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강화나들길 6코스(화남생가가는길) 본문

이 또한 지나가리/강화지맥(完)

강화나들길 6코스(화남생가가는길)

無碍人 2011. 9. 19. 08:43

2011년 9월16일 금요일 맑음 폭염 홀로종주

 

가을이 실종된건지 여름이 늦바람난건지 한가위가 지나고 들판의 풍경은 황금빛으로 출렁이기 시작했는데....

연일 30도를 넘는 무더위에 습도까지 높아 때아닌 찜통더위다.

오늘 탐방길은 나들길 발상의 근원지라 할수있는 화남 고재형 선생의 생가가는길이다.

강화 나들길은 익히 아는바처럼 100여년전인 1906년 봄, 화남 고재형선생이 예순이 넘는연세에 강화부 산천과 고적을 말을타고 답사하여 7언절구의 한시256수와

주석을달고 마을의 역사 문화를 기록한 심도기행에서 힌트를 얻어 그길을 따라가는길이다.

오늘 그 심도기행의 저자 화남생가가는길에 나선것이다.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때 벼슬하지않은 노 선비가 물밀듯이 몰려오는 서구 문명에 속수무책으로 변화해가며 점차 옛것이 사라지고 생활이 변해가는

강화사람들의 모습에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을게다.

강화부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17개면의 250여부락을 1년동안 돌며 강화도의 영광과 수난의 다양한 역사를 되새기며, 산과 바다, 갯벌과 들녘을 가로지르며,

바람과 노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배우며 천천히 걸으며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당대뿐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바가크다.

부평에서 어김없이 90번 버스타고 강화터미널에 가는길은 고역이다.

출근시간과 겹처 부평에서 08시출발한 버스는 10:30분에야 터미널에 도착하고 터미널 화장실에서 그지릿한 냄새를 확인하는 고역을치루고....

강화터미널 화장실에 대해 한말씀 올려야겠다.

최근 전국 어느화장실도 강화터미널처럼 지릿한 냄새에 불쾌감을 주는곳은 없는데...청소하는 분이 계시는것같은데 무슨문제가 있는지...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서 ??? 그도아니다.

고속도로 휴게소만큼 사람이 많은곳도없는데....요즘은 정말 께끗하고 쾌적한데..암튼 강화군청 관광과든 위생과든 다른 화장실 답사한번 해보시라...

터미널옆 강화노인복지회관 주차장에서 조산평의 넓은들을 향해 첫발을 대딛는다.

화남선생은 조산평 넓은 들을 이렇게 노래했다.

 

평평하고 널따란 조산평 들판에(一平廣濶造山坪)

농부들이 분주하게 물을 대고 있구나(農老紛紛聽水聲)

이곳은 강화에서 손꼽히는 옥토이니(最是江都膏沃地)

강화부의 부자들이 다투어 투자하네(府城富客擲金爭)

 

조산평은 지금의 강화대교에서 터미널 사이의 넓은들을 말하는것으로 오늘날도 탐나는 옥토다

동락천변의 농로를 따라가다가 징검다리(물막이수로)있는곳에서 동암천을건너 점점 고개를 숙이고있는 조받과 수수밭사이로 이미 벼베기가 끝난논이

보이기도하고 아직 덜익은 벼는 무게를 못이기는지 늦더위에 겨운지 고개를 숙여 졸고있다.

새로포장이 한참진행중인 간선도로따라 2~3분가다가 강화 정신요양원 이정표방향으로 좌회전하면 강화인삼랜드 뒤 나들길초입에 약수터를만난다.(11:00)

약수터를 지나면 습지가 있다고 안내지에는 나와있는데 벌써 달포정도 가믐으로 습지가 어딘지 구분하기는 쉽지않다.

여름내내 그렇게 많은비가 내리더니 비 한방울 안내린게 달포라....이상기온 맞다.

약수터부터 선원사지까지는 토성이었을것같은 산책하기좋은 길이 이어진다,이름하여 "만보걷기좋은길"이라 명명되어있다.

선원사지는(11:50)1976년 동국대팀에의해서 발굴되고 1977년 선원사지로 지정되었으나 이곳이 고려 팔만대장경을 조판한곳인지 학술적으로 고증되지는 않았

다고한다.선원사지에서 포도와 사과 인절미로 간단한 점심을때우고 연꽃지가 있는길을지나 남산리 방향으로 진행한다.

화남선생 시절엔 이곳의 위치를 몰랐던것같다. 화남선생은 선원사지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하고계신다.

