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낙남정맥 8구간 종주(발산재-구월산-오곡재-미산령-여항산-마당바위-서북산-대부산-봉화산갈림길-한치재) 본문
2016년 12월 12일 월요일 맑음 나홀로
발산재(鉢山峙 260m)는 전쟁이 일어나면 크게 발대를 막고 승패를 짓는 곳이라는 데서 ‘발산재’ 라 부르게 되었다.
발산재는 북쪽의 만수산과 남쪽의 깃대봉의 산줄기가 이어진다.
발산재 끝으로 발산 저수지가 있으며 진주시 이반성면과 창원시 진전면을 잇는 고개로 국도 2호선이 지나고,남서쪽으로 깃대봉, 만수산, 용암산,
옥녀봉, 적석산 자락이 우뚝 솟아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여항산과 봉화산, 평지산 자락이 위풍당당하게 솟아 있다.
발산(鉢山)재란 스님의 탁발을 엎어 놓은 형상이라 부쳐진 이름이다.
연말이라 모임 약속이 많아 친구 배법과 함께하는 낙동정맥종주 약속이 잘 안 잡힌다.
몸은 근질거리고 내 종주 본능은 꿈틀거려 홀산에 들기로 하고 마산행 심야버스에 오른다.
인천 터미널에서 마산행 심야 버스가 24:00에 있는데 매진이란다.
일요일일 경우 거의 빈차라는 내 선입견이 무참히 깨지는 순간이다.
할 수 없이 부천터미널 23시10분 출발 심야버스로 마산터미널을 경유 택시로 발산재에 이른다.(04:30)
마루금 초입에 '현위치'라는 슬픈 이름표를 단 장승이 어둠에 길라잡이로 산꾼을 맞이하고 등로는 척박하다.
홀산에 야간 산행의 경우 항상 긴장하는 것은 요즘 자주 등장하는 멧선생이다.
야행성인 멧선생을 만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늘 있는게 사실이다.
다행히 이곳 등로는 척박하여 멧선생이 살기에는 부적합하다.
등로 어디에도 멧선생 흔적은 없다.
멧선생 흔적이 없다는게 확인이 되니 내 발걸음도 절로 경쾌해지고 자주 등장하는 무덤은 오히려 친근하다.
무덤이 있다는 것은 근처에 마을이 있다는 것이고 언젠가 나도 저들처럼 저기 누울테니...
어릴적엔 무덤이 가장 무서웠는데 언제부터 인지는 몰라도 내게 어릴적 느끼던 무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없는것 같다.
무덤을 지날때 마다 나는 늘 나직히 속삭인다 '주무시는데 죄송해요'하고 편안히 영면에 드신 무덤 주인에게 미안해서다.
발산재부터 오곡재까지는 이렇다 할 특징도 없는 오르내림의 고도차가 거의 없는 지루한 마루금이 계속된다.
등로는 내륙의 진주시 이반성면과 해안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을 가르며 오곡재에 이르고 오곡재부터는 함안군과 창원시를 경계를 이룬다.
오곡재(380m)는 함안군 군북면 오곡리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산서를 잇는 비포장 도로다.
오곡재는 보부상들이 지나는 중요한 도로 중에 하나였다.
'오곡'은 '오실'이라 불렸다.
신라말'고운 최치원선생이 어머님을 모시고, 이곳을 지나던 중, 피로하고 배가고파 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까마귀가 날아와 최치원선생 앞에
닭고기를 물어다 주고 갔다하여 '오곡'이라 불렀다고 한다.
다른 설로는 오곡마을 뒷산의 생김새가 까마귀 두마리가 깃을 펴고 나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한강 정구 선생이 '오곡'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오곡의 자연부락 중 '골말'은 먼저 형성된 마을로서 원래 '고마을(고촌)'이었다 하고,새말은 나중에 형성된 마을이라 '새말(새터)'이라 불리어졌다.
또한 이곳을 함안군 군북면 쪽에서는 '오곡재'라고 부르고,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에서는 '비실재'라고 부르고 있다.(08:10)
오곡재부터 여항산까지는 고도를 400여m 꾸준히 올려야 한다.
낙남정맥중 지리산 구간을 제외한 가장 고도가 높은 구간으로 오늘 산행중 가장 난코스로 여겨진다.
