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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碍人 부부 산방
2026년 9월 8일 화요일 청명 나홀로 역사를 배우는 것은 오래된 미래를 만나는 것이다윌라 오디오북 《생각하는 힘: 세계사 컬렉션 16편》을 리스닝하며 걷는다. 내가 하는 독서의 절반쯤은 역사서이거나 대하소설이다. 어려서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유년 시절 꿈을 적으라면 ‘인류학자’, ‘역사 선생님’, 혹은 ‘서점 주인’이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오늘 귀에 흐르는 이야기는 ‘에게 그리스 문명과 로마 제국’이다. 그러나 오늘 걷는 서해랑길 64-3코스는 서양의 고대 문명이 아니라 이 땅의 역사와 문화를 따라가는 길이다. 걷는 동안에는 잠시 오디오를 접어두고 우리 땅에 남아 있는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기로 한다.해미읍성 성문을 나서자 바람이 성벽 위를 스친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가을 햇볕은..
2026년 9월 2일 수요일 맑음 나홀로 AI 이후의 길을 걷다오늘은 제이슨 솅커의 《AI 이후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오디오북으로 장착하고 길을 나선다.인터넷 강의를 듣고 취득한 자격증이지만, 명색이 ‘챗GPT 전문가 1급’ 아닌가. 자격증 하나 따놓고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스스로도 조금 민망하다. 그래서 그 이름에 걸맞은 내가 되고 싶다.이 나이에 무엇인가를 새로 이루어 보겠다는 욕심은 아니다. 다만 남은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내가 살아가는 시대의 문명에서 뒤처지고 싶지 않다. 오늘보다 내일의 세상을 궁금해하고, 새로운 기술 앞에서 호기심을 잃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그래서 요즘 인공지능 관련 책을 무차별적으로 읽고 듣는 중이다. 하나를 이해하면 또 모르는 것이 생긴다. 그래도 계속 읽다 보면 ..
2026년 8월 25일 화요일 맑음 나홀로 31도의 폭염이 예보된 날이다. 나는 천북굴단지에서 태안관광안내소까지 24.8km의 길을 걷는다. 오늘의 동행은 사람이 아니라 목소리다. 현대지성에서 펴낸 『아라비안나이트』 26 편의 이야기를 오디오북으로 들으며 걷는다.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천일야화의 이야기는 현실의 길 위에 겹쳐지고, 서해의 긴 방조제는 어느새 낯선 왕국으로 들어가는 긴 문처럼 보인다.천북굴단지는 굴을 까고 나르며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과 삶이 켜켜이 쌓인 곳이다. 폭염에 달아오른 갯벌이 뜨거운 숨을 토해낼 때 귀로 흘러드는 『아라비안나이트』의 환상은 서해의 평평한 길과 묘하게 충돌하며 걷는 리듬을 만든다.천북을 벗어나 만난 홍성방조제는 자연과 인간이 오랜 시간 서로에게 이야기를 덧붙여온 긴..
2026년 8월 21-22일 금.토요일 구름많음 천사랑 보이지 않는 오작교를 건너다서해랑길 37-38코스는 영광군 서쪽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이어진다. 이른 오후 인천을 떠나 영광으로 향했지만, 스무 날 전 같은 길을 지날 때와 달리 합산 봉양들에 닿을 무렵에는 어둠이 먼저 내려앉았다. 음력 7월은 견우와 직녀의 달이다. 해마다 한 번 오작교 위에서 두 별이 만난다는 전설은 어린 시절에는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지금은 짧은 만남보다 그 만남을 위해 견뎌야 했던 긴 기다림이 먼저 마음에 남는다. 칠석의 여운이 남은 음력 7월 9일, 구름이 달을 감춘 밤이다. 달은 보이지 않아도 구름 가장자리는 희미하게 젖어 있다. 나는 그 보이지 않는 빛을 따라 천사와 함께 영광의 길을 걷는다. 지도 위에서는 가느다란 선..
2026년 8월 18일 화요일 맑음 나홀로 산길이 몸에 맞는 사람삼복이 지난 태안의 땅은 아직 뜨겁다. 그래도 한여름의 기세는 조금 누그러지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땀에 젖은 피부를 선선하게 스친다.오늘은 만리포해수욕장에서 서해랑길 69코스를 걸을 예정이다. 처음 출발할 때만 해도 69코스만 걸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길에 들어서자 생각이 달라진다. 국사봉을 지나고 수망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의 적당한 오르내림이 몸에 딱 맞는다. 산꾼에게 이 정도의 높낮이는 오히려 몸을 풀어주는 정도다. 걷다 보니 걸음에 힘이 붙고, 몸도 가벼워진다. 내친김에 70코스까지 이어가기로 한다.이어폰에서는 카뮈의 『반항아』가 흐른다. 부조리한 세계를 향해 ‘아니오’라고 말하면서도 인간과 삶의 가치를 긍정해야 한다는 그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