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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2구간종주(고기리삼거리-수정봉-여원재-고남산-사치재) 본문

이 또한 지나가리/백두대간(完)

백두대간 2구간종주(고기리삼거리-수정봉-여원재-고남산-사치재)

無碍人 2009. 7. 25. 10:07

2009년 7월22일 수요일 날씨 쾌청 오전안개, 부분일식 천사동행

 

7월21일 윤달 5월29일 먼산에 계시는 집안 어른 세분을 선영으로 모셨다.

산일을 돕기위해 고향 장수번암에 왔다가  마침 22일 비번날이라 백두대간 2구간을

종주하기로 했다.

고기리에 사시는 종손형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지고,천사와 함께 새벽 04시 형님집을 나와

1km 지점에 있는 고기리 삼거리로 이동 산행을 시작했다.

이구간은 내가 자란 고향은 아니지만 학창시절 늘 올려다보던 산들로 내꿈을 키웠던

마음의 고향이다. 특히 출발지 덕치리는 친구 종찬이 집이 있어 학창시절 꿈같은 곳이고

성인이돼서는 종손 형님집에 집안일로 자주다니면서 익히 아는 구간이다.

직접 걸어보진 않했어도 산줄기 모두가 각인돼 있는 그런곳이라 정감이 가는 산행

코스이고 낯익은 코스이기도 하다.

 

1. 산행코스

   고기리삼거리-노치마을-수정봉-입망치-여원재-고남산-통안재-유치재

   -매요마을-사치재    산행시간/ 거리(11시간50분 21.4km)

 

2. 산행경로

  04:10분 - 고기리삼거리 출발

               덕치리 입구 : 근처에 운천초등학교

                               친구집앞을 지났는데 집은 없고 빈터만 남아 있다.

                               수년전 부모님이 순창으로 이사를 해서 집은 헐고 농토와 부지만 남았다고 했다.

                                특히 친구 어머님이 지난달 6월 전주에서 갑자기 돌아가셔 이곳 친구 집에서

                                뵙고 보지 못한터라 많이 생각나고 가슴이 아팠다.

                                친구 어머님의 명복을빕니다.  

                 노지마을 : 노치마을이라 하기도 하고 가재마을이라 하기도 한다.

                               마을입구 마을 표기는 노지마을

                               선답자가 가재 마을로 표기해 놓아 새벽 안개와 어둠으로 알바 20분

                               노지마을이라 표기돼서 가장마을이라는 마을입구 우측표시를 따라갔더니

                               아닌것같아 돼돌아왔더니 노지마을입구 돌탑 좌측으로 리본이....

                               대낮이였으면 하지  않아도될 과외였다.

                               마을 중앙에 노치샘이있고 노치샘 지나 당산소나무 4그루

                 고인돌바위 : 고인돌은 아닌것같고 자연이 고인돌형태로 만든바위

                                  무명능선에서 해돋이를 기다리다 구름방해로 진행하는 중 소나무사이로

                                  해돋이 감상 특별함이 있는 일출이다. 

  06:00분 - 수정봉 : 3.2km

                         수정봉근처에 성터 흔적이있고 허물어진 돌들을지나 30분쯤 내려가면 입망치

                 입망치 : 등산로가 뚜렷하고 여기서 약간 급경사를 올라 봉우리 몇개를지나

                             오르락내리락 하면여원재에 도착한다.

  08:15분 - 여원재 : 8km

                          여원재는 남원과 함양을 연결하는 24번국도에 있으며 연재를 올라와 운봉에 접하는

                          고개마루를 여원재라한다.

                          여원재를지나 고남산가는길에 합민성터가 나오고 등산로는 양호한편이며

                           5.6km 지점에 고남산이 있다.

                           이구간은 남원산동면과 운봉면을 가르는 산줄기로  학창시절 이줄기따라

                           있는 19번국도 따라 통학하던 구간이라 산줄기가 익숙한구간이다.