미산령(550m)은 함안군 파수리에서 창원시 진전면 여양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아담한 쉼터 정자와 동물 이동통로가 있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도 아닌데 뜬금없는 동물 이동통로라는게 예산 낭비 아닌가 싶다.
이곳은 6.25 전쟁중 낙동강 전투에서 희생된 군인,경찰 학도병의 유해 발굴 현장이기도 하다.
물론 전쟁중에는 치열한 공방이 있던 전쟁 터였고....희생된 영령앞에 깊이 머리 숙여 애도를 표한다.
여항산에 오르는 등로는 아기자기한 암릉으로 마치 강화의 마리산 남쪽 암릉과 많이 닮았다.
북쪽 좌측으로는 군북면이 북쪽 정면으로 함안읍과 함안면이 동쪽으로는 여항면이 손바닥 안처럼 훤하다.
여항산(770m)은 함안의 특이한 지형 때문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많다.
1586년 군수로 부임한 정구(鄭逑)는 남고북저 지형을 가진 함안에 역모의 기운이 있다 하여 이를 풍수지리적으로 바로잡고자 했다고 한다.
산이 높은 남쪽은 배가 다닐 수 있는 낮은 곳이라는 의미에서 여항(餘航), 지형이 낮은 북쪽은 대산(代山)으로 고쳤다는 것이다.
그러나,함안 사람들은 "대산과 여항은 그 전부터 사용해 오던 지명으로 이 설은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펄쩍 뛴다.
천지사방이 물에 다 잠겼을 때 여항산의 꼭대기가 배만큼 남았다고 하는 데서 '여항'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경상도지리지'(1425년)를 비롯한 조선시대 대부분의 문헌기록에 '남을 여(餘)' 자에 '배 항(航)' 자로 기록되어 있다.
낙남정맥과 호남정맥의 남쪽 해안 경계를 가르는 구간은 배와물에 관한지명이 많다.
예전에 물이 넘쳐 배가 걸렸다는 이야기가 조계산 선암사, 배치고개, 여항산등에서 확인이 된다.
이 구간이 해양문화권과 내륙문화권을 가르는 경계로 서로 오고가는게 불편했던 예전에 내륙 문화권의 민초들이 들리는 풍문으로
산넘어 바다를 동경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황당한 상상을 해본다.
아니면 오래전에 남해바다에 큰해일로 물이 넘쳤을 수 도 있다는 걸로 요즘 경주에서 일어나는 지진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한무리의 학생들이 여항산 정상을 점령하고 시끄럽다.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 반갑다.
덩치가 많이커 고등학생쯤 된다고 생각했는데 한참 지나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고학년이 선생님과 함께 산행을 온것이라 짐작된다.
외모만보고 고등학생 대우를 했던 내가 참 우습다.
여항산 정상은 사방이 탁트여 전망이 좋다.
북동쪽으로 무룡산,청룡산(작대),천주산,투구봉,무학산,광려산,봉화산이 여항면뒤로 병풍처럼 펼쳐지고 남동방향으로
가야 할 마당바위와 서북산이 지척이다.
남쪽 바로 아래 창원시 진전면 소재지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남동쪽으로 부터 기대봉 예양저수지도 뚜렷하다.
멀리 진주시 반상면도 뚜렷하고 백화산 오봉산뒤로는 지리산도 아득하다.
방어산 백이산 방금 지나온 미산령도 뚜렷하다.(10:50)
여항산 데크를 내려와 안부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편안한 등로 따라 서북산 오름을 오른다.
서북산(西北山 738.5m)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의 서북단에 위치한다고 ‘서북산’으로 불린다.
한국 전쟁 당시 2개월동안 미군이 고전을 면치 못한데서 ‘갓 뎀(got damn 제기랄,젠장)’이라 한데서 갓데미산 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산의 격전에서 희생된 적군과 아군의 백골이 산적하였다 하여 ‘백마산’ 이라 불리기도 한다.
서북산 정상에는 서북산 전적비가 있고 헬리포터도 있다.
마산 앞바다가 지척에 아름답다.(12:40)
서북산에서 300여m를 급하게 고도를 낮춰 다시 같은 높이로 고도를 높여야 한다.
