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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가리/해외 여행기

파리(대명천지 아직도 소매치기 걱정 해야돼요 ?)

無碍人 2018. 6. 5. 10:14

2018년 5월27일 일요일 맑음 천사랑


런던에서 1박은 꿈 같았다.

들어오자 나가는 찍고 자고 싸고(짐) 3고라지만 반나절의 영국 체류는 내게 유로스타를 탄다는 설렘으로 부족 할게 없다.

개통되던 1994년 11월 14일부터 언제 꼭 한번 타보리라 하던 유로스타다.

여행 안내부터 조마조마 했다.

프랑스 국영 철도노조(SNCF) 파업으로 비행기를 탈수 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이곳 파업은 하루전에 예고가 되는데 도착 하자마자 우리 일정 중에는 파업이 없다고....(앗싸)

섬나라 영국을 유럽대륙에 연결하는 역사는 20세기 최대의 토목공사였다.

유사이래 섬나라였던 영국이 비로서 유럽대륙의 일원이 된것이다. 

그후 25년 가까이 지났다.

총길이 49.94km 해저구간 38km, 영국의 폭스톤과 프랑스의 칼레의 해저 50km를 3개의 지하터널로 연결했다.

철도 전용의 이 해저터널은 영.불 합작사인 유로터널사가 오는 2052년까지 운영하며 '르셔틀'이라 불리며 관광객및

화물용 왕복 열차다.

개통당시 런던 파리를 3시간,런던 브뤼셀을 3시간 30분만에 주파 했으나 지금은 런던 파리를  2시간 30분, 런던 브뤼셀을

2시간 만에 주파 할정도로 발전했다.

가장 궁금했던것은 런던은 모든 차로가 좌측통행이다.

그런데 파리는 우리와 같이 우측통행이다.

당연 철로도 런던은 좌측, 파리는 우측 통행인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 했을 까 하는거다.

런던에서 좌측으로 가던 열차가 파리에서 좌측으로 계속 갈수는 없을테고....

이문제는 간단하게 해결 했다.

해저터널 일정구간에서 좌측으로 가던 철로가 우측으로 가게끔 설계가 됐단다.

간단한걸 괜히 궁금해 했다.

런던에서 유로스타 출발역은 세인트 판크라스역이다.

원래 워터루역이였는데 지금은 세인트 판크라스역으로 바뀌었다.

고풍스런 역사 건물이 이체롭다.

이 역사의 간판 건물은 지금 호텔로 이용하는 르네상스 건물로 1873년에 지어졌단다.(어쩐지...)

세인트판크라스역에서 프랑스로 가려면 당연히 출국심사를 받는다.

그런데 심사대가 2곳이다.

첫번째는 영국 출국심사...두번째는 프랑스 입국심사

그런데  프랑스 입국심사에서는 입국신고서를 작성하지 않는다.

유럽연합은 최초 입국하는 나라에서 입국심사를 받으면 경유하는 국가에서는 입국심사서도 작성하지 않고 간소한 절차로

확인만 한다.(솅겐조약.Schengen Agreement)

유로스타의 객차는 프랑스에서 생산된 TGV이다.

같은 TGV라도 유럽 내부의 5개국을 잇는 고속전철은 탈리스로 불린다.

TGV는 우리에게 익숙한 객차다.

우리 KTX가 TGV를 모델로하여 만든 객차이기 때문이다.

세인트판크라스역을 출발한 TGV는 금새 시속 300km를 돌파하며 터널 몇개를 지난더니 귀에 윙하는 느낌이 들며

해저에 진입함을 알 수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던 그 도버해협을 기차로 해저를 지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의 첫 인상은 산이 없다는거다.

광활한 초지와 밀밭 말로만 듣던 대평원이다.

이후 유럽 여행내내 스위스를 빼고는 몇시간씩 기차를 달려도 계속되는 드넓은 대지와 초원이 경이롭다.

이들의 풍요가 선택받은 자연에 있음은 분명하다.

좁은 국토, 산지가 국토의 70%인 나라의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나로서는 탁트인 초원과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이 저들의 경작 면적은

얼마나 될까?  그게 궁금하다.

절대로 인력으로는 경작이 불가능한...선진 농업은 그들이 똑똑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존재 할때부터 주어졌던 특권이라고...

파리 도착역은 프랑스에서 가장 큰역 파리북역

정식명칭은 Gare du Nord.

하지만 프랑스 사람은 편하게 Paris Nord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프랑스 최대의 역이며, 유럽 최대의 역으로 유로스타,탈리스,TGV 등 고속열차의 시종착역이다.

RER, B,D선과 파리 메트로 4,5호선이 지난다.

건축가 히트로프의 마지막 건물인 파리 북역(Gare du Nord, 1858~66)은 건축사적으로 중요한 건물이다.

