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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리 부부 산방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지리산/음정-삼각고지봉-연하천-삼도봉-피아골-직전) 본문
2020년 8월 2일 일요일 구름 많음 나 홀로
설악산과 지리산을 왔다 갔다 하는 산행을 하고 있다.
수없이 많이 들락 거렸는데 아직도 안 가본 능선, 계곡이 있어 찾아서 간다.
장마철이라 날씨 따라 설악산으로 지리산으로...(친구 병선,환춘이랑)
주초 장마전선이 북상한다는 예보 따라 지리산행 버스와 탐방로를 예약했다.
그런데 금요일 오전까지 내린 비로 탐방로 정비가 안돼 지리산 모든 지역이 입산 통제다.
2일이나 남았으니 기다리자는 의견과 연기 하자는 의견으로 나뉜다.
바로 버스표 반납하고 탐방로 예약을 취소한다.
펜데믹(pendemic) 이전과 펜데믹 이후가 달라졌다.
펜데믹 시대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설득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거리두기를 유지하는 시대다.
거리두기 차원에서 서로의 작은 의견도 거리를 두는 쪽으로 결정한다.
취소 2시간 후 지리산 탐방로는 모두 정상이다.
아쉽다.
지난밤 꿈에 핸드폰이 박살나 내내 고치려 애쓰다 어찌어찌하여 정상인 상태로 꿈을 깼다.
검색창에 꿈 해몽을 띄워본다.
'개꿈이다'
'흉몽이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 조심해라'
그런데 눈에 띄는 풀이가 있다.
'하고 싶은 일을 망설이고 있다면 행동해라. 모든 일에는 잡음이 있다. 길몽이다'
내가 원하는 답이다.
점심때까지 지리산행 표가 있다면 간다.
전국이 비, 지리산만 비가 없다.
점심시간 남은 티켓 검사를 하고 왕복표 한 장씩 구해 10시간 만에 출발이다.
오늘 코스는 음정에서 벽소령길 따라 지리 주능선에 접속하고 연하천, 삼도봉, 피아골이다.
예약한 택시로 백무동에서 음정 벽소령길에 접속한다.(03:50)
하늘엔 간간히 별이 보이긴 하나 칠흑같이 어둡다.
벽소령 작전 도로... 아니 정확히 산판 도로다.
일제 강점기 수탈 현장이다.
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어딘가에서 가냘픈 여자 목소리
"안전수칙 3", "안전수칙 3"
순간 목덜미가 싸한 긴장감, 온몸이 소름이다.
이내 혼잣말로 '고장이네' 중얼거린다.
홀산의 매력이다 순간순간 이런 긴장감이 난 좋다.
산판 도로를 만들면서 부자 바위 전설이 있는 바위를 절개했다.
그 절개지에 낙석 위험이 있어 사람이 접근하면 움직임을 감지해 자동으로 경고 방송을 한다.
그게 고장으로 "안전수칙 3"만 반복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지아비와 자식을 두고 하늘로 올라간 선녀 아미가 위태위태한 부자 바위가
안타까워 내는 소리 아닌지...
산판 도로 따라 40여분, 급하게 오름이 시작된다.
이름하여 삼각 고지봉(1478m)
삼각봉이면 삼각봉이지 삼각 고지봉이라..
남원시 산내면과 함양군 마천면, 하동군 화개면이 만나는 봉이다.
마천 삼정마을에서 연하천으로 이어지고 형제봉 벽소령으로 이어지며 남쪽은 빗점골이다.
삼각 고지봉, 형제봉, 벽소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남부군 피의능선'
지리산 곳곳을 피로 물들인 남부군 전사들이 굶주림과 공포로 쓰러져간 전쟁터다.
너무나 많은 젊은이들이 산중을 방황하며 죽어갔다.
이름 모를 주검들이 흙이 되도록, 지금껏 한가닥 장송곡도 없었다.
그들의 사랑, 미움, 환희, 분노, 열정, 희망 그 모든 것은 사라졌다
그들이 꿈꾸던 해방 조국도..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도 바로 아래 빗점골에서 사살됐다.
