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낙남정맥 7구간종주(배치고개-신고개-탕근재-봉광산-새터재-필두산-담티재-용암산 깃대봉-옥녀봉-남성치-벌밭등-깃대봉-준봉산-발산재) 본문

이 또한 지나가리/낙남정맥(完)

낙남정맥 7구간종주(배치고개-신고개-탕근재-봉광산-새터재-필두산-담티재-용암산 깃대봉-옥녀봉-남성치-벌밭등-깃대봉-준봉산-발산재)

無碍人 2016. 11. 3. 10:51

2016년 10월31일 월요일 흐리고 비 나홀로


배치(拜峙 170m)고개는 고성군 마암면 신리와 개천면 좌연리의 경계에 있는 1007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다.

예전에 고개를 넘을 때 하도 힘들어 고개를 숙여야만 넘을 수 있다 하여 '배치(拜峙)'라 불렀다.

다른 설로는 오랜 옛날에 천지가 개벽하여 해일로 온 세상이 물에 잠기게 되었을 때 뒷산으로 피신 하였던 신리마을 주민들이 계속 불어난 골짜기의

물에 실려 갔다가 어디선가 밀려온 한 척의 나룻배를 발견하고, 배를 타기위해 밀고 당기고 하다가 대부분 물에 빠져 죽었다.

몇 사람만 겨우 배를 타고, 이 재를  넘어 개천면 쪽으로 흘러갔다고 한다. 

그래서 '고개를 넘던 배를 탔던 고개'라고 하여 ‘배타재’로 부르던 것이 변음이 되어 '배치재'로 불렸다

또한 개천면 좌연마을 지형이 배를 닯았다하여 마을의 지명들이 짐대, 배치고개, 배바위 등 배와 관련된 이름들이 많다.

배치고개 접근이 고성과 진주 금곡에서 가능하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심야버스로 출발하면 고성에 새벽3시,진주에 3시30분 도착한다.

동절기에 접어들어 해가 짧고,홀산이라 야간 산행을 줄여보기위해 좀 복잡해도 진주 금곡으로 접근한다.(06:20)

어둠이 물러가고 여명이 밝아오는 시점에 마루금에든다.

제법 쌀쌀한 날씨에 옷깃을 여미게 한다. 금새 고만고만한 봉우리 몇개를 오르락 거리며 시멘트 임도가 있는 신고개에 이른다.(07:18)

신고개(225m)는 개천면 좌연리와 마암면 성전리를 잇는 고개다.

좌연리(左蓮里)는 좌이곡()과 연동()의 이름을 따서 좌연리라 부른다.

좌이()와 좌연()의 2개 마을이 있다.

좌이마을은 자라() 아홉 마리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고 하여 좌구실이라 불렸다.

200여m 가파르게 숨을 고르면 재같지 않은 고개 탕근재에 이른다.

탕근재(宕巾峙 370.1 m) 고성군 구만면과 개천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재(峙)로서 ‘재’라기보다는 ‘봉(峰)’에 가깝다.

개천면 좌연리 좌이마을에서는 '좌이산' 또는 '탕근산'이라고 부른다.

'탕근재'란 옛날 선비들이 집에서 맨상투를 드러낼 수 없어 쓰던 작은 관, 즉 앞은 낮고, 뒤는 높은 형태의 탕건(宕巾 갓 안에 바쳐쓰던 )을 닮아

얻은 이름이다.

지도상에 없는 봉광산(386m)지나 음성지원이 안되는 오룩스앱 GPS확인을 안해 잠깐 알바를 했으나 이내 되돌아 마루금에 합류하고

고성군 구만면과 개천면을 지나는 새터재에 이른다.(08:55)

새터재(鳥峙 225 m)는새티(鳥峙)또는 조치리(鳥峙里)라 불렀다.

아름이 듣기가 거북 하다고, 새조(鳥)字에다가 궤를 씌워 봉치리(鳳峙里)라 불렀다.

새터재 좌측 아래에 있는 마을이 바로 개천면 봉치리다. 

