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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가리/방방곡곡 여행기

24동창모임/구룡계곡/소년이 온다.

無碍人 2024. 10. 23. 05:19

2024년 10월 19일~20일 토, 일요일 맑음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

그때 나는 하사관 후보생으로 후반기(주특기) 교육으로 대구 군의학교에 있었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유신 독재가 김재규에 의해 제거된 후 80년 2월에 입대한 나는

전반기 기초교육 10주를 마치고 후반기 교육 14주를 의무 사령부, 국군간호사관학교가 있는

대구 통합병원내 군의학교에 재직 중인 피교육생 신분이었다.

5월 그때

부대 내 분위기도 뭔가 뒤숭숭했다.

몰래 반입된 트랜제스타 라디오로 최규하 대통령이 광주시민에게 자제해 달라는

방송을 들으며 광주에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했다.

그 기간 낮에는 헬기가 계속 통합병원에 착륙했고...

8월에 전,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공수부대에 배치받았다.

익산에 있던 그 부대, 우리 대대는 광주에 출동 나간 후 아직 미 복귀 상태였다.

얼마간 대기한 후 대대가 복귀해 합류했는데, 그때 광주서 부상당한 병사들도

치료 후 대대로 복귀하며 분위기는 무거웠다.

복귀자들과 광주 출동한 선임들은 수시로 정신 교육을 받았고 누구도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부상자들은 부대 내 지원시설 PX, 식당, 이발소, 세탁소등에 근무하며 의무 복무를 마친 것으로 기억된다.

민주화 이후 광주청문회서 우리 대대장 김 모 대령(청문회당시계급)이 증언하고

함께 근무했던 선임하사(중사)가 트라우마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청문회를

통해 듣은 게 나와 광주와의 인연이다.

 

그해 5월 열흘간(5.18~5.27)

중학생 동호는

"저 광장에서 마지막으로 정대를 본 건 동네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였다.

 모습만 본 게 아니라 옆구리에 총을 맞는 것까지 봤다.

 아니 정대와 너는 처음부터 정대와 손을 맞잡고 선두로, 선두의 열기 쪽으로..."

그렇게 신군부에게 친구를 잃고 친구 주검을 찾아 상무관에서 추도식을 치르도록

준비하는 입관 한 관에 이름과 번호를 붙이고.... 정대의 주검을 찾는다.

그렇게 15살 동호는 광장의 시위대에서 시민군의 일원이 된다.

동호의 시선으로 본 그해 광주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들여다볼 때,

 혼도 곁에서 함께 제 얼굴을 들여다보지 않을까"

 

동호의 마지막을 본 사람들 그들은?

"썩어가는 네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 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그때 너는 죽었어

 그게 어디인지 모르면서, 네가 죽은 순간만 나는 느꼈어"

 

"당신들이 죽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살아남으려고 해서 살아남은 게 아닌데...

산자들의 삶은... 치욕이다.

그해 그날만 기억하던 우리는 또 다른 기억이 있음을 작가는 항변한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다섯 명의 어린 학생들이 이층에서 손을 들고 내려온 건 그때였습니다.

 계엄군이 대 낮 같이 조명탄을 밝히며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소회의실에 숨으라고 명령했던 네 명의 고등학생과 소파에서

 김진수와 짧은 실랑이를 벌였던 중학생이었습니다."

친구의 주검을 찾던 강동호

우리들 소년은 그렇게.... 갔습니다.

살아남은 자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남기고...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삽 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 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아니 언니를 만나 할 말은 하나뿐이야

 허락된다면

 부디 허락된다면.......

 죽지 마

 죽지 말아요"

 

"느이 큰형이 열한 살 묵었을 때 네가 태어났는디, 그 자석은 그때부터

 가이나 같은 머시매라서 애기가 보고 싶다고 학교가 끝나면 달려 왔는디..."

 

"그 쪼그만 것 손 잡아서 끌고 오면 되지,몇날 며칠 거기 너는 뭘 하고

 있었냐고! 마지막 날엔 왜 어머니만 갔냐고! 말해봤자 안 들을 것 같았다니,

 거기 있으면 죽을 걸 알았담서 다 알고 있었담서 네가 어떻게

 그란게 느이 작은형이 으어어어,말도 아니고 뭣도 아닌 소리를 지름스로

 지 형한테 달라 들더니 방바닥에 넘었뜨렸다이, 짐승맨이로 울부짖음서

 말을 한 게, 무슨 이야긴지 뜨문뜨문하게밖에 안 들렸다이,

 형이 뭘 안다고..... 서울에 있었음스로....형이 뭘 안다고...."

 

"목숨이 쇠심줄 같어서 너를 잃고도 밥이 먹어졌재,

 정대네 아버지까지 떠나 괴괴한 문간채는 밖에서 자물쇠로 채워버리고,

 꾸역꾸역 가게에 나가 장사를 했제"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만 가만가만 부른다이... 동호야"

 

그해 그날만 기억하는 것 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의 직무유기다.

한강 작가 덕분에 또 한 번 역사를 보는 눈을 뜬다.

 

한강"소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