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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나들길 교동 1코스(다을새길-흔적따라가는길) 본문

이 또한 지나가리/강화지맥(完)

강화나들길 교동 1코스(다을새길-흔적따라가는길)

無碍人 2012. 5. 25. 08:56

2012년 5월22일 화요일 종달이 높이날고 청보리 살랑살랑

 

가슴쓰리고 아픈 한주를 보냈다.

살갑게 자주만나고 연락하던 친구는 아니지만 항상 있어야 할곳에 있었던 친구의 부음은 충격이였다.

남원엘 다녀오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나와같은 마음인지 빈소에서의 조우는 없었으면 하는 만남이디.

심란하고 우울하고 어디 마음 추스릴곳을 찾다가 강화나들길에 나섰다.

교동섬은 강화 서쪽에 있는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열번째로 큰섬이다.

남쪽으로 삼산도와 석모도가 위치하고 황해도 연백평야와 인접하고 있으며 원래는 작은 섬들로 이루어졌는데 고려시대부터 800여년간 간척사업이이루어져

강화섬중에서 가장 넓은들을 소유하고 있으며 1인당 경작면적도 전국최고의 부농이다.난정저수지와 고구저수지가 이넓은 평야의 젓줄역할을한다,

교동섬은 화개산을 중심으로 주변의 평야는 해발고도가 0~10m정도로 가을이면 지평선의 황금물결은 장관이다.

교동섬은 하점면 창후리포구에서 월선포구로 카페리가 운행하고 있는데 조수 간만의차가커 페리운항은 물때에 맞추어 부정기적으로 하루 10회정도운행된다.

그러나 오래지않아 이포구도 인근 인화리에서 연륙교공사가 끝나면 중단되고 교동섬도 크게 변화의 물결을 탈게 뻔하다.

월선포는 선멀(배을짓던마을)앞에 있는 포구로 달밤에 선멀에서 바라보면 바다위에 둥근달이비치니 바다속에도 달,하늘에도달,겸하여 노송이 물위에 비치니

그 광경이 달의 신선이라하여 월선(月仙)이라하고 이태백이 달아래 노닐것같다하여 월선포구라 했다한다.

창후리를 출발한페리는 15분여 짧은 여정으로 나를 월선포구에 내려주고(10:10) 포구에서는 이곳이 민통선 안이라 군인들이 마중한다.

월선포구에서 도로따라 교동교회를지나 화개산 1~2부능선부터 시작되는 농로와 수레길로 이어지는길이 오늘 강화 나들길 교동 다을새길이다

교동의 원래 이름은 대운도(戴雲島:구름에뜬섬)라 하였고 고림(高林:높은숲) 또는 달을신(達乙新:하늘에 닿을새)라 불렀으며 다을새란 달을신의 소리를 음차하여 교동

나들길 첫코스를 다을새길이라 한다고 한다.

다을새길 따라 내 발길이 처음 머무는곳이 교동향교다.(11:10)

교동향교는 원래 화개산 북쪽에 고려 인종 5년에 설치했으나 조선영조때 조호신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향교의 문은 잠겨 있고 향교옆 약수가 시원하다. 친절하게도 이 약수가 위장병에 좋다고 설명되어 위장병은 없지만 한사발 시원하게 들이키고 화개사로 발을 옮긴다.

화개사는 교동섬의 유일한 사찰로 자료가 없어 창건 연대를 알수 없으나 고려 대학자 목은 이색이 14세때 친구2명과 책을싸들고 교동섬 화개사로 공부하러 갔다고

목은집에 기록되어 있으니 최소한 고려말 이전부터 존재하던 사찰인걸로 추정된다.(11:25)

화개사는 대웅전도 없이 요사체만 남아 절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그 고풍스런 면모는 주위 풍광과 함께 예스럽다.

화개사 좌측으로 임도 따라 오르는데 임도에는 뚱딴지 처럼 생긴 풀이 군락을이루고 자라고 있으며 그 쓴맛이 그리 상쾌하지 않게 정신을 어지럽힌다.

화개산 7~8부 능선에 이르면 문무정이라는 표지를 만나는데 어디도 샘터 비슷한곳도 샘터였을 만한곳도 없다.

이 문무정은 문정과 무정의 두개의 샘터가 있었는데 문정의 물이 넘치면 문관이 많이나고 무정의 물이 넘치면 무관이 많이 났다고 하는데 이 문무정의 물빛이

워낙 푸르러 밤이면 달빛에 그 푸른물빛이 풍광과 어우러져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인근 삼산섬의 부녀자자들이 풍기가 문란해져 원로들이 회의를했는데 나이많은 어르신이 문무정의 물빛이 너무 푸르러 그런다고 하여 문무정을

소금을 부어 메우고부터 삼산섬 부녀자들의 바람기를 잠재웠으나 그뒤로부터 교동섬에서 큰인물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문무정에서 가파르게 고도를 높이다보면 산성이였던 흔적이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이산성이 화개산성이다.

