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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북수락지맥 3구간 종주(담터고개-새우고개-망우리고개-아차산-아차산성 본문

이 또한 지나가리/한북정맥의 지맥

한북수락지맥 3구간 종주(담터고개-새우고개-망우리고개-아차산-아차산성

無碍人 2009. 8. 2. 20:43

2009년 7월31일 금요일 맑고 흐리고 소나기 천사동행

오늘  한북수락지맥  마지막  3구간 종주다.

천사가 동행하기로 해서 함께하기로 했다.

무림리 고개에서 시작하여 3구간으로 나눈 짧은 구간이지만,혹서기에

13km정도씩 구간을 나누어 드디어 마지막 구간이다.

날씨는 맑았으나 망우리 공동묘지 관리사무소에서 소나기를 만나

다행히 비를 직접맞는 것은 피했지만, 소나기후 비에젖은 산길은 온몸을

젖게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북부간선도로 방호벽 57사단  옆에 있는 절개지 사다리는 90도정도의

직선 사다리가 30m정도로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통과하기 힘든 코스였다.

더군다나 올라서는 순간 흔들리는 사다리가,겁나기도 했다.

그런데 사진 포즈를 취하라고 돌아보라하니 우리 천사 냉큼 돌아 쳐다본다.

저 강심장.....그래서 늘함께하지만...

사다리 통과후 온몸이 후들후들거리고 한참을 정신 차릴수 없었다.

광나루역에서 우연히 친구 조용태를 만나 즐거운 맥주파티도하고

돌아오는 전철 환승역에서 종찬이가 보고 달려와 정말 반가운 해후를

하기도 했다. 지난번 백두대간 종주시 종찬이 집터를 지나기도 했는데..

퇴근하는길이란다.

함께 전철타고오다가 오류역에서 내리고 우린 집으로 왔다.

 

1. 산행코스

   담터고개-새우고개-보현사-북부간선도로-망우리고개-망우산-용마산

   -아차산정상-대성암-아차산성-광나루역(13.5km,6시간 30분)

2. 산행경로

   08:00분 - 부개역출발

   09:40분 - 담터고개 도착

                     허참이네 맞은편 담터추어탕-태능숯불갈비-티브이메이트좌측

                     -담터3길이정표아래우측담터2길

                        여기서 선답자가 좌측이라 표기하여 알바 30분

                     -임마누엘조경-철길-밭-포장도로-상신문구센터직진

                        여기서도 선답자가 우왕좌왕 횡설수설 알바

                     - 상신문구가기전 잔디구장 상신문구 창고안쪽으로 직진

                     - 금식방가구유통-말수본추어탕-47번2차선도로-구리농협

                     - 태능골프장-새우고개

                     보현사

                     무명봉삼거리

                    안부사거리-돌탑

                     동구능철조망-철조망따라 계속직진 오르락내리락하며

                             북부간선도로 직전 57사단정문

      11:30분 -  북부간선도로-다리건너 부대 정문에서 우회전 하면 방호벽지나 절개지철문

                    절개지철문-철문통과후 직각 사다리 30m정도 오르면 마루금

                    원형콘크리트 구조물

                    삼거리-좌측으로  두번 돌고나면 오르막

                        오르막직전에 조림지 3거리 3번지나 오르막에서 직진하면 묘지 보이고

                        망우리고개 절개지

                    망우리고개-좌측으로 내려가면(구리방향) 횡단보도건너 공원묘지 진입

      12:30분 - 망우공원묘지 관리사무소-묘지사이를  지나면  묘지관리사무소

                       소나기만나 30분 지체 공원삼거리서 좌우길 다버리고 우측30m

                       지점에서 묘지사이로 망우산 정상으로

                   망우산 3보루

                   망우산 2보루

                   망우산정자(쉼터)

                   망우산 1보루 - 보루란 적의 침입을 막기위해 돌이나 흙으로 튼튼하게 쌓은 구축물

    14:50분 - 용마산 - 용마산까지는 등상로가 잘정비됨

                        원래 용마산은 지맥길에 조금 벗어나 있으나 다녀오기로 함

                        용마산에서 돌아오다 보면 약300m지점에 H-3라는 표시가 있다.

                         여기서 우측길로가면 아차산등산로

                  안부사거리

                  아차산정상

                  대성암

                  대성암삼거리

                  아차산성입구

                  약수터

                  아차산 자연공원 주차장

    16:30분 - 광나루역       

 

3. 산행개념도   

 

 임마누엘 조경

 여기서 알바 30분 담터3길 이정표아래서 우회전 

 새우개고개

 보현사

 북부간선도로 방호벽

 

 북부간선도로 절개지 사다리 90도의 직각사다리 30m정도

 망우리고개

  서울중량구 망우동에 있는고개 높이 96m

 망우산

망우리공동묘지로 알려져있는 이곳 망우산엔 유명한 많은 문인및 독립운동가들의

넋이 잠든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공원화 하기 위해 장묘및 개장작업도 못하게 규제하여서인지 이장작업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

시민의 휴식처로, 역사적 인물들을 만날수있는 장소로, 또한, 망우산 용마산 아차산을

연결하는 삼국시대의 보루를 조성하는 역사의 현장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기도 하다.

