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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북오두지맥 1구간 종주(부곡리-첼봉-오두분기점-고령산-용미리석불상) 본문

이 또한 지나가리/한북정맥의 지맥

한북오두지맥 1구간 종주(부곡리-첼봉-오두분기점-고령산-용미리석불상)

無碍人 2010. 3. 28. 09:35

2010년 3월25일 목요일 구름많고 간간히 눈 홀로종주

 

유난히 더디오는 봄탓에 3월에 한번쯤 백두대간 종주를 하려 했으나 내 발걸음도 아직은...

더구나 다음종주지가 덕유산 국립공원 구간으로 봄철산불 예방차원에서 입산이통제되는 시기라 선뜻

대간종주를 못가고 있는 처지다. 그래서 한북정맥의 한축인 오두지맥을 종주해보기로 하고 오늘출발이다.

일단 지난번 도봉지맥과 오두지맥 분깃점을 지나 확인했으니 출발 마루금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양주 부곡리에서 첼봉을지나 분깃점에 접근하기로 하고 인천에서 3700번 의정부행버스에 탑승했다.

그러나 아뿔사 이버스의 노선이 너무 길고 김포공항거쳐가는거라 타는순간 후회, 가까스로 2시간만에

송추 접근 다행히 바로 도착한 23번 부곡리버스 탑승 첼봉을거쳐 오두도봉분깃점에서 산행을시작했다.

첫날 구간은 고령산을 주축으로 600m급 고령산을 정점으로 앵무봉을 지나면 산세는 평야지대의 야트막한

야산정도의 200m이하의 마루금을 이어주면 되는데,개발등으로 마루금홰손이 심해 알바가 예상되었는데

박달산아래 공장지대는 별어려움없이 지났으나,163봉아래 채석장을지나면서 마루금이 끊겨 모르고 알바를

했다기보다는 뻔히 알고도 부득이 새로운길을 찾아가야 하는 개척알바를 하게 됐다.

선답자종주기에는 채석장우측으로 마루금이 연결되는것으로 되어있는데,채석장이 최근 우측 마루금을

모두 홰손하여  길을끊고 채석장을 넓혀 놓았기때문에,우측아래로 우회를 하는데 작업중인 포크레인이

계속경적을울려 경고를 한다. 그도 그럴것이 원래 마루금인곳을 파고 있으니 아래로 지나는 내가 신경

쓰여 그러는것같다. 계속 바위가 굴러내리는 아래로 지나야 했으니 나는 가능한 작업에 방해가돼지않는

거리를 유지한다고 했으나 위에서 작업하는 작업자 입장은 다르나 보다.

일단 이구간의 마루금은 없다. 앞으로도 어떻게 변할지 예상도 불가능하고...

가능한 방법은 168봉에서 내려다보이는 78번도로에 내려 용미리 석불상까지 우회하는게 채석장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

 

1.  산행코스

    부곡리-첼종-분깃점-말머리고개-수리봉-고령산-된박고개-박달산-달구니고개

    -168봉-163봉-채석장-용미리석불입상-78번지방도(7시간10분,16km)

 

2. 산행경로

   07:00분 - 집출발

   07:25분 - 부평역 3700번 탑승

   09:00분 - 송추도착

   09:20분 - 부곡리23번 종점

                 피카소 모텔방향으로 도로따라 가면 알프스레스토랑지나 여행스케치 카페 뒤마루금

   10:00분 - 첼봉(516m)

                여행스케치카페뒤 마루금따라 가파른 등산로를 30여분 오르면 첼봉에 이른다.

                첼봉에서 지난번 지나온 북동방향마루금으로 10여분 가면 무명봉우리지나 도봉지맥과

                오두지맥이 갈리는 분깃점에 도착한다(표시안내판있음)

   10:17분 - 도봉오두지맥 갈림길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십여분 능선따라 하산하면 송추 유스호텔이 있는 말머리고개에

                이르는데 유스호스텔이 강남청솔 학원으로 바뀌었는지 옆에 새로 건물이 생겼는지 분간이 좀묘한

                청솔학원 간판이 있는데 옆에 유스호스텔 간판도 보인다.

                청솔학원뒤 임도따라 조금가면 고령산등산로 표시 이정표가 있다.

