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낙남정맥11구간종주(용추고개-노티재-진례산성동문-비음산-청리봉-남산치-내대암봉-대암산-신정산-용지봉-냉정고개) 본문

이 또한 지나가리/낙남정맥(完)

낙남정맥11구간종주(용추고개-노티재-진례산성동문-비음산-청리봉-남산치-내대암봉-대암산-신정산-용지봉-냉정고개)

無碍人 2017. 3. 9. 09:57

2017년 3월6일 월요일 맑음 강풍 나홀로


"我今淸淨水 變爲甘露茶 奉獻三寶前 願垂哀納受(아금청정수 변위감로차 봉헌삼보전 원수애납수)

 제가 지금 청정한 물을 뜨니 감로의 물로 변하여 삼보 전에 올립니다. 원컨대 어여삐 여겨 받으소서..."

고개넘어 우곡사에 영험한 약수가 있으니 그 약수터에 새겨진 글귀다.

1200년전 우곡사를 창건한 무염국사가 발견했다고 전해지며 피부병에 효염이 있다고 한다.

특히 아무리 가믐이 심하거나 비가 많이와 장마가 져도 수량이 일정해 창원시는 물론 양산 부산등지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어둠이 익숙해질 무렵 용추계곡 건너 마주한 약수터에서 졸졸 물떨어지는 소리에 다가가보니 약수는 혼자 밤이 새도록 부지런한데 오염이란다.

음용수로는 부적격이라는 딱지를 떡하니 붙이고 있다.

뿌리는 같은데 인간에 의해 이렇게....

새벽 찬바람을 가르며 800여m의 가파른 오름을 올라 용추고개에서 마루금에 접속한다.

용추고개(龍湫 340m)는 용동과 김해시 진례면 사이에 있다.

창원에서 이 고개를 넘어오면 동읍 단계마을의 우곡사()에 이르게 된다.

누가 사용하는지 모르지만 운동시설이 있는 고갯마루에서 본격적으로 낙남에든다.

전국 어디를 가든 누가 사용 하는지 모르는 이런 운동시설이 깊은 산속에 있다.

인근에 마을이라곤 없는데....이도 또한 전시행정의 전형이 아닌지...궁금하고 걱정도 된다.(04:55)

우곡사 갈림길과 노티재 갈림봉을 연이어 지나 편안한 등로 따라 진례산성 동문에 이른다.

산성 흔적이 뚜렷하고 예전에 성문이 있었음직한 문루에는 졸음에 겨운 초병이 눈비비며 하품하는 소리가 들리듯 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輿)"에 따르면 진례성은 김해부 읍치()의 서쪽 35리에 있으며, 통일신라의 김인광이

진례성제군사()였던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때에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 책이 편찬될 무렵에는 이미 폐성이 되어 옛 터만 남아 있었다.

김해시 진례면과 경계를 이루는 높이 510m에 축성된 석성으로 둘레가 4㎞에 이르는 포곡식() 산성이다.(06:00)

비음산(飛音山486m)은 마루금에서 400여m 벗어나 있으며,창원시와 김해시 진례면 경계에 위치해 진달래와 철쭉 군락지가 형성돼 있다.

"너른산"이라 불리기도 하며 산 정상부에 진례산성이 있다.

비음(飛音) 지명과 관련해 창원에서 소리를 지르면 진례면까지 소리가 들린다고 하여 '소리가 날아다닌다.'라는 뜻의 날음고개, 비음령이라 부른다.

마악 창원시가의 불빛이 사그라드는 여명이 시작되는 시각, 비음산 정상에서 갑자기 마주한 아주머니 한분 나도 놀랐지만 여성인 그분도

많이 놀라는 낌새다." 놀라셨지요? 죄송합니다" 하는 내 인사에 대꾸도 없이 출행랑이다.

내가 뭘 잘못햇다고? 이 새벽에 산에 온 잘못인가??? 이해를 하면서도 기분이 그렇다.

비음산 갈림길로 되돌아와 청라봉이라는 이름을 얻은 봉우리 하나를 내려서면 남산치다.

