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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가리/山·名山산행기

평창 선자령(仙子嶺 1180m) 눈산행

無碍人 2020. 2. 4. 12:23

2020년 2월 1일 일요일 청명 배법이랑


"국민교육헌장"이라는게 있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땅에....'로 시작되는

대명 천지에 국민을 교육 한다는 권력이 이땅에 존재 했다.

국민은 우매하니 가르쳐야 한다는 그 권력자의 발상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섞지만 그 당시는 누구도...'아니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교장 선생님(페결핵으로 출근 안할때가 많았고 재임중에 돌아가심)이 계셨다.

그해 겨울 아픈 몸으로 방학전 그 국민교육 헌장을 외워오셔서 직접 시범을 보였다.

우리 모두에게 외우라고 강요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겨울 방학동안 우리는 수시로 그 국민교육헌장을 외웠는지 담임 선생님에게 확인 받는 등교를 했다.

암기를 제법 잘 했던 나는 그 헌장을 금새 외워 칭찬를 받았던...그래서 그 헌장이 뭘 의미하는 줄도 모르면서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 기억에 덤으로 내게 지워지지 않는 기억 하나가 또 있다.

국민교육 헌장이 나오던 그해 추석, 막내였던 양님 딸이라 불리던 여동생이(3남1녀중막내) 외갓집에 맡겨졌다.

외갓집이라 해도 지금으로 보면 자동차로 20분 거리지만,

그 당시 교통사정으로는 수분재를(전북 장수읍에서 번암면으로 넘는고개) 넘어야 하니 먼 타향이였다.

엄마랑 아빠는 여동생을 양님이라 불렀다.

래 이름이 경임인데...아마 아들 셋에 딸하나가 양념으로 태어나 그리 불렸다.

그만큼 귀한 딸이였고 귀한 동생이였다.

당시 내가 열한살...막내가 4살

그 네살박이 양님딸을 외가에 맡긴 이유는 당연히 경제적 이유에서 였다.

지금처럼 보육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자기 먹을 몫을 갖고 태어난다는...그래서 낳기만 하면 다 알아서 크던 시절 이였다.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엄마는...

땅 한평 없는 첩첩산골을 어떻게든 벗어나려 막 젖을 뗀 여동생을 외가에 맡기고 돈벌러 서울로 갔다. 

맏이였던 내가 업어서 엄마가 일하는 논 밭으로 젖먹이 다니던 동생 이였다.

처음엔 동생 안봐도 된다는 기쁨이 컸지만 금새 막내가 많이 보고 싶었다.

막내 언제 데려 오냐고 할머니를 재촉해 봤지만... 할머닌들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할머니 한테는 나를 비롯해 나와 연년생인 둘째와 4살 터울의 세째 보육과,

당신의 막내아들 아버지 식사를 감당하느라 많이 힘드셨다.

동생을 데리러 가는건 돈벌러간 엄마가 돌아와야 가능한 일이였다.

국민교육헌장을 빨리외워 칭찬 받은걸 엄마한테 자랑도 하고 싶었지만 그 보다 막내를 보러 가고 싶어 설날이 빨리 돌아 오길 기다렸다.

엄마도 왔고 설날도 왔다.

그런데 설쇠고 외가에 세배를 가서 막내를 데려와야 하는데...

설 며칠전부터 쏟아진 눈이 1m는 넘게 쌓였다.

사촌형(운집이형)이 일하는 이발소에서 형이 대나무자를 들고 눈을 재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형이 내 머리를 빡빡 밀어주며 머릿속 때를 보고 "까마귀가 아저씨 아저씨 하겠다" 놀려도 나는 온통 눈 걱정, 동생 생각 뿐이였다.

그렇게 그해 설날 세배는 눈 때문에 며칠을 미뤄서 아마 요맘때쯤 엄마랑 외가에 갔다.

버스를 타고 수분재를 넘어 용머리에서 버스를 내려 구락리 마을을 지나면 외가가 있는 진다리였다.

많은 눈이 내려 세상은 온통 눈 천지였고 비 포장의 차부에 내렸을때 떠나는 버스가 튕기는 눈 녹은 물을 피하려다 넘어지기도 했다.

논두렁길을 휘휘돌아 구락리 마을 앞을 지나면 눈이 녹아 고드름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양지쪽 처마 밑에 온 동네 사람들이

우리 모자가 차부에서 걸어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후에 조금 더 컸을때 혼자 외가에 가면 구락리 아이들이 시비를걸고 통행료를 내라 으름장을 지르기도 했다)

아마 누구집에 오는 손님인가 싶어서...농한기 할일도 없던 시절 어느 마을에나 있던 그 풍경이다.

구락리를 지나면 논두렁 옆으로 난 농토길이 온통 눈녹은 물로 질퍽거리는...

그래서 '마누라 없이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진다리 우리 외가였다.

그렇게 만난 여동생

엄마를 보고도 멀뚱멀뚱...오빠를 보고도 누렁코만 훌쩍거렸다.

그새 엄마를 잊었다.

엄마가 안고 쓰다듬어도 겸연쩍게 무표정이던 그 막내가 이렇게 눈만 쌓이면 생각이 난다.

몇년째 눈이 안오니 그 기억도 지워지려 한다.

선자령에 내 소중한 기억을 지우지 않기위해 눈보러 다녀왔다.


1. 산행코스

   대관령-국사성황당-새봉전망대-선자령-샘터-제궁골삼거리-국사성황당-대관령휴게소

   (12km, 4시간)


@. 교통편

   반더룽산악회(사당역1번출구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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