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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부천시계종주(부천구간)

無碍人 2012. 1. 8. 14:25

2012년 1월5일 목요일 맑음 나홀로


인천부천 시계종주 부천구간은 무너미고개부터 하우고개 지나 성주산까지는 한남정맥구간으로 진행하다 성주산에서 서울신학대에서 소사역을 지나 원미산 에서

청소년 수련관을지나 수렁고개 절골약수터 지양산 능고개 경인고속도로 넘어 고강동 선사유적지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부개동 집을 출발하여(10:00)무너미고개까지 도보로이동 중앙병원 주차장에서(10:35분) 거마산으로 오른다.

부천시는 서울과 인천의 대도시사이에끼어 영화와 만화의 도시로 나름의 개성있는 문화도시로 발전하고있다 

부천은 예전에 소사읍으로 불렸고 복숭아가 많이재배되어 한때는 전국의 3대복숭아 산지로 복숭아를 의미하는 복사와 마을을 의미하는 골의 합성어 복사골로

명성을 얻기도했다.부천에는 조마루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조마루는 고대언어로 농경사회에서 가장먼저수확된 곡식이 "조"였기때문에 "조가 많이심어진 언덕"이라는 

뜻이고 춘의산은 언제나 따뜻하다는 뜻으로 "봄을 생각하는산"이라 불리었고 남쪽골짜기의 양짓말은 "한겨울에도 따뜻한 봄과같다"헤서 그렇게 불렸다.

벌막은 벌판마을이 줄여서벌말이라 하였다하기도하고 군대가 주둔하여 막을 첬다하여 伐幕이라 하기도하고 벌판에잇는 주막이라하여 벌막이라 했다하는데

지리적 입지로봐서 후자인 벌판의 주막이 훨씬 설득력이있어 보인다.또한 부천에는 진말이라는 지명이있는데 배수가 잘안돼"부천사람은 마누라없이살아도 장화없이

못산다"하여붙여진 이름이기도하고 동학군이 진을 쳐 진말이라 하기도 했다한다.

소사는 "소사"로 표기하고 토박이말로 "소새(쇠)"읽는다. 소새는 가는(고은) 모래를 일컫는다.

거마산은 소래산과 함께 인천대공원을 품고 있으며 건너 성주산과 철마산을 이어주는 한남정맥구간이다.(11:05)

거마산에서 중동역에서 올라오는 전진로를 건너면 성주산으로 이어지고 성주산 남쪽은 소래산으로 이어지고 부천과 시흥으로 이어지는 하우고개에 다다른다.(11:45)

하우고개라 부르게 된데에는 산의 형태인 와우에서 유래된 것이란 설과 의성어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그리고 산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에서 유래되었다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처음의 경우는 이산이 臥牛山이기 때문에 이산을 넘는 고개도 한자로 표기하였다. 이를 우리말로 풀이해 와우고개라 하였다가 와우가 하우로 변해 하우고개로 

불리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 두번째 경우는 옛날에는 시흥시 뱀내장에서 계양 황어장으로 닷새장을 오가는 장사꾼들이 주로 이 고개를 이용했다고 

한다. 이 무렵에는 행인들을 터는 도둑떼가 득실거렸다고 하는데 장사꾼들은 그들이 무섭지만 이 고개 외에는 이용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이 고개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돌뱅이들은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산 밑 주막에 모여 떼 지어 고개를 넘었으며, 언제 어디서 도둑떼들의 기습이 있을지 몰라 사람과 

소는 가파른 길을 바쁘게 걷다 보니 모두가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찼다. 강행군을 하여 고개마루에 올라서면 안도와 함께 거친 숨소리가 절로 나오게 된다. 

이 때 나오는 '하우 하우'하는 숨소리의 음을 따 하우고개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세번째 경우는 조선지지 자료에 이 고개를 화오고개으로 표기하고 있는데에서 

이 산에 오동나무가 자라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 아닌가 하나 자세히는 알 수 없다.

성주산은 부천시 남단에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부천의 주산이다. 성주산(聖柱山)이라고 표 기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부터 이며 그 이전에는 와우산 또는 

댓골산이라고 불렸 다. 특히 하우고개가 있는 부분은 1918년 발행된 <<조선지지자료>>에는 화오현산이 라 고 표기되어 있다. 성주산은 부천시의 최남단에 위치하여 

시흥시 대야등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1917년에 측량한 지도에는 聖主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해발 200미터이다. 

