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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 서울시계(市界)종주 7·8구간 ] 서울 남서·남동쪽 하천·산 두루 섭렵

無碍人 2010. 8. 15. 23:09
하천 따라 10여㎞, 산길로 20㎞…발원지 우물·유물 확인하며 걸어
▲ 1.서울시계종주팀이 비를 맞으며 안양천을 걷고 있다. 이날 안양천만 8㎞ 남짓 걸었다. 2.한우물 옆 50m 거리에 있는 석구상. 원래 경복궁의 방화를 목적으로 건립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한우물 발굴 결과 석구지라는 비석이 나와 석구상으로 확인됐다. 3.우면산 등산로에도 호젓한 길이 많다.
호암산 ‘한우물’은 국가사적 제343호

호암산 정상 조금 못 미쳐 국가사적 제343호인 ‘한우물 및 주변 산성지’에 도착했다. 등산로 가는 길에 있는 사적지는 뒤늦게 발굴한 ‘제2 한우물과 옛건물터’라고 소개하고 있다.

연못에는 물도 없고 주변에는 성터만 조금 남아 있을 뿐이다. 약 50m쯤 내려가니 통일신라시대 조성했다고 알려진 한우물 유적지가 나왔다.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신기한 연못이라고 한다. 이런 연못이 대개 하천이나 강의 발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복개돼 그 흔적을 찾기도 쉽지 않지만 한우물은 삼성천의 발원지다.

한우물 인근에는 돌해치가 있다. 태조 이성계는 한양에 도읍을 정하면서 풍수지리설에 의거해 우물과 함께 방화의 상징인 해치를 세움으로써 경복궁의 화기를 막았다고 한다.

1989년 서울대박물관에서 한우물과 호암산성 유적을 발굴할 때 우물에서 ‘석구지(石狗
池)’라는 새김글이 발견됨으로써 지금까지 해치로 알려졌던 석조물이 ‘돌개’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현재 이정표에도 석구상(石狗像)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어 장군봉을 지나 장군능선을 따라 국기봉에 다다랐다. 지나가는 등산객은 깃대봉이라고도 했다. “관악산에는 봉우리에 국기가 꽂힌 봉우리만 12개나 된다”고 덧붙였다. 종주를 좋아하는 등산객들은 12개의 깃대봉을 찾아 완주하곤 한다.

국기봉을 지나 콘크리트 도로가 삼성산 정상까지 포장돼 있다. 삼성산 정상은 군부대와 군사시설로 접근금지 상태. 삼성산은 관악산 연주대에서 서쪽으로 이어진 능선의 한 봉우리다. 즉 삼성산은 관악산의 한 지능선에 속하는 산이다.

삼성산은 신라의 고승인 원효·의상·윤필 세 대사가 산의 중턱 삼막사 부근에 초막을 짓고 수도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또 고려 말에 지공·나옹·무학 등 세 고승이 이 산에서 수도했다 하여 산 이름이 삼성산이 되었다고 한다. 삼막사는 조선 초기에 무학대사가 중수해 서산·사명대사 등이 수도한 도량으로 유명하며, 삼막 중에서 일막과 이막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의해 불타 없어지고 지금 삼막사만 남아 있다.

삼성산 정상 군사시설물에 조금 못 미쳐 왼쪽으로 빠지는 등산로가 관악산 본능선으로 가는 길이다. 이제부터 관악산 능선으로 올라탄 셈이다. 관악산은 한남정맥이 수원 광교산에서 북서쪽으로 갈라져 한강 남쪽에 이르러 마지막으로 솟구쳐올린 산이다.

관악산은 그 꼭대기가 마치 큰 바위 기둥을 세워 놓은 모습으로 보여서 ‘갓 모습의 산’이란 뜻의 ‘관악((冠岳)’이라고 했다. 관악산은 옛 지도에 그냥 ‘관악’으로 많이 나온다. 악(岳) 자체가 산(山)을 뜻하기 때문에 옛날에는 ‘산’자를 덧붙이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관악산은 옛날부터 개성 송악산(松岳山), 가평 화악산(華岳山), 파주 감악산(紺岳山), 포
천 운악산(雲岳山)과 함께 경기도 오악(五岳)의 하나였다.  수십 개의 빼어난 봉우리와 바위, 오래된 나무와 온갖 풀이 어우러져 철 따라 변하는 산 모습이 마치 금강산과 같다 하여 ‘소금강(小金剛)’ 또는 서쪽에 있는 금강산이라 하여 ‘서금강(西金剛)’이라고도 했다. 관악산이 바위가 많고 골이 얕아 남성산이고 백호산이라 불리는 반면, 마주보는 청계산은 골이 깊은 여성산으로 청룡산이라 한다. 


관악산은 남성산, 청계산은 여성산

관악산은 그 북쪽 기슭 낙성대에서 출생한 고려의 강감찬 장군과 관련한 전설도 많이 지니고 있다. 그가 하늘의 벼락방망이를 없애려 산을 오르다 칡덩굴에 걸려 넘어져 벼락방망이 대신 이 산의 칡을 모두 뿌리째 뽑아 없앴다는 전설도 있고, 작은 체구인 강감찬이지만 몸무게가 몹시 무거워 바위를 오르는 곳마다 발자국이 깊게 패었다는 전설도 있다.

