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강화지맥 5구간(진강산-탑재삼거리-마니산 입구-참성단-분오리돈대) 본문
2009년 5월8일 금요일 날씨맑음 초여름 홀로종주 15.6km 7시간10분
오늘 종주하고자 하는구간은 강화 지맥이라 할수는 없다.
원래 섬이였던 마니산이 고려산 혈구산을 지나와 덕정산에서
정족산과 진강산으로 갈라진다.
그러나 마니산이 강화섬과 연결된게 수백년 고려시대부터니
진강산에서 마니산으로 지맥길은 아니지만 그길을 이어주는게
수백년을 뭍으로 이어놓고 서로 바라만 보고있는 진강산과 마니산을
가꾸고 보존하는 우리 산꾼들 의무아닐까?(너무 거창하나)
암튼 오늘 진강산과 마니산을 내발로 연결하여 진강산 소식을 마니산에
전하리라.
산행 출발은 덕정산 정상에서 하는게 원칙이나 진강산과 덕정산정상부는
군 작전지역으로(포사격장)진입할수 없으니 덕정산에서 출발 할수 없고
길정리에서 진강산 정상으로가서 진강산을 산행하고 진강산에서
탑재 삼거리로 해서 옛바다였던 농로를 지나 마니산 입구로(국민관광지)
해서 첨성단을 잇기로 했다.
일단 자동차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
자동차를 분오리돈대에 주차하고 10시에 온수리로 나가는 군내 버스를 타고
온수리에서 택시로 진강산 입구 카톨릭대 정문으로 이동하기로 하고 08시에
집을 나섰다.
09:15분 분오리돈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포장마차 장사를 하는 분이
계셔 온수리버스를 어디서 타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마침 온수리에 나간다고 그냥 태워다 주시겠단다.
이게 웬횡재 감사 감사 머리를 땅까지 숙여 인사를 하고 온수리에서
카톨릭대 정문까지 택시(요금 5000원)를 타고오니 09:50분
1시간 정도는 번셈이다.
1. 산행코스
카톨릭대-진강산-탑재삼거리-농로-마니산 입구-참성단-칠선녀교
- 바위능선-정수사뒤 정상-분오리돈대
2. 산행경로
08:00분 - 집출발
09:15분 - 분오리돈대 주차장
09:50분 - 인천 카톨릭대 정문
좌측 식당동뒤 마루금
배밭
임도-임도사거리직진
첫번째 벌목현장 - 2번째벌목현장 우측실개천건너 마루금
2번째 벌목현장 직진해도 가능
임도사거리 - 2번째 벌목현장에서 올라온길
2번째 임도 삼거리 - 우측마루금
3번째 임도 삼거리 - 직진
묘지2기 - 지그재그임도 따라가면 만남
묘지뒤 희미환 마루금 좌측선능선
울창한 소나무 숲 - 소나무 낙엽이 쌓여 스펀지처럼 푹신푹신
헬기장 - 관리하지않아 숲이 우거짐
쉼터 - 의자 3개
11:00분 - 진강산(443m) 3.3km
직진후 좌측하산 진강산 정상은 좁은공간 가파른 내리막
안부삼거리 좌회전 - 산뽕나무 골짜기전체가 어름나무 어름꽃 만발
올가을 어름따러 꼭와야지......
