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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碍人 부부 산방
2026년 9월 16일 수요일 맑음 나홀로 제국의 흥망을 들으며 내포의 길을 걷다서해랑길 65-5코스는 합덕수리민족박물관에서 아미산 입구까지 19.6km를 잇는다. 내포의 너른 들판과 낮은 산줄기를 따라 걷는 길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농경의 역사를 품은 합덕제, 천주교 순교의 피가 서린 합덕성당, 그리고 백제 부흥군의 한이 남아 있는 몽산까지 지나간다.오늘은 최현우의 『고대인도왕국 무굴제국』을 귀에 꽂는다. 내포의 들판을 걸으며 인도의 거대한 제국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전혀 다른 두 공간의 역사가 묘하게 포개진다. 한쪽에는 물을 다스리며 삶을 이어온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광대한 땅을 다스리기 위해 제도를 만들고 종교와 문화를 조율했던 황제들이 있다. 역사란 결국 ..
2026년 9월 11일 금요일 나홀로 오늘 걷는 길에는 김상기의 『제자백가사상』을 오디오북으로 장착한다.아미행복교육원에서 복부산으로 들어서자 숲길이 시작된다. 눈앞에는 나무와 흙, 바람이 펼쳐지고 귀로는 춘추전국시대 사상가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산과 들, 하천과 마을을 차례로 지나가는 내포의 길 위에서 수천 년 전 사람들이 세상을 고민하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든다.제자백가의 사상은 결국 ‘사람은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공자는 인과 예를 이야기하고, 맹자는 사람의 선한 마음을 믿는다. 노자와 장자는 자연의 흐름에 따르는 삶을 말하고, 묵자는 차별 없는 사랑을 강조한다. 상앙과 한비자로 대표되는 법가는 법과 제도로 사회의 질서를 세우려 한다. 방법은 서로 다..
2026년 9월 8일 화요일 청명 나홀로 역사를 배우는 것은 오래된 미래를 만나는 것이다윌라 오디오북 《생각하는 힘: 세계사 컬렉션 16편》을 리스닝하며 걷는다. 내가 하는 독서의 절반쯤은 역사서이거나 대하소설이다. 어려서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유년 시절 꿈을 적으라면 ‘인류학자’, ‘역사 선생님’, 혹은 ‘서점 주인’이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오늘 귀에 흐르는 이야기는 ‘에게 그리스 문명과 로마 제국’이다. 그러나 오늘 걷는 서해랑길 64-3코스는 서양의 고대 문명이 아니라 이 땅의 역사와 문화를 따라가는 길이다. 걷는 동안에는 잠시 오디오를 접어두고 우리 땅에 남아 있는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기로 한다.해미읍성 성문을 나서자 바람이 성벽 위를 스친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가을 햇볕은..
2026년 9월 2일 수요일 맑음 나홀로 AI 이후의 길을 걷다오늘은 제이슨 솅커의 《AI 이후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오디오북으로 장착하고 길을 나선다.인터넷 강의를 듣고 취득한 자격증이지만, 명색이 ‘챗GPT 전문가 1급’ 아닌가. 자격증 하나 따놓고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스스로도 조금 민망하다. 그래서 그 이름에 걸맞은 내가 되고 싶다.이 나이에 무엇인가를 새로 이루어 보겠다는 욕심은 아니다. 다만 남은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내가 살아가는 시대의 문명에서 뒤처지고 싶지 않다. 오늘보다 내일의 세상을 궁금해하고, 새로운 기술 앞에서 호기심을 잃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그래서 요즘 인공지능 관련 책을 무차별적으로 읽고 듣는 중이다. 하나를 이해하면 또 모르는 것이 생긴다. 그래도 계속 읽다 보면 ..
2026년 8월 25일 화요일 맑음 나홀로 31도의 폭염이 예보된 날이다. 나는 천북굴단지에서 태안관광안내소까지 24.8km의 길을 걷는다. 오늘의 동행은 사람이 아니라 목소리다. 현대지성에서 펴낸 『아라비안나이트』 26 편의 이야기를 오디오북으로 들으며 걷는다.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천일야화의 이야기는 현실의 길 위에 겹쳐지고, 서해의 긴 방조제는 어느새 낯선 왕국으로 들어가는 긴 문처럼 보인다.천북굴단지는 굴을 까고 나르며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과 삶이 켜켜이 쌓인 곳이다. 폭염에 달아오른 갯벌이 뜨거운 숨을 토해낼 때 귀로 흘러드는 『아라비안나이트』의 환상은 서해의 평평한 길과 묘하게 충돌하며 걷는 리듬을 만든다.천북을 벗어나 만난 홍성방조제는 자연과 인간이 오랜 시간 서로에게 이야기를 덧붙여온 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