관악산은 풍수로 보아 ‘서울 남쪽에 있는 불산(王都南方之火山)’이다. 조선을 개국하고 왕궁터를 정하면서, 관악산을 정면으로 하면 궁성을 위압해 국가가 평안치 못하다는 무학대사와 남쪽에 한강이 있어 무방하다는 정도전의 주장이 양립했다는 전설이 있으나 어쨌든 ‘불산’이라는 데는 의견을 같이했다고 한다. 
▲ 관악산기상관측소.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반 관람을 허용한다.
그래서 불의 산인 관악산의 불기운을 끊는다는 풍수설에 따라 숭례문 바로 앞에 남지(南池)라는 연못을 팠다. 연못뿐 아니라 서울의 모든 성문 현판이 가로인 데 반해 숭례문은 세로로 되어 있다. 이는 이 불의 산에서 옮겨 붙을 서울의 화재를 막기 위해서였다. ‘예(禮)’는 오행의 ‘화(火)’가 되고, 또 오방(五方)으로 보면 ‘남(南)’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숭(崇)’은 불꽃이 타오를 상형문자이기에 ‘숭례(崇禮)’는 세로로 세워야 불이 타오를 수 있고, 또 타오르는 불을 막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관악산 주봉 연주대 직전에 관악산기상관측소가 있다. 매일 오전 11시에서 오후 4시까지 누구나 견학할 수 있다고 한다. 조금 더 가면 연주대 포토존이 나온다. 많은 등산객이 여기에서 연주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바로 앞에 보이는 연주대 암벽은 10여 개의 창을 모아 세워 놓은 듯한 모양으로 우뚝 솟아 있다. 그 위로 아슬아슬하게 암자가 자라 잡고 있다. 고3 수험생 학부모들이 전국의 기도발 잘 받는 장소 중의 하나로 꼽는다. 학부모들이 수시로 합장하고 기도 올리는 장면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전철 사당역 방면으로 시경계를 따라 하산한다. 가는 길에 한반도 모양을 닮은 바위가 눈에 띈다. ‘지도바위’라고 이정표가 설명하고 있다.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관악산에는 남근바위, 독수리바위, 불꽃바위, 거북바위, 관음바위 등 온갖 형태의 바위가 있다. 정말 기암절벽의 화산을 실감케 하는 산이다.

남태령으로 내려섰다. 남태령로엔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다. 왕복 8차선은 될 법하다. 서울 방향으로 조금 올라갔다가 횡단보도로 건너 우면산으로 들어갔다. 우면산 들목 직전에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과 과천시를 가리키는 안내판이 있고, 바로 옆에 커다란 남태령 비석이 서 있다.

“남태령 옛길은 한양에서 삼남(三南:충청·전라·경상도)으로 통하는 유일한 도보길이었다. 이곳을 지나 수원·안성을 거쳐 남쪽으로 갔으며, 반대로 과천에서 이 고개를 넘어 사당, 동작, 흑석동을 거쳐 노들나루(노량진)에서 한강을 건너 한양에 이르렀다. 원래 이 고개는 여우고개(狐峴·호현)로 불리었는데, 정조대왕이 사도세자의 능원으로 행차할 때 이 고개에서 쉬면서 고개 이름을 묻자, 과천현 이방 변씨가 임금께 속된 이름을 아뢸 수 없어 남태령(남행할 때 첫 번째 나오는 큰 고개)이라 아뢴 이후 남태령이라 부르게 됐다는 전설이 있다.”

남태령 비석에 있는 문구다. 이 비석을 지나 우면산 아늑한 등산로로 걸었다. 깔끔하게 단장한 등산로다.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가끔 눈에 띈다. 산악자전거 타기에도 딱 좋은 길이다.

우면산은 소가 졸고 있는 모양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면산 북쪽 기슭에 있는 대성사는 백제 침류왕 원년(384) 한반도에 불교를 처음 전파한 중국의 고승 마라난타가 주석한 터로 알려져 우리나라 불교 전래의 성지로 주목받고 있는 절이다.

서울시경계는 우면산 정상으로 향하지 않고 헬기장에서 오른쪽 양재천 방향으로 빠져 서초구 우면동 식유촌길로 내려온다. 단독주택단지를 지나 양재천으로 내려섰다. 양재천 진입 직전의 비닐하우스촌이 서울시 보금자리주택 건립 예정지라고 한다. 여기도 몇 년 지나지 않아 상전벽해로 변화가 예정돼 있는 셈이다.

이젠 이날의 마지막 구간인 양재천으로 접어들었다. 양재천엔 청둥오리와 학이 자맥질을 하며 놀고 있다. ‘언제적 양재천인지’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그만큼 깨끗해진 것이다.
양재천은 관악산에서 발원한 물이 여러 개의 작은 지류와 만나고, 청계산에서 발원한 여의천과 합류해 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한강의 제2지류다. 즉 한강의 제1지류가 탄천이고, 탄천의 제1지류가 양재천이다.

양재천(良才川)의 이름은 어질고 재주 있는 사람이 많이 산다고 해서 붙여졌다. 이곳에서 말에게 물을 먹이고 휴식을 취한 후 먼 길을 떠난다 하여 지어진 말죽거리란 지명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원래 양재천에는 용 10마리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이 하늘로 승천하다가 그 중 1마리가 임신한 여자를 보고 놀라서 양재천에 떨어져 죽고 나머지 9마리만 하늘로 올라갔다 해서 양재동 옆산이 구룡산이 됐다고 전한다.

양재천을 지나 한국트럭터미널 주변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30분이 다 되어서였다. 호암산~삼성산~관악산~우면산을 거쳐 양재천까지 꼬박 9시간 이상을 걸었다. 힘든 종주길이다.   



/ 글 박정원 부장대우  jungwon@chosun.com  
  사진 정정현 부장 rockart@chosun.com
출처 : 알콩달콩산악카페
글쓴이 : 줄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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