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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둘레길 13,14코스(응봉산 자유공원,수도국산코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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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둘레길 13,14코스(응봉산 자유공원,수도국산코스)

無碍人 2015. 2. 12. 15:05

2015년 2월12일 목요일 맑음 나홀로

 

인천 중구와 동구를 남북으로 나누며 바다로 뻗어내린 구릉이 응봉산(鷹峰山 69m)이다.

갑문을 통하여 인천항으로 들어오는 선상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산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라 일컫는 자유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이후 부산과 원산에 이어 세번째로 개항된 제물포(인천항)는 서울과 가까운 지리적 입지 때문에 '각국조계장정' 체결에

따라 국제조약항으로 급속히 변모해간다.

바로 이 조계지가 설치된 곳이 응봉산을 중심으로 한 지금의 중구 일원이다. 

1884년 10월에 체결된 ‘인천제물포각국조계장정’에 따라 각국 조계지를 중심으로 도시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일본·미국·영국·독일·청국 5개국이, 얼마 후 프랑스와 러시아가 조선 진출에 합류했다.

일본조계(1883·9)와 청국조계(1884·4) 가 설치되면서 지금의 차이나 타운은 청국조계,중구청이 있는 남촌은 일본조계가 들어 서며 응봉산

일대는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제물포는 국제무역항으로 급속하게 변하여 간다.

이시절 제물포의 풍경을 1888년 조선에 온 프랑스의 여행가 '샤를 루이 바라'에는 그의 저서 '조선종단기'에 이렇게 쓰고 있다.

“경탄할 광경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그것은 내 평생 처음 보는 아름다운 경관이었다”

“해안선과 항구를 이루는 섬들을 따라 아기자기한 산봉우리들이 다채롭게 솟아 있고, 항구 전체를 녹원(鹿苑)의 둥지처럼 완벽하게 감싸 안은

 가운데 마침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각국 조계지가 설치되고 거주하는 외국인이 늘어가며 응봉산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으로 탈바꿈한다.

이를 설계한 사람이 고종이 초청한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Sabatin)이다.

처음엔 ‘각국공원(各國公園)’이였다가 만국공원으로 한국전쟁후 인천상륙작전 기념으로 맥아더 동상이 설치되며 자유공원이 됐다.

인천둘레길 자유공원 구간은 다양한 근대문화의 잔상들이 요소요소에 남아있고 당시를 경험해 보지 못한 내게 시공을 초월한 시간 여행을

하기에 소중한 시간이 된다.

 

인천역 한국철도 시작점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2008년 웨이하이(威海)시에서 기증한 돌로 세웠다는 11m의 중국 전통 대문 패루가

이곳이 차이나타운 임을 알린다.

중국 음식점이 늘어선 거리는 온통 붉은색으로 이국적인 분위기가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에서 주인공 '나'가 이사온던 날 만나던

그  골목과는 사믓 다르다.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언덕에는 바랜 잉크 빛깔이나 흰색 페인트로 벽을 칠한 커다란 이층 집들이 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마주보고 서 있었다"

"늙은 중국인들은 아편을 피우기도 하고 중국인거리에는 이따금씩 양갈보들의 늙은 창부타령이 들려 오기도 했다."

커다란 2층집들은 온통 붉은색과 홍등으로 치장을 하고, 어디에도 아편쟁이 늙은 중국인도 양갈보들의 창부 타령도 없다.

오로지 이국적인 분위기로 관광객을 부르는 손짓과 단체로 몰려다니는 요우커가 있을 뿐이다.

차이나타운에는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건물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 먼저 찾게 되는 곳은 자장면의 발상지라 알려진 ‘공화춘’이다.

공화춘은 1905년에 개업했다고 전해지며, 이곳에서 부두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중국 고유의 양념인 춘장에 면을 비벼먹는 중국 산동지방의

국수 요리를 내기 시작 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과 같은 자장면은 한국 전쟁후 1953년 미국의 잉여 농산물로 들어온 원조 밀가루가 풍부 해지면서 국수에 여러가지 야채와

각종해물,돼지고기를 춘장으로 볶아 내기 시작 했다는게 정설이다.

쉽게 말해 중국 춘장이 한국에 들어와 한국 사람 입맛에 맞는 음식으로 발전 한것으로 우리의 빈대떡이 일본 음식 오꼬노미야키가

된 것처럼,중국 춘장이 우리 국수와 만나 자장면이 된 것이다.

중산학교 담장에 삼국지 벽화거리가 있고,공자상을 중심으로 좌는 청국조계 우는 일본조계지로 구역이 나뉜다.

청.일 조계지를 지나 1901년 당시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인의 사교장으로 건립된 제물포 구락부에 이른다.

현재도 손색이 없는 화려한 건축물로 사교장의 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한때 시장 공관으로 쓰였던 역사 자료관을 내려 서면 중구청이다.

개항기 이후의 다양한 건축물이 즐비한 이곳 중구는 구 자체가 문화재라 할수 있다.

중구청 청사로 쓰고 있는 인천부청사는 인천시청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구청 앞의 일본조계 지역의 근대식 건물들을 꼼꼼히 둘러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곧바로 올라서면 석정루와 연오정,한미수교 100주년 기념비,맥아더동상이 있는 응봉산 정상이다.