 

선원사 옛 절을 누구에게 물어보나(禪源古寺問阿誰)
시냇물에 복사꽃 떠오는 곳곳마다 의심 가네(流水桃花處處疑)

적막토다 오백불상 달그림자 속에 들고(寂矣半千龕月影)
황금불상 다 녹아서 푸른 덩굴 드리웠네(黃金銷盡碧蘿垂)

 

선원사 연꽃축제는 8월초에 열리는데 지금은 연꽃이 개화하는시기가 지나 볼수없어 아쉽다.

남산동마을입구에는 잘가꾸어진 정원이 있는 옛날 행사깨나 했을 법한 집터가있고 남산동마을을 지나 30여분가면 연동고개다.

화남선생은 남산동에서

 

우리 일가 찾으려고 남산동에 이르니(欲尋花樹到南山)
아래 시냇물 사이 초가집이 늘어섰네(山下列茅流水間)

심형과 안형이 술잔을 나누며(沈益安兄須共酌)
종일토록 한가하게 얘기하며 돌아가길 잊었네(舒談終日却忘還)

 

남산동은 풍산심씨 집성촌이다. 고려 강도시절 신지동에 가궐이 생기면서 남산동을 남산이라 불렀다.

남산동에서 연동고개를 지나면 삼동암천인데(13:10) 삼동암천을 잘보면 이 천이 그냥흐르는 내가 아닌게 농토가 넓은 이강화땅에 농사를 짓기위해 물을가두어

두는 저수지 구실을 하고있다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엿보기 좋은곳이다.

고능리에 접어들면 마리학교가 있는데 일종의 대안학교로 새로운 교육철학을 가지고 학생과 교사가 서로를 인정하며 토론하는 학교로 잘알려져있다.

마리학교를지나 야트막한 산길을 지나는데 아직 철이른 밤이지만 여기저기 토실한 밤송이에서 잘익은 알밤이 튕겨져 나와 뒹군다.

남의집 담장넘어나 텃밭넘어로 떨어진 밤톨을 선듯 주워 넣기가 민망하여 내 쬐그만 양심이 자꾸 두리번거리게 하지만,일부러 따는것도아니고 길가 풀섶에

떨어진 밤톨 몇개 줍는다고 어떠라 싶어, 한톨한톨 줍는재미가 솔솔하다. 

숲길을 헤치고 돌아서니 제주고씨 재실이있는 곳을 지나면서(14:10) 최근에 축조된듯하여 사진촬영없이 그냥 지나쳤는데 이곳이 화남 고재형 선생 생가가 있는

두두미마을이다. 샘이잇는곳에서 화남선생 글을만나고 마을을 휘돌아 내려와 초입의 정자 쉼터에 대여섯명의 청년들이 있길래 화남선생생가터를 물으니

아 이런 아무도 모른다. 많이들어본것같은데 하는 말투가 이동네 청년인데....마을어른들에게 물어보라 하여 어느집 담장너머로 초로 한분에게 물었더니

아까 지나온 우물옆에 향나무있는곳이란다.

다시 우물있는곳으로 가 생가를 둘러보려하는데 문은 잠겨있고 많이퇴락하여 관리는 전혀 안돼는듯하다.

마침 옆집아저씨를 나들이 다녀오시는길에 만나 화남선생에 대해서 물으니 이분도 화남선생은 잘모르시고 그후손들에 대해서는 잘알고계셨다.

대대로 교육자 집안으로 90이넘으신 손녀가 학교교장으로 정년하시고 그손자돼시는 분이 대학교수라고....

아마 5대종손돼시는 화남집 필사본을 보관해오신 울산대 고승국교수를 일컫는것같다.

원래 군청에서 생가앞에 푯말을 설치했는데 자손돼시는 분이 치웠다고 하신다.

아마 관리상 문제가 돼서인듯한데...그래도 나들길이라 하고 "화남생가 가는길"이라는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는 의미있는일인데, 생가관리방법을 한번

생각해보는것도 좋겠다.그리고 우리 탐방객도 너무 지나치게 빈집에 들어가 이것저것 들추고하는 무뢰를 삼가야하고...