성주 산 이라고 한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일제 때 도서관 심곡분관 자리에 1938년 일왕 에게 참배를 강요하던 소사면 신사가 세워졌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일본인들에 의해 붙여진 산 이름이 아닌가 한다. 성수산은 일명 와우산(臥牛山)이라 한다. 

이 산의 형세는, 현재는 시 청사나 멀리 고층건물에서 관찰해야 볼 수 있지만 도시화가 되기 이전인 1960년대 까지만 하여도 벌막 쪽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소가 앉아 

있는 형세를 한 눈에 보아 알수가 있었다한다. 서울신학대학이 있는 뒷편의 돌출부는 마치 소가 앞다리를 굽히고 있는 형상임을 엿볼 수있고 주봉인 산정상이 소의 

엉덩이 부분이 된 형태이며, 여기서 약간 동쪽 하우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가 소의 허리부분에 해당된다 이곳에는 성주산약수 터가 있다. 

소래산으로 갈라지는 봉우리가(깊은구지) 바로 소가 엎드려 있을 때 다리를 굽힌 모양이라한다. 서쪽으로 길게 뻗쳐 있는 능선 줄기는(거마산) 소의 꼬리로 보아 소가 

누워있는 형태이다. 한편 깊은구지 쪽의 성주산은 댓골산으로 불렀다. 

현재 성주산으로 불리어지는 이름이 일제의 잔재냄새가 나니 와우산(臥牛山)이나 댓골산으로 바로잡아야 할것같다.

와우산에서 서울신학대학 교정을 통해 내려오면 경인국도에 이르고 소사역 지하통로를(12:20)지나 원미산으로 오르면 몇년전까지만 해도 연리지가 훈훈한 사랑을 

전해줬는데 지난  2010년 9월 태풍콘파스에 의해 넘어지면서도 그 절절한 사랑을 표현했는데 그만 고사하고 말아 보는이로 하여금 가슴아프게한다.

원미산 정상에는 최근에 원미정이세워져 인천,부천,서울을 조망하기에 좋고 쉼터도 잘가꾸어져있다.(13:00)

원미산은 부평관아에서 아침해돋이때의 산세가 아름답고 해질녁 노을에 반사된 그 푸르름이 단아 하다하여 원미산이라 불렸다한다.

지난 1차종주때는 원미산에서 상록학교로 해서 도당산 춘의정에서 마감했는데, 오늘은 원미산에서 청소년수련관지나 수렁고개 절골약수터 능고개로하여 고강동

선사유적지까지 진행하기로하였다.

청소년 수련관 약수터에서 비치된 바가지로 갈증을해소하고 둘러보는데 아뿔사, 2006년이래 계속불합격으로 음용해서는 안된다는경고가...

그렇다면 이 바가지는 뭐람? 이 물은 내 식도를 따라 폐부 깊숙히 시원함을 전하고 있는데 찝찝하다.

수련관앞 역곡로 지하통로를 지나 수렁고개이른다.

이 수렁고개는 내게는 가슴저린 연민의고개다.

우리 주말농장이 까지울 지골에 있고 아버님은 고개넘어 온수동에 사셨는데 항상 이고개를 넘어 아버님이 주말농장을 하루에도 두어번씩 다니셨다.

지난 4월에 작고하시기전까지는 매일같이 넘어다니시던 길이고 이고개를 넘어오는 나를 기다리시던 아버님 모습이 눈에선하다.

이곳 까치울 지골은 비만오면 질퍽질퍽하다하여 수렁고개라하고 온수동쪽 지골약수터는 피부병에 좋다하여 많은 사람이 애용하고있다.

온수동사람들은 이고개를 수룬고개,댓골고개라 부른다.

아버님 생전에 자주 모시고갔던 남원추어탕에서 추어탕 2인분을 포장하여 온수동에 혼자계시는 어머님께가서 어머님과 점심을하는데 어머님은 또 눈물바람이다.

생로병사가 내게만 일어나는 일이아닐진데 부모고 남편이고 자식이면 그 슬픔은 현실이다.

차츰 무디어 지겠지만 어머님에게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신것같다.

가슴저미는 식사를 하고 다시 수렁고개에서 절골을 향해출발한다.(13:40-15:00)

예전에는 없던 이정표와 쉼터가 잘 정비되어있는 절골가는길은 지난 15년동안 내 아버님이 산책하고 거닐던길이다.

