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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碍人 부부 산방
2026년 8월 25일 화요일 맑음 나홀로 31도의 폭염이 예보된 날이다. 나는 천북굴단지에서 태안관광안내소까지 24.8km의 길을 걷는다. 오늘의 동행은 사람이 아니라 목소리다. 현대지성에서 펴낸 『아라비안나이트』 26 편의 이야기를 오디오북으로 들으며 걷는다.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천일야화의 이야기는 현실의 길 위에 겹쳐지고, 서해의 긴 방조제는 어느새 낯선 왕국으로 들어가는 긴 문처럼 보인다.천북굴단지는 굴을 까고 나르며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과 삶이 켜켜이 쌓인 곳이다. 폭염에 달아오른 갯벌이 뜨거운 숨을 토해낼 때 귀로 흘러드는 『아라비안나이트』의 환상은 서해의 평평한 길과 묘하게 충돌하며 걷는 리듬을 만든다.천북을 벗어나 만난 홍성방조제는 자연과 인간이 오랜 시간 서로에게 이야기를 덧붙여온 긴..
2026년 8월 21-22일 금.토요일 구름많음 천사랑 보이지 않는 오작교를 건너다서해랑길 37-38코스는 영광군 서쪽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이어진다. 이른 오후 인천을 떠나 영광으로 향했지만, 스무 날 전 같은 길을 지날 때와 달리 합산 봉양들에 닿을 무렵에는 어둠이 먼저 내려앉았다. 음력 7월은 견우와 직녀의 달이다. 해마다 한 번 오작교 위에서 두 별이 만난다는 전설은 어린 시절에는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지금은 짧은 만남보다 그 만남을 위해 견뎌야 했던 긴 기다림이 먼저 마음에 남는다. 칠석의 여운이 남은 음력 7월 9일, 구름이 달을 감춘 밤이다. 달은 보이지 않아도 구름 가장자리는 희미하게 젖어 있다. 나는 그 보이지 않는 빛을 따라 천사와 함께 영광의 길을 걷는다. 지도 위에서는 가느다란 선..
2026년 8월 18일 화요일 맑음 나홀로 산길이 몸에 맞는 사람삼복이 지난 태안의 땅은 아직 뜨겁다. 그래도 한여름의 기세는 조금 누그러지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땀에 젖은 피부를 선선하게 스친다.오늘은 만리포해수욕장에서 서해랑길 69코스를 걸을 예정이다. 처음 출발할 때만 해도 69코스만 걸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길에 들어서자 생각이 달라진다. 국사봉을 지나고 수망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의 적당한 오르내림이 몸에 딱 맞는다. 산꾼에게 이 정도의 높낮이는 오히려 몸을 풀어주는 정도다. 걷다 보니 걸음에 힘이 붙고, 몸도 가벼워진다. 내친김에 70코스까지 이어가기로 한다.이어폰에서는 카뮈의 『반항아』가 흐른다. 부조리한 세계를 향해 ‘아니오’라고 말하면서도 인간과 삶의 가치를 긍정해야 한다는 그의 ..
2026년 8월 11일 화요일 구름조금 나홀로 폭염 속, 바다의 이름들을 읽다송현리에서 방조제로 — 땅과 바다의 경계를 걷다태풍 돌핀이 비껴간 한반도는 간신히 폭염의 횡포에서 한숨 돌린다. 8월의 태안 아침도 오늘은 견딜 만하다. 간간이 바람이 불고, 엷은 구름이 땡볕을 가려준다. 송현리 버스정류장에 내리자 피부를 스치는 바람이 생각보다 상쾌하다.정류장 옆 서해랑길 68코스 안내판을 확인하고 첫발을 내딛는다.송현리(松峴里). 예전에는 마을 뒷산 고개에 소나무가 무성해 ‘솔고개말’이라 부르던 곳이다. 이 이름이 한자로 옮겨져 송현리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푸른 소나무 숲 대신 넓은 논과 밭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논에는 벼가 자라고, 밭에는 마늘 수확을 끝낸 흔적이 선명하다.모내기가 엊그제 같은데 ..
2026년 8월 4일 화요일 맑음 나홀로 금북정맥을 떠나 새로운 길을 걷다.서해랑길 67코스는 태안반도 안의 장죽반도 허리를 가로질러 남단 연포에서 송현리까지 이어지는 길이다.태안반도 서쪽 끝자락에 놓인 장죽반도는 서해의 해안선이 깊게 들고난 만입과 곶이 교차하는 곳이다. 낮은 구릉은 바다를 향해 완만하게 내려앉고, 그 사이로 갯벌과 간척지가 넓게 펼쳐진다. 육지와 바다가 맞닿은 경계가 또렷해 걷는 내내 조망과 바람, 물길의 변화를 함께 느끼게 하는 지형이다.8월의 태안은 아침부터 매섭다. 바닷바람은 시원함보다 뜨거운 숨결을 먼저 몰고 오고, 연포해수욕장의 후끈한 공기는 오늘 길이 결코 만만하지 않음을 예고한다. 17.8km의 길은 단순한 거리 이상의 여정이다. 바다와 갯벌, 염전과 마을, 낮은 산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