내가 밟고 서있는 이흙 어딘가에 그들의 피가 그들의 뼈가...
내가 딛고 오르는 이 너덜 어딘가에 그들의 한 많은 주검이 잠들어 있다.
가파르게 30분쯤 오르면 산죽 군락지로 이어지고 형제봉 갈림길과 연하천 길이 만난다.
저 산죽밭 어딘가에 그들의 주검이 수의도 못 입고 누워 있다.
눈 쌓인 산을 보면 피가 끓는다
푸른 저 대 숲을 보면
노여움이 불붙는다.
저 대 밑에
저 산 밑에
지금도 흐를 붉은 피
지금도 저 벌판 저 산맥
굽이굽이 가득 흘러
울부짖는 것이여
깃발이여
김지하 詩 '지리산' 중에서
이제 우리는 이현상의 복권을 논해야 할 때다.
그는 일제 강점기 36년 중 13년을 감옥에 있었다.
비록 우리와 사상을 달리 하는 사회주의 운동가였지만 어떤 독립운동가에 못지않는 일제에
저항한 민족주의자다.
그의 주검은 화개장터 근처에서 화장돼 그 후 아무도 모른다.
국제 질서 헤게모니 속에 일어난 민족 내부 전쟁에서 우리와 체제가 다른 적군의 장수였다.
역사는 그를 반란군의 수괴로만 기록해선 안된다.
계백과 김유신은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전쟁 영웅이다.
누구도 그들을 네 편 내 편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유신과 계백은 안시성의 양만춘과 살수대첩의 을지문덕과는 다르다.
김유신과 계백은 민족 내부 전쟁 영웅이다.
그러나 양만춘과 을지문덕은 외세를 막아낸 장수다.
우리 전함에 양만춘함, 을지문덕함은 있어도 계백 함, 김유신 함이 없는 이유다.
얼마 전 사망한 백선엽과도 비교된다.
이현상과 백선엽
서로 맞서 싸운 장수다.
그러나 그들의 젊은 날은 확실히 다르다.
한 사람은 민족을 배신했던 적군의 장교, 한사람은 그에 저항한 민족주의자다.
누가 역사에서 더 높이 평가돼야 하는지는 자명한 일이다.
연하천(煙霞泉,1440m)
구름 속에 연기처럼 물이 흐른다.
형제봉 갈림길을 내려 서자 꽃밭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야생화가 아침 이슬에 피어나고 사방에서 개울물이 제각각 자기 생각대로
재잘대며 흐른다.
1440m 이 고도에 이렇게 많은 물줄기가 어디서 왔는지 경이롭다.
아침 안개가 살그머니 내려앉은 연하천 산장은 별유천지다.
산장 문을 살며시 열고 요정들이 아침을 짓기 위해 나타날 것만 같은 분위기다.
오늘 이 산장엔 나뿐이다.
코로나 19로 산장지기는 철수하고 아직 어느 산님도 도착하지 않았다.
산장 벽에 쇠귀 신영복 선생의 글씨체로 보이는 시 한수가 걸려 있다.
(낙관이 있었는데 산장 분위기에 취해 확인을 못했다)
지리산 시인 이원규 님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마지막 연이다.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만이 온전히 내 산장으로 내 마당을 누비듯 마음껏 가슴에 담는다.
차마 혼자 두고 떠나가 싫어 자꾸 뒤돌아 본다.(05:50)
노고단 쪽으로 명선봉과 토끼 봉이 이어진다.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오르면 명선봉 침엽수 지대다.
삼복중 아침이지만 서늘한 기운이 참 좋다.
가볍게 토끼봉을 지난다.
토끼봉은 토끼가 많아 혹은 토끼 모양이어서가 아니라 반야봉 정상을 깃점으로 동쪽이 묘방(卯防)이어서
토끼 봉이라 한다.
이내 화개재에 이르고 2개월 전 뱀사골로 하산한 지점이다.(08:00)
이후 삼도봉 반야봉 임걸령 피아골 삼거리까지는 익숙한 길이다.