이곳 역시 배치고개와 같이 아주 오래전에 천지가 개벽하여 온 천지가 물에 잠겼을때 주변 모두가 잠겨 버리고, 새 한마리 앉을 정도만

남았다 하여 '새터재'가 되었다고 한다.

새터재 에서 필두산 오름은 제법 가파르게 고도를 높인다.

등로가 확실해 산님들 시그날도 없어 알바인가 걱정 하는데 오룩스앱이 필두산을 예고해주고 이내 필두산 표지가 3개씩이나 붙어 있는

소나무 앞에선다.

필두산(筆頭山 420 m)은 고성군의 개천면 청광리와 구만면 저연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남쪽 구만천과 북쪽 개천천의 분수계가 된다. 산봉우리가 멀리서 보면, '붓의 끝처럼 뾰족하게 생겼다'고 하여 '필두산'으로 부른다.

되돌아본 필두산은 유난히 뾰족하다.(09:50)

필두산과 동쪽 용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중간에 담티재(峙220m)가 있다.

담장처럼 길게 경계를 이룬 고개라고 해서 '담치', '탕치', '장치'로도 불렸다.

고성에서 진주로 넘어가는 고개이자 경계로. 1002번 지방도가 지난다.(10:20)

담티재로부터 완만하게 고도를 높이면 용암산 시그날이 붙어있는 봉우리(400.6m)를 지나 삼각점이 있는 용암산 깃대봉(399.8m)이다.

구만면 화림리와 저연리 일원이 잘 조방된다.

용암산(龍巖山4006m)은 고성군 구만면 화림리에 있는 산으로 정맥을 따라 준봉산 만수산으로 이어지며 나선천(羅仙川)이 발원하여

나동저수지를 지나 개천천을 흐르다가 낙동강으로 유입된다.(11:00)

산님들이 붙여준 옥녀봉(337.8m) 이름을 얻은 봉우리를 지나 무명봉을 내려서면 남성치다.

남성치(220m)는 고성군 구만면 화촌마을에서 개천면 나선리로 이어지는 고개다.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있고, 주변에 묘지들이 많다.

이곳 사람들은 '남성치'가 아닌 '선동고개' 또는 '화촌고개' 라고, 부른다.(11:30)

남성치로부터 고도(200여m)는 서서히 오르는데 그렇게 힘든 코스는 아니다.

벌밭들(420.4m)의 정확한 의미는 찾을 길 없고,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벌발들을 ‘풀국새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양지쪽 산이 유난히 따뜻해 '첫봄 일찍 풀국새가 보인다'하여 '풀국새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풀국새는 뻐꾸기의 다른 이름이다. 

‘풀국새’는 전래 동화 ‘콩쥐팥쥐’에 나오는 이야기 속의 새다.

새엄마의 학대에 시달려 굶주리던 콩쥐가 호청에 들일 풀을 보고 정신없이 퍼먹다가 죽고 말았다.

콩쥐의 원통한 넋이 한마리 새가 되어 날아가며 '풀국풀국'하며 울었다.

'뻐꾹새'란 풀국을 먹다가 죽은 딸이 환생한 '풀국새'가 변음한 것이다(콩쥐팥쥐는 여러유형으로 전래된다.그중 한토막)

'탕근재'에 이어 산 정상을 "산이나 봉"으로 표시하지 않고, "들"로 표시를 했는지 궁금하다.(12:18)

잘지어진 기와집 한채를 지나면 고개 흔적만 남아 있는 곳이 선동치다.

선동치(仙洞峙 360m)는 창원시 진전면 일암리와 고성군 구만면 주평리 선동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다.

선동마을 뒤의 ‘선박골’의 풍경이 아름답고, 자연용수가 약수로 이름나 있어 옛날에 '선인(仙人)이 내려와 목욕을 했다고 해서 유래됐다.

깃대봉(旗臺峰 520.6m)은 창원시 진전면과 진주시 이반성면, 그리고 고성군 구만면이 만나는 3면의 경계봉이다. 