그러나 급한 내림 후에 완만한 임도길에서 충분한 체력을 회복 할 수 있어 대부산 오름은 생각보다 수월하다.
대부산(649.2m)정상엔 나무판 표지가 있고 특별한 특징이 없다.(14:15)
산객 한분이 잰걸음으로 뒤따라던이 인사도 없이 지나친다.
뭐가 급하냐고 발길을 붙드니 겨우 부산에서 단체 정맥종주중인 단체 산학회 일원이라 하며 뒤에 많이 온다고 하고 내달린다.
봉화산 갈림봉에서 잠시 갈등하다 왕복 1.8km나 되는 거리라 포기하고 한치로 방향을 잡는다.
한치고개(169m)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과 함안군 여항면 경계에 있으며, 2차선 79번 지방도가 지난다.
이곳 사람들은 봉곡리 고개라 부르며,진고개 휴게소와 여항산 보리 한우집과 버스정류장, 이방실장군 유적비, 여항산 등산안내판과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다.
‘한치’라는 지명은 광려산과 봉화산 사이에 있는 '큰 고개'라는 뜻으로 부르며 ‘한티 고개’ 또는 ‘진고개’로도 알려져 있고,
‘큰 고개’, ‘목 너머’, ‘대현’이라고도 불렀으며, 예로부터 진북면에서 함안군으로 넘어가는 고개 중에서 가장 큰 고개였다.
이방실은 고려의 장군으로 이곳 함안 사람으로 함안 이씨의 시조다.
홍건적의 난에 큰공을 세웠으나 고려말 혼란기에 정적에게 살해 당한 비운의 장수다.
앞서간 산님이 타고 온 산악회 차가 주차 돼 있고 오곡재에서 출발한 부산 참산악회 회원 서너명이 나와 함께 한치고개에 이른다.
진고개 식당에서 진북나가는 버스를 확인하니 방금 떠나 1시간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진북 택시를 호출하고 주유소에서 대충 씻고 부산 산님이 딸아준 맥주 한잔을 들이키고 택시에 오른다.(14:50)
1. 산행코스
발산재-구월산-오곡재-미산령-여항산-서북산-대부산-봉화산 갈림봉-한치고개
(10시간 20분,23.9km)
2. 산행경로
23:10분 - 부천터미널
03:00분 - 마산터미널
04:30분 - 발산재(2번도로)-288.5봉-구월산-272.3봉
05:40분 - 영봉산 갈림길-347봉-356봉
07:35분 - 이정표,여항산 5.2km
07:50분 - 524.4봉
08:10분 - 오곡재-555.1봉
09:35~59분 - 미산령 간식 휴식-미산령 이정표
10:30분 - 돌탑봉-헬기장
10:50분 - 여항산
12:10분 - 마당바위
12:40분 - 서북산
13:10분 - 버드내 갈림길-임도
13:55분 - 602.7봉
14:15분 - 대부산
14:20분 - 봉화산 갈림길-봉곡갈림길
14:40분 - 329봉
14:50분 - 한치재
@. 교통편
부천-마산시외버스 심야고속
마산-발산재 택시 35000원
한친-진북택시(10000원)
진북-문화동버스(74번)환승
터미널 이동(101 103번)
마산시외버스 인천
3. 산경표
발산재(鉢山峙 260m)는 전쟁이 일어나면 크게 발대를 막고 승패를 짓는 곳이라는 데서 ‘발산재’ 라 부르게 되었다.
발산재는 북쪽의 만수산과 남쪽의 깃대봉의 산줄기가 이어진다.
발산재 끝으로 발산 저수지가 있으며 진주시 이반성면과 창원시 진전면을 잇는 고개로 국도 2호선이 지나고,남서쪽으로 깃대봉, 만수산, 용암산,
옥녀봉, 적석산 자락이 우뚝 솟아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여항산과 봉화산, 평지산 자락이 위풍당당하게 솟아 있다.
발산(鉢山)재란 스님의 탁발을 엎어 놓은 형상이라 부쳐진 이름이다.
마루금 초입에 '현위치'라는 슬픈 이름표를 단 장승이 어둠에 길라잡이로 산꾼을 맞이하고 등로는 척박하다.
