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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가리/방방곡곡 여행기

담양 누정 투어....

無碍人 2015. 5. 7. 18:14

2015년 5월2일 토요일 맑음 천사랑

 

화순에 왔으니 운주사를 둘러보는게 정석이다.

천불천탑 와불로 유명한 운주사를  그냥 두고 가기는 너무 억울하지만 워낙 유명 한곳이니 언젠가 와볼 기회가 있겠지만 지난번

정맥 종주후 소쇄원과 식영정을 둘러보고 환벽당과 취가정을 근처에 두고도 그냥 지나친게 마음에 걸린다.

소쇄원의 연초록 정원이 궁금 하기도 하고....

일단 운주사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소쇄원과 담양의 정자를 둘러 보기로 하고 노루목 적벽 투어를 마치고 소쇄원으로 이동한다,

겨울 소쇄원하고는 비교가 안될 정도록 연두빛 정원이 아름답다.

흠이라면 구름처럼 몰려든 관광객으로  한적한 정원 풍경을 즐길 수 없다는게 아쉽다.

지난 겨울에는 버스 시간에 쫒겨 주마간산 식으로 둘러보기에 급급했다.

오늘은 계곡 물소리도 들어보고 광풍각 마루에 앉아 우리 정원의 아름다움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망중한을 즐겨본다.

소쇄원은 조선 중종때 선비 양산보가 스승 조광조가 능주로 귀양와 있다가 사약을 받고 사망하자 조성하기 시작 했다.

3대에 걸쳐 만들어진 조선의 대표적인 민간 정원인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담양의 상징 대숲이 시원하게 바람소리를 내며 맞아주고 계곡엔 청둥오리 2마리가 시대를 초월하여 유유자적이다.

계곡 옆 정자인 광풍각은 ‘침계문방’이라 하여 머리 맡에서 계곡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선비의 방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풍류객들의 사랑방 노릇을하고 풍광을 바라보며 시조를 지으며 노닐던 곳이다.

광풍각과 제월당 사이는 나지막 한 담장이 있어 내원과 외원으로 구분되고 내원인 제월당은 소쇄원의 가장 높은곳에 위치한다.

'비갠뒤 하늘의 맑은 달'이라는 뜻으로 주인이 거쳐 하며 독서를 하는 곳으로 맑고 깨끗 하며 풍류를 아는 조선 선비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오곡문() 아래를 통해 들어온 물은 소쇄원을 둘로 나누고 소쇄원에 생기를 돋우는 생명수가 되어 다섯번 굽이쳐 돌며 흘러내린다.

조그만 연못이라 부르는 암반위 조담()에 머무르다 작은 폭포를 만들며 떨어지니 이를 십장폭포를 부른다.

축대위의 조그만 초가 정자를 대봉대(臺)라 부르는데,봉황을 기다린다 하여 귀한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정겨움이 있다.

대봉대 뒤쪽 담장에 박힌 애양단()은 글씨처럼 따뜻하게 담으로 둘러싸인 마당이다.

눈이오면 가장 먼저 녹는 곳으로 부모님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는 효의 공간이다,

제월당,광풍각,애양단,대봉대,오곡문등이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한치의 빈틈이 없는 조형미를 뽑낸다.

한번 다녀간 곳이지만 의미를 알고 다시 왔는데도 뭔가 또 빠트리고 가는것 처럼 어렵고 난해하다.

이렇게 작은 정원에 의미를 부여 하며 세상을 조롱하고 은든하며 유유자적하는 조선 선비의 여유로움이  부럽기도 하고,

현실도피 같아 보이기도 하다.

우리 정원은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궁원과 향원 민간정원으로 ,정원의 성격에 따라 별서정원과 산수 정원으로 구분한다.

창덕궁의 후원이 대표적인 궁원이고 남원 광한루가 지방관리들이 조성한 향원,소쇄원이 대표적인 민간정원이며 별서정원이다.