여기 부터는 고성군 구만면과 이별을 하고, 좌측의 창원시 진전면과 우측의 진주시 이반성면으로 이어진다. 

깃대봉에서 우측편으로 유명한 적석산으로 이어지고, 낙남정맥 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깃대봉은 흔한 이름으로 일제 강점기에 자본수탈을 위해 '측량용 깃대를 꽂았던 곳'이 '깃대봉'으로 부르게 됐다.(12:50)

아기자기한 암릉봉을 지나 준봉산(520m) 표지석이 있는 봉우리를 완만하게 내려서면 발산재 직전 효열공 고종후 묘역에 이른다.

효열공 고종후는 1592년 아버지 고경명을 따라 의병을 일으켰다.

금산전투에서 아버지와 동생 인후를 잃었다.

다음해 의병을 일으켜 스스로 복수의병장()이라 칭하고 여러곳에서 싸웠다.

진주성에 들어가 성을 지켰으며 성이 함락될때 김천일 최경회등과 남강에 몸을 던졌다.

세상에선 그의 3부자 고경명 고종후 고인후를 3장사(三將士)라 불렀다.

발산재(鉢山峙 260m)는 전쟁이 일어나면 크게 발대를 막고 승패를 짓는 곳이라는 데서 ‘발산재’라 부르게 되었다.

발산재는 북쪽의 만수산과 남쪽의 깃대봉의 산줄기가 이어진다.

발산재 끝으로 발산 저수지가 있으며 진주시 이반성면과 창원시 진전면을 잇는 고개로 국도 2호선이 지나고,남서쪽으로 깃대봉, 만수산, 용암산,

옥녀봉, 적석산 자락이 우뚝 솟아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여항산과 봉화산, 평지산 자락이 위풍당당하게 솟아 있다.

발산(鉢山)재란 스님의 탁발을 엎어 놓은 형상이라 부쳐진 이름이다.(13:40)

남성치를 지나며 한두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이 발산재에 이르니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다행히 우중 산행은 면했지만 바람도 불고 급격하게 체온이 떨어진다.

간이화장실로 급히 피해 대충 짐정리를 하고 도로따라 굴다리,봉암마을을 지나 대정마을 버스정류장에 이른다.

진주행 버스는 방금 출발하고 오후 시간때 1시간 간격 배차인 버스를 기다린다.(15:00)



1. 산행코스

   배치고개-매봉산-신고개-탕근재-봉광산-새터재-필두산-담티재-용암산 깃대봉-옥녀봉-남성치-벌밭등-선동치-깃대봉-준봉산-발산재

   (7시간20분,15km)


2, 산행경로

   22:00분 - 집출발
   24:00분 - 남부터미널
   03:20분 - 진주터미널
   05:25분 - 중앙시장(294번탑승)
   05:50분 - 금곡
   06:20분 - 배치고개
                  매봉산
   07:18분 - 신고개(225m) 2.5km
   07:50분 - 탕근재(369m)  3.5km
   08:10분 - 봉광산(386m)  4.2km
   08:55분 - 새터재(샛곡264m)  5.5km
   09:50분 - 필두산(420m) 7.3km
   10:20분 - 담티재(220m)  8.2km
   10:50분 - 용암산(400.6m)
   11:00분 - 용암산 깃대봉(399.8m) 9.1km
   11:20분 - 옥녀봉(337.8m)
   11:30분 - 남성치(220m)  9.7km
   12:18분 - 벌밭들(420.4m)  11.3km
   12:30분 - 선동치(360m)
   12:50분 - 깃대봉(520.6m)  12.3km
                  함안23
   13:20분 - 준봉산(520m)  13.4km
   13:40분 - 발산재(260m) 15km

   15:00분 - 진주행탑승

   16:40분 - 진주고속터미널 인천행버스

   20:30분 - 인천터미널


@. 교통편

   부평-남부터미널

   남부터미널-진주 시외버스 터미널 심야우등

   진주시외버스터미널-금곡(294번 중앙시장 우리은행 05시25분 첫차)

   금곡-배치고개 택시이동

   대정마을-진주(1시간간격배차)

   진주-인천 고속버스


3. 산경표







배치(拜峙 170m)고개는 고성군 마암면 신리와 개천면 좌연리의 경계에 있는 1007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다.