 망우산 1보루

망우산 아차산 일대 보루군 사적455호 

서울 광진구·중랑구·노원구 및 경기도 구리시 일대

아차산일대보루군은 출토유물이나 축성방법 등으로 보아 삼국시대의 유적으로 보이며,
고구려가 5세기 후반에 한강 유역을 진압한 후 551년에 신라와 백제에 의해 한강유역을
상실하기까지의 역사를 밝혀줄 수 있는 유적이다. 아차산일대보루군은 아차산보루,
용마산보루, 시루봉보루, 수락산보루, 망우산보루 등 17여개의 보루로 이루어진 유적으로
그 중 일부를 제외한 10여개의 보루가 고구려의 보루로 추청된다. 아차산일대보루군은
중랑천과 아차산, 용마산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여기에 존재하는 10여개의
보루는 현재 남한 내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고구려 관련유적으로서 발굴 등을
통해 고구려 군사시설의 면모가 규명되고 있으며, 백제나 신라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자료가 부족하여 그동안 연구활동이 부진했던 고구려 관련 고고학적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삼국시대 특히 고구려 국경지대 요새의 구조와 성격, 국경방위체계, 군 편제 등을 밝혀주는
귀중한 역사 자료로서 고구려의 남하과정, 한강유역에서의 대치와 관리방식, 한강을 둘러싼
삼국의 각축과 발전과정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유적이다.

 용마산가는길 돌탑

 아차산

 

 

 용마산

산의 높이야 용마산의 높이가 훨씬 높다지만 사실 이 산은 ‘장군봉’이라고도 불리는

아차산 줄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라고 볼 수 있다.

용마산은 그렇게 아차산과 함께 백두대간에서 갈라나온 한북수락지맥의 끝을 이루고 있다.

또 예전에는 아차산과 함께 남쪽을 향해 불뚝 솟아 오른 산이라 해서 ‘남행산’이라 불리기도 했다.
산이 높던 크고 작던 간에 어떤 산이든 이름이 없는 산은 보기 힘들다.

우리 조상들은 작은 미물을 비롯해 모든 생명들과 교감을 나누고자 했던 것인지 모든 것들에

각자의 고유명사를 부여했다.

특히 산에는 이름만 붙여 준 것만 아니라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 전설들이 깃들여 있는

경우가 많다.

아차산과 용마산의 경우에도 산 이름에 관한 전설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함께 유적을

품고 있는 귀중한 산이다.  

먼저 산 이름에 유래를 살펴보면 이렇다.

아차산의 경우 전해지는 이야기를 보면 조선시대 명종 때 점을 잘 치는 것으로 유명한

홍계관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명종이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들여 쥐가 들어 있는 궤짝을 내 놓고 그 숫자를 맞추어

영험한 능력을 판가름하고자 했다.

그러나 홍계관은 숫자를 맞히지 못했고 명종은 그에게 사형을 명했다.

뒤늦게 궤짝 안에 들어 있던 쥐의 배를 갈라보니 새끼가 들어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명종은 아차 싶어 사형을 중지시키려 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고 사형을 거행했던 산을 ‘아차산’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또 이 산에는 온달에 관련된 전설이 많이 전해져 온다.

온달이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는 지름 3m의 공기돌바위와 온달샘 등은 전설과 함께

실제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온달은 산 끝자락에 걸쳐있는 아차산성(사적 234호)에서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용마산에는 아기장수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백제와 고구려의 경계였던 용마산 일대에서 장사가 될 재목인 아기가 태어났다.

당시에는 장사가 태어나면 가족을 모두 역적으로 몰아 죽였다고 한다.

걱정하던 부모는 고심 끝에 아기를 죽여 버렸는데 그 뒤 산봉우리에서 용마(龍馬)가 나와

다른 데로 날아갔다고 해서 지금의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산 아래 말 목장이 많아 용마가 태어나길 기원하는 뜻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용마산과 아차산은 예로부터 중랑천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삼국시대의 훌륭한 전략적

요충지이었다.

그와 관련된 유적지 중에는 고구려가 전쟁에 대비해 만든 소규모 요새지인 보루 유적이

용마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볼 수 있다.

또 온달의 전설과 함께 삼국이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하여 250여 년 동안 각축을 벌였던

아차산성(사적 234호), 아차산 봉수대지(서울 기념물 15호), 신라 문무왕 12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영화사와 대성암 뒤에는 의상대사가 수련을 했던 곳으로 알려진 천연암굴 외에

석곽분, 다비터, 강신샘 등 유적이 많다.

 

 아차산정상

 아차산소나무는 유난히 휘어짐이심하다.

 

 대성암

대성암은 신라문무왕(670년)의상대사가 창건했다한다.

조선조에 무학대사가중창이라 하나 알수 없고 일제때인 1921년 이자리에 재창건됐다.

 

 아차산 생태탑방로

 아차산입구 삼거리

 산행후 우연히만난 친구 용태와 한잔...

 

@교통편

   담터고개는 청량리 황승센터에서 202번버스

   석계역에서 1155번 마을버스

   아차산은 광나루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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