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백두대간 18구간종주(죽령-제2연화봉-연화봉-제1연화봉-비로봉-상월봉-국망봉-고치령) 본문

이 또한 지나가리/백두대간(完)

백두대간 18구간종주(죽령-제2연화봉-연화봉-제1연화봉-비로봉-상월봉-국망봉-고치령)

無碍人 2011. 8. 17. 07:29

2011년 8월11일 목요일 안개 강풍 맑음 천사랑

 

40여일째 계속내린비에 대간길은 자꾸 더뎌지고 마음은 조급함으로 안달이다.

일기예보에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다가 잠깐 비가 그친다는 예보에 풍기행기차를탔다.

단양,풍기는 퇴계 이황이 오랫동안 군수로 부임했던곳으로 여기저기 퇴계선생의 일화가 많다.

특히 퇴계선생은 登山을 遊山이라 하시며 산을좋아하셔 여기저기 산행을 하시고 산행기를 많이 남기신분이라 산꾼들은 산행중 그분의

흔적을 많이 접했을것이다.특히 단양과 풍기는 기생 두향과 퇴계선생의 로맨스가 유명하다.

선생의 로맨스를 산행기에 옮길 생각은 없지만 풍기행 기차에서 온통 머릿속은 기생 두향의 신분을 초월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떠올리며

미소짓는 여유로움을 즐겼다.

풍기에 내리자(23:50) 짙은 구름사이로 열하루달이 잠깐 얼굴을 내미는가 싶어 속으로 환호를하기도 했지만,택시가 죽령에 이르자(00:40) 짙은안개와

심상찮은 강풍이 죽령의 넓은광장을 싸하게한다.택시기사님의 "바람이 심한데요?" 하는 걱정을 뒤로하고 연화봉으로 오르는 시멘트길로 접어들었다.(00:50)

연화봉까지는 소백산이지고 있는 천문대와 중계소에 이르는 시멘트도로를 2시간여 올라야한다.

시멘트도로 여기저기는 그동안 내린 비로 토사가 흘러내리고 물이흐르는곳이 많아 안개낀 야간 산행이 결코 만만찮을것같다.

그래도 열하루달이 구름속에 있어 시멘트도로의 윤곽이 제법 선명하게 드러나 랜턴하나로 천사와 나는 서서히 고도를 높이기시작했다.

죽령에서 싸하게 불던 바람은 이제 나뭇가지를 심하게 흔들고 풍기읍이 안개에 보였다 사라지는 장관을 연출하는 전망대에서는 서있기가 힘들다.

그래도 불빛에 싸여 있던 한도시가 금방 불어온 바람에 안개로 덮혔다가 다시 나타나는 모습은 천지창조를 보는듯  이밤에 천사와 나만 즐길수 있는

호사가 아닌가? 중계소가 있는 제1연화봉에 이르러서는 열하루달도 잠자러 갔는지 짙은 안개와 더불어 어둠은 극에 다달은다.

태초에 빛이 있기전의 어둠이 이런것일까? 한번도 경험해보지도 못한 어둠이 우리를 감싸고 천문대의 웅장하고 부조화한 건물의 윤곽도 헤아릴수없는

어둠이다.속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하다. 보기싫은 건물은 안봐도 돼는 행운이니까...

연화봉정상(03:00)에서 가까스로 랜턴 두개와 후레쉬를 터트려 인증샷을하고 더이상 반팔티로는 버틸수없을것같아 긴팔 덧옷으로 완전무장을하고

비로봉가는 이정표를 두번세번 확인하고는 발길을 옮긴다.

이어둠과 강풍에 길까지 잃으면 산행을 포기해야하는 불상사가....생각하기도 싫다.

제법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갈때는 알바하는가 싶어 조바심이 나기도 했지만 다시 오르막이시작되고 제1연화봉이라는 이정표에 이르러서는(04:00) 안도하기도했다. 

제2연화봉,연화봉,제1연화봉...어둠에 산봉우리를 볼수없어 알수는 없지만 연꽃모양의 산이 연이어 있어 그리 부르지않나 싶다.