   11:30분 - 수리봉(기산보루성)

               이정표있는곳에서 가파른 능선을 오르면 헬기장있는 삼거리에 이르고 좌측으로는 장군봉을거쳐

               장흥유원지로 내려가는길이고 우측은 기산보루성이라표시되어있는데 여기가 수리봉

               수리봉에서는 한강봉을거쳐 첼봉에 이르는 마루금이 그림처럼펼쳐지고 멀리 사패산에서 도봉산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12:00분 - 전망바위

                수리봉에서 521봉을지나 전망바위에 이르면 장흥유원지가 눈아래 장관을이루며 펼쳐지고

                여기서 역시 한강봉 첼봉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의 웅장하고 장쾌한 모습을

                감상하는데 시간가는줄모른다.

   12:30분 - 고령산(앵무봉)

                원래 마루금은 좌측에 있는 군부대를 지나 된박고개로 이어지나 군시설물로 좌측으로 진행할수

                없으니 고령산 정상인 앵무봉에 올라 헬기장에서 파주 광탄면일원의 전망을 감상하고 도솔암

                방향으로 하산하면 신흥절인 보고앙사에 이른다.

                마루금이 군부대 방향인데 보고앙사로 하산하게 되므로 대간정맥종주에서 금기인 계곡을 건너는

                불상사를 겪는곳이기도 하다.

   13:10분 - 보광사

               보광사에서 도로따라 좌측으로 20여분 오르면 된박고개에 이른다.

               군시설물있는 마루금을타면 바로 된박고개이나 현실이 아니니 어쩌라 계곡을 건넌다.

               된박고개 고개마루에서 우측 임도따라오르면 헬기장에 이르고 앞에 보이는 산이 박달산

               마루금은 박달산아래에 좌측으로 꺾이면서 박달산을 살짝비껴 공장지대가 있는 달구니고개로

               하산한다. (박달산에 이르는 길에 군 헬기레팔장이 있고 그동안 길잡이 노릇을한 모형미사일있는곳에

               이른는데 오늘 그 모형미사일이 철거되고 있었다.)

   14:30분 - 달구니고개

                공장지대에 이르면 갑자기 당황스럽다.공장건물들이 무질서하게 이리저리 무질서하게 건축되어

                무슨 미로갔다. 하지만 건너펴 168봉을 깃점으로 향해가면 별무리가 없다.

   15:00분 - 채석장

                168봉을지나면 채석장이 있는데,이미 163봉의 나무는 베어지고 포크레인이  한번 훑고 지나가고

                깃대만 덩그러이 남아있고 163봉에 이르는 마루금은 이미끊겨있다.

                168봉 아래보이는 78번도로로 하산하여 석불상있는곳으로 이동하는게 합리적이다.

                어떻게든 마루금을이어보려 진행하다보니 작업자에게 욕먹고 알바하고....

   16:10분 - 석불입상(용암사)

   16:30분 - 용미 1 리 버스정류장(양지가든) 

 

@ 교통편

    인천에서 3700번 송추,3호선구파발역에서 34번 송추이동 23번 부곡리버스이용

    용미 1 리 703번 (광탄 서울역간 시외버스 10분간격 운행)이용 3호선 삼송역이나 구파발환승

  

3. 산행개념도.

 

  여행스케치 카페 카페뒤로 마루금

  고비골고개

  첼봉(516m)

  오두지맥 분깃점

  말머리고개(송추유스호스텔)

  송추유수호스텔뒤 임도 이정표

  수정봉

 수정봉(기산보루성)

수리봉은 수리처럼 생긴 봉우리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높이 562m로 장흥면 석현리와 백석읍 기산리의 경계에 놓여있으며, 말머리고개에서는

서쪽으로 위치해 있고, 앵무봉에서는 동쪽으로위치해 있는 봉우리로서 오두지맥이 지나는 곳이다.

수리봉에는 기산보루성과 봉수대, 그리고 도봉산과 삼각산 일대를 관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보루성이란 적의 공격이나 접근을 막기 위해 돌이나 흙으로 쌓은 진지를 말하는데, 기산보루성은

양주시에 분포된 28개 중에 하나라고한다. 성을 축조한 연대는 자세히 알 수 없고, 다만 이곳에서 출토된

약간의 토기 유물로 보아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역사학자들의추정만 있을 뿐이다.

