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한강기맥 9구간종주(상창고개-양지봉-금물산-성지지맥분기봉-시루봉-발귀현-갈기산-신당고개) 본문

이 또한 지나가리/한강기맥(完)

한강기맥 9구간종주(상창고개-양지봉-금물산-성지지맥분기봉-시루봉-발귀현-갈기산-신당고개)

無碍人 2017. 11. 4. 18:21

2017년 11월 1일 수요일 나홀로 개스많음


친구와 낙동을 가기로 약속 됐는데 또 일정이 틀어졌다.

한강을 가기위해 06시40분 동서울발 홍천행 버스에 올랐다.

홍천에서 상창고개행 07시 40분발 지선 버스가 연결 기를 기대하며...

그러나 오늘 내게 그런 행운은 없었다.

공사구간에서 2~3분 지체 한게 치명적이였다.

할 수 없이 8시발 양덕원 우회하는 버스로 상창고개에 선다.

예정보다 40분 늦게 산행에 든다.

상창고개(上蒼峙 350m))는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상창봉리와 홍천군 남면 유치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고개로 494번 지방도가 지난다.

공원처럼 생긴 넓은 공터에 장수마을 표지석이 있다.

도로 주위에는 장승과 여러개의 솟대들도 있다.

원래 이름은 상창봉리 고개이며 창봉리는 창봉곡 아래쪽이 되므로 하창봉리(下蒼峰里)라 하였다가 그 후에 창봉리라 불렀다.

조선시대에 창봉역(蒼峰驛)이 있었다. 상창봉리 고개에서 앞 두글자만 따 상창고개가 되었다.(08:50)

날씨는 포근하고 연무가 뿌옇게 몽환적이다.

초반은 임도와 나란히 가는 등로라 임도 따라 가도 될것 같다.

소나무와 활엽수가 혼재한 등로는 이미 만추로 절정의 가을이다.

고만 고만한 오르 내림으로 편안하게 가다가 양지봉이라 일컫는 782.9봉에서 활엽수가 주종인 등로의 급경사에서 복병을 만난다.

마사토길에 낙엽이 발목까지 쌓이니 도무지 낙엽 아래 사정을 알 수 없어 걸핏 하면 '기우뚱' 넘어지거나 넘어질 뻔 한다.

결국 크게 한번 '쿵'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든다.

오늘 내내 오른쪽 엉치가 시큰거려 발귀현에서 탈출을 심각하게 고려 하기도 했다.

낙엽쌓인 마사토길은 겨울 빙판길보다 더 무섭다는 걸 깨닫는다.(10:40)

금물산(今勿山 776m)은 강원도 홍천군 남면, 횡성군 서원면,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경계에 있는 산이다.

은산,그물산이라고도 한다.

금물산은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로 이 산에서 금과 은을 캐어 금은산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산의 모양이 그물을 친 것 같다고 하여 그물산이라 불렀다.

금물산은 금물산면이라는 조선 시대 행정지명에 반영되기도 했다.

금물산이라는 이정목은 삼마치를 지나면서부터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있는데 정작 금물산 정상에는 표지석이 없다.

수도권 산꾼들이 제법 많이 찾는것으로 알려져 있는데...(11:45)

성지지맥은 한강기맥의 금물산 자락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성지봉, 삼각산,보금산, 뚜깔봉, 자산을 거쳐 섬강이 남한강과 만나는 여주 강천

합수점까지 55.2km를 이어가는 산줄기를 말한다.

동으로는 섬강, 서로는 흑천이 흐른다.(11:50)

시루봉(504m)은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신대리와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도원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이다.

멀리서보면 떡 시루를 엎어 놓은것 처럼 생겼다고해서 시루봉이라 부른다.

시루봉 정상에는 삼각점과 국립지리원에서 설치한 스텐레스 표지판이 있다.(13:10)


며칠전 국민 배우라고 칭하는 젊은 배우가 황당한 교통사고로 떠났다.