제1연화봉부터 사랑나무 연리지를 시작으로 비로봉까지 열다섯곳의 탐방관찰 표시가있어 길잃을염려는 없지만 아고산 초지지대에 접어들면서 바람은 강풍수준을

넘어 폭풍수준이다. 데크의 오른쪽을 걸으면 어느새 바람에 밀려 왼쪽을 걷고있고 어느순간 데크가 통째로 날아오르는 상상에 몸서리치기도한다.

소백산은 바람의 산이다.

일설에는 마의태자가 국망봉에 올라 통한의 눈물을 흘려 그 뜨거운 눈물로 비로봉과 국망봉일대의 나무가 말라죽어 초지만 있다고 하지만소백산은 여름엔 남동풍이

겨울엔 북서풍이 불어대니 나무인들 자랄수가 없다.

다른 고산의 주목은 키도 크고 곧게 자라지만 이곳 소백산 주목은 키도 작고 모양도 기형이다.

그 뒤틀어져 자라는 모양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얼마나 강풍에 시달렸으면...

웬만해선 우리 천사가 힘들거나 두렵다는 표현을 먼저 하지않는데 오늘은 "무섭다"는표현을 여러번한다.

바람이 잦아지는 구릉지 데크에 앉아 어둠이 가시기를 기다려 보기도 했지만 태초이전의 어둠보다 더 어두운것 같은 어둠이 움직이지 않으면 더 두렵다는

천사의 말에 다시 길을 재촉한다.

강풍에 맞서 오르길를 한시간반만에 드뎌 비로봉에 정상에 서니(05:30) 다시는 날이밝지않을것 같은 어둠도 훤해지고 비로봉정상의 표지석이 반갑기만한다. 

어느순간 삼가주차장쪽에서 올라온 두부부가 있었는데 모두 반바지 반팔차림이라 오는가 싶더니 비로봉 정상의 강풍을 견디지못하고 이내 온다간다 소리도 없이

내려가고 안보인다.울천사는 강풍에 수건 말린다고 들고 서있고 표지석을 카메라 담으려는 나는 강풍에 이리저리흔들리며 간신히 인증샷하고 이내

국망봉방향으로 하산을시작한다.우리나라 산중에 白자가 들어간 산이 백두산 태백산 소백산이 있다.

일반산이 산신께 제사를 지내지만  이산들은 모두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는거다.

백두산, 태백산 등과 함께 소백산이 그 중에 하나였다.
소백은 곧 하늘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위계가 산에 통할리가 만무하다.산에 품계가 있을리가 만무하다.
소백산에서 천신께 제를 올렸던 것은 비로봉에 하늘이 정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늘인 비로봉을 뒤로하고 주목과 철쭉 군락지를 지나 국망봉에 이르니(07:00) 날은 완전히 밝아오고 구름사이로 햇볕도 간간히 비추기 시작한다.

국망봉은 신라의 마지막왕자 마의타자가 삼배옷을입고 넘으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현명하던 비굴하던 왕건이 새로 세운 고려에 항복하고 얻은것은 목숨을 부지하고, 왕건의 딸 낙랑공주를 아내로 얻었다
경순왕으로부터 세자 책봉을 받은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는 고려에 항복할수 없었다 그래서 신라를 왕건의 고려로부터 회복하려다 실패하자,
엄동설한에 베옷 한벌만 걸치고 亡國의 恨을 달래며 금강산으로 들어 들어갔다.거지가 되어 삼베 옷을 걸쳤을 수도 있겠지만, 고려 군사들에게 체포될까봐 변장하여
麻依를 입고 숨어든게 금강산이라하는게 맞을것이다. 
이 세자의 이름이 "金一"이며, "마의태자"는 '삼베옷을 입은 태자'라고 붙여진 이름이  麻依太子
그후 마의태자는 이곳 소백산 국망봉에 올라서 갈수없는 멀리 옛 신라의 도읍 서라벌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한다.
그래서 이 산봉우리의 이름이 國亡峯이 되었다.