삼도봉에서 휴식 중인 산님에게 첫 인증샷을 부탁한다.(08:30)
오늘 반야봉은 지나가기로 한다.
안개와 구름이 가득하여 전망도 없고 표지석 인증샷이 의미 없다.
임걸령 삼거리에서 간식 타임, 안개비가 내려 우산을 펼친다.(09:35)
피아골
피밭골이 변음된 것이다.
전쟁 중 병사들이 흘린 피가 계곡을 이뤘다 하여 피아골이 아니다.
피, 즉 직(稷)은 오곡 중 하나인 기장을 뜻하고 직전(稷田)은 피를 재배하던 밭이다.
피아골은 반야봉을 중심으로 내리막길에서 왼쪽 즉, 동쪽은 불무장등, 오른쪽 서쪽은 왕시루봉 능선이다.
그 사이에 있는 계곡이 피아골이다.
피아골 삼거리에서 가파르게 내려 서면 졸참나무 신갈나무 참나무가 줄 서있고 그 사이사이 단풍나무다.
지리산 제1경은 천왕봉 일출
제2 경이 피아골 단풍이다.
봄이면 진달래, 여름에는 원시림 짙은 녹음, 가을 단풍, 겨울 설경,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다.
안개비가 기분 좋게 옷깃을 적시고 몽환적인 숲길을 가파르게 내려 서면 굉음의 물소리가 먼저 반기고
귀곡산장 같은 피아골 대피소다.
내리막길 왼쪽 암봉이 흰덤봉, 흰 무덤이다.
겨울에 눈이 덮이면 무덤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피아골 산장을 만들 때 인골이 한 트럭 넘게 나왔다 한다.
빨치산의 무덤터였는지 아니면 토벌 중 집단 학살 장소였는지 흰덤봉은 알고 있을 텐데
흰덤봉은 오늘도 무심히 내려 다 보고 있다.(10:50~11:10)
계곡 따라 계속 내려가면 구계 폭포, 와폭, 남매 폭포 그리고 삼홍소다.
장마철 수량이 풍부하여 물소리도 요란하고 원시의 녹음이 짙어 물에 들지 않아도 시원하다.
단풍까지 있다면 금상첨화 겠지만 단풍 보러 다시 와야 한다는 기대가 있어 좋다.
삼홍소(三紅沼)
남명 조식의 삼홍소라는 시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흰 구름 맑은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
가을 붉은 단풍 봄꽃보다 고와라
천공(天公)이 나를 위해 뫼빛을 꾸몄으니
산도 붉고(山紅) 물도 붉고(水紅) 사람조차 붉어라(人紅)
온산이 붉게 물들어 산홍(山紅)이요,
단풍이 맑은 담에 비춰 수홍(水紅)
그 품에 안긴 사람이 붉게 물들어 보인다 하여 인홍(人紅)이다.
피아골은 내게 처음 발길을 허락했다.
시인은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했는데 내겐 다시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
견딜만해도 피아골 삼홍소, 삼홍이 궁금해 다시 와야겠다.(12:40)
1. 산행코스
음정-벽소령길-삼각 고지봉-연하천-명성봉-토끼봉-화개재-삼도봉-노루목-임걸령-피아골 삼거리
-피아골 산장-삼홍소-직전(8시간 50분, GPS 24km)
2. 산행 경로
2359 동서울터미널
0326 백무동
0350 벽소령길 출입구
044 삼각 고지봉
0535 벽소령 연하천 음정 삼거리
0550 연하 천대 피소
0740 토끼봉
0800화 개재
0830 삼도봉
0935 임걸령
0950 피아골 삼거리
1050~1110 피아골 대피소 휴식
1150 삼홍소
1215 표고막터
1240 직전마을
@. 교통편
남부터미널-백무동 심야버스
백무동-음정 택시 차단기까지 17000원
직전-연곡사 도보 15분
연곡사-구례터미널 매시 20분 1일 13회
구례터미널-센트럴시티 1일 1회 17시 30분
3. 산경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 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 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은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화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흰덤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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