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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리 부부 산방
2021년 10월 23일 일요일 맑음 환춘이랑 오색의 새벽은 부산하다. 열이레 달이 처연히 밝고 아직 이른 추위지만 옷깃을 자꾸 여미게 하는 바람이 차다. 수천쯤 될 산님들이 설악의 단풍을 맞으러 모였다. 굳게 닫힌 철문 앞엔 발 디딜 틈도 없다. 가까스로 차지한 자리에 두 발을 모으고 철문이 열리길 기다려 어둠 속으로 몸을 마낀다. 산님들의 거친 숨소리와 스틱과 바위가 부딪히는 둔탁함이 고요를 깨운다. 선두로 치고 나가지 못하면 산님들 엉덩이를 바라보며 내내 올라야 한다. 군중 속 산행의 불편함을 알기에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 초반 속도를 올려 스무 명 정도의 선두 그룹에 선다. 후미와는 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청에 오른다. 5km, 2시간 20분 오전 5시 20분이다. 오늘 대청봉 일출이 6시 40..
2021년 8월 21일 토요일 비 친구 배 법이랑 "세상에 떠도는 위로의 말들을 믿지 마라. 그건 가진 자들이 그렇지 못한 자들을 달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네가 힘들어할 때, 너의 가깝거나 먼 친구나 경쟁자들이 네 앞에 불경기라고 엄살을 떨 때, 경계하라. 그는 위로를 핑계로 너의 의지를 꺾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경기란 없다. 네가 좀 더 현명하거나, 네가 좀더 열정을 보인다면" 유대인 격언에 나오는 말이다 '불경기란 없다' 그런데 거리 두기 4단계에선 이런 격언도 소용이 없다. 다들 힘들다. 그러나 새로 시도한 방법에 희망은 보인다. 어둠 속에 가늘게 비추는 불빛이 정말 희망의 빛이 되길 기대해 본다. 누군가는 명예를 위해 열심히 달린다. 또 누군가는 부를 축적하기 위해 아직도 달리..
2021년 5월 23일 일요일 날씨 맑음 병선 환춘 남설악 탐방 지원센터 새벽 3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산악회 차량이 수시로 정차하며 산님을 쏟아 낸다. 수백 명쯤 되는 산님들이 굳게 닫힌 철문 앞으로 모여들고 마라톤 선수들이 출발 선에 선 것처럼 모두 비장하게 철문이 열리길 기다린다. 9년 만의 공룡능선 산행이다. 2012년 9월 26일 백두대간 종주산행 중 다녀가고 오늘 다시 공룡을 만나러 왔다. 철문이 열리고 가파른 설악의 오름에 하나 둘 이마에 불 밝히고 산님들 거친 숨소리와 스틱 부딪히는 소리가 설악의 적막을 깬다. 천성이 무리 중 산행을 못하는 성질이라 앞으로 치고 나갈 수밖에 없다. 산님 무리 중에 섞이면 산님들 엉덩이만 보고 올라야 하니 더디고 힘들다. 출발 시간이 같으니 초반 무리수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