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인천 거마산 소래산 (진달래/벛꽃의 진실) 본문

이 또한 지나가리/山·名山산행기

인천 거마산 소래산 (진달래/벛꽃의 진실)

無碍人 2015. 4. 22. 10:22

2015년 4월16일 목요일 맑음 나홀로

 

생명의 계절 봄이다.

지천으로 꿈틀되는 새생명이 꽃으로 환생하는 참 좋은계절이다.

나이들면서 봄의 환희가 더 사랑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일은 아닐게다.

늘상으로 오르는 거마산 소래산이 이봄에 새로움으로 다가와 꽃길 산행에 나섰다.

늘 새로운길을 가는 종주꾼이지만 익숙한 길에서 새로움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다.

 

봄꽃의 대명사는 당연 진달래와 벚꽃이다.

오늘 산행도 당연 진달래와 벚꽃이 주인공이다.

너무 익숙하면서 잘모르는 꽃 진달래

한때는 왜놈들 꽃이라 외면까지 했던 벚꽃의 진실을 알아보자.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寧邊에 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진달래꽃'이라는 김소월의 시 한토막은 외우고 있다,

진달래는 봄철이면 온산을 붉게 물들이며 봄의 정취를 한층 북돋우며 화려하지만 소박함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어렷을적 참꽃이라 해 입맛을 다시기도 했던 친숙한 꽃이다.

옛어른들은 진달래 꽃과 뿌리를 섞어 빗은 술을 두견주((杜鵑酒)라 해 두견화라 부르기도 한다.

두견주는 담근지 100일이 지나면 마시는 술이라해 백일주라 하기도 하고 홍주라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친숙한 꽃 진달래는 그 이름에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옛날 옛적 두메 산골에 진씨 성을 가진 나뭇군이 달래라는 예쁜 딸을 홀로 키우며 살고 있었다.

달래는 자라면서 눈부실 정도로 미모가 출중해 그 소문이 고을 원님에게 들어갔고 달래를 탐낸 고을 원님은 달래를 첩으로 삼으려 하다가

그만 고문으로 죽게하고 말았다.

죽은 달래를 안고 오열하던 나뭇군 진씨도 달래 옆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

이를 측은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부녀를 양지바른곳에 함께 묻어 줬는데,다음해 봄부터 진씨 부녀가 죽은 자리에 핏빛의 분홍꽃이 피어 났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달래의 이름을 따 분홍색 꽃을 진달래라 불렀다.

진달래와 구분해야 하는 꽃으로 우리가 먹을 수 없다하여 개꽃이라 부르는 철쭉이다.

진달래에 연이어 핀다하여 연달래라 부르기도 하고 일부 지방에서는 수달래라 부른다.

철쭉은 꽃잎에 주름이 잡혀 있으며 자줏빛에 검은점이 박혀 있고 꽃받침에 끈적 끈적한 점액질이 있어 독성이 강하다.

그래서 먹을 수 없다.

특히 진달래와 철쭉을 가장 쉽게 구분하는 방법은 진달래는 잎이 나기전에 꽃이 피지만 철쭉은 잎이 먼저 나고 꽃이 핀다.

이규태는 그의 "진달래 난달래"란 칼럼에서 진달래에 대해서 재미있는 이름풀이를 하고 있다.

진달래 가운데 하얀빛 도는 연한 진달래를 '연달래'라 하고 자줏빛 도는 진한 진달래를 '난달래'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연하고 진한 진달래 빛은

처녀들의 젖꼭지 빛깔을 빗대고 있어 처녀들은 이 꽃이름을 부르면서 놀려대면 민감하다고 한다.

즉 젖꼭지가 연하게 붉어오르는 앳된 사춘기 가시내를 '연달래'라 속칭하고 젖꼭지가 진하게 붉어오르는 성숙한 아가씨를 '진달래'

젖꼭지가 난초 빛깔로 검붉어 오르는 젖먹이 여인을 '난달래'라 했다.

박해조(朴海朝)는 가장 붉은 달래는 '진달래'인데 이는 처녀를 상징하고 분홍달래는 '번달래'인데 이는 중년부인을 가리키고 보라빛 달래는

'막달래'인데 할머니를 상징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1960년대 후반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있던 아름드리 왕벚나무가 여름 방학때 모조리 베어 졌다.

봄이면 날리는 흰꽃이 눈이라 좋아라 뛰기도 했고 버찌가 익어가는 7월이면 입안이 새까맣게 버찌를 따먹어 용의 검사때 늘 혼나게 하던

벚나무였다,

이유는 일제 잔재 청산으로 일본 국화인 일본꽃을 추방한다는 거였다,

'일본의 국민성은 벚꽃을 닮아 화려하게 한번에 피고 순식간에 지고 만다.

일본이 2차대전에 패망 한것도 벚꽃과 같아서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무궁화를 닮아 끈질기게 피고 지고 한다'라고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웠다.

이런 오해는 고등학생이 되면서야 풀렸다.

농고를 다니던 나는 임업을 가르치던 김문원 선생님 덕분이였다.

"일본의 국화는 가을에 피는 국화다.

벚꽃은 천왕이 좋아하는 천왕가의 꽃이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벚꽃심기 캠페인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이뤄졌고, 백악관 앞에까지 벚꽃을 보급했을 정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천왕가가 벚꽃을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천왕이 백제계일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해주는 것이다.

한반도에는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깊고 깊은 척박한 산속에도 벚꽃이 산재해 있다.

왕벚나무는 우리나라 제주도가 원산지다"

남들보다 일찍 벚꽃이 우리 나라 꽃임을 알았지만 초등학교때 주입된 벚꽃이 일본 꽃이라는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일본이 진주만 공격을 감행 했을때 일본이 심어준 백악관 앞 벚나무를 베어내야 한다는 미국 여론이 뜨거웠다.

그걸 막고 나선 사람이 있었으니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다.

'벚꽃은 한국 제주도가 원산지다.

절대로 일본꽃이 아니다.'하며 벚나무 식재 행사 까지 열었다.

다행히 백악관 앞 벚나무는 베어지지 않고 오늘 날까지 건재하다.

30년전부터 우리나라 전국에 심어진 벚꽃이 지금은 가로수중 가장 많이 심어진 나무가되어 굳이 진해 군항제나 화개장터라는 벚꽃

명소를 가지 않아도 내 집 앞 어디서든 벚꽃 축제를 볼수 있다.

그만큼 이제는 가장 친숙한 봄꽃 우리나라 꽃이 벚꽃이다.

 

소래산

거마산

서창 논현지구

시흥시 신천리

진달래

인천대공원 벚꽃길

절정의 벚꽃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