남산치(南山峙 400m)는 창원시 동쪽 비음산과 대암산 사이에 위치한 고개다.

성산구 가음정동과 김해시 진례면 신안리를 연결하는 고개다.

'조선지지자료'에 마산 사파정동에 비음산과 비음령이 있는데 한글로 '나름산'과 '나름산치'로 표기 하는데 소리가 난다는 비음산 지명에서 유래한

지명이 남산치다.즉 비음산(飛音山)은 '나르미' '날음재'를 한자로 표기 한것으로 비음산 남쪽의 고개인 비음령이  '나름산치 → 남산재 → 남산치'

로 변음된 것이다.(07:15)

남산치로부터 잠깐 숨을 몰아쉬면 암릉이 시작되는데 대암산 내대암봉이다.

진례면쪽으로 진례저수지가 연무속에서 뚜렷하고 창원공단과 인근 아파트 단지가 손바닥 안이다.

제법 아기자기한 암릉이 대암산으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대암산(大岩山 675m)은 창원시 남동쪽에 위치한 산으로 비음산에서 용지봉으로 이어지며 동쪽의 김해시 진례면과 경계를 이룬다.

산 곳곳에 기반암이 드러나고 거친 바위산이라 大岩山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대암산에서 신정산이라는 표지목이있는 봉우리로 이어지는 경사면에 애추(돌너덜)가 발달해 있으며 산에서 중생대 백악기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08:00)

대암산에서 신정산으로 이어지는 구간에서 잠잠하던 날씨가 갑자기 강풍이 불기 시작한다.

능선에 올라서면 몸을 가누기 힘들정도로  심한 강풍이다.

봄철 날씨라는게 맑은 날인데도 강하게 부는 바람에 속수무책 체온이 급하강한다.

단단히 옷깃을 여미며 신정산 돌너널 지역의 돌탑아래서 바람을 피하며 싸가져온 김치볶음밥에 곡차 한잔으로 추위를 녹인다.

신정산 돌너덜 지역엔 돌탑이 정교하게  서있다.

마치 진안마이산 돌탑을 흉내 된듯 최근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제법 정교하다.

반쯤 작업중인 돌탑이 보이는거로 봐서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해서 돌탑이 늘어나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돌탑이 완성되면 또 새로운 볼거리로 대암산의 명물이 될것 같다.(08:30~09:00)

용지봉(龍地峰 743m)의 원래 이름은 용제봉()이다.

용제봉은 기우제()와 관련하여 만들어진 지명이다.

또 다른 문헌에는 용제산() 또는 용제봉()으로 나온다.

제()가 제()로 바뀐 배경은 알 수 없다.

이에 대해 김해 사람들은 ‘용제()’와 ‘용제()’는 이름처럼 상이한 기원 설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용제()는 무제와 관련되고, 용제()는 진례면 무송리 용소의 용 승천설화와 관련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용제봉이 지금의 이름인 용지봉으로 된 것은 자음 변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용지봉에서 낙남정맥은 한줄기는 냉정고개를 거쳐 신어산,동신어산을 지나 메리교에서 맥을 다하는데, 이산줄기가 낙동강 하구

바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여 새로운 개념으로 이곳 용지봉에서 신낙남정맥이 바다를 향해 갈라진다.

신낙남정맥은  용지봉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갈라져 불모산,화산,굴암산,너더리고개,두동고개,보배산(보개산),장고개,봉화산을 지나

낙동강 하구둑 녹산수문에서 맥을 다하는 24km의 산줄기를 일컫는다.

친절한 창원 산님을 만나 신낙남점맥길과 가야할 낙남정맥이 이어지는 산줄기를 도움 받으며 냉정고개가 내려다 보이는 정자 쉼터에서

피곤한 다리를 쉬어간다.