화개산성은 기원전 1세기무렵 고구려로 부터 남하한 비류와 온조의 연맹체가 쌓은 성으로 광개토대왕비에 나타난 각미성(閣彌城)이 그것이아닌가 하는 이론이있어

관미성((關彌城)이라 하기도 하는데 바다건너 오두산성이 관미성이라는 이론도 만만찮다.

화개산성에 오르면 첫번째로 무너진 봉수대와 만나게된다.

이 화개산 봉수대는고려시대부터 사용되던것으로 남으로는 덕산(망산,즉강화봉수)에 응하고 동으로는 하음봉천산 봉수에 응한다고 동국여지승람과 신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있으며 이곳 봉수는 통진남산,김포북성산,양천화개산거쳐 남산 제5봉으로 연결되었다한다.

화개산(259.6m)에서면 황해도 연백평야가 아스라이 잡히고 교동섬의 넓은 들을 비로소 한눈에 내려다볼수있다.(12:10)

풍요로운 땅이라는게 믿어의심하지 않아도 될만큼 넓은 들이다.

남쪽으로 삼산섬과 그 부속섬들이 그림처럼 펼처지고 강화본섬의 별립산도 지척이다.

화개산 정상 쉼터에서 망중한을 즐기다가 발길을 재촉하여 내려서면 북벽망루에 이른다.

망루는 무너져 겨우 흔적만 남아있으나 이지점이 망루로서는 최적이였을것같아보인다. 시야가 탁트이며 연백평야가 연무속에서 가까이 다가선다.

망루아래를 내려서면 약수터에 이르고 약수터에서 50여m지점에 효자묘가 있다.

이 효자묘 주인은 알수없으나 삼국시대초 이곳에 징집되어온 병사의 아버지와 아들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와 그 아버지의 죽음에 아들이 매일같이 성묘하며 손자국,

무릅자국,갓자국이 뚜렷이 남아있어 후대 사람들이 그리 불렀다한다.

효자묘를 지나 한참을 내려오면 계류가 흐르는곳에 한증막이있는데 조선후기부터 사용하던 민간목욕시설로 소나무가지를 이용하여 불을지펴 그 열기로 한증을 하던

시설로 요즘 유행하는 불가마의 시조격이며 1970년대 후반까지 사용되었다한다.

한증막을지나 삼거리에 이르면 150여m지점에 연산군 적거지가 있다는 이정표를 만난다.(12:50)

적거지로 추정돼는곳은 교동섬에 세곳이 있는데 이곳 고구리 연산골과 봉소리 신골 그리고 읍내리다.

연산군은 폐위되어 이곳 교동섬에 위리안치되어 31세에 병으로 생을마친곳이 이곳 적거지인것이다.

구중궁궐에서 태어나 외로움이라는것을 모르고 많은 사람들속에 살며 마음먹은것은 무엇이든 할수 있었을 연산군, 이곳에 위리안치 되었을때 그 심정은 어땠을까?

권력을 빼앗긴 억울함보다는 군중속에서 살던그가 아마도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젊은나이에 병사 했으리라....그의 처연한 외로움을 짐작해본다.

사유지로서 사슴과 염소를 사육한다는 석천당을지나 고구리 입석 표지석을지나면 교동 면소재지에 이르고 시간이 멈춰선것같은 대룡리 시장에 이른다.(13:20)

시장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 거닐다보면 1970년대 그시절로 돌아간것 같은기분이들고 낮은 지붕아래서 들려오는 생활음은 나를 미소짓게한다.

도란도란거리는 아낙네들의 수다소리, 어디서 부부싸움을하는지 쨍그랑거리고 악다구를 퍼붓는 슬픈소리,도라지 위스키한잔을 마주하고 앉아 있는 촌부와 다방레지

의 농염한 웃음소리....이곳에서 다 들린다.

시장골목을 돌다가 국밥과 냉면을 파는 대풍식당앞에 발이 머물고 한낮의 끈적끈적한 무더위를 이겨 보려고 냉면이라 쓰인 간판에 이끌려 식당안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냉면 맛이 70년대 그맛이 아니다. 식탁이며 그릇이며 분위기는 70년대인데 맛은 그시절 배고팠던 그 맛이 아니다.

허기를 채우는 냉면을 먹고 발길을 재촉한다.

매바지마을 벼 심기가 한창인 농로를 지나 한시간여 뙤약볕을지나면 남산포입구에 이르고 포구는 비어있다.(14:00)

남산포는 진망산(남산)아래 있는포구로 이곳에 선창이 있었다하고 이선창이 대변창이다. 진망산에 사신당이 있었다고 하는걸보아 이곳으로  중국을오가는 사신이

왕래하던곳인데 지금은 퇴락하여 포구의 명백만유지하고 있다.