이곳 보루성은 남쪽으로 높이 4m 북쪽으로 높이 1m 길이 4m 정도의 성벽이 남아있고. 활석을 이용해

자연경사를 유지 하면서 바른층쌓기로 축조됐음을 볼 수 있다. 성 내부의 북쪽 한 칸에 400 x 460 x 100Cm

정도의 구덩이가 있는데, 집수시설인지 군사시설인지 알 수없지만, 이 곳이 봉화를 피웠던 봉수대의 흔적이

아닌가 추정만 할 뿐이다.  이 성의 축조 시기를 삼국시대로 추정하고 있는데, 현재의형태로 보아서 조선시대에

개축한 모습을 띠고 있어 고려 및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계속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장군봉

 전망대에서본 장흥유원지

 

  전망바위

  여기서본 장흥유원지,사패,도봉,북한산 능선이 장관

  고령산 앵무봉(622m)

고령산(高嶺山)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기산리와 영장리, 양주시 장흥계곡에 걸쳐 있는 이다.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고 능선을 따라 가을이면 단풍이 절경을 이룬다. 고령산은 1634년에 주조한

보광사 범종과 조선 후기에 편찬된 《양주목읍지》에 각각 고령산(高嶺山)과 고령산(高靈山)으로 기록하고 있어

높고 신령스러운 산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보광사 석불

  된박고개

  모형미사이철거

  박달산

박달나무가 많고, 예전에는 독수리가 많았다는 박달산은 아담하고 아름다우며, 마장리와

분수리를 나누는 능선길엔 고개마다 이정표가 잘 정비돼 있다. 주변엔 윤관장군묘(사적 제323호),

용미리석불입상, 파주삼릉 등 유적이 많아 역사기행을 겸한 가족산행에 적합한 산이다.

북쪽 기슭에는 산림욕장과 자연학습장이 조성되어 있으며, 승마나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유일레저타운이 있다.

헬기장인 정상에 서면 동쪽으로 고령산 앵무봉을, 남쪽으론 도봉산과 북한산을, 그리고 북으론 멀리 감악산을

볼 수 있다. 옛날에는 이 산에서 파발마를 사육했었다고도 한다.

  군부대 후문 진입로

  좌측 고령산 앵무봉  마루금은 좌측 군 시설물로 이어지나 앵무봉에서 하산해야하므로 계곡을 건너게된다.

 

  달구니고개

  168봉

  채석장

  마루금은 건너 보우리로 이어지나 진입은 ????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산 8번지 용암사 옆에 우뚝 선 ‘파주용미리석불입상’. 보는 이들을 압도하는

석불은 형태가 특이하다. 거대한 자연석을 몸통으로 하고 그 위에 머리를 얹어 놓아 반은 자연적으로 반은 인공적으로

조성한 석불이다. 이러한 형태의 석불은 삿갓을 쓰고 있는 것으로 미래세계를 주관하는 미륵부처님으로 부른다.

마을 사람들은 이 석불입상은 ‘용미리 쌍미륵’이라 불렀으며 마을이름도 ‘미륵뎅이’라고 불린다. 
이와같은 형태는 안동 제비원(연미사) 미륵불과 유사하다. 그 모습이 특이해 보물 제93호로 지정돼 있는 용미리

석불입상은 예로부터 아들을 낳지 못하는 사람들이 기도해서 득남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일설에 의하면 이 석불입상은 고구려시대에 천년암벽에 57척 2촌(18m)의 거대한 입상이 신령스런 힘에 의해

조각됐다고 하나 조각수법으로 볼때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확한 역사가 기록돼 있지 않지만 용미리

쌍미륵부처님에 얽힌 설화는 고려 때 나라의 후사를 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고려 13대 왕이었던 선종은 자식이 없었다. 첫째부인인 왕후에게서 아들이 없었고 둘째부인에게서도 아들이 없자

왕실에서는 셋째부인인 원신궁주를 맞이하며 후사를 잇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우려하는 걱정은 백성들에게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고려가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 됐어. 후사가 없으면 나라의 문을 닫는 것은 당연하니까.”

민심의 흉흉해짐과 더불어 선종의 걱정도 점점 깊어만 갔다. 그럴수록 셋째부인인 원신궁주의 처소를 찾는 횟수가 많아졌다.

