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인천부천시계종주(부평구간) 본문
2011년 12월27일 화요일 맑음 나홀로
인천부천시계종주 부평구간이다.
부평(富平)이란 행정지명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고려 제26대 왕인 충선왕(忠宣王) 2년(1310) 전국의 여러 목(牧)을 없앨때,'길주목,을 강등시켜 '부평부(富平府),로 만든 것이 최초이다. 부평의 지명유래는 "황무지를 개척하여 곡창지로 만들었는데 농지가 넓어 수확이 많이나는 풍요로운 평야" 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한다. 고려 제25대 충렬왕(忠烈王) 34년(1308) 신라때 명칭인 장제군을 길주목(吉州牧)으로 승격시켰는데 그것은 이곳에 '매사육장을 두고 즐겼다,하여 '길주,라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최초 행정지명은 백제때는 알 수 없고 고구려때 주부토군인데 그 뜻은 이곳 황무지에 둑을 쌓아 농경지로 만들었는데 그 둑이 연이어져 '줄보둑→주부토,라고 부르는데서 비롯됐다고한다. 신라 제35대 경덕왕 16년(757)때 같은 뜻인 장제(長堤:긴보둑)로 바꾸고 고려 초기에는 수주(樹州)로 바뀌었다. 그것은 당시 읍소재지가 나무서리마을인 목상동(木霜洞) 으로, 이곳에 호족(豪族)인 이희목(李希穆)이 살았기 때문에 부여된 행정지명이다. 고려 현종 9년(1018) 수주에 지주사가 배치되어 전국 56주의 하나로 개경 근교의 큰 읍이었으며 인근 12현을 속현으로 관장하였다. 그후 고려 제18대 의종(毅宗) 4년(1150)에는 안남(安南)도호부라 했고 읍소재지를 선곶(船串:배곶-배꽃=梨花)에 옮겼다가 의종 19년(1165), 현재의 계산동, 중구봉 아래 온수골로 이전하였다. 읍소재지를 목상동에서 선곶으로 어느때 옮겼는지는 알 수 없으며 이로 인하여 계양산을 안남산이라 불렀으리라 추정된다. 고려 제23대 고종 2년(1215) 안남도호부를 계양도호부로 개칭하여 읍소재지는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충렬왕때 계양도호부를 길주목으로 승격시켰던 것이다. 고려 충선왕때 탄생된 부평부는 조선조 태종 13년(1413) 부평도호부로 승격되고 인주(仁州)는 인천군(仁川郡)으로 되어 부평도호부에 예속되었다. 조선 고종 32년(1895) 칙령에 의하여 부평군이 되어 인천군과 더불어 인천관찰부에 예속되었다. 이듬해 관찰부제도가 폐지되고 경기도에 예속되었다가 일제강점기인 1914년 부평군을 폐지하고 새 군청은 문학동으로 옮겼고 부평읍(계산동)은 폐읍되었다. 여기까지는 지금 계양구관할이된 계양산아래부평이고 현재의 부평은 부평역이 개통되면서 시장근처를 부평이라하여 현재의 부평구 형태가 완성된것이다. 역사적인 부평은 지금의 계양구가 중심이고 지금의 부평은 철도개통후 형성되어 계양구와 부평구가 북구에서 분구되면서(서구와같이분구) 지금의 부평구가된것이다. 오늘 산행구간은 청천동 장수산부터 산곡동,십정동 부평동,부개동 일신동 구산동을 남쪽으로 애워싸고있는 한남정맥구간이다 물론 오늘 산행구간의 반대편은 서쪽으로 서구와 남쪽으로 남동구가 있다. 장수산은 이름없는봉우리였는데 언제부터 장수산이라 불리고 그아래 나비공원이라고 부평구에서 만들어 자연관찰학습 도량으로 활용하고있는데 이게 참그렇다. 자연학습이라는게 자연보호일게고 이게또한 환경보호인데 장수산에 올라보면 나바공원근처의 난해한 산책길과 공원을만들기위해 파괴한 산림은 가슴쓰리다. 장수산을출발하여(12:00) 팔각정을지나 원적산공원 북쪽 끝자락에서 마루금을잡아 원적산 팔각정을 지나 원적산정상에(12:30)서면 여기서 또한 황당한 문구를만난다. 인천산악회에서 세운 정상 표지석에 원적산이 "부평과 서곶의 발전상 큰 걸림돌이 되고있다"고 표기해놓았다. 인천산악회가 어떤 산악회인지 알수는 없지만,이런인식을 하는 산꾼이 있다는데 땅을 칠일이다. 그래도 다행인게 누군가 "발전의 걸림돌"이라는 문구를 지우려고했다는데 안도를 하며 지난다. 