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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가리/해외 여행기

태항산맥 교정산

無碍人 2019. 10. 13. 12:35

2019년 10월 3일 목요일 맑음 늘청 10명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호텔이나 식당에 관우신를 모시는 작은 신당이나 관우 화상이 모셔져 있다.
중국사회가  개인의 신앙이 통제된 사회임에도 신격화된 관우신을 모시는 것은 관우가 재물신으로 추앙받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이 좋아 하는 두 인물이 있는데
한 사람은 위대한 성인으로 추앙받는 공자 즉 'confucius(공자의 라틴어 표기)'이고
또 한 사람은
삼국지의 영웅 오관참육장(五關斬六將)이라 불리는 관우, 즉 관운장이다.
이 두 사람은 성인으로 모셔지고 있고 문신(文神)과 무신(武神)으로 추앙 받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무덤도 신이 모셔진 곳이라 하여 '공림(孔林)'과 '관림(關林)'이라 부른다.
공자가 신으로 모셔진 이유야 이해 되지만 관운장이 신으로 모셔진 이유는......
더구나 '재신(財神)' 즉 '돈의 신'으로 모셔진 것은 도교와 그리고 비참한 죽음,
그의 고향 산서성 등 몇가지 이유가 있다.
전국 각처에 무수히 많은 도교 사원에 가면 관우상이 모셔져 있다.
충절과 의리의 상징으로  시대마다 관우의 칭호가 변해 온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의 주군인 유비에 의해 '5호대장군',유비의 아들 유선에 의해 '장목후'로 봉해진 후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 필요에따라, 송나라 때 '충혜공 무안왕' ,명나라 때 '관성제군'...  왕과 제후로.... 급기야
청에 이르러서는 '관림' 즉, 신으로까지 승격한다.
이는 그의 비장한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
'삼국지연의'에 의하면(물론 정사보다 많이 미화)
관우가 조조의 5개 관문을 돌파하고 6명의 장수를 참살하는 오관참육장(五關斬六將) 장면은 적벽대전과

더불어 삼국지를 읽은 사람 이라면 최고의 클라이막스로 꼽는다.
그런 위대한 영웅이 위의 조조와 오나라 손권의 연합으로 여몽의 계락에 빠져 형주를 내주고 패장이되어

아들 관평과 함께 참형을 당했다.
삼국지를 읽을때 이장면에서 세상이 끝났다는 기분을 다 한번씩 느껴 봤을거다.
참형당한 관우의 머리는 유비의 보복이 두려운 손권이 조조에게 보내고 목과 몸이 따로 묻히는 비극이.......
여기서 신화가 만들어지는데 손권의 축하를 받던 여몽에게 관우의 혼이씌어 죽게되고, 조조 역시 관우의 머리를 받아 들었을 때
갑자기 눈을 뜬 관우에 놀라 병을 얻어 죽고.....
하여간 관우가 죽은 후에도 수백 년간 그의 영혼이 이 세상을 떠돌았다고 한다.

삼국지연의에 따르면, 그의 혼은 형문주(荊門州) 당양현(當陽縣)에 있는 옥천산(玉泉山) 옥천사(현재 호북성에 있는 불교 사찰)로

날아 왔다고 한다.

당시 이 산에는 보정(普靜)이라는 노승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보정이 명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절규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내 머리를 돌려주시오!"
보정이 주위를 살펴보니 말에 올라탄 관우가 공중에 떠 있었다.

보정은 관우를 안으로 모시고
"이제 아무 소용이 없소. 무엇이 좋고 나쁜지 그 경계란 없소이다.

당신은 지금 내게 머리를 돌려 달라지만, 그렇다면 당신에게 죽음을 당한 안량, 문추등은  누구에게 가서 돌려 달라고 한단 말이오."
이 이야기를 들은 관우는 큰 깨달음을 얻어 성불(成佛)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후 자주 옥천산에 나타나 악령을 퇴치하기도 하고, 재해를 미리 알려주는 등 주민들에게 영험을 보여주자 사람들은

산 꼭대기에 사당을 세워 관우를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관우가 신으로 모셔지게 된 최초의 기록이다.
또 다른 관우가 재물신으로 모셔지는데는 그의 동향 산서성도 한 몫을 한다.
청나라 당시, 산서상인(山西商人, 晋商)은 가장 부유한 상인집단 이었다고 한다.

산서상인 즉, 진상은 먼저 고향의 영웅인 관우를 고향을 떠나 외지로 갈 때 '보호신'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리고 전국에 흩어져 있던 자신들의 산서회관(山西會館),즉 진상들이 사업을 논의하는 곳인데,

그 안에 반드시 있어야 할 건물의 하나가 바로 관묘(關廟)였다.

즉, 관우는 산서 상인들에게 사업을 평안하게 보호해 달라는 바람을 비는 외에 정신적인 응집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오늘날 중국인이 모여 사는 곳 이라면 어디든 관묘(關廟)가 먼저 세워지는 추앙을 받고 있다.
임진왜란때 명군을따라 들어온 관제묘(관왕묘) 기복 신앙은 우리 나라 무속인들이  관우신을 모시는데 기여했다.
임진왜란에 승리한 명은 조선에 관왕묘(관제모) 설치를 요구했고 대표적인 관왕묘로 동관왕묘라 불리는
서울 숭인동의 동묘가 있고 전국 각처에 관제묘가 있다.


교정산(較頂山 1488m)

태항산맥 중 제일은 남태항 이며 남태항에서 제일은 교정 산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교정산은 해발 1488 미터로

남태항의 진수를 모아 놓은 곳으로 모양이 "교정" 즉 옛날 관료들이 타고 다니던 가마의 머리 모양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풍경구내에 옥미봉 화개석과 같은 천연석이 있다.
우후죽순처럼 솟아 있는 기암괴석들과 다채로움과 기이함을 뽐내고 있는 조나라 위나라 장성 유적 역사가 유구한

천운관 신기하고 독특한 마애석각이 완벽하게 남아 있다



재물신으로 관우를 모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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