 

소쇄원에서 광주방면으로 도보로 10분정도 거리에 식영정과 가사문학관이 있다.

식영정(息影亭)은 서하당() 김성원()이 스승이자 장인인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로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으로 임억령이 이름을 지었다 한다.

식영정 바로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이름 붙인서하당()이라는 정자가 있다.

서하당은 없어 졌다가 최근에 다시 복원하였다.

이곳 성산 사람들은  임억령 김성원 정철 고경명() 네 사람을 '식영정 사선(四仙)이라 불렀는데 이들이 성산의 경치 좋은곳

20곳을 골라 20수씩 모두 80수의 식영정이십영()을 지은것으로 유명하다.

식영정 이십영은 정철의 '성산별곡'의 모태가 됐으며 정철은 이곳 성산을 무대로 성산별곡 외에도 수많은  한시와 단가를 남겼다.

정철은 이곳 성산에서 송순 김인후 기대승을 스승으로 삼고 공부 했으며,고경명,백광훈,송익필등과 교우 하였다.

식영정 매화 나무는 수많은 풍류객들의 찬양의 대상이 됐었는데 지금은 옆의 매롱나무(백일홍)에 치였는지 형색이 초라하다.

식영정 뒤 아름드리 소나무가 아직도 건재하며 식영정과 함께하고 있다

식영정 옆에는 송강집(集)의 목판을 보존하기 위한 장서각이 있고 부속건물로 부용당()이 있으며 "성산별곡" 시비가 있다.

정철이 김성원과 함께 노닐던 자미탄(), 노자암, 견로암, 방초주(), 조대(), 서석대() 등 경치가 뛰어난 곳이 성산에

여러 곳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광주호의 준공으로 거의 물 속에 잠겨버렸다

식영정은 환벽당 송강정과 함께 담양의 대표적인 송강유적이다.

 

식영정에서 다리건너 도보로 5분거리에 또다른 송강 유적 환벽당(環碧堂)이 있다.

환벽당(環碧堂)은 사방이 푸르름으로 둘러졌다는 의미로 사촌(沙村)김윤제(:1501-1572)가 지은 별서정원으로 환벽당 앞의 넓은

공터가 김윤제의 본체가 있던 곳이니 후원으로 지어진 것이다.

환벽당은 비스듬한 비탈에 자연석을 쌓고 남향으로 지어진 건물로 대숲으로 둘러 쌓였다고 하나 지금은 대숲은 없고 집 뒤 비탈과 앞쪽 축대

아래에는 커다란 배롱나무가 있다.

그 밖에도 집 뒤에는 왕벚나무가 있고, 옆에는 모과나무도 있으며, 또 축대 아래에 본체가 있던곳에는 느티나무와 벽오동나무 들이 있다.

마당 한켠에 서있는 모과나무는 어느새 열매를 달고 있으며 자연적인 낙과로 제법 많은 새끼 모과가 떨어져 있어 울천사 모과를 주워

소꼽놀이 추억에 잠긴다,

환벽당은 김윤제와 송강 정철의 인연이 있는 곳이다.

14살 어린 정철의 영특함을 알아본 김윤제가 정철을 환벽당에 기거하게 하며 과거에 급제 할때까지 돌봐준 곳이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김윤제가 낮잠을 자고 있는데 꿈속에서 청룡이 환벽당 아래 창계천 용소에 노니는 꿈을 꾸고 용소에 가봤더니

어린 정철이 조대바위 부근에서 멱을 감고 있는 것이다.

송강 정철(1536-1593년)의 아버지는 조그만 벼슬을하고 있었고 큰누나가 인종의 후궁 이였으며,세째 누나가 왕족 계림군의 부인이였기

때문에 정철도 어려서 궁궐 출입이 자유로웠다.

그래서 문정왕후가 낳은 경원대군(명종)과도 잘 어울려 지냈다.