                           컵라면과 빵 그리고 참외 1개로 아침을했다

                           09시경 부분일식이 있었는데 숲이우거져 해를보지는 못하고 일시 어두워지는 듯

                           하더니 서늘한 느낌을 느꼈다.

  11:30분 - 고남산 : 13.6km

                        고남산 정상에 서면 사방이 탁트여 전망이좋고 정상부에 스텐레스로 만든 푯말이

                        있으나 많이 훼손돼 있으며 5m 아래에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고남산이라는

                        큰 돌비석이 있다.

                        300m 정도 아래에 통신중계소가 있고 중계소 올라가는 도로를 몇번건너 내려가면

                        통안재에 닿는다.

             통안재 : 통안재 옆수로에서 양말을벗고 차가운 물로 세족하니 날아갈것같다.

                        통안재에서 유치재까지는 1시간 남짓걸리고 등산로는 양호하고 표시기도 잘돼있다.

             유치재 : 유치재는 바로 마을이 아래 내려다보이는곳이며 여기서 매요마을까지는 완만한

                        등산로로 산행하기가 수월하다.

  14:00분 - 매요마을 : 18km

                            오늘 산행시작후 처음 마을에서 사람을 만났다.

                            매요마을은 장수군 번암면과 남원군 운봉면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번암에서 고기리 종손 형님댁을 가기위해 사치마을을지나 자주  이마을을

                            차량으로 지나치기는 했지만 도보로 마을을 지나기는 처음이다. 

                            매요마을에서  사치재는 3.4km 많이지쳐 험한등산로는 아닌데 힘들다.

                            특히 배고품을 못참는 천사는 부쩍 짜증이다.

                            비몽사몽간에 사치재를 지나 마을뒤 농로에서 햇반으로 늦은점심을 하는데

                            사치마을로 데리려 오기로한 둘째네가 도착했단다.

                           부랴부랴 짐 꾸려 마을에 도착하니 이미 동생네가 와있다.

  16:00분 - 사치마을 : 21.4km 11시간 50분 소요

 

@ 교통편

    고기리는 남원에서 하루3회 버스가 있다.오전 6시 13시 16시

    운봉까지는 1시간 간격으로 시내외버스가 있고 운봉에서 택시로 5분 5000원정도

    사치마을도 남원에서 하루 3회 06시,13시,18시 있으며 장수군내버스가 2~3회 들어온다.

    번암장날 3회 평일2회 남원에서 번암까지는 1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있고 번암에서

    사치마을까지 택시비 7000원정도다.

    참고로 남원에서 고기리 택시비 19000원정도 사치마을 20000원

 

3. 산행개념도

 

 

 

노치마을 중앙에 있는 노치샘  

 

노치 샘(작자 미상)

 

  물 웃는 소리에

  뱅그르르 바가지가 춤추는

  노치 샘 앞에

  오래 된 구멍가게 하나있다

  들마루 아래 강아지 한 마리

  바가지를 짖어댄다

  막걸리 한 사발 받으러 들어 선 부엌

  빈 아궁이에 무쇠 솥 두 개 걸려있다


  솥뚜껑을 열면 하얀 김 속에

  고구마라도 나올 것 같아

  일곱 살까지 물고 있던

  까만 엄마의 젖꼭지를 만져본다

  빨간약 바른 젖무덤에 놀라

  들마루로 나 앉아 벌컥벌컥

  막걸리 한 사발로 달래는 갈증


  햇살 든 노치 샘

  까르르 나를 웃고

  하늘같은 당산 소나무에 합장하는

  백두대간 마을 길에서

  나는 

  마르지 않을 샘 하나

  가슴에 품는다

 

 

수정봉에서 바라본 바래봉 일출  

고인돌바위

고인돌은 아니고 자연이 만든 고인돌 

 

수정봉(804.7m)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행정리, 주천면 덕치리, 이백면 효기리의 경계에 있는 산.

수정봉은 마치 학이 날개를 피고 날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수정봉노치마을에 옛날 민씨(閔氏)라는 거지가 살았는데 그는 짚신을 삼아 팔았다.

