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낙남정맥 1구간종주(백무동-한신계곡-영신봉-음양수-석문-삼신봉-외삼신봉-갓걸이재-묵계재-고운동재) 본문

이 또한 지나가리/낙남정맥(完)

낙남정맥 1구간종주(백무동-한신계곡-영신봉-음양수-석문-삼신봉-외삼신봉-갓걸이재-묵계재-고운동재)

無碍人 2015. 11. 15. 11:16

2015년 11월 12일 수요일 박무 흐림 나홀로

 

호남정맥 졸업을 1구간 남겨 두고 있는데 낙남을 시작한다.

9정맥중 낙남과 낙동정맥을 남겨 두고 있다.

낙동정맥은 초반 구간이 우리나라 최고 오지로 치는 삼척,태백,울진,봉화,영양 구간이라 동절기에 시작하긴 무리가 있어 낙남을 동절기에

출발하고 하절기에 낙동을 출발하려 계획 한다.

호남정맥 졸업 전에 낙남을 시작 한것도 11월 16일부터 12월15일까지 국립공원 가을철 산불방제 기간이라 1구간인 지리산 입산이 통제돼

입산 통제 전에 출발한다.

한신계곡은 내 산행 경력에 가장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다.

내 산행 이력의 첫줄이 한신계곡을 통해 천왕봉, 노고단 화엄사를 종주 하는 것으로 시작 됐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76년 가을, 친구 용태와 함께 한신계곡으로 천왕봉에 오른게 첫 등정의 시작 이였다.

등산 장비가 있었던 시절도 아니고 운동화에 교련복,사진관에서 빌린 흑백 카메라 들고 출발한 산행이다.

용태 동생 봉덕이가 시래기를 된장에 조물락거려 싸준 시래기에 물 붓고 끓인 된장국 맛이 그리운 곳이다.

봉덕인 수년전 먼나라로 갔지만 그때 동생이 준비해 준 된장 시래기국 맛은 아직도 내 입맛의 표준이 돼고 있다.

동생의 명복을 빈다.

 

한신계곡(韓信谿谷)은 계곡이 깊고 넓어 한 여름에도 한기를 느끼게 하는 계곡이라는 뜻으로,계곡 물이 차고 험하며 굽이 치는 곳이 많아

한산하다고 해서 부르던 이름이다.

한신이라는 사람이 농악대를 이끌고 세석으로 가다가 급류에 휩쓸려 죽었다고 해 붙여진 이름 이기도다.

동서울 터미널을 출발한 지리산행 고속버스는 3시간 반을 달려 백무동에 도착한다.(03:30)

동절기인 12월 1일부터 2월 28일 까지는 입산 시간이 05:00이고 나머지 달은 모두 하절기 기준으로 04:00부터 입산이 허락된다.

함께 내린 10여명은 관리소 앞에서 채비를 하고 입산을 기다린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산꾼이 장터목으로 천왕봉을 향해가는 사람이고 한신계곡은 오직 나혼자다.

계곡 초입부터 우뢰와 같은 물소리가 압권이다.(04:00)

며칠전 전국을 이틀동안 물에 젖게한 가을비 위력이 대단하다.

가믐으로 물 부족이 걱정이라는 기우가 여기는 예외다..

여름 장마 때처럼 온통 계곡은 천둥치는 물소리로 요란하다.

40년전 첫번째 한신과 만나고 지리산을 십수번 다녀 갔지만 한신과는 인연이 없었다.

당시는 전주의 어느 대학 산악회에서 한신계곡을 통해 천왕봉에 올랐다는 기사가 신문에 날 정도로 미 개척 등산로였다.

그 기사를 보고 한신계곡에 도전한 용태와 나는 계곡을 거슬러 오르며 마침 제철인 머루와 다래를 실컷 따먹던 기억이 새롭다.

등산로는 잘 정비돼 있고 계곡을 건너는 다리도 여럿 생겨 오르기엔 참 편하다.

