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한신에 들면 생각나는...세석에 가면 기억해야 할 사람이 있다.(백무동-한신계곡-세석평전-삼신봉-상불재-불일폭포-불일평전-쌍계사) 본문

이 또한 지나가리/山·名山산행기

한신에 들면 생각나는...세석에 가면 기억해야 할 사람이 있다.(백무동-한신계곡-세석평전-삼신봉-상불재-불일폭포-불일평전-쌍계사)

無碍人 2021. 9. 8. 14:03

2021년 9월 5일 일요일 흐림 친구 석기, 기수랑

 

돌아보지 마라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다

돌아보지 마라

지리산 능선들이 손수건을 꺼내 운다.

인생의 거지들이 지리산에 기대앉아

잠시 가을이 되고 있을 뿐

돌아보지 마라

아직 지리산이 된 사람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정호승의 "가을"이다.

40일 넘게 기승을 부리던 열대야는 가을비 몇 번에 맥을 못 추고 

오늘 새벽 백무동은 긴팔 긴바지도 모자라 손이 곱아 보온 장갑이 그립다.

지난해 5월 이후 8번째 지리산행이다.

지난해 코로나로 비대면이 시작되며 시작한 지리산 뒤지기는 

오늘 한신을 통해 남부 능선에 들며 그 끝에 선다.

첫 번째로 중산리 천왕봉 한신계곡 탐방을 시작으로 지리 주능선, 지능선과 계곡을 완주했다.

시작의 끝이 한신이었는데 또 그 끝의 시작을 한신에서다.

한신계곡

내 산행 인생의 첫 시작이기도 하다.

1975년 9월 19일 내 첫 일탈이 시작됐다.

생애 처음으로 고2 담임과 갈등으로 시작한 일탈이 무단결석하고 지리산행이었다.

절친이었던 용태를 꼬드겨 봉덕이가 준비해준 시래기 된장국을 비상식으로 준비해서다.

학생과 담임이 무슨 갈등?

그랬다 그런 게 있었다.

다 젊은 날 한토막 에피소드지만...

지금 내가 기억하고 싶은 건 담임이 아니라 봉덕이다.

참 슬프게 살다 간 친구 동생 봉덕이

암이 몸에 퍼져 봉덕이가 떠난지도 스무 해 가까이 된다.

그 시절 봉덕이와 특별한 인연이나 추억은 없다.

그냥 살갑게 잘 따르던 친구 동생

말이 친구 동생이지 봉덕인 나와 동갑이었다.

그 시절 시골 농업학교는 몇 해씩 묵어 나이 많은 친구들이 많았다.

용태도 그런 친구다.

봉덕인 그렇게 오빠와 남동생들 학업 뒷바라지를 하던 가슴 아픈 누이였다.

친구가 자취하던 방에 가면 늘 살갑게 챙겨 주던 동생

봉덕이가 내 인생 첫 산행에 챙겨준 시래기 된장국

시래기를 삶아 된장에 조무락거려 싸준 그 시래기에 물만 부어 끓일 수 있게...

내 머릿속에 한신 하면 떠오르는 맛

아직도 어디서 시래기 된장국만 보면 그때 그 맛이 생각난다.

그 동생이 암 이라 해 병원에 갔는데 그 시래기를 기억하며 수줍게 웃던 그 처연한..

한신엔 시래기 된장국과 봉덕이가 생각난다.

 

그때 한신은 지금의 한신계곡과 사뭇 달랐다.

지리산 산행이 보편화되기 전이라 한신계곡도 몇 년 전까지 미답 지역으로 남았다

전주 영생대학 산악팀이 첫 답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길도 없었다.

아침에 남원에서 첫 버스로 마천까지 가고 등산은 지금 마천교쯤에서 시작했다.

종일 길도 없는 계곡을 올라 장터목 산장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천왕봉을 거쳐

세석에서 2박을 했다.

그때 세석대피소는 돌로 벽채만 쌓아 만든 창고형이었고 바닥은 맨 흙이었다.