그의 나이 45세라 하니 하늘이 부르는데는 순서가 없다지만 온 국민이 패닉 상태다.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계절이 바뀌고 단풍이들고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떨어지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싸한 슬픔이....

점점 감당하기 힘들어 지고 있다.

특히 지난 10월에는 유난히 부고(訃告)가 많았다
부고가 날때마다 팔순 노모가 가는 한숨을 쉬시며 돌아 누울때 내 가슴도 저민다.

꽃이 피고 지고,해가 뜨고 지고,달이 차고 기우는 모든게, 자연의 이치 인데
인간사 생로병사(生老病死) 역시, 당연한 순리건만....이렇게 가을이 깊어지면 상념도 깊어만 간다.
고려때 우리 민초들이 부르던 노래가 있다.
나무를 다듬어 젓가락으로 들어올릴 만큼 작은 닭을 만들었다.
그 닭을 벽에 걸어두고 노모가 닭이 울기전엔 늙지 않기를 기원하는 노래 인데 고려때 성리학자 이제현이 수집해 한자로 남겼다.
 

木頭雕作小唐鷄  목두조작소당계
筯子拈來壁上棲  저자염래벽상서
此鳥膠膠報時節  차조교교보시절
慈顏始似日平西  자안시사일평서 
 
나무토막 조각해 작은 당닭 만들어
젓가락으로 집어서 벽 위에 올려두네
이 닭이 꼬끼오 시간 맞춰 울면
그제야 어머니 지는 해처럼 늙으시기를 
   이제현(李齊賢, 1287~1367), 『익재난고』 권4 「소악부(小樂府)」 

어쩌면 팔순의 어머니 애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가 돼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바탕 등로에 나뒹굴고 나니 홀산이 무서워 진다.

해 짧은 동절기 만이라도 홀산을 줄여야 하지 않나 싶어진다.
 

발귀현(發歸峴 285m)은 발귀너미고개, 발귀고개, 새터고개라고 부른다.

홍천군지에 의하면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신론리와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신대리를 잇는 도계(道界) 역할을 하는 고개다.

고려말 王氏들이 신대리 동가른 다리로 피난와 살면서 고려의 옛도읍 송도가 그리워 질때마다 이고개까지 왔다가 저녁이면 되 돌아갔다 한데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양지봉내림에서 나뒹군후 오른쪽 엉치가 심하게 아프다.

발귀현 포장 임도에 털석 주저앉아 한참을 쉬며 탈출을 고민하다 마음을 다잡고 출발한다.(14:15)

다행히 갈기산 오름은 활엽수 보다는 소나무 숲이라 등로의 낙엽이 많지 않고 급경사도 아니라 오를만하다.

절벽아닌 바위가 어디 있으랴 절벽 바위라니 참 멋없는 표기다.

부부 바위는 꼭 '장 프랑수아 밀레 (Jean Fran ois Millet, 1814~1875년)' 의 '만종'이 생각 나는 바위다.

저녁이 되어 하늘이 붉게 물들자 하루 일을 끝낸 부부가 감자를 수확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신에게 감사 기도를 드리는 그 모습이다.

밀레가 이 바위를 보고 그렸다 하고 싶을 정도로 흡사하다.

갈기산(葛基山 685m)은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용두리에서 강원도 홍천군 남면 방향으로 이어지는 44번 국도 동쪽에 솟아 있는 산이다.

국립지리원 발행 지형도상 갈기산의 한자 표기는 칡 "갈"자에 터 "기"자를 쓴 "葛基山"이지만 과거에는 일어 날 기(起)자를 썼다고 한다.

구한말 기록에는 부동산(不動山), 그 이전에는 감물악(甘勿岳)이라고 불렀다.(16:05)

갈기산 정상부의 암릉을 지나자 급경사 내림을 내려 한동안 편안한 등로를 지나 용화사 갈림길 부터는 임도와 나란히간다.(16:50)

신당고개에서 용문 나가는 버스가 대략 17:00(양덕원)분 있으니 시간에 맞추려 속도를 낸다.