길도 없는 정맥에 길들여진 정맥꾼에겐 고속도로다.

첫나들이폭포, 가내소폭포,오층폭포,한신폭포,아직도 그 이름이 기억에 생생한 폭포들이다.

지리산 계곡중 가장 아름답고 폭포가 많다는 한신 아닌가?

옆동네 칠선 계곡이 우리 나라 3대 계곡이라 하지만 그 아름다움과 웅장함은 한신에 비견이 안 된다.

지난해 칠선계곡으로 천왕봉에 올라 봤지만 칠선 계곡은 아름답다거나 웅장하기 보다는 잘 보존된 원시림이 트레이드 마크다.

어둠이지만 쏟아지는 폭포의 규모가 짐작이 간다.

가내소폭포는 옛날 어느 도인이 12년 수련을 마감하려 폭포에 줄을 메고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지리산 마고 할매 셋째 딸 산녀가 유혹하여 그만 12년 수련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리하여 도인은 "아~ 내 수련은 실패하고 말았다, 나는 이만 가네"라고 말하고 떠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04:45)

세석평전 좌우 촛대봉과 영신봉에서 발원한 본류와 장터목에서 발원한 한신지계곡이 이곳 가내소에서 합류하여

한신계곡을 이루고,덕평봉 북쪽에서 발원한 바른재골,칠선봉에서 발원한 곧은재골 등 4갈래 물줄기가 엄천으로 흘러 남강 상류가 된다.

세시간여 꾸준히 마루금을 높여 세석산장 200여m 남겨둔 지점까지 웅장한 물소리는 함께한다.

세석산장 갈림길에서 백두대간 길을 따라 500m쯤 가면 영신봉 이정표를 만나고 출입금지 표시가 있는 오른쪽 봉우리가

영신봉(靈神峰1652m)이다.(07:40)

지리 3봉이라 하면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노고단(1507m)이라 하는데 노고단 보다는 영신봉을 3봉에 넣는게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하는 산꾼도 많다.

영신봉은 낙남정맥의 시작봉으로 산꾼들에게는 그 위치가 만만치 않다.

지리 산군중에 가장 영험한 산으로 영신사(靈神寺)라는 절이 있어 영신봉이라 하였다.

오늘 영신봉은 심한 박무로 지척을 구분 할 수 없다.

조심스레 복원 작업을 하느라 박아놓은 대나무 장애물을 비껴 정상에 막초 한잔 따르고 낙남정맥 무사 산행을 기원한다.

영신봉 주변 1km 반경이 복원 중이라 출입금지로 마루금을 이어가기 난망하다.

더군다나 안개로 마루금 짐작이 안돼 세석대피소에서 청학동 이정표 따라 마루금에 접속하기로 한다.(08:00)

세석평전(細石平田,1560m)은 경남 산청군 내대리에 있는 평전이다

잔돌이 많은 평야와 같다하여 세석평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선시대 유산자들의 지리산 유산록에는 외세석(外細石),내세석內細石),세석평(細石平),세석평전(細石平田)등의 지명이 등장한다.

현재의 세석평전이라는 지명은 일제 강점기 이후 일반화 됐다.

며칠전 내린 비로 온통 질척이는 등로는 몇번의 물길을 건너고 우천 허만수의 기도터에 이른다.

우천 허만수는 지리산 산신령으로 불리는 사람으로 전쟁후 세석고원에 움막을 짓고 지리산과 함께 한평생을 지낸 사람이다.

음양수(陰陽水,1450m)는 호야(乎也)와 연진(蓮眞)) 부부의 슬픈 전설이 있어 아들,딸을 못 낳는 사람이 산신에게 기도를 하고 음양수를

마시면 소원대로 아들,딸을 낳는다고 한다.

바위틈에서 흘러나온 물이 양쪽으로 갈라져 흐르는데 음과 양의 조화가 이채롭다.