홀산에 야간 산행의 경우 항상 긴장하는 것은 요즘 자주 등장하는 멧선생이다.
야행성인 멧선생을 만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늘 있는게 사실이다.
다행히 이곳 등로는 척박하여 멧선생이 살기에는 부적합하다.
등로 어디에도 멧선생 흔적은 없다.
멧선생 흔적이 없다는게 확인이 되니 내 발걸음도 절로 경쾌해지고 자주 등장하는 무덤은 오히려 친근하다.
무덤이 있다는 것은 근처에 마을이 있다는 것이고 언젠가 나도 저들처럼 저기 누울테니...
어릴적엔 무덤이 가장 무서웠는데 언제부터 인지는 몰라도 내게 어릴적 느끼던 무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없는것 같다.
무덤을 지날때 마다 나는 늘 나직히 속삭인다 '주무시는데 죄송해요'하고 편안히 영면에 드신 무덤 주인에게 미안해서다.
발산재부터 오곡재까지는 이렇다 할 특징도 없는 오르내림의 고도차가 거의 없는 지루한 마루금이 계속된다.
등로는 내륙의 진주시 이반성면과 해안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을 가르며 오곡재에 이르고 오곡재부터는 함안군과 창원시를 경계를 이룬다.
오곡재(380m)는 함안군 군북면 오곡리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산서를 잇는 비포장 도로다.
오곡재는 보부상들이 지나는 중요한 도로 중에 하나였다.
'오곡'은 '오실'이라 불렸다.
신라말'고운 최치원선생이 어머님을 모시고, 이곳을 지나던 중, 피로하고 배가고파 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까마귀가 날아와 최치원선생 앞에
닭고기를 물어다 주고 갔다하여 '오곡'이라 불렀다고 한다.
다른 설로는 오곡마을 뒷산의 생김새가 까마귀 두마리가 깃을 펴고 나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한강 정구 선생이 '오곡'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오곡의 자연부락 중 '골말'은 먼저 형성된 마을로서 원래 '고마을(고촌)'이었다 하고,새말은 나중에 형성된 마을이라 '새말(새터)'이라 불리어졌다.
또한 이곳을 함안군 군북면 쪽에서는 '오곡재'라고 부르고,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에서는 '비실재'라고 부르고 있다
미산령(550m)은 함안군 파수리에서 창원시 진전면 여양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아담한 쉼터 정자와 동물 이동통로가 있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도 아닌데 뜬금없는 동물 이동통로라는게 예산 낭비 아닌가 싶다.
이곳은 6.25 전쟁중 낙동강 전투에서 희생된 군인,경찰 학도병의 유해 발굴 현장이기도 하다.
물론 전쟁중에는 치열한 공방이 있던 전쟁 터였고....희생된 영령앞에 깊이 머리 숙여 애도를 표한다.
여항산에 오르는 등로는 아기자기한 암릉으로 마치 강화의 마리산 남쪽 암릉과 많이 닮았다.
북쪽 좌측으로는 군북면이 북쪽 정면으로 함안읍과 함안면이 동쪽으로는 여항면이 손바닥 안처럼 훤하다
여항산(770m)은 함안의 특이한 지형 때문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많다.
1586년 군수로 부임한 정구(鄭逑)는 남고북저 지형을 가진 함안에 역모의 기운이 있다 하여 이를 풍수지리적으로 바로잡고자 했다고 한다.
산이 높은 남쪽은 배가 다닐 수 있는 낮은 곳이라는 의미에서 여항(餘航), 지형이 낮은 북쪽은 대산(代山)으로 고쳤다는 것이다.
그러나,함안 사람들은 "대산과 여항은 그 전부터 사용해 오던 지명으로 이 설은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펄쩍 뛴다.
천지사방이 물에 다 잠겼을 때 여항산의 꼭대기가 배만큼 남았다고 하는 데서 '여항'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경상도지리지'(1425년)를 비롯한 조선시대 대부분의 문헌기록에 '남을 여(餘)' 자에 '배 항(航)' 자로 기록되어 있다.
낙남정맥과 호남정맥의 남쪽 해안 경계를 가르는 구간은 배와물에 관한지명이 많다.
