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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碍人 부부 산방
2026년 10월 16일 금요일 맑음 나홀로 대성장모텔은 겉보기에도 깨끗하고 나름 깔끔하다. 하루 일정을 복기하고 정리해 블로그에 올린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20년째다. 그동안 줄곧 같은 방식으로 탐방기를 써왔다.내가 쓰는 글은 대부분 탐방기다. 찾아갈 곳의 지리적·지형적 배경과 역사를 미리 조사해 초안을 준비한다. 내 탐방의 모토는 “아는 만큼 보인다. 알고 떠나자”다. 탐방기를 써서 길을 나서고, 걷는 동안 듣는 오디오북의 내용과 감상을 쉬는 곳마다 삽입한다. 이동하는 틈틈이 원고를 교정하고 검토해 귀가하기 전에 블로그에 올린다. 그렇게 20년을 걸어왔다.요즘은 AI를 교정에 활용한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글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다만 글의 중심은 여전히 내 경험과 생각이..
2026년 10월 15일 목요일 맑음 나홀로 새벽 4시 반, 인천의 집을 나선다. 전철과 KTX, 시외버스를 갈아타며 서해의 남쪽으로 향한다. 법성포 버스정류장에 내린 시각은 오전 9시 50분이다. 어둠 속에서 출발한 길이 포구의 낮은 햇살과 만난다. 오늘의 걸음이 비로소 시작된다.귀에는 최종엽의 『오십에 읽는 중용』이 담겨 있다.天命之謂性이요, 率性之謂道이요, 修道之謂敎니라.하늘이 부여한 것을 성이라 하고, 그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 하며, 도를 닦는 것을 교라 한다.자사의 『중용』 제 1장 첫머리에 나오는 열다섯 글자다. 조선의 청소년들은 어릴 때부터 이 문장을 외우고 익혔을까. 나는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해설서를 귀에 담고 걸으면서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배움과 깨달음에 나이가 따로 없다..
2026년 10월 7일 수요일 맑음 나홀로 서해랑길 60코스는 깊은골 버스정류장에서 시작한다. 버스가 떠난 자리에는 풀잎에 맺힌 습기와 낮은 산자락만 남아 있다. 아침 공기는 선선하지만 햇볕은 제법 따갑다. 해가림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눌러쓴 뒤 양산까지 꺼내 든다. 오늘 걸어야 할 거리는 17.4km. 숫자로 보면 제법 긴 거리지만, 마음은 벌써 토정 이지함이라는 이름을 향해 가고 있다.내가 이지함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아마 중학교 국사 시간쯤일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전인 초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 나는 이미 ‘토정’을 알고 있었다. 섣달 그믐 무렵이면 할머니는 다락에 고이 모셔둔 『토정비결』을 꺼내셨다. 그리고 내게 아버지와 큰아버지, 고모들의 운세를 찾아 읽어 달라고 하셨다.먼저 작..
2026년 10월 3일 토요일 맑음 좋은사람들 윤미리의 『수·당제국』 오디오북을 귀에 꽂고 길을 나선다.오랜만에 ‘좋은 사람들’ 산악회와 함께 걷는 길이다.지난 4월 셋째 주 토요일, 서해랑길 27코스를 함께 걸은 뒤 봄과 여름 동안에는 홀로 80~61코스와 28~38코스를 이어왔다. 태생이 홀산꾼이라 혼자 걷는 것이 편하지만, 접근성이 떨어지는 구간은 당분간 산악회와 함께 걸으며 연말까지 서해랑길을 마무리할 생각이다.내년에 남파랑길까지 완주하면 1대간 9정맥에 이어 코리아둘레길까지, 이 땅의 산줄기와 둘레길의 큰 줄기를 거의 모두 걸어보게 된다. 생각해 보면 참 오래 걸어왔다.오늘의 출발점은 답동마을이다.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관광객이 아니라 그저 마을길을 지나가는 한 사람의 나그네가 된다. 추수를 앞..
2026년 9월 29일 화요일 맑음 나홀로 오해를 이해로 씻어내며 걷는 길문지은의 『알라의 나라 이슬람』을 오디오북으로 귀에 꽂고 길을 나선다.내게 이슬람은 중학교 시절 역사 시간에 배운 십자군 전쟁을 통해 처음 각인되었다. 그때의 이슬람은 막연하게 ‘타도해야 할 악의 세력’에 가까웠다. 당시 교회에 다니던 개인적인 경험과 더불어, 이스라엘·이집트 전쟁을 바라보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까지 겹치면서 서방 세계, 특히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시각이 자연스럽게 내 생각에도 스며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만들어진 생각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이스탄불의 성소피아를 알게 되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이슬람 세계의 지배 아래에서도 건축물과 다른 종교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