국망봉에서 20여분 가면 상월봉에 이르고 상월봉 암반에 앉아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긴팔 덧옷을 벗었다.

상월봉에서 늦은맥이고개를(08:30) 지나면 고치령까지는 지루하게 진행하는 능선길이시작된다.

지금까지의 대간길이 능선따라 오르내림이 심했는데 이구간도 능선을 오르면 제법 오르내림이 있을듯도한데...많은 구간이 9부능선을 잘라서 진행하게끔 등산로가

만들어져있어 진행하기는 수월한데 지나지않는 능선을 바라보는 아쉬움이 생긴다.

울천사 이구간에서 속도도좀 내자고 간밤의 공포를 다잊은듯 날더러 길을 재촉한다.

컨디션도 좋고 길도 편하고 한시간여를 내 달렸는데 그 거리에 앞도하여 결국 발걸음 더뎌지고 지루한 길에 다시 그로기상태로...갈지자 걸음이다.

마당치에서(09:10) 한참을 쉬며 호흡을조절하고 맥주를 나눠 마시며 여유를 부려보면서 登山이 아니라 遊山을 해보기도한다.

서울행기차가 풍기에서 11:53분과 14:13분에 있으니 어차피 11시차는 불가능하고 14시차를 타야하니 시간이 많을듯 천천히 가며 즐산하기로 한것이다.

고치령에(12:00) 도착하니 아직도 시간은 많아 계류에서 여기 저기 몸을 닦고 고치령을 둘러본다.

이고치령은 소백산과 태백산이 나뉘는 지역으로 산신당 쪽으로는 태백산 도립공원이 시작된다.

이곳 고치령은 단종의 또다른 숙부 금성대군(세조의 친동생)이 단종 복위를시도하다 유배되어 순흥땅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가 순흥부사 이보흠등과

단종복위를 도모하다 잡혀, 풍기부터 순흥까지 비를 맞지않고 처마밑으로 갈수있다는 이 순흥땅의 4000여명의 선비와 백성들을 피로 물들게 한곳이다.  

이고치령을 통해서 영월땅의 단종과 연락을통하던 곳이라 한다.

고치령에 있는 산령각은 금성대군과 순흥땅에서 억울하게 죽은 4000여관민을 위한 산령각이다..

여유롭게 하산하여 아침에 약속한 택시기사와 통화를 시도하는데, 이 고치령이 통화권이탈이라 포장도로따라 좌석리로 이동하다 올라가는 영주택시를 불러

풍기역으로 이동하여 풍기역 인천식당에서 청국장으로 점심을해결했다.

이집 제법 방송에도 나온 맛집인데 청국장 맛은 괜찮은데 밑반찬이 별루였다.

 

1. 산행코스

   죽령-전망대-제2연화봉-연화봉-제1연화봉-비로봉-국망봉-상월봉-늦은맥이고개-마당치-고치령

   (24.5km,11시간 10분)

 

2. 산행경로

   19:20분 - 집출발

   21:00분 - 청량리 출발

   23:50분 - 풍기역도착

   00:40분 - 죽령도착

                 단양역보다 풍기역에서 죽령이 거리가 훨씬가깝다.

                 그런데 풍기역은 풍기 택시가 담합을하여 죽령까지 주간에는 20000원 삼야에는 25000원을요구한다.

                 가능한 죽령은 단양에서 이동해야한다(단양은 17000원에이용)

         

   00:50분 - 죽령 관리사무소 입구 출발

   02:00분 - 전망대 도착

                 풍기읍이 구름속에 사라졌다 나타났다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02:40분 - 제2연화봉(1359m)

                 중계소를 지나 천문대 이르는길은 양쪽으로 질경이가 나란히 심어진듯 무성하게 질서있게 심어져있다.

                 안개와 어둠으로 천문대의 윤곽은 전혀 보이지 않느다.