화남선생은 심도기행을 마치고 두두촌에 돌아와 이렇게 두두미를 노래했다

 

4월바람맞으며 옛집에돌아오니(四月靑風返舊居)

머리부터 꼬리까지 모두다 한결같네(終頭至尾總如如)

창가에 기대앉아 강도부를 읽다가(依窓坐督江都賦)

종이와 붓을가져다 다시 글을 쓰노라(呼貪楮毛更一書)

 

두두미마을에서 능내촌을(15:00) 휘휘돌아 오두리 삼거리에서 해안으로 나오면 오두돈대와 광성보 중간지점에서 염하강을따라가면 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과

만나게돼고 이어 광성보에 이른다.(15:30)

광성보에서 2번 순환버스를타고 초지대교 입구에서 700번 환승하여 청명한 가을날 화남선생을 만나는 여정을 마무리했다.(16:00)

 

1. 탐방코스

   강화터미널-동락천징검다리-강화인삼스파랜드-약수터-소나무숲-선원사지-연꽃재배지-남산동-삼동암천-두두미마을-능내촌-염화강제방-광성보

   (18.8km,5시간 30분)

 

2. 탐방경로

08:00분 - 집출발

             부평역에서 90번버스로 강화터미널이동

10:30분 - 강화터미널출발

              터미널 옆 강화노인복지회관 주차장에서 동암천둑방으로...

              동락천변 농로에는 수수 조가머리를 숙여가고,드물게 수확끝난 논도보인다.

              징검다리건너 도로나오는곳까지가면 강화정신요양원 옆으로 강화인삼스파랜드뒤약수터

11:00분 - 약수터

             약수터근처에 습지가있다했으나 한달넘은 가믐으로 습지규모가 많이중어든듯....

             만보걷기좋은길따라가면 토성이였던산책로가 가을정취를 물씬풍긴다.

             선원사지를 품고있는 이산이 도감산이고 아래도감마을에 선원사가있다.

11:50분 - 선원사지

              연꽃재배지

              남산동

              연동고개

13:10분 - 상동암천

              상동암천은 불온면의 젓줄이면서 물을가두어두는 수로역할을한다.

14:10분 - 두두미마을

              마을에 진입하는 초입에 제주고씨 재실이있고(마을입구에서는 마을뒤) 재실지나 우물과 향나무있는곳이 화남선생생가

15:00 - 능내촌입구

          능내촌에서 염하강 제방으로나오면 염하강따라광성보

15:30분 - 광성보

16:20분 - 광성보에서 2번버스 타고 초지대교에서 700번환승

17:10분 - 동암역

17:40분 - 집도착

 

@ 교통편

    인천 서울에서 시외버스다수(인천90,700번)

    강화순환버스가 광성보에있다(터미널방향1번,초지대교방향2번)

 

3. 탐방개념도

 강화노인복지회관 주차장에서 시작

 

 수수

아프리카가 원산지로 추정된다. 주로 곡식을 얻기 위해 재배하는 것들은 모두 수수(Sorghum vulgare)에 속하는데 알곡용 수수, 건초와 가축의 꼴을 만들기 위해

기르는 목초용 수수, 비와 솔을 만드는 비수수 등의 변종(變種)을 포함한다. 알곡용 수수에는 두라·마일로·샬루·카피르콘·이집트콘·그레이트밀릿·인디언밀릿이 있다.

인도에서는 수수를 조와(jowar), 콜럼(cholum) 또는 조나(jonna)라 하고 서아프리카에서는 기니 콘, 중국에서는 카올리앙이라 부른다. 수수는 가물고 매우 더운

날씨에도 강하여 특히 뜨겁고 건조한 지역에서 유용하다. 강한 것은 키가 0.5~2.5m까지 자라며 종종 4.5m에 이르기도 한다. 줄기와 잎이 흰색의 밀랍 가루로 덮여

있으며, 어떤 변종은 줄기의 속에 단 즙이 들어 있다. 잎은 너비가 5㎝정도이고 길이가 0.75m이다. 원추(圓錐)꽃차례에는 성기거나 빽빽한 800~3,000개의 씨알이

달려 있고 씨는 종에 따라 색깔·모양·크기가 다르지만 밀의 씨보다는 작다.

식품용으로는 수수가 옥수수보다 질이 낮지만 탄수화물이 많고, 단백질 10%, 지방 3.4%, 그리고 칼슘이 들어 있으며 철분, 비타민 B, 니코틴산이 소량 함유되어 있다.

씨알은 보통 빻아서 포리지·플랫브레드·케이크를 만든다. 특이하게 강한 맛은 가공으로 줄일 수 있다. 씨알은 또한 식용유, 녹말, 덱스트로스(당의 한 종류), 풀,

알코올 음료를 만드는 데 쓰며, 줄기는 사료와 건축재로 쓴다. 단수수는 주로 미국과 아프리카 남부에서 사료와 시럽을 만들기 위해 기른다. 어떤 나라에서는 단 줄기를

씹기도 한다. 수수는 아프리카의 주요곡물 중 하나로 미국·인도·파키스탄·중국의 북부와 북동부에서도 재배되고 있으며, 러시아, 이란, 아라비아 반도,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유럽 남부에서도 상당한 양을 기르고 있다.