그러나 세째 누나의 남편 계림군이 을사사화에 연류돼 죽임을 당하자 정철의 아버지와 이조정랑 이였던 큰형에게 불똥이튀어

유배를 가게 됐고 유배지에서 정철은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했다.

유배가 풀리자 조부의 묘가 있는 담양 남면으로 이사를 오게 됐고 이조 정랑이던 큰형은 매를맞고 유배를 가다 죽고, 

둘째형이 순천 처가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어머니를 보러 순천에 가던중 창계천에서 멱을 감던 정철을 김윤제가 보게 된 것이다.

김윤제가 14살의 어린 정철을 만나보니 기상과 재기가 넘쳐 보이므로 10년넘게 정철을 돌바줘 정철은 26세에 과거에 급제하고

김윤제는 정철을 외손녀 사위로 삼았다.

일찌기 정철의 재능을 알아본 김윤제가 있었기에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이 있는것이다.

멱을 감던 한순간의 인연이 없었다면 정철은 이름없는 민초로 살았을것이다.

연초록의 환벽당 숲을 내려서며 500여년전 멸족한 가문,한 소년의 재능을  알아본 선인이 이곳에 있었음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환벽당에서 200m쯤 가면 김윤제의 종손이며 임진왜란때 조선의병 총사령관이던 충장공 김덕령(金德齡1567-1596)을 기리는 취가정이 있다.

취가정 (醉歌亭) 은 그의 후손인 김만식등이 1890년에 지은 정자로 억울하게 죽은 충장공 김덕령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었다

충장공 김덕령은 임진왜란때 의병장으로 고경명 곽재우등과 함께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나 '이몽학의 난'때 억울하게 누명을 받아 죽었다.

주변의 정자들중 가장 나중에 지은 정자로 주변의 정자들이 강을 내려다 보는데, 취가정은 넓게 펼쳐진 논밭을 바라보고 있다.

정자의 이름은 송강 정철의 제자 석주 권필(1569~1612)의 꿈에 충장공 김덕령이 나타나 한맺힌 취시가(醉時歌)를 불렀는데

거기서 따온 이름이다.

 

 

한잔하고 부르는 노래 한 곡조,
듣는 사람 아무도 없네.
나는 꽃이나 달에게 취하고 싶지도 않고
나는 공훈을 세우고 싶지도 않아.
꽃과 달에 취하는 것 또한 뜬구름
한잔하고 부르는 노래 한 곡조,
이 노래 아는 사람 아무도 없네.
내 마음 바라기는 긴 칼로 밝은 임금 바라고저.

 

醉時歌

此曲無人聞

我不要醉花月

我不要樹功勳

樹功勳也是浮雲 醉花月

也是浮雲 醉時歌

此曲無人知

我心只願長劍奉明君)

 

김덕령의 노래 「취시가()」를 들은 권필은 꿈속에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 한다.
“지난날 장군께서 쇠창을 잡으셨더니 장한 뜻 중도에 꺾여 천명을 어찌하랴.”

취가정에서 식영정으로 나와 주차장 옆에 있는 목포식 한정식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송강정으로 이동한다.

 

담양에 있는 또다른 송강유적 송강정()은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에 있다.

조선의 시인이자 정치가인 송강 정철(1536-1593년)은 서인이다.

동서붕당으로 갈려 치고받던 시절 송강은 뼈속까지 서인이였다.

할말이 있으면 반드시 입밖에 내야하고 사람의 허물을 보면 조금도 용서 함이 없고, 화를 산 같이 입더라도 앞장서서 싸우기를

불사 했던 송강 정철은 그의 유년기 만큼이나 그의 벼슬살이도 롤러코스트를 타듯 부침이 심했다.

그러나 천상 시인 이였던 정철은 중앙 무대에 있을때 보다는 관찰사와 같이 한직에 있을때나 고향에 내려와 있을때 왕성한 작품활동을 한다.