“부인은 반드시 왕자를 생산하여 이 나라의 대를 이어야 합니다.” “예, 전하. 전하의 바람대로 소첩이 반드시

왕실의 대를 잇도록 하겠사옵니다.”
원신궁주는 궁권안에 불단을 마련해 놓고 매일 치성을 올렸다. 불심이 돈독했던 원신궁주가 기도를 하기위해 방에 들어가면

궁녀들은 연신 이상한 징후를 발견하곤 했다.
“저기 봐. 궁주님이 들어간 방에서 이상한 광채가 나오고 있어.”
하지만 궁주가 방을 나오면 아무일 없는 듯 멀쩡했다. 한번은 멀리서 불단을 바라본 내관들이 불이 난 줄 알고 허둥지둥한

일까지 발생했다. 이러저런한 소문은 궁 안에 퍼졌다. 그러던 어느날 원신궁주의 꿈에 두 명의 도력 높은 스님이 나타났다.
“소승들은 장지산 남쪽 기슭에 사는 수행승인데 너무 배가 고파요, 시주님께서 소승들에게 먹을 것을 구해서 좀 주시오.”

원신궁주는 “스님. 어디라구요?”라며 두 수행승들이 사는 거쳐를 물어보려 하자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어디로들 가셨나.” 꿈인 듯 생시인 듯 깨어난 원신궁주는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필시 보통꿈은 아닌 게야.

스님들이 꿈에 나타난 것을 보면. 그것도 한 분도 아니고 도력높아 보이는 두분의 스님들이 나타난 것은 필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임을 암시해 주는 걸 거야.”
급히 선종을 알현한 원신궁주는 지난밤 꿈속에 일어난 일들을 자세하게 고했다. 선종임금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부인에게서 필시 좋은 일이 일어날 징조인 것 같소”라며 동조했다. 선종은 이어 신하들을 파주 장지산으로 급파했다.

“장지산을 샅샅히 뒤져보거라. 거리에 필시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있을 것이야. 반드시 그들을 찾아 융숭히 대접해야 한다.”
선종의 명령을 받은 신하들은 장지산으로 달려가 온 산을 샅샅히 뒤졌다. 하지만 움막 한곳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전하. 장지산을 다 찾아보았으나 개미새끼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하였사옵니다. 다만 장지산

중턱에 큰 바위 두개가 스님 모습처럼 서 있을 뿐이었사옵니다.”
선종은 다시 명령을 내렸다. “그렇다면 석공을 시켜 그 큰 바위에 스님의 모습을 새기도록 하라.” 명령이 시달되자

고려에서 내노라하는 석공장인을 차출해 원신궁주가 구술해준 모습대로 거대한 바위에 도력놓은 스님의 모습을 새기기

시작했다. 마지막 점안법회를 봉행할 때는 임금과 원신궁주도 새롭게 태어난 모습을 친견하러 현장에 참석했다.

장막에 가려진 석불의 모습이 드러나자 백성들은 일제히 “저 분은 미륵부처님이야. 그것도 두 분의 미륵부처님,

그러니 쌍미륵부처님인게야”라며 절을 하기 시작했다.
선종은 원신궁주에게 말했다. “이보오 부인. 그대가 본 것은 스님이 아니라 미륵부처님인가 보오. 백성들이 저렇게

미륵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필시 부인은 미륵부처님을 선몽한 듯 하오.”
선종은 미륵부처님 옆에 사찰을 지어 혜음사(惠 陰寺)라 부르고 왕실의 원찰로 삼겠다고 공표했다. 바로 그해

원신궁주의 몸에서 태기가 감지됐고, 이 인연으로 태어난 왕자가 ‘한산후’인 ‘왕윤’이었다. 하지만 선종이

죽은 뒤 어린 헌종이 즉위하자 원신궁주의 오빠가 반역을 꾀하였다는 죄명으로 처형됐으며 원신궁주도 왕자 한산후와

함께 유배된 뒤 생사여부를 알 수 없게 됐다고 한다. 

 

  석탑과 동자상

  이승만대통령 어머니가 이 석탑과 동자상을 설치하고 이승만 대통령을 낳았다나...

  4.19의거후 철거했다가 최근 설치 

  용미 1리 78번 지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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