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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가리/山·名山산행기

내장산 내장사/ 먹방이골/문필봉 트레킹

無碍人 2015. 7. 15. 13:34

2015년 7월11일 토요일 흐림 친구 칠성탑 친구부부

 

정읍 칠성탑 정기 모임은 또 석동이 내외에게 신세를 지게됐다.

늘상 있는 일이지만 번번히 자동차를 얻어타는 신세가 돼다보니 염치가 없다.

슬슬 불고염치(不顧廉恥) 하는 이태도가 부끄러워진다.

내장산은 호남의 5대 명산의 하나로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릴만큼 아름다운 능선과 크고 작은 봉우리가 불끈불끈 솟아 있어,

아기자기한 계곡이 여성적이라면,능선은 남성미가 철철 넘치는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산이다.

내장산(內藏山)의 원래 이름은 영은사(靈隱寺) 이름을 따 영은산 이였다.

그런데 꾸불꾸불한 계곡에 숨겨져 있는게 많다 하여 內藏이라 부르게 됐다.

내장산은 추령을 건너온 호남정맥이 장군봉(將軍峰, 696m),연자봉(燕子峰675m),최고봉인 신선봉(神仙峰763m)에 이르러

정맥은 순창새재 건너 백암산으로 흘러가고, 까치봉(717m),연지봉(蓮池峰, 671m),망해봉(640m),불출봉(610m),

서래봉(580m),월령봉(420m)이 동쪽으로 트인 말발굽 모양을 하고 있다.

특히 가을 단풍이 아름다워 조선 8경의 하나로 꼽혔으며 백제 무왕때 영은조사가 세운 내장사를 품고 있다. 

내가 내장산을 처음 방문한게 고등학교 2학년 때, 오늘 만나고자 하는 칠성탑 40년지기 친구들과 함께 였다.

유신헌법으로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한  박정희 독재 정권은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하여,대학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에서도 몇몇이 모이는 것도 

자유롭지 못한 서슬 퍼런 시절,담임 선생이 감시자로 따라 붙은 1975년 가을 어느날이였다.

우리 친구 일곱명은 내장산에서 단원(丹園)의 결의를 했고 그 결의가 유효해 아직 우리는 만나고 있다.

오늘 트레킹은 슬로우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음악으로 말하면 안단테 안단테다

내장사 경내를 휘휘돌아 내장사 옆 먹방이골로 향한다.

연일 30도가 념는 폭염으로 숨쉬기도 힘든 요즘,산행은 무리라고 걱정 했는데 울창한 숲은 폭염이 어딨냐는 듯 시원하다.

원적계곡(먹방이골)의 조븟한 길을 따라 걸으니 푸르른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아름다운 두 여인의 등뒤로 뿌려진다.

친구들과 만남은 오후 4시라 석동이 부부와 오롯이 함께하는 트레킹이다.

바쁠게없다. 느리게 천천히 간다.

늘상 산에 들면 위로만 위로만 정상을 향해 달리고 목표를 향해 달리는 정맥 종주에 길들여진 나, 오늘 만은 다 내려 놓으리라.

오늘은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산행이 아니라,계곡에서 정상을 올려다 보는 산행을 해보리라...

매점이다.

막걸리 한사발에 해물파전으로 유유자적 순간을 즐겨본다.

친구와 함께여서 더 맛나다.

원적암 방향으로 발을 옮기고 원적암 입구에 두개의 돌기둥이 우리를 맞이한다.

610m 불출봉아래 자리 한 원적암은  고려 선종때(1085년) 적암대사가 일곱채가 넘는 큰 암자로 시작 했으나,정유재란,한국전쟁을 거치며

모두 불타고 지금은 소박한 대웅전에 관음보살이 모셔저 있는 작은 암자다.

무슨 연유로 관음보살이 대웅전에 자리 했는지 알수 없다.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도 부처이긴 하지만 대웅전엔 당연히 석가모니 부처가 모셔져야 하고, 관음보살이 계신다면 관음전이라 해야 하는데....

금박을 입히다만 콘크리트 관음보살상이 자비와는 동떨어진 무서운 모습으로 서있는게 원적암의 사정을 짐작케한다.

300~500년쯤 되는 비자나무 수십그루가 원적암 주변으로 당당하게 서있다.

비자나무는 잎이 한자의 '비(非)'자 모양이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곳이 비자나무의 북쪽 한계선이란다.

원적암을 나와 벽련암으로 향하면 자잘하게 깨어진 돌조각들이 널려 있는 너덜지대다. 

이 너덜지대를 걸으면 '딸각' 소리가 난다.

'사랑의 다리' 일명 '딸각다리'라고 이름붙여진 너덜 지대 숲은 온통 단풍나무다.

한국전쟁후 내장산이 신혼여행지로 각광 받을때 만들어진 전설로 신랑 신부가 사랑의 다리를 '딸각" 소리가 나지 않게

얌전히 걸으면 아들을 낳고 소원하는 일이 이루어진다는....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다.

벽련암(碧蓮庵)은 백제 의자왕때  환해선사가 백련사(白蓮寺)로 창건한 절이다.

이후 추사 김정희가 이곳에서 공부하며 흰白자 였던 백련사를 푸른碧자 벽련암으로 편액을 고쳐 달았다가 한국 전쟁때 불타 없어지고

지금의 편액은 이곳의 주지였던 진공 스님의 글씨란다.

전설에 의하면 벽련암 석축대를 쌓을때 희묵대사가 서래봉 정상에서 돌을 던지면 수제자 희천()이 이를 받아 쌓아 올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전설은 내장산성에도 있다.