비온뒤라 수량도 풍부하다.(08:30)

석문(石門)직전부터 삼신봉에 이르는 등로는 오르 내림은 없어도 등로 동사면과 서사면을 지그재그로 왔다리 갔다리 하며 진행한다.

음양수로부터 3시간여 드뎌 삼신봉 정상에 선다.

삼신봉(三神峰1284m)에서는 좌우로 외삼신봉과 내 삼신봉을 거느리고 왼쪽 외삼신봉 으로는 낙남정맥이,우측 내 삼신봉으로는

지리 남부능선이 쌍계사를 향해 내달린다.

뒤돌아보면 촛대봉과 영신봉 아래 세석평으로 부터 지나온 낙남 마루금이 뚜렷하고, 천왕봉 ,제석봉,연하봉,촛대봉 영신봉,칠성봉의

백두대간 마루금(지리주능선)이 덕평봉,명성봉,반야봉,노고단 까지 병풍처럼 펼쳐진다.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엔 구름이 비췄다 감추기를 반복하고 있다.

서남방향으로 광양의 백운산과 광양만,섬진강 하구에서 이어지는 남해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반짝인다.

운봉 바래봉이 지리 주능선의 북사면을 조망한다면 삼신봉은 지리 주능선의 남사면 전망대다.(11:30)

삼신봉에서 좌틀하여 외삼신봉 직전 안부에 이르면 청학동 갈림길이 갓걸이재다.

청학동은 내삼신봉에서 성제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중에서 청학동 계곡을 바라보는 자물통처럼 생긴 쇠통바위가 있다.

옛 사람들은 청학동 학동마을에 있는 이 쇠통바위를 열면 천지개벽과 함께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청학동은 전통시대 이상향의 원형 이였으며 수많은 시인 묵객이 찬미 했던 곳으로 도인촌,삼성궁,청학동 서당 등이 있다.(11:50)

외삼신봉(1288.4m) 내림부터 묵계재 앞뒤 3km 구간은 우리나라 최대의 산죽 군락지다.

2m가 넘는 산죽이 빽빽하게 들어선 등로는 지척을 구분 할 수 없을 정도다.

갓걸이재에 경고문으로 붙은 '곰출현지역'이라는 푯말에 믿음이 가지 않았는데 이 산죽 군락지에서 곰을 만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미치니 온몸에 오싹 소름이 돋는다.

사실 이구간은 곰이 서식하긴 좀 열악한 환경 같다.

우선 온통 산죽밭으로 곰의 먹이가 될만한 식생은 아닌것 같고 마을이 가까워 자동차 소리와 생활 소음이 들린다.

이 고운동 능선 4km가 비지정 탐방로가 된게 무슨 연유인지 모르지만 곰 서식지는 아닌 듯 싶다.

묵계재(815m)는 삼신봉 터널이 지나며 온통 산죽군락지로 고개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묵계재로 부터 오름은 오늘 마지막 오름이다.

온통 산죽밭을 헤치고 올라서면 991봉에 이르고 이후는 편안하게 고운동재에 접속 할 수 있다.

고운동재(孤雲洞峙,805m)는 고운(孤雲), 즉 외롭게 떠도는 구름이라는 최치원의 호에서 유래 했다.

산청쪽으로 신라 고운 최치원이 공부하던 고운동 마을이 있다.

고운이 이상향이라 생각하고 청학동이라 여기고 머물렀다 한데서 마을 이름과 고개가 유래 했다.(14:20)

고운동재에서 히치하여 아래 묵계리에 이르러 교통편을 알아보는데 버스시간이 안 맞는다.

택시를 부를까 하고 있는데 청학동에 사시는 아주머니 한분이 진주에 가신다고 타라 한다.

아주머니 덕분에 쉽게 산청 원지터미널에서 서울 남부터미널행 버스에 오른다.

