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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부천시계 99봉 제 2구간종주 본문

이 또한 지나가리/道界·市界·郡界

인천/부천시계 99봉 제 2구간종주

無碍人 2009. 10. 23. 18:47

2009년 10월 23일 금요일 날씨 비온뒤 구름다소 나홀로종주

 

인천,부천 시계 1구간 종주를 시작한지 20여일 지났는데....단풍산행에

백두대간산행...고구마캐기등등 바쁘다 보니  2구간 종주를 오늘하기로

하고 채비를 차려 부평삼거리로 향했다.

교통편은 인천 지하철 부평삼거리 역이나,국철 백운역에서 하차해도

접근이 용이하나, 집에서 바로가는 760번 순환버스가 있어 9시10분

집출발 9시30분 주안산길 만월산 진입로에 도착했다.

주안산길이란 지명이 있는걸로 보아 어딘가 원통이재 흔적이 있을까

싶어 이골목 저걸목 기웃거려 보았으나,단서를 찾기는 어렵고 등산로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어른께 주안사와 원통이재를 물었으나, 여기 30년

살았지만 모른다고....다만 등산로 중간에 절터가 있던 자리가 있다

하여 ,일부러 가보았더니 [약사사사지]라는 표지석이....

여기를 주안사터라 할수는 없고,원통이재와 주안사자리를 찾는것을

포기하고 산행에 충실하기로 했다.

오늘 산행구간이 만만한게 아닌게....여러번 산행해본구간이지만

일부는 마루금이 없고,등산하기 쉽지않은 지면이 대단히 딱딱한

아주 건조한 모래흙으로,산행후 발목과 관절에 피로를 많이주는

그런 구간에다,거리도 24km정도로 길어 고전이 예상되는 구간이다.

80%정도는 한남정맥과 겹치기도 하고....

암튼 오늘 종주를 마치기로 하고 출~발...

 

1.산행코스

  경인로-만월산-철마산-비루고개-거마산-하우고개-성주산-소사역-원미산

  -상록학교-무형문화재 전수관-도당산(춘의산)-춘의정-춘의 사거리(24km)

 

2.산행경로

  09:30분 - 부평삼거리 출발

                  한국방송공사 송신탑

                  삼거리 - 부평농장 방향으로 가지말고 이삭아파트 방향으로 내려가 횡단

                  보도건너 진도개 방범회사(주유소)에서 부평농장(옛농장이나 지금은 공단)

                  공장 건물 두어개 지나 마루금으로 진입(횡단보도 건너 배수로 부분에서

                  진입하면,불탄자리, 쓰레기더미,구릉지폐수등등 악취가 많이나고 마루금도

                  없으며 불쾌하기까지하다.)

                시멘트도로 - 인천가족묘지 순환로 

                왼쪽으로 굽는 도로에서 마루금 진입(도로건너편에 휴식 밴치있는곳)

                쉼터,운동기구

  10:30분 - 철마산(국기봉 해발202m표시 있음) 

                187봉 

                군사도로 - 옆 등산로

                군부대 아래 마루금

                송전탑(14번)

                비루고개 -(4차선도로)수현마을 버드나무집에서 우측으로 가면 인천대공원

                   후문 진입하는 굴다리가 있고, 굴다리 지나자 마자 우측 계단으로 올라서면

                   외곽순환로 장수 진입로에 닿는다.진입로에 차가많아 지나갈수가 없음으로

                   진입로 우측에 보행자 통로가 있어 우측 진입로 하단부를지나 다시 도로에

                   올라서면, 수현마을(건너편 수현마을) 이라는 표식이있는곳에서 우회전

                   하면 굴다리지나 박씨농원에서 좌측 마루금(산님표시기다수)으로 올라서면

                   화생방교육장,교육장지나 시멘트도로 10m정도가면 포병부대 철조망 좌측

                   으로 진행 마루금잡아 올라가면 거마산 정상

    11:30분 - 거마산(210m)

                   와우고개

                   소래산 성주산 갈림길

                   성주산 구름다리(하우고개)

                   성주산 약수터와 여우고개 갈림길-여기서 한남정맥은 여우고개로가고

                     시계종주는 약수터 방향으로 직진 계속 성주산 약수터 이정표따라 

                     진행하다가, 좌측 성주산 약수터 우측 청심 약수터 이정표에서 직진

                     하면, 정상부에 폐쇄된 군부대가 있고 군부대 철조망따라 오른쪽으로

                     진행하면 우측에 철조망나오는 지점(철조망 기둥에 고무호스끼워짐)

                     에서 우측 희미한 마루금으로 하산하면 서울신학대학 교정으로 들어

                     가고 여기서 소사역지나 원미산으로 진입하면 된다.