양덕원에서 3분정도 걸리니 17:03분쯤 지날거 같아서다.

있는 힘껏 내달렸으나 역 부족이다.

신당고개 홍천 휴게소에 이르렀을때 17:15분 휴게소도 주유소도 모두 폐업상태다.

양덕원 나가는 버스가 18:25분에 있으니 어느 방향도 나와는 인연이 없다.

양덕원 까지 3km 정도다.

택시를 부를까 하다가 택시 오는 시간이면 걷는게 낫겠다 싶어 걷기로 한다.(가까운 거리라 기사가 싫어 할것 같아서..)

홍천서 17:00 출발하는 인천행 버스는 이미 떠났고 19:00분 버스는 시간 여유가 있다.

잰 걸음으로 걷다가 오일뱅크 주유소에 들러 물어보니 아주머니 한분이 자기 걸음으로 25분이면 양덕원 버스 정류장에 이른단다.

양덕원에서 홍천가는 버스는 20분 간격으로 자주 있다.

신당고개(神堂峙 225m)는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삼성리에 위치한 고개로 44번 국도가 지난다.

삼성리(三聖里)는 원래 지평군 상북의 지역인데, 1908년에 양평군으로 편입되였고 1914년 지방 행정구역 폐합 조치에 따라 유곡리, 신당리,

고론리를 합쳐 성인을 모신 신당(神堂)이 있으므로 삼성리라 불렀다.

지금은 양평군 청운면에 편입된 곳이다.

삼성리의 유래가 서.박.남 세 성씨만 살았던 곳이란 그리 불린다고도 한다.

신당(新堂)은 유곡 동북쪽의 마을로 당집이 있었다(17:15)


1. 산행코스

   상창고개-양지봉-금물산-성지지맥-시루봉-발귀현-갈기산-신당고개

   (8시간 25분,17.6km)


2. 산행경로

   05:04분 - 부평역출발
   05:36분 - 신도림
   06:40분 - 동서울터미널
   08:00분 - 홍천터미널출발
   08:50분 - 상창고개(上蒼峙350m)494지방도
   09:55분 - 송전탑,임도
   10:40분 - 양지봉(782.9m) 
   11:05분 -  No73송전탑
   11:45분 - 금물산(今勿山 776m) 
   11:50분 - 성지(聖地)지맥갈림길 태양광전지판
   13:10분 - 시루봉(504m) 
   14:00분 - 임도
   14:15분 - 발귀현(發歸峴/285m)
   14:25분 - 259번 송전탑
   16:05분 - 갈기산(葛基山 685m) 
   16:50분 - 용화사(龍華寺)갈림길 임도  
   17:15분 - 신당고개(神堂峙225m) 홍천휴게소 44번국도
                  신당고개-양덕원 도보이동 30분
                  양덕원-홍천 버스20분간격배차
   19:00분 - 인천행


@. 교통편

   인천-동서울

   동서울-홍천

   홍천-상창고개(07:40,08:00(양덕원우회),08:40)

   신당고개-양덕원 도보 30분

   신당고개-홍천(13:25,16:25,18:15분)

   신당고개-용문(12:08,15:13,17:03,18:13분)


3. 산경표



부부바위




친구와 낙동을 가기로 약속 됐는데 또 일정이 틀어졌다.

한강을 가기위해 06시40분 동서울발 홍천행 버스에 올랐다.

홍천에서 상창고개행 07시 40분발 지선 버스가 연결 기를 기대하며...

그러나 오늘 내게 그런 행운은 없었다.

공사구간에서 2~3분 지체 한게 치명적이였다.

할 수 없이 8시발 양덕원 우회하는 버스로 상창고개에 선다.

예정보다 40분 늦게 산행에 든다.

상창고개(上蒼峙 350m))는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상창봉리와 홍천군 남면 유치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고개로 494번 지방도가 지난다.

공원처럼 생긴 넓은 공터에 장수마을 표지석이 있다.

도로 주위에는 장승과 여러개의 솟대들도 있다.