예전에 물이 넘쳐 배가 걸렸다는 이야기가 조계산 선암사, 배치고개, 여항산등에서 확인이 된다.
이 구간이 해양문화권과 내륙문화권을 가르는 경계로 서로 오고가는게 불편했던 예전에 내륙 문화권의 민초들이 들리는 풍문으로
산넘어 바다를 동경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황당한 상상을 해본다.
아니면 오래전에 남해바다에 큰해일로 물이 넘쳤을 수 도 있다는 걸로 요즘 경주에서 일어나는 지진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한무리의 학생들이 여항산 정상을 점령하고 시끄럽다.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 반갑다.
덩치가 많이커 고등학생쯤 된다고 생각했는데 한참 지나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고학년이 선생님과 함께 산행을 온것이라 짐작된다.
외모만보고 고등학생 대우를 했던 내가 참 우습다.
여항산 정상은 사방이 탁트여 전망이 좋다.
북동쪽으로 무룡산,청룡산(작대),천주산,투구봉,무학산,광려산,봉화산이 여항면뒤로 병풍처럼 펼쳐지고 남동방향으로
가야 할 마당바위와 서북산이 지척이다.
남쪽 바로 아래 창원시 진전면 소재지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남동쪽으로 부터 기대봉 예양저수지도 뚜렷하다.
멀리 진주시 반상면도 뚜렷하고 백화산 오봉산뒤로는 지리산도 아득하다.
방어산 백이산 방금 지나온 미산령도 뚜렷하다
서북산(西北山 738.5m)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의 서북단에 위치한다고 ‘서북산’으로 불린다.
한국 전쟁 당시 2개월동안 미군이 고전을 면치 못한데서 ‘갓 뎀(got damn 제기랄,젠장)’이라 한데서 갓데미산 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산의 격전에서 희생된 적군과 아군의 백골이 산적하였다 하여 ‘백마산’ 이라 불리기도 한다.
서북산 정상에는 서북산 전적비가 있고 헬리포터도 있다.
마산 앞바다가 지척에 아름답다
서북산에서 300여m를 급하게 고도를 낮춰 다시 같은 높이로 고도를 높여야 한다.
그러나 급한 내림 후에 완만한 임도길에서 충분한 체력을 회복 할 수 있어 대부산 오름은 생각보다 수월하다.
대부산(649.2m)정상엔 나무판 표지가 있고 특별한 특징이 없다.(14:15)
산객 한분이 잰걸음으로 뒤따라던이 인사도 없이 지나친다.
뭐가 급하냐고 발길을 붙드니 겨우 부산에서 단체 정맥종주중인 단체 산학회 일원이라 하며 뒤에 많이 온다고 하고 내달린다.
봉화산 갈림봉에서 잠시 갈등하다 왕복 1.8km나 되는 거리라 포기하고 한치로 방향을 잡는다.
한치고개(169m)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과 함안군 여항면 경계에 있으며, 2차선 79번 지방도가 지난다.
이곳 사람들은 봉곡리 고개라 부르며,진고개 휴게소와 여항산 보리 한우집과 버스정류장, 이방실장군 유적비, 여항산 등산안내판과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다.
‘한치’라는 지명은 광려산과 봉화산 사이에 있는 '큰 고개'라는 뜻으로 부르며 ‘한티 고개’ 또는 ‘진고개’로도 알려져 있고,
‘큰 고개’, ‘목 너머’, ‘대현’이라고도 불렀으며, 예로부터 진북면에서 함안군으로 넘어가는 고개 중에서 가장 큰 고개였다고.
이방실은 고려의 장군으로 이곳 함안 사람으로 함안 이씨의 시조다.
홍건적의 난에 큰공을 세웠으나 고려말 혼란기에 정적에게 살해 당한 비운의 장수다.
앞서간 산님이 타고 온 산악회 차가 주차 돼 있고 오곡재에서 출발한 부산 참산악회 회원 서너명이 나와 함께 한치고개에 이른다.
진고개 식당에서 진북나가는 버스를 확인하니 방금 떠나 1시간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진북 택시를 호출하고 주유소에서 대충 씻고 부산 산님이 딸아준 맥주 한잔을 들이키고 택시에 오른다.(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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