  13:30분 - 소사역 

  14:20분 - 원미산 정상 

                   원미산 정상에서 계속 직진하여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가 제법, 봉우리

                   가 높은 무명봉을 올라서면 좌측으로 마루금이 이어지고, 봉우리 3개를

                   오르락 내리락하면 부천 운동장과 상록학교 중간의 절개지 상단에

                   이르게 되고, 절개지위에 있는 벤치에서 도당산이 바라다 보이고....

                   여기서 고민??? 절개지 건너편 봉우리가 무시하기는 너무 커,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고민하다가 가기로 하고 상록학교쪽으로 하산

  15:00분 - 상록학교 앞 횡단보도

                   횡단보도 건너 큰 은행나무 있는 곳으로 진입하면,죽림정사라는

                   암자가있고 건너편 마루금으로 올라가면 희미한 마루금 봉우리에

                   이르나, 사람통행이 없는것으로봐 괜한 짓을 한것같았다.

                   정상부에서 좌측으로 가면 아까절개지의 반대편에 서개되고

                   우측으로 내려가면 부천 운동장 사거리에서 원종동쪽으로

                   300m정도 진행한 무형문화재 전수관 앞으로 나가게 된다.

                   (운동장 절개지에서 건너편 봉우리에 미련을 버리고 운동장

                     쪽으로 하산하여 원종동 방향으로 도로 따라가다가 ,무형문화재

                     전수관 횡단보도를 건너 화원있는곳으로 가서, 옛 부천정수장 옆

                     오솔길을 걸어서 도당산 구름다리로 진행해도 되고, 원종동

                     방향으로 도로 따라가다가 좌측 마루금으로 진입하여 장미원거쳐

                     구름다리건너 도당산.....) 

  16:00분 - 도당산 구름다리

                  도당산 애기바위

  16:30분 - 춘의정

                   인천 부천 시계 종주는 여기서 끝난다.

                   도당산 북쪽으로 임학역까지는 예초 평야지대 였을것 같고 

                   지금은 도시화되어 공장과 빌딩으로 막혀 더이상 갈수가 없다.

                   여기 춘의정에서 시작하거나 끝내는 종주다.

                 

                   임학역에서 총 44km,종주 시간 12시간 40분

 

3.산행개념도

 

 

  약사사사지

  혹 여기가 주안사터 아닌가? 해서 찾아갔는데 약사사사지 라는 표지석이

  만월정

 원통산→주안산→만월산으로 바뀌었다.
인천시 남동구 간석동에 있는 만월산(187.1m)은 옛 인천부 朱雁面에 소재한 朱雁山이다.
이 산의 흙과 돌이 모두 붉은 빛이라 朱자와 산의 형국이 기러기가 나는 것 같다하여
雁자를 붙이어 주안산이라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1861년에 간행된 고산자의 대동여지도에는 한문 표기에 '雁을 岸'으로 바뀌어
朱岸山으로 되어 있다.
이 주안산을 주산으로 한 지봉이 서해바닷가를 휘돌아 해안에 접하고 있었으니
朱岸山이라 함도 그리 잘못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이 만월산은 한일합방 후 인천지방의 지지조사에 의하면 인천부 주안면 元通山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1986년에 발간된「한국지명 총람」에 「원통산-선유산, 간석동과 만수동
경계에 있는 산, 높이 187m, 신선이 놀았다고 함」이라 기록되어 있다.
옛부터 부평사람들은 주안산으로 부르지 않고 이산을「원통산」 으로 불러 왔으며
지금의 시립묘지 입구인 십정동에서 약사사로 넘어가는 고개를 "원테이 고개"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산 중턱에 약사암을 창건하며 '東方滿月世界 藥師如來 淨瑠璃國'이라는 佛國을
건설하여 일체 중생의 질병을 치료할 것을 서원하고 본래 산이름인 주안산, 원통산을
「滿月山」이라 고쳤다.