가족묘 1기 - 원주김씨 가족묘 우측하산 묘1기지나 임도삼거리 좌측하산
군부대
1번도로 - 좌측 300m 직진
11:50분 - 탑재 삼거리 5km
탑재삼거리지나 화도면 양도면 경계 이정표에서 농로(다리건너)
농로 3km
모텔 마니산장
12:30분 - 마니산 입구 7.6km
주차장 매표소 입장료 1500원
참성단 그림판 - 좌측 마루금
배수탑
묘 3기 가족납골묘 1기
쉼터 삼거리 - 기도원 이후 참성단까지 계단
13:45분 - 참성단 9km
산불감시초소
헬기장
참성단 중수비
칠선교
14:00분 - 바위능선 점심및 휴식(30분)
이정표(정수사 0.8km,함허동천 1.8km)
안부사거리
119 마-20
119 마-21
안부삼거리 - 직진
안부사거리 - 좌측하산
무명고개 - 해수욕장 좌측 이정표(동막해수욕장)
가피른길
무명봉 - 바위지대 직진 좌측마루금이 뚜렷해 내려갔다가 알바 10분
철조망 - 철조망 지나 간헐적으로 철조망
스테인리스 물탱크
17:00분 - 분오리돈대 15.6km 7시간 10분
3. 산행개념도
인천 카톨릭대 정문
어름 꽃
나는 어름꽃을 처음 보았다.
명색이 산꾼이고 산골에서 태어 났는데....
그동안 나는 가을에 어름 따기위해 어름 나무 아래를 기웃거렸을뿐...
이 아름다운 꽃에는 관심이 없었으니...
내 욕심이 나를.....
진강산 남사면 골짜기는 온통 어름나무 올가을에...ㅋㅋㅋㅋ
진강산과 덕정산 사이는 군작전지역
그래서 마루금 잇는게 쉽지않았다...
진강산 정상(해발 443m)
탑재 삼거리
화도면 입구
양도면과 화도면 경계
진강산과 마니산 사이 논(3km의 넓은 경작지)
필시 고려시대 이전에는 바다였으리라...
오늘 한산꾼이 이길을 한번 이어주고 진강산 소식 마니산에 전했다.
농로에서 바라본 진강산
농로에서 바라본 마니산
두산이 마주 보고있으면서 그 모습이 닯았다.
수만년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면서 닯았을까 ?
뭍으로 이어진지 수백년 오늘 한산꾼이 이산을 이어 줬다.
마니산 입구 참성단 그림판
이곳에서 좌측 마루금
쉼터 이후 (기도원입구)는 참성단 까지 계단
참성단
마니산에 있으며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은 제단이라고 전한다.
고려 원종 11년(1270)에 보수했으며,
조선 인조 17년(1639)과 숙종 26년(1700)에도 고쳐 쌓았다.
여러 번 고쳐서 쌓았기 때문에 본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제단은 자연석으로 둥글게 쌓은 하단(下壇)과 네모반듯하게 쌓은 상단(上壇)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둥근 하단은 하늘, 네모난 상단은 땅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경주의 첨성대와 비슷하다.
고려와 조선왕조는 때때로 이곳에서 도교식 제사를 거행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단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참성단을 단군시대의 종교와 관련시켜 이해하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일제시대에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가 생기고 난 이후에는 민족의 성지로서
주목받게 되었다.
지금도 해마다 개천절에 제천행사가 거행되며, 전국체전의 성화는 이곳에서 태양열을 이용하여
붙이고 있다.
참성단이 과연 단군의 제천단인지는 단정할 수 없으나, 강화도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있고,
단군과 연관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 상고시대에 무시못할 정치세력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강화도 마니산(摩尼山) 꼭대기에 있는 돌로 쌓은 단(壇), 전설상 민족시조인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았다고 전해지는 제단(祭壇)이다. 참성단은 둥근 모습으로 돌을 쌓은
하단(下壇)과 네모난 모습으로 돌을 쌓은 상단(上壇)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둥근 하단은 하늘,
네모난 상단은 땅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경주의 첨성대와 비슷하다.
참성단에 관한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처음 보인다. 이에 의하면,
참성단은 참성단(塹星壇)으로 기록되고,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석단(石壇)으로서,위는 네모지고 아래는 둥글며, 높이는 10척, 석단 위의 네 면은 각각 6.6척,
아래 너비는 15척이라고 되어 있다.