   03:00분 - 연화봉(

                 안개와 어둠으로 간신히 인증샷

   04:00분 - 제1연화봉(1394m)

                 연화봉부터 돌이많은 길을 걸어야하고 그동안 내린 비로 군데군데 수렁이 많고 주변은 철쭉군락지인듯 키작은 나무가 많다.

                 사랑나무 연리지를 지나면서부터는 비로봉까지 초지지대가 형성되어 있고 등산로는 닥트로 연결됨

                 강풍에 닥트가 날아갈것같은 공포감을느끼기도했음

                 경험해보지못한 어둠과 강풍과 사투 1시간 반....공포였다.

   05:30분 - 비로봉(1439m)

                강풍으로 정상에서는 숨쉬기도 불편 간신히 웅크리고 앉아 인증샷하고 하산

                안개와 아직 가시자 않은 어둠으로 10m앞은 깜깜

                국망봉으로 연결되는 닥트가 들썩이며 움직일정도로 공포의 아침이다.

   07:00분 - 국망봉(1421m)

                 국망봉에 이르는 초원지대는 군데 군데 큰 바위가 있고 철쭉 군락지다.

   07:20분 - 상월봉(1394m)

   07:20 ~ 50분 - 아침및 휴식

                 이후 고치령까지는 지루하게 이어지는 10여km의 오르내림 없는 산길이다.

   08:30분 - 낮은맥이고개

   09:10분 - 마당치

   12:00분 - 고치령

                 고치령은 핸드폰 불통지역이다.

   14:13분 - 풍기출발

   17:00분 - 청량리

   18:30분 - 집도착

 

@ 교통편

    청량리 - 단양(10400원)

    단양 - 죽령(17000원 택시비)

    고치령 - 풍기(30000원)

 

3. 산행개념도

 

 

 

 죽령 (죽령,조령,추풍령 이렇게 3대관문을 이제 모두 지났다. 영남지방이라는 지명이 이 3대관문 남쪽에 있어서 영남이란다.)

전망대 쉼터

제2연화봉

 

연화봉가는길의 질경이

부조화한 이 천문대 건물을 보지않아 다행이다.

 

 

연화봉

 비오지 않아도 안개로 이렇게 온몸에 물이 줄줄....

 

 제1연화봉

 달도 지고 이곳부터는 태초의 어둠이다.

 

사랑나무 연리지

  곳곳에 이런수렁이 발목까지 쑤욱 빠진다.

 

용감한 울천사 ....전사다

 

 

 

  아직 날새려면????

주목군락지

 

 

小白山

 

小 白 山 連 太 白 山
逶 이 百 里 挿 雲 間
分 明 劃 尽 東 南 界
地 設 天 成 鬼 破 慳

" 태백산에 이어진 소백산
백리에 구불구불 구름사이에 솟았네
뚜렷이 동남의 경계를 그어
하늘. 땅이 만든 형국 억척일세 "

 

조선문인 서거정 선생의시가 이표지석뒤에 있다.

 

서거정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 권근(權近)의 외손자. 1444년(세종 26)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1451년(문종 1) 사가독서(賜暇讀書)

후 집현전박사 등을 거쳐 1457년(세조 3) 문신정시(文臣庭試)에 장원, 공조참의 등을 지냈다. 1460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대사헌에 올랐으며, 1464년 조선

최초로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이 되었다. 6조(曹)의 판서를 두루 지내고, 1470년(성종 1) 좌찬성(左贊成)에 이르렀으며 이듬해 좌리공신(佐理功臣)이 되고 달성군

(達城君)에 책봉되었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45년간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의 여섯 임금을 모셨으며 신흥왕조의 기틀을 잡고 문풍(文風)을

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원만한 성품의 소유자로 단종 폐위와 사육신의 희생 등의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도 왕을 섬기고 자신의 직책을 지키는 것을 직분으로