김해시 진례면의 넓은들이 무계획적으로 들어서는 공장들로 앓고 있는 현장이 씁쓸하다.(09:35)

장유사는 우리나라 불교의 남방 전래설을 입증하는 사찰로, 사찰측의 기록에 따르면 48년에 인도 아유타국의 태자이자 승려인 장유화상()이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후가 된 누이 허씨를 따라 이곳으로 와서 최초로 창건한 왕후사(寺)가 있던 곳에 세워진 절이다.

장유사 입구에 있는 왕후사지(寺址)는 가락국 8대왕인 질지가 허왕후의 공덕을 기리고 명복을 기원하기 위한 원찰()로서

김수로왕과 왕후가 합환한 전설이 깃든 곳에 세운 사찰이라고 하며, 두 줄기의 계곡물이 합쳐지는 풍수지리상의 길지()라고 하여

현재는 묘소로 바뀌었다.

두번의 장유사 갈림길을 지나 471,3봉에서 급한내림을 내려서니 축사 옆으로 매화가 활짝 폈다.

1042번 도로가 지나는 냉정고개 농가 밭에는 홍매화,산수유까지 절정으로 매화향이 온 동네를 감싸고 돈다.

마루금은 1042번 도로 하단을 통과하여 좌측 140봉으로 이어지는데 남해고속도로로 인해 냉정마을을 통과하여 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좌틀하여

국악원 방향으로 가면된다.

냉정(冷井)고개는 글자 그대로 찬우물인데 어디에도 유래에 대한 지료를 찾을수 없다.

다만 냉정고개는 1042번 지방도로가 지나고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김해시 진례면과 주촌면의 경계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현대사의 비극인 6.25전란 속에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비극은 피할수가 없던 고갯길 이었으며, 남로당 보도연맹 사건의 유일한 재판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출발부터 고민이였는데 이곳 냉정을 깃점으로 11시 전에 도착하면 망천고개까지 진행 하리라 마음 먹었는데 11시10분 충분히 망천까지 갈 수

있는 시간이다.(11:10)

그런데 장유사 갈림길을 지나며 가락국이 궁금해졌다.

언제 다시 김해를 찾을 거라는 기대가 없으니 무리하지말고 김수로와 허황옥을 만나는것도 괜찮다 싶다.

일단 140봉에서 준.희님을 만나고 남해고속도로가 접하는 곳에서 우틀하여 매화가 흐트러지게 핀 임도따라 굴다리에서 다음구간을 점검하고

전국버스앱으로 확인하니 9분후 44번버스가 도착한다.(12:00)


버스로 김해터미널 봉황역에 내려 해반천을 건너 봉황동 유적지를 걸어 김수로왕릉과 수로왕비릉을 돌아본다.

터미널과 봉황역이 길하나 건너에 나란히 있고 터미널부터 봉황역 봉황동유적지를 연결하는 육교가 있다.

봉황동 유적은 가야시대의 대표적인 조개무지로 초기 철기시대의 생활상을 잘보여준다.

김해토기()라고 명명()된 토기의 조각들이 많이 출토되었고, 도끼와 손칼과 같은 철기가 발견되었다.

따라서 철기가 이미 일상생활의 도구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고, 철기 이외에 골각제품()으로서도 골촉() ·골침() 등과

송곳 같은 찌르개류[]가 함께 출토되었다.

김해토기는 종래의 민무늬토기보다 높은 온도로 구워서 만든 발달된 경질()의 토기다.

특히 후일에 와서 신라토기()의 모체가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원시 신라토기라고도 한다. (13:00)

수로왕릉은 봉황동 유적과 인접해 있다.

김수로는 가락국(國), 금관가양의 시조이자 김해김씨의 시조로 수로왕의 무덤으로 납릉()이라 부른다.

수로왕은 삼국유사 가락국기(記) 에 전하고 있으나 무덤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고 "지봉유설"에 의하면 임진왜란때 도굴되었으며

무덤의 형태는 큰 돌방무덤(石室墓)으로 순장 무덤이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훈의 '현의노래'에 나오는 순장여 아라가 떠오른다.

가야왕의 시녀였던 아라는 왕이 죽으면서 순장 시키라해 순장될 처지가 된다.

