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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향적봉(1614m) 눈 산행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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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향적봉(1614m) 눈 산행

無碍人 2023. 11. 22. 06:34

2023년 11월 18일 토요일 나 홀로 구름 많고 강풍

 

무주 진안 장수

눈 온다

무진장 온다.   - 안도현 -

 

급 번개다.

덕유산에 눈이 내린다.

모처럼 여유로운 주말 늦잠 한번 자 볼까 하는데...

폰에 들어온 번개 문자.

덕유산 눈 내린다고 눈 산행 공지다.

슬쩍 구미가 당긴다.

이미 다녀온 해파랑 코스가 예정돼 있어 곱방친구들과 달리 심심하던 차다.

일기 예보를 검색해 보니 어제 목요일 향적봉에 31cm의 적설량이다.

일단 콜 하고...

'곤돌라 타고 설천봉에서 향적봉(1614m) 눈구경이나 하고 백련사로 하산하면...'

게으른 눈 산행 꿈에 행복한 상상을 한다.

등산이라고 늘 오르는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가?

가끔은 이런 호사도...

 

사당역 1번 출구 화장실

늘 주말 아침 가장 붐비는 화장실이다.

여러 산악회 버스가 출발하는 까리따스 수녀원 앞

등산복 차림의 산꾼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입구 줄 서서 기다리는데

줄 무시하고 급하게 내 앞을 질러가는 사내...

익숙한 몸동작이다.

사내는 급히 자기 잘못을 깨닫고 돌아서는데..

가볍게 복부를 한방 ㅋㅋ

음악대장이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해파랑 12코스를 함께 못해 13 코스까지 어긋났다.

내가 대중교통으로 12,13코스를 한 번에 하는 바람에

오늘 나 빼고 13코스 가는 중이다.

 

곱방 친구와 방향을 달리 하는 버스를 타고 무주로 간다.

무주 진안 장수.... 내 고향 무진장이다.

그런데 인삼랜드 휴게소에서 비보를 접 한다.

강풍으로 오늘 곤돌라가 멈췄단다.

순간 게으른 산행의 꿈은 무참히 깨지고

인솔자 산악대장 고민도 깊어진다.

별수 없지

하늘이 말리는데...

내 머릿속도 빙빙 돈다.

백련사까지 6km... 백련사 향적봉 2.5km...

왕복 17km

주어진 시간 6시간 30분

인솔자는 어사길을 추천하고 있다.

어사길이란 삼봉리부터 백련사까지 왕복하는 길 아니던가?

눈 보겠다고 왔는데 고작...

향적봉 눈을 봐야 눈산행이지....

버스는 10시 30분에 삼봉리에 우릴 내려주고

백련사 까지 12시 전에 이르면 오르는데 1시간 30분,

주차장까지 하산하는데 2시간...

오후 4시엔 산행 종료 가능하다.

구천동 막초 한잔의 여유는 있다.

계산은 끝났다.

오직 행동만 있을 뿐...

내 게으른 상상은 부서지고...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산꾼 본능이 폭발한다.

나이 먹은 척하지 말자고..

뒷방 노인네 흉내 내지 말자고 나를 다잡았는데

코리아 둘레길 하면서 슬슬 나도 무뎌졌나...

곤돌라 타고 게으른 산행을 꿈꾸다니...

 

백련사까지 6km,

어사길 따라가다 보니 사람에 치여 진행이 안된다.

일단 어사길을 벗어나 도로에 오른다.

눈은 20cm 이상 내려 다져져 있다.

향적봉에 안 가도 눈 구경은 실컷 할 수 있다.

그러나 향적봉 상고대와 눈꽃에 비하랴.. 잰걸음으로 백련사다.

해우소에서 근심을 내려놓고

아이젠 챙기고 스틱 장착하고.. 12시다.

1단계 성공에 흐뭇하다.

눈은 종아리를 넘겼다.

30을 넘어 40cm... 데크 계단이 형태를 잃었다.

눈꽃이 장관이다.

활엽수는 침엽수와 달라 눈꽃이 풍성하진 않다.

그 날렵한  아름다움은 또 다른 매력이다.

침엽수가 따뜻하다면 활엽수 눈꽃은 편안하다.

잘 다져진 팔등신 비너스다.

앞서 출발한 산악회도 있는데 향적봉 가는 길에 산꾼은 별로 없다.

어사길을 앞서 많이 추월해 오기도 했지만,

오늘 대부분 산꾼들은 곤돌라를 꿈꾸다 벼락을 맞았다.

백련사에서 돌아서는 산꾼이 대부분...

9부 능선 개활지 강풍은 상상 초월이다.

눈이 없는 곳이 있는가 하면 1m가 넘게 쌓여 있기도 하다.

바람의 장난이다.

하늘은 맑은데 눈보라가 시야를 가린다.

그래도 모퉁이만 돌아서면 천국이다.

어느새 눈꽃은 상고대로 바뀌었다.

바람은 눈꽃을 날리고

또 다른 바람은 안개와 함께 눈꽃 떠난 자리 상고대를 피웠다.

향적봉(1614m)은 지옥이다.

강풍과 안개 그리고 강추위

핸드폰 카메라가 오작동한다.

간신히 인증샷하고 대피소로...

보온병 꺼내 유자차 한잔과 호두과자 몇 개로...

하산이다.

손이 얼어 할 수 있는 게 없다.

뒤에 오는 이를 위해 대피소를 비워야 한다.

하신길도 만만치 않다.

특히 데크형 계단은 급경사로 그대로 빙판이다.

눈이 다져져 계단의 형태가 없는 곳은 급경사 썰매장

조심조심 안전을 속으로 외치며 한 발 한 발...

 

산악회 아지트 식당

15시 40분

5시간 10분 걸렸다.

31명 회원 중 나 포함 5명이 정상도전

아직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산대장이

"1등이네요

날아갔다 오셨어요" 한다.

"내 가요?"

멋지게 해야 하는데 어이구

2등은 이후 40분 뒤에 오고..

나머지 3명은 자동차 출발을 5분 지연시키며 간신히 탑승했다.(17:00 출발)

눈 만나러 갔다가

나를 만나고 왔다.

아직 뭐든 할 수 있다.

나이는 숫자라지 않나?

나보다 10년쯤은 젊은 산꾼들이다.

그들이 포기한 정상 도전

충분히 할 수 있다.

아직은..

 

@. 산행코스

     구천동주차장-백련사-향적봉-향적봉대피소-백련사-구천동주차장

     (17km, 5시간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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