  철마산(202m)

  비루고개

  여기서 우측 굴다리나가 좌측 계단

  거마산(210m)

  성주산 하우고개
하우고개라 부르게 된데에는 산의 형태인 와우에서 유래된 것이란 설과 의성어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그리고 산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에서 유래되었다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처음의 경우는 이산이 臥牛山이기 때문에 이산을 넘는 고개도 한자로 표기하였다.

이를 우리말로 풀이해 와우고개라 하였다가 와우가 하우로 변해 하우고개로 불리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

두번째 경우는 옛날에는 시흥시 뱀내장에서 계양 황어장으로 닷새장을 오가는 장사꾼들이 주로

이 고개를 이용했다고 한다. 이 무렵에는 행인들을 터는 도둑떼가 득실거렸다고 하는데 장사꾼들은

그들이 무섭지만 이 고개 외에는 이용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이 고개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돌뱅이들은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산 밑 주막에 모여 떼 지어 고개를

넘었으며, 언제 어디서 도둑떼들의 기습이 있을지 몰라 사람과 소는 가파른 길을 바쁘게 걷다 보니

모두가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찼다. 강행군을 하여 고개마루에 올라서면 안도와 함께 거친 숨소리가

절로 나오게 된다.

이 때 나오는 '하우 하우'하는 숨소리의 음을 따 하우고개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세번째 경우는 조선지지 자료에 이 고개를 화오고개으로 표기하고 있는데에서 이 산에 오동나무가

자라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 아닌가 하나 자세히는 알 수 없다.

  우측 여우고개방향이  한남정맥

성주산 (일명 와우산)
부천시 남단에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부천의 주산이다.

성주산(聖柱山)이라고 표 기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부터 이며 그 이전에는 와우산 또는

댓골산이라고 불렸 다. 특히 하우고개가 있는 부분은 1918년 발행된 <<조선지지자료>>에는

화오현산이 라 고 표기되어 있다. 성주산은 부천시의 최남단에 위치하여 시흥시 대야등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1917년에 측량한 지도에는 聖主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해발 200미터이다.

성주 산 이라고 한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일제 때 도서관 심곡분관 자리에 1938년 일왕 에게

참배를 강요하던 소사면 신사가 세워졌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일본인들에 의해 붙여진 산 이름이

아닌 가 한다. 성수산은 일명 와우산(臥牛山)이라 한다. 이 산의 형세는, 현재는 시 청사나 멀리

고증건물에서 관찰해야 볼 수 있지만 도 시 화가 되기 이전인 1960년대 까지만 하여도 벌막 쪽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소가 앉 아 있는 형세를 한 눈에 보아 알 수가 있었다.

즉 지금의 상수도 탱크가 있는 고 언저리의 돌출부인 성무정(활터) 쪽 언덕, 즉 서울신학대학이

있는 뒷편의 돌출부는 마치 소가 앞다리를 굽히고 있는 형상임을 엿볼 수 있고 주봉인 산정상이

소의 엉덩이 부분이 된 형태이며, 여기서 약간 동 쪽에하우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가 잘라 곳은

소의 허리부분에 해당된다 이곳에는 성주산약수 터가 있다. 한편 부천풀장을 찌르듯 돌출된

능선이 바로 소가 엎드려 있을 때 다리를 굽힌 현 상이다.

서쪽으로 길게 뻗쳐 있는 능선 줄기는 소의 꼬리로 보아 소가 누워있는 형 태 이다.

한편 깊은구지 쪽의 성주산은 댓골산으로 불렀다.

이곳의 서쪽에 1960년대까지 암 자가 있었는데 산동네로 불리고 있다.    

 여기서 직진하여 군부대 철조망에서 우회전

  서울 신학대학

  원미산 연리지

 

연리지와 연리목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서로 합쳐져 한 나무가 되는 현상을

연리(連理)라고 한다. 두 몸이 한 몸이 된다하여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과 흔히 비유하였다.

알기 쉽게 ‘사랑나무‘라고도 부른다.
나뭇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連理枝),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連理木)이다.

연리목은 가끔 만날 수 있으나 가지가 붙은 연리지는 매우 희귀하다. 가지는 다른 나무와 맞닿을

기회가 적을 뿐만 아니라 맞닿더라도 바람에 흔들려 버려 좀처럼 붙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땅속의 뿌리는 우리가 잘 볼 수 없어서 그렇지 이런 연리현상이 땅위의 줄기나 가지보다

훨씬 더 흔하게 일어난다. 좁은 공간에 서로 뒤엉켜 살다보니 맞닿을 기회가 많아서 이다.

