',

'가추개'라 불렸다.

낙성대는 귀주대첩의 명장 인헌공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곳이다.

고려 정종 3년 삼한벽상공신 궁진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장군이 태어날 때 이곳에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낙성대라 이름 붙여졌다.

장군이 소년 원님으로 부임 했을때 나이 어린 그를 얕잡아 보는 관속들에게 뜰에 세워둔 수숫대를 소매 속에 다 집어넣어 보라고 하였다.

관속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자 강감찬 장군은 "겨우 일 년 자란 수숫대도 소매에 다 집어넣지 못하면서 20년이나 자란 원님을 아전이

소매 속에 집어넣으려 하느냐!"며 호통쳤다는 일화는 그의 사람 됨을 짐작케한다.(16:20)


1. 산행코스

   갈현고개-3봉-육봉 국기봉-팔봉국기봉-관악산정상-마당바위-까치고개

   (9.9km, 6시간 44분)


2. 산행경로

   08:20분 - 부평구청역
   09:20분 - 과청정부청사역
   09:36분 - 갈현고개
                삼성아파트 맞은편 수자원공사 노란건물 맑은물사업소 우측돌아보광사뒤
   09:59분 - 115봉/산불 초소봉

   10:25분 - 국군지휘통신사령부후문 (우측중앙공무원연수원 마루금은 연수원안으로...부득이 물건너고)
   10:30분 - 야생화 자연학습장/우측 산책로따라
   10:51분 - 물다시건너 건너 연수원 뒤 마루금합류
   12:00분 - 삼봉정상 안부점심해결
   12:20분 - 육봉 정상/국기봉
   12:40분 - 팔봉국기봉/팔봉능선 갈림길
   13:20분 - 깔딱고개
   13:25분 - 말바위
   13:50분 - 관악산(629.9m) 정상
                지도바위-관악문
   14:40분 - 559봉헬기장남태령,우면산 갈림길 지적삼각점/좌 사당능선으로
   14:56분 - 마당바위 하마바위
                헬기장/국기봉,사당역(2.2km)갈림길/우 관음사 방향으로
                관음사 갈림길
                관악산 둘레길 1구간 합류
   16:10분 - 까치산 생태다리/남부 순환도로 위
   17:15분 - 까치산(125m) 정상/지압시설
   16:20분 - 남성역 1.1km 남성역하산
   17:06분 - 남성역 7호선탑승


@. 교통편

   갈현고개-수도권전철 7호선 4호선

   남성역-부평구청 7호선


3. 산경표














갈현(葛峴)고개는 과천시 갈현동에 있는 고개로 가루개(葛峴)라 부른다.

제비울에서 찬우물 쪽으로 넘어가는 작은 고개를 '가루개'라 불렀다.

가루개는 아마도 '갈(칡)고개' 음운변화로 가루개라 한것 같다.

정부종합 청사역 6번 출구로 나와 삼남길 따라 인덕원 방향으로 가면 2번째 버스 정류장이 갈현고개 찬우물 정류장이다.

찬우물 정류장 직전 수자원공사 한강권역본부(kwater) 노란색 건물옆(맞은편 삼성아파트)으로 오르면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이내 과천 상수도사업소 맑은물 관리본부 도로와 만난다.

도로 따라 우측으로 가다 과천 중앙고등학교 직전 좌측으로 오르면 보광사가 내려다보이고 맑은물 사업소 담장 철책따라

마루금이 이어지고 폐 산불 감시탑이 있는 115봉이다.

찬우물은 정조가 화성으로 능행차를 가던 중 갈증을 느끼자 한 신하가 이 우물물을 떠다 바쳤다고 한다.

물을 마신 정조는 물 맛이 유난히 좋다고 하면서 이 우물에 당상(堂上)의 품계를 내렸다.

이때부터 이 우물은 '가자우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물 맛이 좋고 차다고 해서 이후 '찬우물'이라 불렸는데 아직 우물이 남아 있으나 도시 개발로 물이 나지 않아 인근 지하수를

끌어다 복원은 했다 한다











모락산





관악산 육봉




중앙공무원 연수원이 막혀 물건너 우회









전통줄기 공연장




중앙공무원 연수원에 막혀 건너온 물을 다시건너 마루금 복귀



백운산









급경사 바위지대를 오르다 보면 마당바위 처럼 넓다란 암반을 지나는데 무수한 총탄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곳에서 어느 젊은 청춘들이 총칼을 마주하고 처절한 운명의 순간을 맞이 했을까 생각하니 모골이 성연하다.