고마운 인연을 만나 쉽게 낙남 첫구간을 마무리 한다.(16:20)

 

1. 산행코스

   백무동-가내소폭포-오층폭포-세석갈림길-영신봉-세석대피소-음양수-삼신봉-갓걸이재-외삼신봉-묵계재-991봉-고운동재

   (10시간 25분,19.5km(접속 6.5km포함))

 

2. 산행경로

   22:12분 - 부평구청역
   24:00분 - 동서울터미널(강변역)
   03:55분 - 백무동(지리산)
                  한신계곡입구
   04:30분 - 첫나들이폭포
   04:55분 - 가내소폭포
   05:00분 - 오층폭포(855m)
   07:20분 - 세석대피소 갈림길
   07:40분 - 영신봉
   08:00분 - 세석대피소
   08:30분 - 음양수
   08:50분 - 의신마을갈림길(1377m)
   09:00분 - 석문
   11:30분 - 삼신봉(1288m)
   11:50분 - 갓걸이재(청학동갈림길)
   12:20분 - 외삼신봉
   13:40분 - 묵계재-991봉
   14:20분 - 고운동재
   16:20분 - 산청군 원지터미널 남부터미널행탑승
                  (고운동재 히치하여 진주방면으로 가다
                    알지도 못한 간이터미널에서 탑승 30여km태워준 청학동 아지매 감사하요)

@.교통편

   동서울터미널 지리산 백무동행(24:00)

   고운동재-원지터미널 히치

   원지터미널-남부터미널 고속버스(20~30분배차)

 

3. 산경표

 

 

 


40년전 첫번째 한신과 만나고 지리산을 십수번 다녀 갔지만 한신과는 인연이 없었다.

당시는 전주의 어느 대학 산악회에서 한신계곡을 통해 천왕봉에 올랐다는 기사가 신문에 날 정도로 미 개척 등산로였다.

그 기사를 보고 한신계곡에 도전한 용태와 나는 계곡을 거슬러 오르며 마침 제철인 머루와 다래를 실컷 따먹던 기억이 새롭다

 

 

 

 

 

 

첫나들이폭포, 가내소폭포,오층폭포, 아직도 그 이름이 기억에 생생한 폭포들이다.

지리산 계곡중 가장 아름답고 폭포가 많다는 한신 아닌가?

옆동네 칠선 계곡이 우리 나라 3대 계곡이라 하지만 그 아름다움과 웅장함은 한신에 비견이 안 된다.

지난해 칠선계곡으로 천왕봉에 올라 봤지만 칠선 계곡은 아름답다거나 웅장하기 보다는 잘 보존된 원시림이 트레이드 마크다.

어둠이지만 쏟아지는 폭포의 규모가 짐작이 간다.

가내소폭포는 옛날 어느 도인이 12년 수련을 마감하려 폭포에 줄을 메고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지리산 마고 할매 셋째 딸 산녀가 유혹하여 그만 12년 수련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리하여 도인은 "아~ 내 수련은 실패하고 말았다, 나는 이만 가네"라고 말하고 떠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04:45)

세석평전 좌우 촛대봉과 영신봉에서 발원한 본류와 장터목에서 발원한 한신지계곡이 이곳 가내소에서 합류하여

한신계곡을 이루고,덕평봉 북쪽에서 발원한 바른재골,칠선봉에서 발원한 곧은재골 등 4갈래 물줄기가 엄천으로 흘러 남강 상류가 된다.

 

 

 

 

 

 

 

 

 

 

 

 

 

세석산장 갈림길에서 백두대간 길을 따라 500m쯤 가면 영신봉 이정표를 만나고 출입금지 표시가 있는 오른쪽 봉우리가

영신봉(靈神峰1652m)이다.(07:40)

지리 3봉이라 하면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노고단(1507m)이라 하는데 노고단 보다는 영신봉을 3봉에 넣는게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하는 산꾼도 많다.

영신봉은 낙남정맥의 시작봉으로 산꾼들에게는 그 위치가 만만치 않다.

지리 산군중에 가장 영험한 산으로 영신사(靈神寺)라는 절이 있어 영신봉이라 하였다.