그날 대피소엔 우리 둘 말고도 숫자가 기억 안되지만 우리보다 한두 명 많았던

마산의 어느 상업 학교 다닌다는 또래 아이들이 있었다.

상당히 거친 말투로 기억되는데 무슨 문제로 샘터에서 그들과 우리 사이에 

일촉즉발의 긴장상태가 조성됐다.

그때 깡마른 체구에 검은 수염을 한 60대 노인이 우리를 말렸고 샘터 근처 움막에

거쳐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날 대피소에서 우리와 함께 잠을 잤다.

아마 젊은 혈기에 우리가 사고를 칠까 봐 배려했던 것이다.

그분이 우천 허만수 선생 일수도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우천 선생은 진주 출신으로 지리산에 살면서 산을 찾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등산로를 만들고

안내판을 설치하기도 했다.

또한 샘터를 개발하고 험난한 곳에는 나무 사다리를 만들어 놓아 오르내리기 편하도록 했다.

길을 잃은 조난 산행객 들을 구조하고 안식처를 제공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산행객을 위해 지리산 등산지도를 만들어 공급하기도 하며 누구보다도 지리산을 아끼고 사랑했다.

지난겨울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오르며 선생의 추모비를 찾았는데 옮겨지고 없었다.

내가 만난 분이 우천 선생일 수 있다는 생각은 선생이 1976년 6월 홀연히 지리산에서 종적을 감췄다.

사람들은 그가 칠선계곡 어딘가에 삶이 다하는 순간을 예비해 안식처를 만들어 두었다고 얘기한다.

산꾼으로서 지리산 이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건 당연하다.

혹 내가 그분을 만났었을 수도 있고 그분에게 작은 은혜를 입었을 수도 있다.

그래 이제 세석에 가면 우천 허만수 선생을 기억해야겠다.

정호승은 "아직 지리산이 된 사람은 없다"라고 했는데 우천 선생이야 말로

지리산이 되어 칠선 계곡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

 

1년 동안 8번의 지리산행

병선 친구 6번 동행

환춘 친구 3번

기수, 석기 친구 2번

홀산 1번 , 천사 1번 동행

오늘 기수 석기 친구랑 동행이다.

석기야 배테랑에 잘 다져진 체력으로 추종을 불허 하지만 기수 친구도 대단하다.

한 번도 그만 하자 소리 안 하며 끝까지 따라붙는다.

공부하느라 운동부족으로 근육이 다 소진됐는데도 대단한 집념과 의지력이다.

입버릇처럼 하던 '불일폭포 물 맞으러 여름에 간다' 던 소원 이뤘다.

불일 폭포는 최고였다.

1년 동안 함께 해준 소중한 내 친구들 고맙다.

쌍계사에서 화개까지 이동해주고 아빠 산행에 도움준 천사 딸에게도 감사 전합니다.

 

1. 산행코스

   백무동-한신계곡-세석평전-삼신봉-내삼 신봉-쇠통 바위-상불재-불일폭포-불일 평전-쌍계사

   (23.1km, 10시간 20분)

 

2. 산행 경로

  0400 백무동 출발
          가내소 폭포
  0630 세석
         음양수
         석문
  1030 삼신봉
  1116 내삼 신봉
         쇠통 바위
  1203 청학봉
  1226 상불재
  1330 불일폭포
  1350 불일 평전

  1420 쌍계사

 

@. 교통편

     2359분 동서울 백무동행

     1620분 화개 남부터미널행(임시)

 

3. 산경표

 

첫나들이..

세석대피소는 공사중...

 

우천 허만수 기도터

음양수

석문

 

청학동 마을

삼신봉

지리 주능선 전망대

아쉽다 오늘은 우리에게 보여 줄것 갖지 않다.

몸을 정갈하게 하고 다시와야지...

야생오미자

오미자가 요렇게 생긴것 석기 덕분에 알았다.

쇠통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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