누보 루브르가 왕궁이라는 제한된 집권층을 위한 건물을 통해 제국의 권위를 표현했다면 북역은 다수의 대중을 위한 시설을 통해

같은 목적을 달성했다.

기차역은 당시 유럽 열강이 산업 경쟁을 벌이던 장으로 대중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능 유형이었다.

파리를 대표하는 기차역에 국가 양식인 네오 바로크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했다.

여행객들에겐 가장 무서운 역으로 알려져있다.

집시 소매치기가 득실된다는데....

지나는 사람 모두가 매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 보는것 같다.

광장 바로앞에 피사의 사탑도 아닌데 삐딱하게 기울어진 건축물이 신기해 캐리어를 잠시 세우고 사진을 찍는데

울 천사 기겁을 하고 캐리어를 챙긴다.

이렇게 두리번 거리며 파리의 일정이 시작된다.



런던-파리 유로스타

나폴레옹 개선문

슬픈역사의 콩코드광장

가로수와 낭만의 상제리제거리

루브르박물관

에펠탑 세느강유람선


세인트 판크라스역







파리 북역(Gare du Nord)

건축가 히트로프의 마지막 건물인 파리 북역(Gare du Nord, 1858~66)은 건축사적으로 중요한 건물이다.

누보 루브르가 왕궁이라는 제한된 집권층을 위한 건물을 통해 제국의 권위를 표현했다면 북역은 다수의 대중을 위한 시설을 통해

같은 목적을 달성했다.

기차역은 당시 유럽 열강이 산업 경쟁을 벌이던 장으로 대중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능 유형이었다.

파리를 대표하는 기차역에 국가 양식인 네오 바로크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했다.





파리 북역(Gare du Nord)


이 삐딱한 건물이 나를 호기심 천국으로 안내 한다.







아름다운 가로수와 낭만을 대표하는 '샹제리제 거리'








개선문 : Arc de Triomphe
에뚜알 광장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개선문은 샹젤리제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나폴레옹이 오스테를리츠 전투의 승리를 자축하며 1808년에 세웠다.

로마의 개선문을 본떠서 만들었으며 기둥에는 나폴레옹의 승전을 묘사한 부조가 새겨져 있다.

군인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주며, 고대 로마 개선문의 양식을 개선문에 보여주고 싶어 했던 나폴레옹의 근세 고전주의의 걸작으로 꼽힌다














상제리제 거리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12거리가 압권이다.





에스까르고(달팽이요리)

프랑스 요리로 또한 잘 알려진 에스까르고(Escargot)는 일명 달팽이 요리이다.

독특한 향으로 식욕을 돋구는 이 요리는 프랑스식 전채요리로 널리 애용되고 있다.
달팽이 요리는 프랑스의 어느 지방의 성주가 포도농사를 망치는 달팽이를 없애는 방법으로 식용으로 먹기 시작한 것에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에스카르고는 달팽이 자체의 단백함과 부드러움이 요리의 미각을 자극하며, 프랑스식 버터향의 소스와 더불어 고소하고 향긋한

맛을 강조한 프랑스식 정통요리 중의 하나이다.











루브르 박물관(Louvre Museum)
루브르 박물관은 영국의 대영 박물관, 바티칸시티의 바티칸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

1190년 지어졌을 당시에는 요새에 불과했지만 16세기 중반 왕궁으로 재건축되면서 그 규모가 커졌다.

1793년 궁전 일부가 중앙 미술관으로 사용되면서 루브르는 궁전의 틀을 벗고 박물관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이후 5세기 동안 유럽 외 다양한 지역에서 수집한 회화, 조각 등 수많은 예술품은 오늘날 30만 점가량에 이른다.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

루브르의 피라미드는 가장 유명한 상징물이자

진입 홀인 반지층에 위치한 나폴레옹 홀로 입장하는 주출입구












모두가 교과서에서 봤던 화화 작품들...

다 기억하긴 머리 아프다.



방탄유리벽에 모셔진 모나리자.

모나리자는 ‘리자 부인’이라는 뜻

리자 부인이 수수한 검정 드레스를 입고 신비롭고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다.

이 초상화를 보면 여인의 눈썹이 없는데 그 이유는 당시에 넓은 이마가 미인으로 여겨져서 여성들이 눈썹을 뽑는 것이 유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수줍은 듯 살며시 입에 머금은 모나리자의 미소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미소가 되었다.

작품은 피란체의 부유한 비단 장수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로부터 아내의 초상화를 그려 달라는 주문을 받아 그린 작품이다.

모나리자는 음악을 아주 좋아했기 때문에 초상화를 그리는 동안 다 빈치는 가수와 연주자를 불러 그녀가 항상 신비로운 미소를 짓게 했다.