원래 이름은 상창봉리 고개이며 창봉리는 창봉곡 아래쪽이 되므로 하창봉리(下蒼峰里)라 하였다가 그 후에 창봉리라 불렀다.

조선시대에 창봉역(蒼峰驛)이 있었다. 상창봉리 고개에서 앞 두글자만 따 상창고개가 되었다


























날씨는 포근하고 연무가 뿌옇게 몽환적이다.

초반은 임도와 나란히 가는 등로라 임도 따라 가도 될것 같다.

소나무와 활엽수가 혼재한 등로는 이미 만추로 절정의 가을이다.

고만 고만한 오르 내림으로 편안하게 가다가 양지봉이라 일컫는 782.9봉에서 활엽수가 주종인 등로의 급경사에서 복병을 만난다.

마사토길에 낙엽이 발목까지 쌓이니 도무지 낙엽 아래 사정을 알 수 없어 걸핏 하면 '기우뚱' 넘어지거나 넘어질 뻔 한다.

결국 크게 한번 '쿵'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든다.

오늘 내내 오른쪽 엉치가 시큰거려 발귀현에서 탈출을 심각하게 고려 하기도 했다.

낙엽쌓인 마사토길은 겨울 빙판길보다 더 무섭다는 걸 깨닫는다













금물산(今勿山 776m)은 강원도 홍천군 남면, 횡성군 서원면,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경계에 있는 산이다.

은산,그물산이라고도 한다.

금물산은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로 이 산에서 금과 은을 캐어 금은산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산의 모양이 그물을 친 것 같다고 하여 그물산이라 불렀다.

금물산은 금물산면이라는 조선 시대 행정지명에 반영되기도 했다.

금물산이라는 이정목은 삼마치를 지나면서부터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있는데 정작 금물산 정상에는 표지석이 없다.

수도권 산꾼들이 제법 많이 찾는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성지지맥은 한강기맥의 금물산 자락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성지봉, 삼각산,보금산, 뚜깔봉, 자산을 거쳐 섬강이 남한강과 만나는 여주 강천

합수점까지 55.2km를 이어가는 산줄기를 말한다.

동으로는 섬강, 서로는 흑천이 흐른다








시루봉(504m)은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신대리와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도원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이다.

멀리서보면 떡 시루를 엎어 놓은것 처럼 생겼다고해서 시루봉이라 부른다.

시루봉 정상에는 삼각점과 국립지리원에서 설치한 스텐레스 표지판이 있다






며칠전 국민 배우라고 칭하는 젊은 배우가 황당한 교통사고로 떠났다.

그의 나이 45세라 하니 하늘이 부르는데는 순서가 없다지만 온 국민이 패닉 상태다.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계절이 바뀌고 단풍이들고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떨어지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싸한 슬픔이....

점점 감당하기 힘들어 지고 있다.

특히 지난 10월에는 유난히 부고(訃告)가 많았다
부고가 날때마다 팔순 노모가 가는 한숨을 쉬시며 돌아 누울때 내 가슴도 저민다.

꽃이 피고 지고,해가 뜨고 지고,달이 차고 기우는 모든게, 자연의 이치 인데
인간사 생로병사(生老病死) 역시, 당연한 순리건만....이렇게 가을이 깊어지면 상념도 깊어만 간다.
고려때 우리 민초들이 부르던 노래가 있다.
나무를 다듬어 젓가락으로 들어올릴 만큼 작은 닭을 만들었다.
그 닭을 벽에 걸어두고 노모가 닭이 울기전엔 늙지 않기를 기원하는 노래 인데 고려때 성리학자 이제현이 수집해 한자로 남겼다.
 

木頭雕作小唐鷄  목두조작소당계
筯子拈來壁上棲  저자염래벽상서
此鳥膠膠報時節  차조교교보시절
慈顏始似日平西  자안시사일평서 
 
나무토막 조각해 작은 당닭 만들어
젓가락으로 집어서 벽 위에 올려두네
이 닭이 꼬끼오 시간 맞춰 울면
그제야 어머니 지는 해처럼 늙으시기를 
   이제현(李齊賢, 1287~1367), 『익재난고』 권4 「소악부(小樂府)」 

어쩌면 팔순의 어머니 애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가 돼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바탕 등로에 나뒹굴고 나니 홀산이 무서워 진다.