석정루(石汀樓)는 1966년 삼광목재 석정 이후선이 자유공원을 산책하며 얻은 건강을 감사하기 위해 당시로는 거금 300만원 들여

세운 2층정자다. 월미도와 인천항이 내려다 보이는 조망이 아름답다.

현판은 당시 이곳 출신 서예가 동정 박세림이 썼다.

몇해전 이 석정루를 없애고 이자리에 식민시대 인천의 랜드마크 였던 인천각을 복원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말도 안돼는 이야기다.

인천각은 제국주의 시대를 상징하던 건물인데 그걸 우리 손으로 복원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석정루는 연오정과 더불어 당시로는 보기 드문 노블리스 오블리즈(noblesse oblige)를 실천한 건물이다.

맥아더동상을 내려 서면 홍예문((虹霓門) )이다.

무지개처럼 생긴 문이라는 뜻으로 일본군 공병대가 1906~1908년에 걸쳐 건설했다.

남촌,지금의 송학동 일원의 일본 조계지를 북촌(전동)으로 넓히려 했다.

당시만 해도 남촌에서 북촌(전동)을 갈려면 해안선을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홍예문을 지나 동인천역을 넘어 중앙시장 송현시장 골목을 올라서면 송현동 송림동 달동네다.

인천둘레길 14코스 수도국산 코스가 시작된다.

 

내 죽으면 화장을 하거라
뼛속까지 속속들이 잘 태워
몽근 가루로 빻은 다음
달동네
별동네
그 굽이굽이 어둡고 미끄러운
골목길에 뿌려다오

 

"연탄재 유언"이라는 김영천 시인의 시다.

수도국산은 인천의 대표적인 달동네다.

아직도 눈만 오면 골목골목 연탄재 몽근몽근 뿌려져 있을 것 같은 수도국산 달동네

"달동네"는 높은 산자락에 위치해 달이 잘 보인다는 의미,혹은 월세방이 많은 동네라는 의미로 쓰인다.

수도국산(水道局山)은 인천 동구 송림동 송현동에 있는 산으로 일제 강점기인 1909년 산꼭대기에 있던 수도국에서 유래 되었다.

옛 이름은 소나무가 많다하여 송림산(松林山) 혹은 만수산(萬壽山)이라 했다.

개항기 이후 일본인들이 응봉산을 중심으로 남촌(송학동),북촌(전동)등에 몰려 살게되자 밀려난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여

한국전쟁후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보금자리다.

산업화 시기 이후는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사람들이 붐볐던 곳이다.

처마 낮은 집들을 지나 시간이 멈춰버린 골목을 올라서면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이다.

기실 수도국산 달동네라 했지만 지금은 박물관에나 만날수 있고 빌라와 다세대 주택이 많다.

가끔 처마 낮은 빨간 벽돌집에 가스관과 LPG 가스통이 대문밖에 나와 있어 사정을 짐작케 하는게,생각했던 그런 달동네는 아니다.

어쩌다 연탄재 두어장 좁은 문 밖에 나와 있는 단칸방도 있기는 하다.

달동네가 있었던 자리에 공원을 만들고 달동네 박물관을 지었다.

한바퀴 휘휘돌아 보니 빙그레 엷은 미소가 나도 모르게 번진다.

군대를 막 제대하고 신정동 칼산 그 달동네에서 몇해를 났던 기억이 나서다.

눈에 띄게 반가운 것은 동인천역 오른쪽 건물에 있던 음악 다방 "미담"이다.

그 미담에서 이글즈를 만나고 비틀즈를 만났었는데....그때 그 담배 연기 자욱했던  그 다방 DJ '준'도 지금 어디서 나처럼 늙어 가겠지....

 

1. 탐방코스

   인천역-차이나타운-중구청-석정루-홍예문-동인천역-중앙시장-송현시장-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12km,2시간30분)

 

@. 교통편

    국철1호선.24번,67번 버스

 

인천역

 

패루

중국 위해시에서 기증한 돌로 세워졌다.

 

공화춘

자장면을 처음 만들어 팔았단다.

 

 

연오정

이지역 한의사가 기증한 정자

석정루

석정 이후선이 기증

동정 박세림이 쓰다

동정은 강화 출신 서예가다

 

 

 

 

석정루에서 바라다본 월미도 인천항

 

한미수교 100주년탑

 

 

 

 

홍예문

무지개처럼 생긴 문이라는 뜻으로 일본군 공병대가 1906~1908년에 걸쳐 건설했다.

 

 

 

 

 

 

인천부청사였던 중구청

원래 2층이였는데 1층더 증축했다.

 

1880년대 건물이다.

 

좌측은 청국 우측은 일본조계

 

 

삼국지거리

제물포구락부

 

 

 

 

 

 

 

중앙시장

 

 

 

도시가스가 이곳에도 다들어왔다

처마 낮은 70년대 주택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제수변실(옛수도시설)

"백 번 흐르면 만 번 빛난다"는 뜻의‘만윤백량()

 

 

 

 

 

인공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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