한국에는 중국을 거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함경북도 회령의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수수가 발견된 일이 있으며, 경기도 여주군의 흔암리 선사시대

주거지에서도 탄화미와 함께 수수껍질이 출토되어, 아주 오래 전부터 심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는 잡곡의 하나로 여기고 있으며, 한때는 수수의 재배면적이

1만 5,000㏊에 달했으나, 점차 재배면적이 줄어들고 있다. 곡물용 수수, 당용 수수(단수수), 목초용 수수 및 소경 수수(비수수) 들을 심고 있다.

 

 

조산평

강화대교에서 강화읍사이 너른들

 

 동락천

 고려산에서 발원하여 강화읍을 관통하는천

 

 

수확끝난 벼논

 

 

 조

밭작물로 키는 1~1.5m 정도 자란다. 잎은 나란히맥으로서 선형이며 가장자리에 잔톱니가 있다. 잎의 기부에는 잎집[葉鞘]이 있다.

줄기 끝에 이삭[花穗]은 길이가 15~20㎝이고, 짧은 가지로 많이 갈라져서 꽃이 피기 때문에 상당히 굵게 보인다. 1개의 작은 가지에는 1개의 양성화와 안 갖춘 꽃이

달리고 밑부분에 가시 같은 털이 있으며 작은 이삭은 1개의 꽃이 된다. 황색을 띠는 둥근 영과(穎果)가 떨어진 후에는 포영(苞潁)이 남는다. 영과는 식용, 사료용,

알코올 제조용으로 쓰인다. 중국 북부가 원산지로 추정되며, 아시아는 물론 여름철 비가 많은 유럽 온대지방의 중요한 농작물이다.

 

 강화인삼스파랜드

약수터

도감산 토성길

 

 

 

선원사지

선원사는 고려시대(高麗時代)에 몽고(蒙古)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江華島)로 도읍(都邑)을 옮긴 후 고종(高宗)32년(1245)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최이(崔怡 )

(최우(崔瑀)) 가 창건(創建)한 절이다.
이 절은 최이가 대몽항쟁(對蒙抗爭)의 정신적(精神的)지주(支柱)로 삼고 불력(佛力)을 통해 구국(救國)하고자 창건한 것으로 강도(江都)피난시의 최대(最大)

국찰격(國刹格)의 사찰이었다.
특히 이곳에 대장도감(大藏都監)을 설치하여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목판(木板)을 조각(彫刻), 봉안(奉安)하였다.
이때의 팔만대장경 목판은 현재 합천(陜川)해인사(海印寺)에 봉안되고 있는데 조선(朝鮮)태조(太祖)7년(1398)서울로 옮겨졌다가 세조(世祖)2년(1456)경 해인사로

옮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에는 순천(順天)송광사(松廣寺)와 함께 고려의 2대 선찰(禪刹)로 손꼽혔으나 조선 태조 7년 훼철(毁撤)되어 그 유지(遺址)조차 찾지 못하던 중 1976년

동국대학교(東國大學校)강화학술조사단(江華學術調査團)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사역(寺域)은 크게 네 구역으로 구분되어 층단식(層段式)으로 대지(垈地)가 마련되었는데 축대(築臺)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고 보상화문전(寶相華紋塼), 막새기와,

치미(치尾)등이 출토(出土)되었으며 기와편이 흩어져 있다.
중심(中心)사역(寺域)은 남북(南北)길이가 250m, 동서(東西)폭이 170m 가량 된다.

 

 능소화

중국 원산의 갈잎 덩굴 나무이다. 담쟁이덩굴처럼처럼 줄기의 마디에 생기는 흡반이라 부르는 뿌리를 건물의 벽이나 다른 나무에 붙여 가며 타고 오른다. 7~8월에 가지

끝에서 나팔처럼 벌어진 주황색의 꽃이 핀다. 추위에 약하다.

 

남산동

연동고개

비싼태양초가....고추가아니라 금추다.

 

 

상동암천

불은면 상동암리에서 시작으로 선원면 연리까지 이어진 수로로 상동암천이라 한다

 마리학교

 

 

 화남생가

  화남고재형

  고재형은 선대로부터 살아온 고향 마을인 두운리 두두미마을에서 1846년에 태어났다. 호는 화남(華南)이고,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1888년(고종25)에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로 합격하였으며, 관직에 나아간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1916년에 별세하였으며, 묘는 불은면 두운리에 있다.

  불은면 두운리에 직계 후손들이 살고 있다.

 두두미마을입구

 

 

 염하강

 

 

염하강 제방길

 광성보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