예전에 고개를 넘을 때 하도 힘들어 고개를 숙여야만 넘을 수 있다 하여 '배치(拜峙)'라 불렀다.

다른 설로는 오랜 옛날에 천지가 개벽하여 해일로 온 세상이 물에 잠기게 되었을 때 뒷산으로 피신 하였던 신리마을 주민들이 계속 불어난 골짜기의

물에 실려 갔다가 어디선가 밀려온 한 척의 나룻배를 발견하고, 배를 타기위해 밀고 당기고 하다가 대부분 물에 빠져 죽었다.

몇 사람만 겨우 배를 타고, 이 재를  넘어 개천면 쪽으로 흘러갔다고 한다. 

그래서 '고개를 넘던 배를 탔던 고개'라고 하여 ‘배타재’로 부르던 것이 변음이 되어 '배치재'로 불렸다

또한 개천면 좌연마을 지형이 배를 닯았다하여 마을의 지명들이 짐대, 배치고개, 배바위 등 배와 관련된 이름들이 많다.




조릿대와 비슥하나 조릿대보다 굵고 대나무보다 얇다.

시누대 해장죽이라 부르는 곰방대나 화살재료로 썼다.

신고개(225m)는 개천면 좌연리와 마암면 성전리를 잇는 고개다.

좌연리(左蓮里)는 좌이곡()과 연동()의 이름을 따서 좌연리라 부른다.

좌이()와 좌연()의 2개 마을이 있다.

좌이마을은 자라() 아홉 마리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고 하여 좌구실이라 불렸다.



탕근재(宕巾峙 370.1 m) 고성군 구만면과 개천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재(峙)로서 ‘재’라기보다는 ‘봉(峰)’에 가깝다.

개천면 좌연리 좌이마을에서는 '좌이산' 또는 '탕근산'이라고 부른다.

'탕근재'란 옛날 선비들이 집에서 맨상투를 드러낼 수 없어 쓰던 작은 관, 즉 앞은 낮고, 뒤는 높은 형태의 탕건(宕巾 갓 안에 바쳐쓰던 )을 닮아

얻은 이름이다.






새터재(鳥峙 225 m)는새티(鳥峙)또는 조치리(鳥峙里)라 불렀다.

아름이 듣기가 거북 하다고, 새조(鳥)字에다가 궤를 씌워 봉치리(鳳峙里)라 불렀다.

새터재 좌측 아래에 있는 마을이 바로 개천면 봉치리다. 

이곳 역시 배치고개와 같이 아주 오래전에 천지가 개벽하여 온 천지가 물에 잠겼을때 주변 모두가 잠겨 버리고, 새 한마리 앉을 정도만

남았다 하여 '새터재'가 되었다고 한다.





새터재 에서 필두산 오름은 제법 가파르게 고도를 높인다.

등로가 확실해 산님들 시그날도 없어 알바인가 걱정 하는데 오룩스앱이 필두산을 예고해주고 이내 필두산 표지가 3개씩이나 붙어 있는

소나무 앞에선다.

필두산(筆頭山 420 m)은 고성군의 개천면 청광리와 구만면 저연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남쪽 구만천과 북쪽 개천천의 분수계가 된다. 산봉우리가 멀리서 보면, '붓의 끝처럼 뾰족하게 생겼다'고 하여 '필두산'으로 부른다.

되돌아본 필두산은 유난히 뾰족하다









필두산과 동쪽 용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중간에 담티재(峙220m)가 있다.

담장처럼 길게 경계를 이룬 고개라고 해서 '담치', '탕치', '장치'로도 불렸다.

고성에서 진주로 넘어가는 고개이자 경계로. 1002번 지방도가 지난다














담티재로부터 완만하게 고도를 높이면 용암산 시그날이 붙어있는 봉우리(400.6m)를 지나 삼각점이 있는 용암산 깃대봉(399.8m)이다.