연리근(連理根)이라고 불러야 하나 쓰지 않는 말이다.

베어버리고 남아있는 나무 등걸이 몇 년이 지나도 죽지 않고 그대로 살아있는 경우을 흔히 본다.

잘려지지 않은 옆의 나무와 뿌리가 연결되어 양분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 과정


연리가 되는 과정은 이렇다. 가까이 심겨진 두 나무의 줄기나 가지는 자라는 동안 지름이 차츰

굵어져 맞닿게 된다. 양쪽 나무에서 각각 해마다 새로운 나이테를 만들므로 나이를 먹어가면서

서로를 심하게 압박한다.

우선 맞닿은 부분의 껍질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여 파괴되거나 안쪽으로 밀려나고 나면 맨살이

그대로 맞부딪친다. 남남으로 만난 둘 사이에는 사랑의 스킨십이 이루어지면서 물리적이 맞닿음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결합을 준비한다. 먼저 지름생장의 근원인 부름켜가 조금씩 이어지고 나면,

다음은 양분을 공급하는 유세포(柔細胞)가 서로를 섞어버린다.

마지막으로 나머지의 보통 세포들이 공동으로 살아갈 공간을 잡아가면 두 몸이 한 몸이 되는

연리의 대장정은 막을 내린다. 고욤나무에 감나무 접을 붙이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런 나무를 잘라보면 마치 쌍 가마를 보고 있는 듯 두 개의 나이테 두름이 한꺼번에 들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두 나무 세포의 이어짐은 적어도 10여 년이 넘게 걸리고 결국은 한 나무와 꼭 같아진다.

양분과 수분을 서로 주고받음은 물론이고 한쪽나무를 잘라버려도 광합성을 하는 다른 나무의

양분 공급을 받아 살아 갈 수 있다.
연리목은 인위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4~5년 생 정도의 같은 종류의 어린 나무 두 그루를 구하여 한 걸음 정도 떨어지게 심고 뿌리가

완전히 내리기를 기다린다.

두 나무가 맞닿을 줄기 부분의 껍질을 약간 긁어내고 탄력 있는 튼튼한 비닐 끈으로 묶어두면

연리목이 만들어진다. 나무의 종류는 자귀나무나 음나무가 좋다.

자귀나무는 밤이 되면 마주 보고 벌려진 잎이 증산작용을 줄이기 위하여 닫아버리는 현상을 두고

의좋은 부부를 상징하며, 음나무는 사랑을 방해하는 귀신을 쫓아낸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원미산 꽃사과

 원미산

원미산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부평구 관아(현 인천광역시 부평구 계산동 소재)의 동헌에서

아침 해돋이 때의 산세는 그지없이 선연하고 아름다우며 해질녘 노을에 반사된 그푸르름이

단아하기가 비길데 없어 이후이산을 보면서 원미산이라고 칭하게 되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근거는 없다고 한다.

  상록학교

  도당산

  상록학교 건너편 골목 은행나무

  무형문화재 전수관 뒤 오솔길

  도당산 구름다리

 

 

 

  도당산 아기장수 바위

 부천시 오정구 대장동이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는 大壯은 大將에서 변화된 것으로

 이곳에서 아기 장수가 있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원미구 도당동 절골에 큰 바위가 둘있었다. 하나는 절바위이고 다른 하나는 장수바위이다.

 절바위는 이곳에 절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고,그절에는 반대가 많아 중이 절을 버리고

 떠났다 한다.그리고 장수 바위는 어린 장사가 계양산에서 날아와오른쪽 한발만 밟고

 소변을 본후 관악산으로 날아갔다 한다.그래서 아기장수 바위라 한다.

 

  춘의정

 이곳은 부천의 2구 3개동(춘의동,도당동,여월동)이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춘의산(春宜山) 남족의 봉우리를 춘지봉(春指峰)이라 불리고 봄이 오는 터라 해서

 불리는 춘지봉은 옛부터 평평한 초원으로 되어 있어,해마다 꽃이 피는 봄이면 인근 소사

 김포,부평지역의 선비 유생이 모여 시회를 열고 부평 김포벌의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며

 춘심을 노래하고 풍류를 즐겼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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