다 빈치는 이 그림을 4년 넘게 그렸다고 한다.





세계적인 명화 앞에서 한컷...ㅋㅋ

나 이런 사람이여













































에펠탑은 탑을 만든 프랑스의 건축공학자이자 설계자인 에펠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이다.

귀스타브 에펠(Alexandre GustaveEiffel, 1832~1923)은 프랑스의 부르고뉴 지방의 디종에서 태어났다.

그가 세운 에펠 회사는 1875년 헝가리의 페스트 역과 포르투갈 도루 강의 대규모 교량 공사를 수주하면서 국제적인 건설업체로 도약했다.

1884년 당시 세계 최대의 공사로 알려진 프랑스 남부의 가리비 고가교(高架橋)를 완성했다.

이후 유럽 각지의 수많은 철교를 설계하며 국제적 명성을 쌓았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뉴욕 ‘자유의 여신상’의 내부 설계와 파나마 운하의

공사에 참여했다.

1889년에는 불후의 작품인 에펠탑을 건설해 ‘철의 마술사’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만큼 에펠탑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건축물이었다


사이요 궁

부채꼴 모양의 건물로 1937년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건축되었으며

내부는 파리국립극장. 영화박물관. 문화재박물관. 해양박물관. 인류박물관으로 사용됨

중앙광장에서 보는 에펠팁의 야경과 사진찍기 좋은곳으로 유명합니다.

뒤로 보이는 빌딩숲이 파리의 신도시 '라 데팡스'








파세렐르 드빌리 인도교 주변


파리 국제박람회를 기념해서 지어진 그랑팔레 미술관 (우측 유리돔),

그 뒤가 콩코드 광장(파란지붕 근처)인데 식별이 잘안되고,

우측에 알렉상드르 3세교도 보인다


우측 황금으로 빛나는 돔이 앵빌리드 군사박물관

1671년 부상병 치료를 위해 지은 병원이었으며 노병을 위한 양로원으로도 쓰였다.

지금은 군사박물관으로 사용하고있다.

황금돔에 나폴레옹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잔디광장이 만국박람회가 열렸던 마르스 광장,

그 뒤에 건물이 프랑스의 육군사관학교로

나폴레옹이 15세에 입학하여 4년과정을 11개월에 마쳤다.

그 뒤로 높은 빌딩은 몽파르나스 타워





인공섬인 '백조의 섬' 과 다리들

저 앞이 아폴리네르 시에 나오는 '미라보다리'

자유의 여신상이 서있는 '그르넬교' 곡선을 그리는'루엘교'

2층에 지역급행열차(RER)가 달리고 있는

'비르 아켐 교(Pont de Bir Hakeim)(비라켕다리)'가 보인다




세느강 유람선

인공섬인 '백조의 섬' 과 다리들

저 앞이 아폴리네르 시에 나오는 '미라보다리'

자유의 여신상이 서있는 '그르넬교' 곡선을 그리는'루엘교'

2층에 지역급행열차(RER)가 달리고 있는

'비르 아켐 교(Pont de Bir Hakeim)(비라켕다리)'가 보인다



































에펠탑은 산업화 시대의 개화를 의미했다. 돌을 재료로 하는 건축의 시대에서 철을 재료로 하는 건축의 시대로의 전환점이기도 했다.

에펠탑은 철의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기념비가 됐다.

탑에 쓰인 철의 물량은 7300여 톤. 2년 2개월 5일의 공사 기간을 거쳐 1889년 3월 31일 대역사(大役事)가 마무리됐다.

탑의 높이는 약 300m. 1930년 뉴욕 크라이슬러 빌딩이 세워지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첨탑과 통신용 안테나가 덧붙여져 총 높이는 324m가 됐다. 에펠탑은 지금까지도 무전탑으로 이용되고 있다.
프랑스는 에펠탑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자유를 상징하는 삼색기(프랑스 국기로, 파랑은 자유, 하양은 평등, 빨강은

박애를 상징한다)를 휘날렸다.

전문가들은 에펠탑이 지난 120여 년 동안 자체 하중 때문에 약간 오그라들기는 했지만 앞으로 200~300년 동안은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에펠탑은 처음부터 파리의 상징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예술성과 공업성, 추함과 아름다움을 놓고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한 수학 교수는 공정이 3분의 2 정도 진행되는 단계에서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것으로 예상했다.

많은 지식인들과 시민들은 예술도시 파리의 미관을 망치는 혐오스러운 쇳덩어리라며 에펠탑 건립을 반대했다.

소설가 기 드 모파상, 에밀 졸라, 알렉상드르 뒤마, 작곡가 샤를 구노 등 유명 예술인들은 ‘파리의 수치’,

‘흉물스러운 철덩어리’, ‘천박한 이미지’라며 비판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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