구만면 화림리와 저연리 일원이 잘 조방된다.

용암산(龍巖山4006m)은 고성군 구만면 화림리에 있는 산으로 정맥을 따라 준봉산 만수산으로 이어지며 나선천(羅仙川)이 발원하여

나동저수지를 지나 개천천을 흐르다가 낙동강으로 유입된다.(11:00)

산님들이 붙여준 옥녀봉(337.8m) 이름을 얻은 봉우리를 지나 무명봉을 내려서면 남성치다.







남성치(220m)는 고성군 구만면 화촌마을에서 개천면 나선리로 이어지는 고개다.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있고, 주변에 묘지들이 많다.

이곳 사람들은 '남성치'가 아닌 '선동고개' 또는 '화촌고개' 라고, 부른다





벌밭들(420.4m)의 정확한 의미는 찾을 길 없고,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벌발들을 ‘풀국새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양지쪽 산이 유난히 따뜻해 '첫봄 일찍 풀국새가 보인다'하여 '풀국새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풀국새는 뻐꾸기의 다른 이름이다. 

‘풀국새’는 전래 동화 ‘콩쥐팥쥐’에 나오는 이야기 속의 새다.


새엄마의 학대에 시달려 굶주리던 콩쥐가 호청에 들일 풀을 보고 정신없이 퍼먹다가 죽고 말았다.

콩쥐의 원통한 넋이 한마리 새가 되어 날아가며 '풀국풀국'하며 울었다.

'뻐꾹새'란 풀국을 먹다가 죽은 딸이 환생한 '풀국새'가 변음한 것이다(콩쥐팥쥐는 여러유형으로 전래된다.그중 한토막)

'탕근재'에 이어 산 정상을 "산이나 봉"으로 표시하지 않고, "들"로 표시를 했는지 궁금하다.


선동치(仙洞峙 360m)는 창원시 진전면 일암리와 고성군 구만면 주평리 선동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다.

선동마을 뒤의 ‘선박골’의 풍경이 아름답고, 자연용수가 약수로 이름나 있어 옛날에 '선인(仙人)이 내려와 목욕을 했다고 해서 유래됐다.


깃대봉(旗臺峰 520.6m)은 창원시 진전면과 진주시 이반성면, 그리고 고성군 구만면이 만나는 3면의 경계봉이다. 

여기 부터는 고성군 구만면과 이별을 하고, 좌측의 창원시 진전면과 우측의 진주시 이반성면으로 이어진다. 

깃대봉에서 우측편으로 유명한 적석산으로 이어지고, 낙남정맥 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깃대봉은 흔한 이름으로 일제 강점기에 자본수탈을 위해 '측량용 깃대를 꽂았던 곳'이 '깃대봉'으로 부르게 됐다













효열공 고종후는 1592년 아버지 고경명을 따라 의병을 일으켰다.

금산전투에서 아버지와 동생 인후를 잃었다.

다음해 의병을 일으켜 스스로 복수의병장()이라 칭하고 여러곳에서 싸웠다.

진주성에 들어가 성을 지켰으며 성이 함락될때 김천일 최경회등과 남강에 몸을 던졌다.

세상에선 그의 3부자 고경명 고종후 고인후를 3장사(三將士)라 불렀다


발산재(鉢山峙 260m)는 전쟁이 일어나면 크게 발대를 막고 승패를 짓는 곳이라는 데서 ‘발산재’라 부르게 되었다.

발산재는 북쪽의 만수산과 남쪽의 깃대봉의 산줄기가 이어진다.

발산재 끝으로 발산 저수지가 있으며 진주시 이반성면과 창원시 진전면을 잇는 고개로 국도 2호선이 지나고,남서쪽으로 깃대봉, 만수산, 용암산,

옥녀봉, 적석산 자락이 우뚝 솟아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여항산과 봉화산, 평지산 자락이 위풍당당하게 솟아 있다.

발산(鉢山)재란 스님의 탁발을 엎어 놓은 형상이라 부쳐진 이름이다



대정마을버스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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