이와 비슷한 기록은 『고려사 지리지(高麗史 地理志)』에도 보인다. 참성단은
세월이 지나면서 허물어져서 1639년(인조(仁祖)17)과 1700년(숙종(肅宗)26)에
두 차례에 걸쳐 개수하였다고 한다.
고려와 조선왕조는 때때로 이곳에서 도교식 제전행사인 초제(醮祭)(별에 대한 제사)를
거행하기도 하였다.
조선후기에는 단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참성단을 단군시대의 종교와 관련시켜
이해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예컨대, 18세기 중엽 이종휘(李種徽)는 『수산집(修山集)』의 「동사(東史)」에서 참성단을
단군시대의 종교인 신교(神敎)의 제단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는 그때까지 써오던 참성단(塹星壇)을
참성단(塹城壇)으로 바꿔 썼는데, 이는 이곳에서의 제사가 별과 관계가 없다는 뜻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는 단군을 적극적인 신앙대상으로 이해하지는 않았으므로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삼랑성(三郞城)과 아울러 강화도 고적(古蹟)의 하나로 이해하고 그 보존에만 주로 신경을 써왔다.
참성단이 민족의 성지(聖地)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한말 일제시대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大倧敎)가 성립한 이후이다.
이때부터 강화도는 단군시대 정치중심지의 하나로 인식되고, 참성단의 네모난 상단과 둥근
하단은 각각 땅과 하늘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었으며, 마니산은 음[땅]과 양[하늘]이
만나는 신성한 수중산(水中山)으로 이해되었고, 마니산 기슭에 단군사당이 건립되었다.
참성단을 민족성지로 서술한 기록으로는 김교헌(金敎獻)의 『신단실기(神檀實記)』,
북애자(北崖子)의 『규원사화(揆園史話)』, 대야발(大野勃)의 『단기고사(檀奇古史)』,
그리고 『대종교중광(大倧敎重光) 60년사(年史)』등이 있다.
8·15 민족광복 후 대종교의 영향을 받아 개천절이 제정되면서 이에 따라 참성단도 민족의
성지로 이해하는 전통이 그대로 이어졌다.
그래서 민족제전인 전국체전(全國體典)행사가 열릴 때에는 이곳에서 성화(聖火)를
채화(採火)하는 것이 지금까지 관례로 이어져 오고 있다.
참성단이 과연 단군의 제천단인지는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강화도에는 청동기시대에 축조된 거대한 고인돌(지석묘)이 있고, 단군과 연관된
전설이 오래전부터 내려오고 있어서 상고시대에 이곳에 무시못할 정치세력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상고시대에는 하늘에 대한 제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으므로 아마도 참성단은
이 시기부터 제천단으로 축조 이용해오다가 삼국시대 이후 도교가 들어오면서
별에 대한 제사(祭祀)도 아울러 행하여 온 것으로 짐작된다.
마니산 (469.4m)
높이 469.4m. 마식령산맥의 남서쪽 끝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진강산·길상산 등이 있다.
원래의 이름은 두악(頭嶽)으로 마리산·머리산이라고도 부르며, 군내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특히 마리란 머리를 뜻하는 고어로, 강화도뿐 아니라 전 민족의 머리로 상징되어 민족의
영산으로 숭앙되어왔다.
본래는 고가도(古加島)라는 섬으로 강화도 본 섬과는 떨어진 곳이었으나 가릉포(嘉陵浦)와
선두포(船頭浦)에 둑을 쌓은 후부터 육지화되었다. 일대의 산지들은 오랫동안 침식을 받아
형성된 낮은 구릉성 산지이다. 북쪽 사면을 제외한 전 사면이 거의 급경사를 이루며,
기반암은 화강암·결정편암이다.
북쪽 기슭에는 화강암반이 비교적 넓게 분포하며, 풍화된 사질토와 암괴가 양파 껍질처럼
분해되는 박리현상(剝離現象)이 나타나고 거대한 널빤지 모양의 암편이 나타난다.