희묵대사와 수제자 희천은 임진왜란때 승군으로 내장산성을 쌓을때 희묵대사가 돌을 던지면 수제자 희천이 돌을 받아 성을 쌓았다 한다.

내장산성을 쌓은 희묵이 벽련암 석축인들 안 쌓았겠는가?

내장산성 덕분에 임진왜란때 전주사고에 있던 태조의 어용()과 왕조실록을 금선계곡 용굴암()에서 1592년 6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안치하여 지켜 낼 수 있었다고 한다.

벽련암 입구 누각에 누워 벽련암을 바라보면 누각의 지붕과 서래봉 그리고 벽련암 대웅전등이 포개져 보인다.

바람솔솔 아득하게 꿈나라로 시간 여행을 해 보려 할쯤, 스님 한분이 "여기가 내자리야" 하며 대뜸 반말로 정적을 깬다.

절집의 주인은 중일테니 우리야 객이지만 나른해 맛난 꿈 한번 꿔 보려 했는데 기분이 잡쳤다.

괜히 아래위 절집을 배회하다 서둘러 자리를 뜬다.

벽련암의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와 일주문 옆 금선계곡에서 탁족(足)에든다.

전국시대 초나라 시인 굴원은

"물이 맑거든  갓끈을 씻고, 물이 탁하거든 발을 씻는다.( 足)라고 했다.

탁족의 어원이기도 하다.

삼복지간(三伏之間)엔 입술에 묻은 밥알도 무겁다 했다.

낼모래가 초복이니 소서 대서 초.중.말복이 있는 요즘 날씨가 가장 덮고 습하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오장육부가 시원하다.

발바닥에 신경이 집중되어 있어 발만 담궜는데 뒷덜미 까지 서늘하다.

옛 선인들이 바로 이 맛에 유월 유두에 이르면 시원한 계곡을 찾아 옷고름을 풀어 헤치고 '발씻기' 놀이를 즐겼음을 오늘에야 이해가 간다.

금선계곡의 맑은 물에 굴원의 말 대로라면 갓끈을 씻어야 하나 발을 담그니  우리가 신선(神仙)이고 여기가 선계(仙界) 아닌가 싶다.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한 종찬과 심묵내외,우석내외를 우화정에서 합류한다.

우화정(羽化亭)은 내장산의 조그만 저수지에 있는 정자다.

내장산성이 있었던 곳으로 임진왜란때는 승군과 왜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정자가 날개가 돋아 하늘로 승천 했다하여 깃'羽'자를 써 우화정이라 한다.

정자가 얼마나 날렴하고 아름 다웠으면 우화정(羽化亭)이라 했을 까?

그런데 지금 우화정은 아름다움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 어느날 하늘로 날아간 그 우화정을 다시 보고 싶다.

우리는 우화정에서 문필봉으로 순간 이동하여 비내리는 문필봉 전망대에 선다.

오전에 둘러본 서래봉 아래 벽련암이 빗속에 처연하고  서래봉 왼쪽으로 연지봉,망해봉,불출봉이 오른쪽엔 월령봉이 올망졸망 서있다.

문필봉의 정자는 편액이 연자정(燕子亭)으로 되어있다.

연자봉은 문필봉에서 500m 남쪽 마루끝에 있는 봉우리로 제비 명당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편액은 한쪽 귀퉁이가 파손돼 있고 정자는 콘크리트다.

그러고 보니 우화정도 문필봉에 있는 연자정도 모두 콘크리트다.

산업화 시절 급하게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고 복원 하면서 세운 정자들이다.

다른 곳들은 모두 전통 방식의 정자로 교체 복원 되었는데 국립공원 내장산의 정자가 참 허술하다.

전망대 아래 매점에서 곡차 한잔씩 나누어 들고 모임 장소로 이동한다.

아쉬움이 남는 내장산 트래킹이다.

늘 떠날때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떠난다고 하지만 오늘도 또 아쉬움 투성이다.

내장사에서 우화정에 이르는 굴거리나무 군락지를 놓쳤고,언젠가 가을 내장산을 찾았다가 다음에 꼭 백양꽃 필때

다시 찾으리라 하던 내장산 백양꽃도 제철임에도 아득히 내 기억에서 지웠다.

백양꽃을 옆에 두고 못 알아본 무지와 점점 희미해져 가는 내 기억력이 한심스럽다.

"알고 떠나라...아는 만큼보인다."

나는 언제쯤이나 이 슬로건에 충실할까?

 

 

내장사

 

 

 

 

 

 

조붓한 먹방이골 숲이 깊다.

 

 

 

 

 

 

친구랑 함께여서 맛나다.

 

 

 

원적암 입구

 

 

관음보살인데 자비와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대웅전 안에 관음보살이??

관음전이라 함이....

 

 

 

비자나무

나무잎이 한자의 '非'자를 닮았다.

 

 

 

사랑의다리(딸각다리)

소리 안나게 얌전하게 걸어요

아들 낳아야지 ㅋㅋ

 

 

 

 

 

 

 

 

 

 

 

천불전은 천분의 부쳐를 모신 불당이다.

 

 

 

 

 

 

 

 

오수를 즐기러 했는데...

불청객 주인장이 정적을 깼다.

건너 장군봉 연자봉

 

 

 

 

 

 

 

 

 

 

 

 

금선계곡

 

탁족

우리가 신선이고 여기가 선계일세....

 

우화정

임진왜란때 내장산성이 있던 곳으로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콘크리트 편액,콘크리트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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