해 짧은 동절기 만이라도 홀산을 줄여야 하지 않나 싶어진다




발귀현(發歸峴 285m)은 발귀너미고개, 발귀고개, 새터고개라고 부른다.

홍천군지에 의하면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신론리와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신대리를 잇는 도계(道界) 역할을 하는 고개다.

고려말 王氏들이 신대리 동가른 다리로 피난와 살면서 고려의 옛도읍 송도가 그리워 질때마다 이고개까지 왔다가 저녁이면 되 돌아갔다 한데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양지봉내림에서 나뒹군후 오른쪽 엉치가 심하게 아프다.

발귀현 포장 임도에 털석 주저앉아 한참을 쉬며 탈출을 고민하다 마음을 다잡고 출발한다
















부부바위

다행히 갈기산 오름은 활엽수 보다는 소나무 숲이라 등로의 낙엽이 많지 않고 급경사도 아니라 오를만하다.

절벽아닌 바위가 어디 있으랴 절벽 바위라니 참 멋없는 표기다.

부부 바위는 꼭 '장 프랑수아 밀레 (Jean Fran ois Millet, 1814~1875년)' 의 '만종'이 생각 나는 바위다.

저녁이 되어 하늘이 붉게 물들자 하루 일을 끝낸 부부가 감자를 수확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신에게 감사 기도를 드리는 그 모습이다.

밀레가 이 바위를 보고 그렸다 하고 싶을 정도로 흡사하다




갈기산(葛基山 685m)은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용두리에서 강원도 홍천군 남면 방향으로 이어지는 44번 국도 동쪽에 솟아 있는 산이다.

국립지리원 발행 지형도상 갈기산의 한자 표기는 칡 "갈"자에 터 "기"자를 쓴 "葛基山"이지만 과거에는 일어 날 기(起)자를 썼다고 한다.

구한말 기록에는 부동산(不動山), 그 이전에는 감물악(甘勿岳)이라고 불렀다

















신당고개에서 용문 나가는 버스가 대략 17:00(양덕원)분 있으니 시간에 맞추려 속도를 낸다.

양덕원에서 3분정도 걸리니 17:03분쯤 지날거 같아서다.

있는 힘껏 내달렸으나 역 부족이다.

신당고개 홍천 휴게소에 이르렀을때 17:15분 휴게소도 주유소도 모두 폐업상태다.

양덕원 나가는 버스가 18:25분에 있으니 어느 방향도 나와는 인연이 없다.

양덕원 까지 3km 정도다.

택시를 부를까 하다가 택시 오는 시간이면 걷는게 낫겠다 싶어 걷기로 한다.(가까운 거리라 기사가 싫어 할것 같아서..)

홍천서 17:00 출발하는 인천행 버스는 이미 떠났고 19:00분 버스는 시간 여유가 있다.

잰 걸음으로 걷다가 오일뱅크 주유소에 들러 물어보니 아주머니 한분이 자기 걸음으로 25분이면 양덕원 버스 정류장에 이른단다.

양덕원에서 홍천가는 버스는 20분 간격으로 자주 있다.

신당고개(神堂峙 225m)는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삼성리에 위치한 고개로 44번 국도가 지난다.

삼성리(三聖里)는 원래 지평군 상북의 지역인데, 1908년에 양평군으로 편입되였고 1914년 지방 행정구역 폐합 조치에 따라 유곡리, 신당리,

고론리를 합쳐 성인을 모신 신당(神堂)이 있으므로 삼성리라 불렀다.

지금은 양평군 청운면에 편입된 곳이다.

삼성리의 유래가 서.박.남 세 성씨만 살았던 곳이란 그리 불린다고도 한다.

신당(新堂)은 유곡 동북쪽의 마을로 당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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