아라는 도망쳤으나 몇해뒤 결국 잡혀 태자의 죽음에 순장돼고 만다.

권력자가 죽으면 그의처나 시종들을 순장 시키는 풍습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인간적인 풍습이다.

얼마전 가야 고대 무덤에서 16세의 팔방미인이 순장돼 미이라로 발굴된적이 있다.

얼마나 억울하면 1600년이나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미이라로 남아 있었을끼?

지난해 몰염치하고 파렴치하기 까지한 박근혜정권이 기울어 가면서도 자기 한테 유리한 정무수석을 바꿔치기 할때 정권의 종말이 임박했음을 안

언론이 '순장조'라는 용어를 썼다.

청와대 비서진이란 정권과 함께 사라지는 직책인데도 그 자리를 욕심낸 그 인사는 자기가 평생을 추구한 진보 이념을 헌신짝 처럼 버리고

순장조에 합류했다.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 동성왕이 죽었을땐 그를 존경하며 따르던 백성들이 순장시켜 달라고 자살하기도 했다는데....

동성왕은 백성의 신망이 두터웠다는데.....비서실장과 정무수석도 순장을 원하는걸까?

수로왕비릉(허황옥)은 수로왕릉에서 2km 정도 떨어진 구지봉 아래 있다.

허황옥 설화는 많이 알려져 있으니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이런 권력자 중심의 역사는 이제 그만 정사(政史)의 자리를 내주고 그시절 그곳에 살았던 민초들의 역사가 정사가 되어야 한다.

엄동설한에 촛불을든 1500만 시민들의 역사가 말이다.

봉황동 유적지에서 수로왕릉 수로왕비릉을 타박타박 돌아와 김해터미널에서 이른 오후 인천행 버스에 오른다.


1. 산행코스

   용추고개-노티재갈림봉-진례산성동문-비음산-청라봉-남산치-대암산-신정산-용지봉-냉정고개

   (13.6km, 6시간15분/접속거리 1.8km,김해유적탐방 5km별도)


2. 산행경로

   24:00분 - 인천출발
   04:00분 - 창원터미널
   04:30분 - 용추주차장[접속] 


   04:55분 - 용추고개(340m) 
   06:02분 - 우곡사갈림길
   05:12분 - 노티재갈림봉(415m)
   06:00분 - 진례산성동문
                  비음산갈림길
   06:20분 - 비음산(510m)
                  비음산갈림길
   06:40분 - 청라봉(517m)
   06:55분 - 남산치(400m)
   07:15분 - 내대암봉607.4m)
   08:00분 - 대암산(675m)
   08:30분~50분 - 신정산(707m)아침해결
   09:35분 - 용지봉(743m)
   10:00분 - 장유사갈림길1
   10:15분 - 장유사갈림길2
   10:27분 - 471.3봉
   11:10분 - 냉정고개(90m)
   13:00분 - 김해터미널 봉황역-
                  봉황동유적공원-수로왕릉-수로왕비릉(허황옥릉)
   15:10분 - 인천행탑승
   19:50분 - 인천착


@. 교통편

   인천터미널-창원터미널

   창원터미널-용추주차장 택시

   냉정고개-김해터미널 김해44번버스(30분간격배차)

   김해터미널-인천터미널


3. 산경표



비봉약수

"我今淸淨水 變爲甘露茶 奉獻三寶前 願垂哀納受(아금청정수 변위감로차 봉헌삼보전 원수애납수)

 제가 지금 청정한 물을 뜨니 감로의 물로 변하여 삼보 전에 올립니다. 원컨대 어여삐 여겨 받으소서..."

고개넘어 우곡사에 영험한 약수가 있으니 그 약수터에 새겨진 글귀다.

1200년전 우곡사를 창건한 무염국사가 발견했다고 전해지며 피부병에 효염이 있다고 한다.