이곳은 한국전쟁 초반 1950년 6월28~7월4일 근간에 한강 방어를 위해 국군이 치열한 방어선을 폈던 과천 신사동 전투 구간이다.

찬우물 고개에 있는 고 김승철중위의 전적비와 관련있는 전투였는지.....

고 김승철 중위는 평북 선천에서 출생하여 단신 월남해 육사9기를 졸업하고 전쟁중에 이한림장군 부관으로 근무하다

이곳에 매복해 있던 북한군이 공격을 하자 이한림 장군을 몸으로 막아 구하고 전사한 참 군인이였다.







건너 청계산





UFO 바위








육봉능선 3봉 4봉 5봉







육봉 국기봉







팔봉능선

팔봉능선




팔봉국기봉




삼성산








연주암






말바위



관악산 정상을 연주대(戀主臺)라고 부르는 건, 정상에 있는 응진전(應眞殿) 때문이다.

고려시대 이전에 지은 것은 추측되는 응진전은 용의 이빨처럼 날카롭게 솟은 바위틈에 30m 높이의 축대를 쌓아 터를 만들었다.

연주대는 원래 의상대(義湘臺)라 불렸는데 "연주암지"에 의하면, 677년(신라 문무왕17) 의상대사가 관악산의 수려함에 끌려 정상에

의상대를 짓고 동시에 현재 연주암 자리에 관악사를 창건했다.

의상대가 연주대로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은 고려가 멸망하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오빠 강득용이 이곳에서 통곡하며 고려를

연모한 데서 비롯되었다.

또 세종대왕의 둘째형인 효령대군이 이곳에 올라 시를 짓고 궁궐에 있을 때를 그리워하며 제일 높은 바위에 연주대라는

글씨를 친히 새겨 그 이름이 굳어졌다




검붉은 바위로 이루어진 관악은 그 꼭대기가 마치 큰 바위 기둥을 세워 놓은 모습으로 보여서 '갓 모습의 산'이란 뜻의 

'갓뫼(간뫼)' 또는 '관악(冠岳)'이라고 했다.
관악산은 옛 지도에는 '관악'으로 많이 나온다.
악(岳) 자체가 산(山)을 뜻하기 때문에 옛날에는 그 뒤에 다시 '산'자를 덧붙이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운악,북악,치악 등이 모두 그와 같은 예들이다.
이렇듯 관악의 산이름은 그 형상이 마치 관처럼 생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처음의 산이름은 주위 산세에서 으뜸 간다는 뜻이라고 한다.
예부터 개성 송악(松岳),가평 화악(華岳),파주 감악(紺岳),포천 운악(雲岳)과 함께 경기 오악(五岳)의 하나였다.
빼어난 수십개의 봉우리와 바위들이 많고, 오래 된 나무와 온갖 풀이 바위와 어울려서 철따라 변하는 산 모습이 마치 금강산과 같다 하여

'소금강(小金剛)' 또는 서쪽에 있는 금강산이라 하여 '서금강(西金剛)'이라 했다.









데크 설치전엔 이리로 올랐다.

데크가 설치돼 사당쪽에서 오르기 편해졌다.




지도바위


관악문











마당바위


하마바위

















낙성대는 귀주대첩의 명장 인헌공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곳이다.

고려 정종 3년 삼한벽상공신 궁진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장군이 태어날 때 이곳에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낙성대라 이름 붙여졌다.

장군이 소년 원님으로 부임 했을때 나이 어린 그를 얕잡아 보는 관속들에게 뜰에 세워둔 수숫대를 소매 속에 다 집어넣어 보라고 하였다.

관속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자 강감찬 장군은 "겨우 일 년 자란 수숫대도 소매에 다 집어넣지 못하면서 20년이나 자란 원님을 아전이

소매 속에 집어넣으려 하느냐!"며 호통쳤다는 일화는 그의 사람 됨을 짐작케한다






까치고개 남부순환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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