원적산을 따라 남쪽 철마산 호봉산 함봉산을 바라보며 진행하다보면 서쪽으로는 북쪽 영종대교,청라지구,북항,그리고 송도로 이어지는 신도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데' 신도시 개발로 이곳은 해안으로 아름다운 풍광이 있어야하는데 지나친 매립으로 해안선의 윤곽은 없어지고' 북항근처의 제철소와 목재단지 굴뚝에서 나는 연기로 언제나 뿌였다. 특히 청라지구 550만평 매립지는 원래 농업용지로 매립했는데 어느순간 경제논리에 밀려 신도시건설로 녹지가 절대부족하다는게 한눈에 내려다보여 안타깝다.인천 세일고옆 철마고개에는 생태통로공사가 한참 진행중이고(13:00) 새사미아파트 정문에서 오르면 산불감시초소지나 장고개,구루지고개 지나 호봉산에 이르고(14:00) 함봉산을 지나 부평아트센타앞에서 포장마차에들러 어묵으로 간단한 요기를하고 경인선 전철를 건너 경인로에 이르면 이곳이 원통이재다. 원통이재는(15:00) 이성계가 부평을 도읍으로 하려할때 봉우리 하나가 모자라 원통해서 그리 불렀다하고 이근처에 주안사가 있었다 하는데 그위치를 지금은 알수가없다. 원통이재에서 만월산으로 오르면 만월정에서 인천지역과 부평 부천지역의 전구간을 한눈에 조망할수있다.어느쪽도 목가적 풍경은 난망하고 하늘을 찌를듯 높아만가는 빌딩숲이 우리가 저렇게 잘사는가 싶다가도 쓸쓸함은.....나이탓인가보다. 만월산에서 만수산으로 이어지는 통로가(16:00) 최근에 개통되어 지나다니면서 생태통로가 개통됐나보다했는데 직접와보니 생태통로하고는 거리가 먼 산책로로 개통되어 동물이동 통로로는 어딘지 문제가 있어보인다. 이런통로는 안만들어도 되는데...동물을 배려하는 보완이 필요하다. 만월산 터널 옆으로 만수산에서 철마산으로 이어지는 북사면은 인천가족공원묘지로 많은 영령들이 잠든 영면구간이다. 철마산에는 깃대가 있고 작은 나무표지석에 철마산이라 표시되어있다(16:30) 철마산부터 비루고개까지는 북쪽으로 군부대가있어 통행하는 산님이 적어 호젓하지만 부대에서 사격이라도 하는 날은 바로 귓전을 울리는 탄음소리를 감수해야한다. 비루고개(16:50)는 한성백제 사신들이 중국에 가기위해 능허대로갈때 삼호현에서 별리현(비루고개)바라보고 손을흔들어 이별을 고했다는 곳으로 이곳 비루고개에서 사신으로 가서 돌아올지 못돌아올지 알수없는 낭군님과 오라비 아버지에게 눈물로 배웅하던곳이다. 비루고개에서 무너미고개는 버스종점지나 인천대공원 입구에있으며 10분여면 다다른다.(17:00) 무너미고개에서 버스로 송내역으로 이동하거나 다양한 버스편으로 인천,부평,부천지역으로 이동이가능하다. 1. 산행코스 장수산-원적산공원-원적산-철마고개-장고개-구루지고개-호봉산-함봉산-원통이재-만월산-만수산-철마산-비루고개-무너미고개(13km,5시간20분) 2. 산행경로 11:40분 - 청천초 후문 12:00분 - 장수산 원적산 생태통로공사중 인근 세일고,명신여고,인천외고 15:00분 - 경인로(원통이재) 도보로 일신동 12-1번 종점이동 귀가 @. 교통편 부평역에서 551번 마을버스 청천초후문하차(갈산역 722번버스) 인천대공원 8번 103번다양하게 송내역등 인천 연결 장수동 버스종점 다양한 버스이용가능 3. 산행개념도 장수산 장수정 원적산 원적정 원적정 북항방면 해안선이 아름다워야하는 구간이 매립으로 해안선은 없다. 원적산 정상 지나온 철마산 계양산 한남정맥 인천산악회가 원적산 정상에 세운 개념없는 표지석 누군가 지우려한 흔적이 위로가된다. 호봉산,함봉산 철마고개 생태통로공사중 장수산,그너머 철마산,계양산 철마산,원적산 부평시가지 호봉산,함봉산,만월산 방향 한남정맥 방향표시도 이정도는 되야지....예술적이다. 호봉산 구루지고개 부평아트센타 만월산 원통이재(경인로) 인천시(남구,남동구) 만월정 만월산 만수산 연결통로 동물이동이 전혀 고려안된 반쪽 통로다. 철마산 한남정맥 인천구간은 철마산이 3곳이나된다. 아마 천마바위 아기장수를 기리는 민초들의 염원탓이랴... 비루고개 거마산 무너미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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