15년전 절골약수터근처에서 처음 주말농장을 시작하여 10년을 이길을 다니셨고 최근 5년은 수렁고개를 넘어 지골에서 주말농장을 했으니 아버님과 내게는

이길이 당신과 함께한 가장 오랜시간을 보낸길이다.

아버님만이 알고 가을이면 토시토실 산밤을 가득주워 내차에 실어주시던 추억, 여기저기 영지며 엄나무 군락지를 내게 가르쳐 주셨던 길이 이길이다. 

절골약수터는 예전에 봉응사라는 절이있었는데 절에빈대가 많아 스님이 절을 버리고 떠났다하여 빈대터라 불리기도한다.

그런데 이유인즉 아마 빈대는 숭유억불정책에 절에와서 행패를하는 유생을 일컫는말이고 이 유생들의 등살에 절을버리고 스님이 떠났다한다.

절골약수터 근처에서 10년을 주말농장을했으니 이웃이 아직이곳에서 주말농장과 산꾼을상대로 막걸리를 팔고있어 기대하고 찾았는데 출타중이라 아쉽다.

능고개는 부천작동과 신월동을잇는고개로 늘어진고개라하여 예전에는 능고개라불렸고 조선시대에는 능너머고개라 불렀다.

능고개는 봉배산에서 절골로내려온산줄기가 동쪽 범바위산으로(신월7단지뒤)이어지는 중간에있으며 능고개를 흘러내려간 물줄기는 작동 배네르천을이루며 흘러간다.

능고개는 지금 작동과 신월동 임대단지로 이어지는 도로공사가 한참이다

능고개옆에는 조선성종의 5녀 경숙옹주묘가 여흥민씨 선산에있다 경숙옹주는 민자방에게 허가하였다.

경숙옹주묘를 지나 안산체육시설을(16:00) 지나 경인고속국도를건너면 고강동 선사유적지에 이른다.

고강동 선사유적지는 1995년 여름 장마시에 장갯마을뒷산(청룡산) 등산로에서 석기유물이드러나 1999년 청동기시대 제사에쓰이는 유물이 발견된 선사유적지다.

유적지에서 고강초등학교로 내려와 5번버스를타고 역곡역을 경유하여 귀가했다.

인천부천 시계종주구간을 고강동에서 마치긴했는데 이곳 고강동부터 계양산구간은 산이없는 들녁(평야)이였지만 지금은 도시화로 이어간다는데 의미가 없어 

하지않기로한다.오늘구간은 아버님과의 가슴저미는 추억의구간이기도 하고 지난15년, 그래도 많은 시간을 허락해준 아버지에대해 잊을수없는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을 음미하는 구간이기도했다.


1. 산행코스

    무너미고개-거마산-하우고개-와우산-경인국도 소사역-원미산-수렁고개-절골약수터-능고개-경인고속국도-고강동선사유적지-고강초등학교(17km,5시간30분)


2. 산행경로

   10:00 - 집출발

   10:35 - 즁앙병원

   11:05 -거마산
   11:45 - 성주산
   12:20 - 소사역
   13:00 - 원미산정상
             청소년수련원 
   13:40 - 수렁고개
             온수동 어머니집 점심(13:40~15:00)
    15:10 - 수렁고개출발
               지양산절터
               능고개
   16:00 - 안산체육시설
             고강선사유적
   17:00 - 고강초등학교
              5번버스 역곡전철환승
   17:50 - 집도착


@. 교통편

    송내역에서 인천대공원 버스다양,송내역도보15분

    고강초등학교5번버스,역곡역환승


3. 산행개념도


무너미고개

중앙병원

와우산(댓골산)



거마산



하우고개

소래산

여기서 한남정맥은 여우고개로이어진다.



성주산에서본 원미산

서울신학대학

경인로 소사역

넘어가 베어버린 연리지흔적만 남아 가슴아프다.



원미산정상

원미정에서 바라본 부천시


멀리 관악산

부천운동장

부천시 뒤에 계양산

원미정

 청소년수련원

수렁고개

여기가수렁고개인데 여기 이정표도 어디를 가르키는지?


 차돌바위

작동터널 상단숲

이표시는 수렁고개에서 많이 떨어져있다.

옮겨져야한다. 현재작동터널위에 설치되어있어 햇갈리게한다.

사진찍은곳으로 이동요함


절골약수터



 능고개

 경숙옹주와 민자방묘


 계양산

청룡산(장갯마을뒤)

 김포공항


고리울구름다리

 경인고속도로 고리울구름다리공원






 고강초등학교 뒤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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