어느 추운 겨울날 민씨가 죽어 눈 덮인 산을 헤매어 시체를 매장하려는데 신기하게도 시체의 관이

알맞게 들어갈 만큼 눈이 녹아 있는 곳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곳에 장사를 지냈는데 바로 그 자리가 용은 용인데 주인이 없다는 황룡무주(黃龍無主)의

명당이었다.

이 묘를 쓴 뒤 그 후손이 번창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묘에 호화롭게 석물을 세우고 보수를

한 뒤로는 자손들이 뜻밖에도 나쁜 일을 당해서 다시 석물들을 없앴더니 화가 없어졌다고 한다.

돌이 무거워 학이 날지 못했다는 것이다.


높이 804.7m로 운봉주천, 이백의 삼 개 읍면에 걸쳐 있다. 백두대간의 맥에서 가장 극적인

분수계를 만나는 봉우리로 남원에 들어선 백두대간매요리-고남산-여원치-입망치를 지나면

수정봉에 다다른다. 수정봉에서 바라보면 벌판 너머에 지리산 자락이 펼쳐진다.

『산경표』에서 말하는 백두대간을 비롯한 1정간 13정맥 모두는 하천을 둘러싼 하천의 유역분지

분수령을 체계화시킨 것이다.

가장 큰 백두에서 지리산까지의 백두대간한반도 물줄기를 동서로 가르는 주맥으로서 가장 큰

분수령맥이다.

이런 백두대간수정봉에 다다르면 더 이상 능선을 타고 지리산으로 갈 수가 없다.

수정봉에서 좌우 즉 덕산저수지로 빠지는 낙동강 물줄기와 노치마을에서 왼쪽으로 빠지는 요천,

섬진강 물줄기를 건널 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이 좌우 물줄기가 나누어지는 노치마을 길을 따라서만이 지리산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즉 평지가 산이 된 셈이다.

그러나 김정호『대동여지도』를 보면 이 길을 따라 정확하게 산길을 이어 놓았다.

그리고 이런 분수계를 따라 운봉읍주천면의 경계가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곳은 평지가

산이 되는 곧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을 정확하게 지키는 구간인 것이다.

오히려 이런 극적인 구간이 있는 이곳을 더욱 알려서 조상들의 정확한 분수계 설정과

백두대간의 의미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수정봉운봉분지를 에워싸는 북서산릉의 한 봉우리로 화강암이 변성받은 암석으로 이루어졌다.

심층풍화된 남원화강암의 운봉분지에 비해 풍화에 강한 암질 산으로 남아있다.

오랜 지질시대엔 정령치에서 구룡폭포로 빠지는 물줄기가 24번 국도를 따라 낙동강쪽으로

흘러갔으나 급사면의 구룡천이 상류쪽으로 심하게 침식이 진전되는 두부침식(頭部侵蝕)에

의해 정령치 물줄기와 만나면서 정령치 물줄기는 방향을 바꾸어 구룡천으로 흘러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 하천이 흐르지 않는 구간이 낙동강섬진강의 분수계가 된 것이며

이를 백두대간을 이어주는 곡중분수계(谷中分水界)로 보는 것이다.

수정봉 정상(804.7m)엔 삼각점이 있고, 성터 흔적이 있다.

입망치 

야생 앵두

단맛은 떨어지나 신맛이강하고 먹을만함

 

여원재 

남원에서 함양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로 백두대간을 넘는 고갯마루에 여원치(女院峙)가 있습니다.

 

여기에 참으로 비극적인 전설이 있으니 왜구가 노략질을 일삼던 오랜 옛날 꽃같이
아리따운 젊은 여인이 주막을 열고 있었읍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왜구 몇놈이 주모에게
달려드니 비록 저녁마다 사립에 붉은 등을 내다 거는 몸일망정  왜구의 노리개가 될수
없었던 주모는 그만 자신의 가슴을 칼로 도려내어 자결하고 말았읍니다.