특히 아무리 가믐이 심하거나 비가 많이와 장마가 져도 수량이 일정해 창원시는 물론 양산 부산등지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어둠이 익숙해질 무렵 용추계곡 건너 마주한 약수터에서 졸졸 물떨어지는 소리에 다가가보니 약수는 혼자 밤이 새도록 부지런한데 오염이란다.

음용수로는 부적격이라는 딱지를 떡하니 붙이고 있다.

뿌리는 같은데 인간에 의해 이렇게....




용추고개

용추고개(龍湫 340m)는 용동과 김해시 진례면 사이에 있다.

창원에서 이 고개를 넘어오면 동읍 단계마을의 우곡사()에 이르게 된다.

누가 사용하는지 모르지만 운동시설이 있는 고갯마루에서 본격적으로 낙남에든다.

전국 어디를 가든 누가 사용 하는지 모르는 이런 운동시설이 깊은 산속에 있다.

인근에 마을이라곤 없는데....이도 또한 전시행정의 전형이 아닌지...궁금하고 걱정도 된다


우곡사갈림길

노티재 갈림봉



진례산성터




진례산성동문

우곡사 갈림길과 노티재 갈림봉을 연이어 지나 편안한 등로 따라 진례산성 동문에 이른다.

산성 흔적이 뚜렷하고 예전에 성문이 있었음직한 문루에는 졸음에 겨운 초병이 눈비비며 하품하는 소리가 들리듯 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輿)"에 따르면 진례성은 김해부 읍치()의 서쪽 35리에 있으며, 통일신라의 김인광이

진례성제군사()였던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때에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 책이 편찬될 무렵에는 이미 폐성이 되어 옛 터만 남아 있었다.

김해시 진례면과 경계를 이루는 높이 510m에 축성된 석성으로 둘레가 4㎞에 이르는 포곡식() 산성이다




비음산정상

비음산(飛音山486m)은 마루금에서 400여m 벗어나 있으며,창원시와 김해시 진례면 경계에 위치해 진달래와 철쭉 군락지가 형성돼 있다.

"너른산"이라 불리기도 하며 산 정상부에 진례산성이 있다.

비음(飛音) 지명과 관련해 창원에서 소리를 지르면 진례면까지 소리가 들린다고 하여 '소리가 날아다닌다.'라는 뜻의 날음고개, 비음령이라 부른다.

마악 창원시가의 불빛이 사그라드는 여명이 시작되는 시각, 비음산 정상에서 갑자기 마주한 아주머니 한분 나도 놀랐지만 여성인 그분도

많이 놀라는 낌새다." 놀라셨지요? 죄송합니다" 하는 내 인사에 대꾸도 없이 출행랑이다.

내가 뭘 잘못햇다고? 이 새벽에 산에 온 잘못인가??? 이해를 하면서도 기분이 그렇다.







지나온 정병산






남산치

남산치(南山峙 400m)는 창원시 동쪽 비음산과 대암산 사이에 위치한 고개다.

성산구 가음정동과 김해시 진례면 신안리를 연결하는 고개다.

'조선지지자료'에 마산 사파정동에 비음산과 비음령이 있는데 한글로 '나름산'과 '나름산치'로 표기 하는데 소리가 난다는 비음산 지명에서 유래한

지명이 남산치다.즉 비음산(飛音山)은 '나르미' '날음재'를 한자로 표기 한것으로 비음산 남쪽의 고개인 비음령이  '나름산치 → 남산재 → 남산치'

로 변음된 것이다





진례저수지









내대암봉





장군바위(엄지바위)







대암산

남산치로부터 잠깐 숨을 몰아쉬면 암릉이 시작되는데 대암산 내대암봉이다.

진례면쪽으로 진례저수지가 연무속에서 뚜렷하고 창원공단과 인근 아파트 단지가 손바닥 안이다.

제법 아기자기한 암릉이 대암산으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대암산(大岩山 675m)은 창원시 남동쪽에 위치한 산으로 비음산에서 용지봉으로 이어지며 동쪽의 김해시 진례면과 경계를 이룬다.