강원도 관찰사로 가서 '관동별곡'을 남겼고 당쟁에 밀려 동인의 탄핵을 받아 낙향해 있던 49세(1584년)부터 4년간 초막을 짓고 이 초막을

죽록정()이라 불렀다.송강은 이곳에서 식영정을 오가며 '사미인곡' '속미인곡'과 수많은 한시와 단가를 남겼다.

지금의 정자는 1770년 그의 후손이 그를 기리기 위해 정자를 짓고 송강정()이라 불렀다.

정자의 정면에 ‘송강정()’이라고 새겨진 편액이 있고, 측면 처마 밑에는 ‘죽록정()’이라는 편액이 있다.

둘레에는 노송과 참대가 무성하고 앞에는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멀리 무등산이 바라다 보인다.

정자 앞으로 흐르는 증암천()은 송강() 또는 죽록천이라고도 한다.

 

송강정에서 15번 국도를 타고 담양읍 방향으로 10여분 가면 송강 정철의 스승 면앙(免仰) 송순(:1493-1583)의 면앙정(免仰亭)이 있다.

1533년 송순이 건립 하였는데, 이황(:1501-1570)을 비롯하여 강호 제현들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길러낸 곳이다.

봉산면 제월리 제봉산 자락에 있는데 "내려다보면 땅이,우러러보면 하늘이,그 가운데 정자가 있으니 풍월산천 속에서 한백년 살고자 한다"

송순은 면앙정에서 면앙정가단을 이루어 많은 학자,가객,시인들의 산실을 만들었다.

초기에는 겨우 비를 가릴 정도의 초막 이였는데 1597년  임진왜란으로 불타고 지금의 정자는 후손들이 1654년에 중건한 것이다.

건물은 동남향으로 가운데 한칸의 넓은 방이 있고 후면에 해당하는 서북쪽으로 넓은들이 있고 서남쪽에는 맑은 냇물이 흐르고 있다.

주위에는 상수리나무 굴참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나무 둘레가 처음보는 어마어마 하다.

이렇게 크게 자란 상수리나무는 처음 본것같다.

면앙정에서 죽녹원으로 이동하는데 대나무 축제일을 맞아 자동차가 꼼짝을  안한다.

죽록원 1.7km을 남겨두고 주택가 골목에 주차를 하고 도보로 이동하여 죽녹원에서 대숲의 소스란 바람을 맞아보기도 하고 담양의 상징

메타세콰이어 길을 둘러보고 귀경길에 오른다.

광풍각

 

대봉대(臺)

 

 

오곡문()

소쇄처사 양공지려 -우암 송시열-

제월당

 

 

 

광풍각과 제월당을 외원과 내원으로 구분하는 담

 

 

십장폭포

 

 

 서하당() 김성원 정자

 부용당()

정자는 모름지기 앉아서 바라보는게....

 

송강 정철시비

 

식영정-그림자도 쉬어간다네...

 

 

 

 

 

 

새로지은 장서각(송강집 목판본 보관)

무등산

 

 

 

 

 

환벽당

떨어진 모과 열매로 소꼽놀이하기

사촌 김윤제의 본가터

 

 

 

 

 

 

충장공 김덕령을 위로하기 위한 정자 취가정

뒷마루 소슬 바람이 망중한을 즐기기 충분하다

 

 

넓은 들을 바라볼수 있다.

 

깔끔하다 착한가격에...

 

죽록정 정철시기에는 죽록정이라 했다.

측면 현판

 

 

송강정 후손이 다시 지으며 송강정이라....

 

 

 

 

 

면앙정

상수리나무

 

 

 

 

 

 

 

 

 

 

면앙정

 

 

 

 

 

담양명물 대나무국수거리

 

 

 

 

 

 

 

 

 

 

 

 

죽녹원도 댕겨왔어요

 

 

 

 

 

 

 

 

 

 

 

 

 

담양향교

 

대나무축제 가장행렬

 

 

 

 

 

메타세콰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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