 

황산대첩이라면 우리는 먼저 백제의 계백장군을 떠올리게 되지만 그곳과는 전혀 다른 전투로
고려 우왕 6년(1380년)  이곳 바래봉 기슭의 인월리와 인풍리를 점령한 왜구 아지발도를 상대로 고려의

토벌대장 이성계 장군이 격전을 벌이게 되는데 여원재의 주모가 꿈속에 나타나 일러준 대로 황산에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고남산에 오르면 주위의 모든 사물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로 이곳에서 적의 동태를 살피며

작전을 구상 한 뒤 소년장수 아지발도를 사살하므로 왜구의 난을 평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조정에서

신망을 얻어 후에 조선을 건국하고 다시 찾아와 고남산을 태조봉, 또는 제왕봉으로 부르게 되었으니

 이곳에는 이성계에 관한 일화가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후에 이성계는 꿈속에 나타나 전승의 날짜와 전략의 계시를 내려준 이 여인이 필시 산신령이라 여기어
 여인를 만났던 고개마루 석벽에 여상(女像)을 새기고 그위에 산신각을 지어 보존케 했는데 도로가

뚫리면서 산신각은 없어지고 석벽에 조각상만 남아있으며 이 석상의 여인상은 한쪽 팔이 잘려나간 형상
이라고 합니다.

고남산에서 본 남원시 산동면 면소재지

표시기도 달고  

 

고남산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산동면 경계에 있는 백두대간의 산.

높이는 846.8m이며 가재-수정봉-고남산-여원치로 통하는 백두대간의 맥상에 놓여 있다.

특히 운봉의 북서쪽을 지키는 산으로 운봉분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요천이 흘러내리는

산동남원 쪽을 모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산이다.

위치상 옛날부터 전쟁의 요충지가 되었다. 고려 말인 1380년(우왕 6)에 인월면 인월리에 본진을 둔 왜장

아지발도에 맞선 이성계가 천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이곳에 당도하여 제단을 쌓고 서쪽 기슭에 있는 창덕암

약수터에서 목욕재개하고 산신제를 올리고 황산(荒山)에서 대승을 거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고남산의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주민들에 의하면 고남산태조봉 또는 제왕봉이라고도 부른다. 태조 이성계

고려 말 왜구를 무찌를 때 이곳에 제단을 쌓아 제를 올렸기 때문이다.

주변에 이성계와 관련한 지명이 전해지는데 여원치에서 고남산 초입에 있는 마을은 이성계를 수행하던

무학대사지세를 보고 고남산의 산줄기가 이 마을 까지 뻗어 내린 모습이 마치 긴 다리를 이어 놓은 것 같다하여

장교리(長橋里)라 지었다.

또한 고남산 아래에서 산신제를 올릴 때 주둔하던 군사와 말들의 식수로 썼던 샘터 주변에 터를 잡은 권씨 일가의

권세가 크다 하여 권포리(權布里)라 하였다.


백두대간 주맥의 분수계로 고남산의 물줄기는 동쪽으로는 운봉천남천을 지나 경호강을 통해서 낙동강으로

유입되지만 북서쪽의 산동면으로는 요천을 통해서 섬진강으로 합류된다.

고남산은 중생대에 북동-남서 방향으로 관입한 대보화강암으로 남원화강암에 속한다.

이 중 반상화강암으로 조립질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산지 전체가 돔상인데 차별침식으로 경암부인 암반이 돌출되어 있어 경사가 급하다.

따라서 곳곳에 암괴들이 돌출되어 있으나 정상부는 약간 평탄한 산정을 이루고 풍화도 진전되어 있어

풍화층으로 상당히 피복되어 있다.

88올림픽고속국도에서 나와 운봉으로 달리다 보면 운봉분지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다.

산정부의 길목에 백두대간비가 세워져 있으며, 무선중계소와 헬기장이 들어서 있다.

통안재 

매요마을   

  

사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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