산 곳곳에 기반암이 드러나고 거친 바위산이라 大岩山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대암산에서 신정산이라는 표지목이있는 봉우리로 이어지는 경사면에 애추(돌너덜)가 발달해 있으며 산에서 중생대 백악기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















신정산돌탑




불곡산




신정산 돌너덜 지역엔 돌탑이 정교하게  서있다.

마치 진안마이산 돌탑을 흉내 된듯 최근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제법 정교하다.

반쯤 작업중인 돌탑이 보이는거로 봐서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해서 돌탑이 늘어나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돌탑이 완성되면 또 새로운 볼거리로 대암산의 명물이 될것 같다








신낙남정맥

용지봉(龍地峰 743m)의 원래 이름은 용제봉()이다.


용제봉은 기우제()와 관련하여 만들어진 지명이다.

또 다른 문헌에는 용제산() 또는 용제봉()으로 나온다.

제()가 제()로 바뀐 배경은 알 수 없다.

이에 대해 김해 사람들은 ‘용제()’와 ‘용제()’는 이름처럼 상이한 기원 설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용제()는 무제와 관련되고, 용제()는 진례면 무송리 용소의 용 승천설화와 관련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용제봉이 지금의 이름인 용지봉으로 된 것은 자음 변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용지봉에서 낙남정맥은 한줄기는 냉정고개를 거쳐 신어산,동신어산을 지나 메리교에서 맥을 다하는데, 이산줄기가 낙동강 하구

바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여 새로운 개념으로 이곳 용지봉에서 신낙남정맥이 바다를 향해 갈라진다.

신낙남정맥은  용지봉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갈라져 불모산,화산,굴암산,너더리고개,두동고개,보배산(보개산),장고개,봉화산을 지나

낙동강 하구둑 녹산수문에서 맥을 다하는 24km의 산줄기를 일컫는다.

친절한 창원 산님을 만나 신낙남점맥길과 가야할 낙남정맥이 이어지는 산줄기를 도움 받으며 냉정고개가 내려다 보이는 정자 쉼터에서

피곤한 다리를 쉬어간다.

김해시 진례면의 넓은들이 무계획적으로 들어서는 공장들로 앓고 있는 현장이 씁쓸하다



용지봉










김해시진례면


남진례분IC


가야할마루금



















냉정고개

장유사는 우리나라 불교의 남방 전래설을 입증하는 사찰로, 사찰측의 기록에 따르면 48년에 인도 아유타국의 태자이자 승려인 장유화상()이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후가 된 누이 허씨를 따라 이곳으로 와서 최초로 창건한 왕후사(寺)가 있던 곳에 세워진 절이다.


장유사 입구에 있는 왕후사지(寺址)는 가락국 8대왕인 질지가 허왕후의 공덕을 기리고 명복을 기원하기 위한 원찰()로서

김수로왕과 왕후가 합환한 전설이 깃든 곳에 세운 사찰이라고 하며, 두 줄기의 계곡물이 합쳐지는 풍수지리상의 길지()라고 하여

현재는 묘소로 바뀌었다.

두번의 장유사 갈림길을 지나 471,3봉에서 급한내림을 내려서니 축사 옆으로 매화가 활짝 폈다.

1042번 도로가 지나는 냉정고개 농가 밭에는 홍매화,산수유까지 절정으로 매화향이 온 동네를 감싸고 돈다.

마루금은 1042번 도로 하단을 통과하여 좌측 140봉으로 이어지는데 남해고속도로로 인해 냉정마을을 통과하여 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좌틀하여

국악원 방향으로 가면된다.

냉정(冷井)고개는 글자 그대로 찬우물인데 어디에도 유래에 대한 지료를 찾을수 없다.


다만 냉정고개는 1042번 지방도로가 지나고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김해시 진례면과 주촌면의 경계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현대사의 비극인 6.25전란 속에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비극은 피할수가 없던 고갯길 이었으며, 남로당 보도연맹 사건의 유일한 재판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출발부터 고민이였는데 이곳 냉정을 깃점으로 11시 전에 도착하면 망천고개까지 진행 하리라 마음 먹었는데 11시10분 충분히 망천까지 갈 수

있는 시간이다.(11:10)

그런데 장유사 갈림길을 지나며 가락국이 궁금해졌다.