기암절벽이 솟아 있는 산정 부근은 경사가 심하며, 서해안에 산재한 섬과 김포평야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참성단 중수비(斬城壇重修碑)
참성단(인천시사적 제136호)을 새로이 보수한 후 그 내용을 기록해 놓은 것으로,
가파른 바위 윗면을 손질하여 그 위에 비문을 새겼다.
마니산 꼭대기에 자리잡은 참성단은 단군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조선 숙종 때
강화유수를 지내던 최석항이 관내를 순찰하며 마니산에 올랐다가 이곳이 무너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당시 전등사 총섭이었던 승려 신묵에게 명하여 새로이 고쳐 짓도록 하였다.
비는 조선 숙종 43년(1717) 5월에 마련해 놓은 것으로, 비문에는 ‘참성단’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연, 참성단에 대한 선조들의 뜻 등에 관한 기록들이 함께 적혀 있다.
이 비는 강화군 마니산(摩尼山)에 위치한 사적(史蹟) 제136호 참성단(塹星壇)을
중수한 사실을 기록한 비이다. 가파른 암벽면에 가로 50㎝, 세로 105㎝ 크기의 비 윤곽을 만들고
그 안에 8행 238자를 새겨 넣었다. 주요 내용은 당시 강화유수(江華留守) 최석항(崔錫恒)이
관내를 순찰하다가 마니산에 올라 참성단이 무너진 것을 보고 선두포별장(禪頭浦別將)
김덕하(金德夏)와 전등사 총섭(傳燈寺 總攝) 신묵(愼默)에게 명하여 보수한 내용을 담고 있다.
칠선녀교
어디에 뿌리를 내렸지....
정수사방향으로...
계속되는 바위능선 능선 오른쪽은 서해바다
무명봉 삼감점 알바하기 쉬운곳
바위쪽으로 직진
알수없는고개 동막해수욕장 가는고개
분오리돈대
돈대란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영토 내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해두는 초소이다. 대개 높은 평지에 쌓아두는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둔다.
강화도의 가장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이 돈대는 조망할 수 있는 시야가 매우 넓으며,
자연의 지형을 이용하여 쌓았기 때문에 평면이 반달모양을 이루고 있다.
4곳에 문을 설치한 외곽 포대로, 관아에서 돈장을 따로 두어 관리하게 할 정도로
그 중요성을 띠었다 한다.
조선 숙종 5년(1679)에 축조한 것으로, 당시의 강화유수 윤이제가 병조판서 김석주의
명을 받아 경상도 군위어영군 8천명이 동원하여 쌓았다.
이 돈대는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유수 윤이제가 병조판서 김석주 명을 받아 경상도
군위어영 군사 8,000여명이 축조 하였다 한다.
강화도 최남단에 위치한 돈대로서 조망범위가 매우 넓으며 자연지형을 이용축조 하였기
때문에 반달형 평면을 이루고 있어 특이하다.
포자 4문을 설치한 이 돈대는 초지의 외곽포대로서 영문에서 돈장을 따로두어 수직케할
정도로 그 중요성을 갖고 있었다 한다.
동막해수욕장
@ 강화지맥 종주를 마치며
이로써 강화 지맥 종주는 마치게 되었다.
강화 최북단 북성2리부터 별악봉 성덕산 봉천산 고려산 혈구산 퇴모산 덕정산 정족산
길상산 그리고 진강산 마니산 강화 최남단 분오리돈대까지 5회에 걸쳐 종주했다.
지맥길은 정맥길과 달리 다니는 산꾼이 많지않아 마루금이 없었다.
특히 민통선안 별악봉에서 성덕산 봉천산 구간을 겁없이 혼자 산길을 걷고나서
나의 무모함이 웃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무모함이 있으니 또하나 종주를 마칠수 있었으리라...
시간 나는대로 석모도와 교동섬을 종주하여 부록으로 첨부 하리라.
무사히 종주를 마칠수 있도록 도와준 천사에게 감사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 > 강화지맥(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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