포구입구 민가의 화단이 정겨워 카메라에 담았는데 원예용 양귀비가 예쁘게 피어있다.

남산포에서 방파제를 따라 갈밭을 걸으면 교동읍성 남문에 이르는데 남문의 망루는없어지고 홍예문만남아 민가의 출입문역할을한다.

읍내리 마을 돌아오다보면 길모퉁이에 퇴락한 우물이 있는데 이곳이 황룡우물로 조선왕조실록에 조선수군 첨절제사 윤하가"황룡이 경기 교동현 수영의 우물가운데

나타났다"고 보고한 기록이있다. 그러나 우물은 관리가 안돼 과연 이 우물이 유적인지 하는의심이간다. 정말 흔적으로만 존재해야하는지....

교동부지터도 접근이 불가능한 사유지로 농토로 이용되고 있어 이곳 문화재 복원도 시급하다.

이 교동현의 부지에는 객사를 비록하여 조선시대 일반적인 관아 형태를 갖추고 있었는데 흔적만 남아있어 아쉽다.

교동부지를 지나 연산군 적거지로 추정돼는 감자밭에 이른다 여기 표지석은 1986년에 설치 했다고 하고 인근에 부근당(扶芹堂)이 있다.

부근당은 당집으로 연산군과 그의부인 신씨의 화상으로 추정되는 탱화가걸려있다.(14:40)

연산군적거지를지나 제방을따라 가면 동진포에 이르는데 동진포에도 배 한척없이 이름만 포구다.(14:50)

포구를지나니 월선포에서 창후선착장으로 이동하는 카페리가 보인다. 간조때가 지났나보다.

저 페리가 돌아올때 타야한다는 일념으로 발길을 재촉하여 월선포구에 이른다(15:10)

월선포구에서 15:30분에 출발하는 페리를 타고 창우리에 도착하니 터미널행 버스가 16:00에 있다.

 

1. 탐방코스

   월선포구-교동향교-화개사-문무정-화개산성-봉수대-화개산정상(259.6m)-북벽망루-한증막-고구리-대룡시장-남산포-교동읍성-동진포-월선포

   (16km,4시간50분)

 

2. 탐방경로
   06:40분 - 집출발
   06:50분 - 부평역앞 90번환승

                 08:40분 강화터미널도착
   09:10분 - 강화터미널 20여분걸려 창후리 선착장도착
   10:00분 - 창후리선착장
   10:20분 - 월선포
   11:10분 - 교동향교(3.5km)
   11:25분 - 화개사(0.8km)
                 문무정
   11:55분 - 봉수대
   12:10분 - 화개산정상(259.6m ,1.5km)
                 북벽망루-약수터-효자묘-한증막
   12:50분 - 연산군유배지(위리안치)
                 석천당(2.3km)
   13:20분 - 대룡리시장(1.1km)
                 대풍식당 냉면으로점심
   14:00분 - 남산포(2.8km)
                 교동읍성(1km) 남문
   14:40분 - 연산군적거지
   14:50분 - 동진포(0.7km)
   15:10분 - 월선포(2.3km) 4시간50분 16km
   15:30분 - 월선포출발
   15:45분 - 창후리선착장
   16:00분 - 창후리출발(32번군내버스)
   16:30분 - 강화터미널(90번버스)
   18:10분 - 부평역        

 

@. 교통편

   부평-강화터미널:90번버스(15분간격배차)

   강화터미널-창후리:32번군내버스(1시간간격배차)

   창후리-월선포:1일 10회(간조따라다름)

   창후리 월선포간 카페리운항은 이 사이트(http://cafe.daum.net/lovegyodong)확인

 

3. 탐방개념도

 

 

  창후리 선착장

  창후리 앞바다 (월선포)

  연륙교공사중

월선포구

  화개산

교동교회

삼산섬

  교동향교

화개사

  뚱딴지는 아닌것같고 건들지 않아도 쓴 향이 풍긴다.

  문무정 터

  교동평야

봉수대

  삼산섬

  삼산섬의 부속도

  화개산(259.6m)

 

  고구저수지

  삼산도

  삼산섬부속도

화개산성

북벽망루

멀리 연백평야

  이게 씽아

  효자묘

약수터

한증막

  고구리 연산골 연산군 철거지

  석천당

느티나무

  화개산

대룔시장

 혼자놀기

매바지마을과 화개산

남산포입구

  화개산(바라보이는방향따라 산의 모양이 다르다)

남문

황룡우물

교동부지

연산군적거지(감자밭이다)

삼산섬

동진포

월선포

 카페리에서 바라본 삼산도와 앞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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