오늘 영신봉은 심한 박무로 지척을 구분 할 수 없다.

조심스레 복원 작업을 하느라 박아놓은 대나무 장애물을 비껴 정상에 막초 한잔 따르고 낙남정맥 무사 산행을 기원한다.

영신봉 주변 1km 반경이 복원 중이라 출입금지로 마루금을 이어가기 난망하다.

더군다나 안개로 마루금 짐작이 안돼 세석대피소에서 청학동 이정표 따라 마루금에 접속하기로 한다

 

 

세석평전(細石平田,1560m)은 경남 산청군 내대리에 있는 평전이다

잔돌이 많은 평야와 같다하여 세석평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선시대 유산자들의 지리산 유산록에는 외세석(外細石),내세석內細石),세석평(細石平),세석평전(細石平田)등의 지명이 등장한다.

현재의 세석평전이라는 지명은 일제 강점기 이후 부터 일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며칠전 내린 비로 온통 질척이는 등로는 몇번의 물길을 건너고 우천 허만수의 기도터에 이른다.

우천 허만수는 지리산 산신령으로 불리는 사람으로 전쟁후 세석고원에 움막을 짓고 지리산과 함께 한평생을 지낸 사람이다.

 

 

 

음양수(陰陽水,1450m)는 호야(乎也)와 연진(蓮眞)) 부부의 슬픈 전설이 있어 아들,딸을 못 낳는 사람이 산신에게 기도를 하고 음양수를

마시면 소원대로 아들,딸을 낳는다고 한다.

바위틈에서 흘러나온 물이 양쪽으로 갈라져 흐르는데 음과 양의 조화가 이채롭다.

비온뒤라 수량도 풍부하다

 

 

 

 

 

 

 

 

 

 

 

 

 

 

 

 

 

 

 

 

 

 

 

 

 

 

 

 

 

 

 

삼신봉(三神峰1284m)에서는 좌우로 외삼신봉과 내 삼신봉을 거느리고 왼쪽 외삼신봉 으로는 낙남정맥이,우측 내 삼신봉으로는

지리 남부능선이 쌍계사를 향해 내달린다.

뒤돌아보면 촛대봉과 영신봉 아래 세석평으로 부터 지나온 낙남 마루금이 뚜렷하고, 천왕봉 ,제석봉,연하봉,촛대봉 영신봉,칠성봉의

백두대간 마루금(지리주능선)이 덕평봉,명성봉,반야봉,노고단 까지 병풍처럼 펼쳐진다.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엔 구름이 비췄다 감추기를 반복하고 있다.

서남방향으로 광양의 백운산과 광양만,섬진강 하구에서 이어지는 남해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반짝인다.

운봉 바래봉이 지리 주능선의 북사면을 조망한다면 삼신봉에선 지리 주능선의 남사면 전망대다

외삼신봉

 

 

 

 

 

 

 

 

 

갓걸이재에 경고문으로 붙은 '곰출현지역'이라는 푯말에 믿음이 가지 않았는데 이 산죽 군락지에서 곰을 만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미치니 온몸에 오싹 소름이 돋는다.

사실 이구간은 곰이 서식하긴 좀 열악한 환경 같다.

우선 온통 산죽밭으로 곰의 먹이가 될만한 식생은 아닌것 같고 마을이 가까워 자동차 소리와 생활 소음이 들린다.

이 고운동 능선 4km가 비지정 탐방로가 된게 무슨 연유인지 모르지만 곰 서식지는 아닌듯 싶다.

 

 

 

 

 

 

 

 

 

 

 

 

 

고운동재(孤雲洞峙,805m)는 고운(孤雲), 즉 외롭게 떠도는 구름이라는 최치원의 호에서 유래 했다.

산청쪽으로 신라 고운 최치원이 공부하던 고운동 마을이 있다.

고운이 이상향이라 생각하고 청학동이라 여기고 머물렀다 한데서 마을 이름과 고개가 유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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