삼아 조정을 떠나지 않았다. 당대의 혹독한 비평가였던 김시습과도 미묘한 친분관계를 맺은 것으로 유명하다.
문장과 글씨에 능하여 수많은 편찬사업에 참여했으며, 그 자신도 뛰어난 문학저술을 남겨 조선시대 관인문학이 절정을 이루었던 목릉성세(穆陵盛世)의 디딤돌을

이루었다. 〈경국대전〉·〈동국통감〉·〈동국여지승람〉·〈동문선〉 편찬에 참여했으며, 왕명으로 〈향약집성방〉을 언해했다. 그의 저술서로는 〈역대연표 歷代年表〉

객관적 비평태도와 주체적 비평안(批評眼)을 확립하여 후대의 시화(詩話)에 큰 영향을 끼친 〈동인시화〉, 간추린 역사·제도·풍속 등을 서술한 〈필원잡기 筆苑雜記〉

설화·수필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한 〈태평한화골계전 太平閑話滑稽傳〉이 있으며, 관인의 부려호방(富麗豪放)한 시문이 다수 실린 〈사가집 四佳集〉 등이 있다.

명나라 사신 기순(祁順)과의 시 대결에서 우수한 재능을 보였으며 그를 통한 〈황화집 皇華集〉의 편찬으로 이름이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그의 글씨는 충주의

화산군권근신도비(花山君權近神道碑)에 남아 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며, 대구 귀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되었다.

 

비로봉은 한자로 毘盧峯이라고 씁니다
옥편을 찾아 보면 毘 도울 비,盧 성 로(노)/목로 로(노), 峯 봉우리 봉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毘盧峯'을 한문의 뜻을 찾아 접근하려고하면 무슨 말인지 알수없습니다
왜냐하면 毘盧는  "뜻글자"가 아니라 "소리글자"인데외국어를 한자로 音譯한것이기 때문입니다.
毘盧비로자나 毘盧蔗那를 줄인 말인데 인도의 옛글자인 '산스크리트語'로서 Vairocana를 中國語로 音譯한 것입니다.
毘盧蔗那의 중국 발음으로는 Vairocana에 가까운데, 우리나라에선 단순히 中國語로 音譯한 毘盧蔗那를 우리말로 그대로 音譯하여 '비로자나'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로자나'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산스크리트語' Vairocana의 뜻을 알면 됩니다
Vairocana는 "태양"이라는 뜻이며, 佛經에서는 '두루 빛을 비추는 자'라는 뜻입니다.
불교 종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불교에서 최고의 부처로 "비로자나佛"을 꼽습니다.
'아미타佛' '관세음佛' '약사여래佛'등과 함께 종파에 따라 최고로 모시는 부처라는 말입니다.
毘盧峯은 이런 배경을 가진 최고의 봉우리라는 의미로 붙여진듯합니다.
아시다시피 금강산의 최고봉도 毘盧峯입니다. 소백산의 비로봉과 같은 한자입니다.
참고로 치악산의 "비로봉"은 한자가 "飛盧峯"입니다.

바람에 수건말리는중

 

서있을수 없는 바람이다.

 돼지바위 ??

 

 

 

국망봉가는길 철쭉

 

 국망봉(1420m)

마의태자는 이곳 小白山 국망봉에 올라서
갈수없는 멀리 옛 신라의 도읍 서라벌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합니다
그래서 저 앞에 보이는 산봉우리의 이름이 國亡峯이 되었다는데
麻依太子가 너무나도 슬피울어 뜨거운 눈물에 나무가 다 말라 죽어서
국망봉을 비롯한 소백산에는 나무가 자라지 아니하고
억새와 에델바이스등 목초만이 무성할 뿐이라고 옛부터 슬픈 내력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아침을 ....맥주도

늦은맥이재(1272m)

 마당치

 고치령(710m)

 소백산국립공원과 태백산 도립공원이 갈리는곳이다.

 금성대군(세조친동생)과 순흥부사 이보흠이 이길을 통해 영월의 단종과복위를 논했다한다.

 

 

산령각
 금성대군과 순흥관민 4000여명을 위해 제사지내는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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