언제 다시 김해를 찾을 거라는 기대가 없으니 무리하지말고 김수로와 허황옥을 만나는것도 괜찮다 싶다.

일단 140봉에서 준.희님을 만나고 남해고속도로가 접하는 곳에서 우틀하여 매화가 흐트러지게 핀 임도따라 굴다리에서 다음구간을 점검하고

전국버스앱으로 확인하니 9분후 44번버스가 도착한다










































































버스로 김해터미널 봉황역에 내려 해반천을 건너 봉황동 유적지를 걸어 김수로왕릉과 수로왕비릉을 돌아본다.

터미널과 봉황역이 길하나 건너에 나란히 있고 터미널부터 봉황역 봉황동유적지를 연결하는 육교가 있다.

봉황동 유적은 가야시대의 대표적인 조개무지로 초기 철기시대의 생활상을 잘보여준다.

김해토기()라고 명명()된 토기의 조각들이 많이 출토되었고, 도끼와 손칼과 같은 철기가 발견되었다.

따라서 철기가 이미 일상생활의 도구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고, 철기 이외에 골각제품()으로서도 골촉() ·골침() 등과

송곳 같은 찌르개류[]가 함께 출토되었다.

김해토기는 종래의 민무늬토기보다 높은 온도로 구워서 만든 발달된 경질()의 토기다.

특히 후일에 와서 신라토기()의 모체가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원시 신라토기라고도 한다. (13:00)

수로왕릉은 봉황동 유적과 인접해 있다.


김수로는 가락국(國), 금관가양의 시조이자 김해김씨의 시조로 수로왕의 무덤으로 납릉()이라 부른다.

수로왕은 삼국유사 가락국기(記) 에 전하고 있으나 무덤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고 "지봉유설"에 의하면 임진왜란때 도굴되었으며

무덤의 형태는 큰 돌방무덤(石室墓)으로 순장 무덤이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훈의 '현의노래'에 나오는 순장여 아라가 떠오른다.

가야왕의 시녀였던 아라는 왕이 죽으면서 순장 시키라해 순장될 처지가 된다.

아라는 도망쳤으나 몇해뒤 결국 잡혀 태자의 죽음에 순장돼고 만다.

권력자가 죽으면 그의처나 시종들을 순장 시키는 풍습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인간적인 풍습이다.

얼마전 가야 고대 무덤에서 16세의 팔방미인이 순장돼 미이라로 발굴된적이 있다.

얼마나 억울하면 1600년이나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미이라로 남아 있었을끼?

지난해 몰염치하고 파렴치하기 까지한 박근혜정권이 기울어 가면서도 자기 한테 유리한 정무수석을 바꿔치기 할때 정권의 종말이 임박했음을 안

언론이 '순장조'라는 용어를 썼다.

청와대 비서진이란 정권과 함께 사라지는 직책인데도 그 자리를 욕심낸 그 인사는 자기가 평생을 추구한 진보 이념을 헌신짝 처럼 버리고

순장조에 합류했다.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 동성왕이 죽었을땐 그를 존경하며 따르던 백성들이 순장시켜 달라고 자살하기도 했다는데....

동성왕은 백성의 신망이 두터웠다는데.....비서실장과 정무수석도 순장을 원하는걸까?

수로왕비릉(허황옥)은 수로왕릉에서 2km 정도 떨어진 구지봉 아래 있다.

허황옥 설화는 많이 알려져 있으니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이런 권력자 중심의 역사는 이제 그만 정사(情史)의 자리를 내주고 그시절 그곳에 살았던 민초들의 역사가 정사가 되어야 한다.

엄동설한에 촛불을든 1500만 시민들의 역사가 말이다.

봉황동 유적지에서 수로왕릉 수로왕비릉을 타박타박 돌아와 김해터미널에서 이른 오후 인천행 버스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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