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주왕산(720.6m) 본문
2010년 11월 23일 화요일 맑음 가인산악회
주왕산은 전설의 산이다.
그 이름에서 당나라때 주나라를 재건한다며"후주천왕"이라 칭하고 반란을 일으킨 주도(周鍍)라는 자가 주왕이라 칭하며,
세력을 키워 당의 수도 장안에 쳐들어가, 안록산의 난을 평정한 곽자의에 패퇴하고 요동을거쳐 신라에 숨어들어 이곳에서
노략질을하다 신라 마일성 장군 형제에게 토벌됐다는 전설이다.
그래서 대전사는 그의 아들 이름을 따고, 백련사는 그의 딸 이름에서 연유됐다는 전설인데..당의 반란군이 이곳 청송까지
어떻게 흘러왔는지...정사는 아닌것같고....이곳의 도적때가 주도를 사칭해서 만들어진 전설인지도...
왜냐하면 주왕산의 원래 이름이 석병산 혹은주방산인데 나옹화상이 주왕산으로 이름을 변경해야 이 지역이 번성한다고
해서 주왕산이 됐다하니 적어도 주도와는 관련없는 일아닐까?
또하나 다른 학설은 이 지역 향토사학자 김규봉이 1990년대에 주장한것으로 신라의 왕위 계승과정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김헌창과 그의 아버지와 아들인 김주원 김법문이 관계되어있다는 학설이다.
김주원,김헌창,김법문의 3대에 이르는 왕위쟁탈전에 관계된 한가문의 비참한 이야기다.
김헌창은 아버지 김주원이 왕이되지못하자 난을 일으켰으나 패퇴하여 자살하고 그아들 김법문도 자살한 아버지 원수를
갚으려 했던 한 가문의 비극이 이산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여기에 김주원이 머물렀다하여 주왕산이라한다고...
전설은 슬프지만 지금 주왕산은 암릉과 기암이 어우러져 만추의 가을을 지키고 있다.
십수년전 주왕산을 산행할때 가슴아팠던 우리 춘양목 소나무의 깊은상처가 내가슴을 짓눌렀는데..그상처는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아프게한다.일제에의해 송진채취를 목적으로 저질러진거라는데...60년이안돼 보이는 소나무에도 상처가 있는것으로보아
아직도 누군가 일제에서 배운짓을하는지....지금은 아니고 좀 오래된듯...주왕산은 이래저래 슬픈산이다.
1. 산행코스
대전사-우능-주왕산(720.6m)-칼등고개-후리메기삼거리-3폭포-2폭포-학소대-망월대-주왕암-주왕굴-무장굴-대전사
(4시간20분,약 10km)
2. 산행경로
05:20분 - 집출발
05;55분 - 만수동출발
자동차이용 만수동주차후 가인산악회 탑승
영동고속도로경유 원주 중부내룩고속도로이용 안동경유 청송
10:20분 - 주왕산 주차장 도착
10:30분 - 대전사출발
우능
11:30분 - 주왕산정상(720.6m)
대전사에서 주왕산정상까지는 고도를 높이지만 등줄기에 땀이 나다 멈출정도로 가뿐하게 오를수있다.
12:20분 - 후리메기삼거리
가메봉과 대전사 갈림길
가메봉은 산불방제기간 통행제한구역
주왕산정상에서 후리메기 삼거리는 가파르지만 계속 고도를 낮추기 때문에 수월
후리메기 입구
13:00분 - 3폭포
후리메기 입구에서 300m
13:20분 - 2폭포
후리메기입구에서 하산하다 좌측 계곡으로 400여m지점에 위치
1폭포
학소대
급수대
망월대
14:20분 - 주왕암
망월대지나 주왕암 주왕굴 무장굴
14:50분 - 대전사
무장굴에서 뒤돌아 주왕암직전 하산길 합류, 문화재 관람료 2800원 아까와 대전사 들렀는데 뭘로 2800원 만회하나??
대전사의 소행이 괘씸하다.무슨 문화재관람할게 있다고...
국립공원에서 별도로 우회로를 만들던지 해야지 대한민국 땅 어디에 사유지 지난다고 통행료받는다고...횡포다
3. 산행개념도
@ 교통편
서울안동 고속버스 열차이용
안동에서 청송 주왕산 버스운행
산악회차로 이동
주왕산 정상부
주왕산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에 있는 산.
산의 모습이 돌로 병풍을 친 것 같다 하여 석병산이라고도 하며, 신라의 왕족 김주원(金周元)이 머물렀다 하여 주방산(周房山)이라고도 한다.
주왕산이라는 이름은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이곳에서 수도할 때 이 산을 주왕산이라 부르면 이 고장이 번성할 것이라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전한다.
산은 그다지 높지 않으나 산세가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곳곳에 기암절벽이 솟아 있어 경상북도의 소금강이라고 한다.
기반암은 시생대·원생대의 화강암·편마암 등이다. 요곡운동을 받은 고생대의 조선계지층이 곳곳에 분포하고 있으며, 계곡의 상류에서는 고생대 식물화석이 발견되었다.
전사면이 급경사이며, 사방에서 발원하는 물은 많은 계곡을 형성하면서 주방천(周房川)·괴내[塊川]·주산천(主山川) 등으로 흘러든다.
기암괴봉, 울창한 수림, 폭포 등 자연경관이 뛰어나며, 유서 깊은 사찰과 유적지들이 많아 영덕군의 일부지역을 포함한 청송군 청송읍·부동면·진보면 일대가
1976년에 주왕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총면적 105.6㎢ 가운데 청송군은 75.7㎢, 영덕군은 29.9㎢를 차지하고 있다. 주요식물로 망개나무·솔나리·노랑무늬붓꽃·
복장나무 등이 자라며, 약 555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어 희귀동식물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서쪽의 대전사에서 주방천 상류에 이르는 곳에는 이 공원의 중심을 이루는
주왕계곡이 있으며, 계곡을 따라 기암·아들바위·학소대·급수대·망월대 등의 기암괴봉이 늘어서 있다. 특히 입구에서 3㎞ 지점에 있는 기암(旗岩)은 정면에 200m가 넘는
7개의 봉우리 가운데 최고봉이며, 주왕이 대장기를 세웠다 하여 이름붙여졌다. 한가운데는 두 조각으로 갈라놓은 듯 금이 가 있는데, 고려시대 장군 마일성이 쏜
화살에 맞아서 생긴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또한 계곡을 따라 이루어진 제1·2·3폭포와 구룡소는 울창한 수림에 둘러싸여 절경을 이루고 있다. 주왕굴은 비로봉과
촛대봉 암벽 사이의 협곡에 있으며, 마장군에게 쫓긴 주왕이 이 굴에서 숨어 지냈다고 한다. 무장굴(武裝窟)은 주왕이 무기를 저장해두었던 곳이라 전해지는데,
굴 속은 큰 암석으로 가로막혀 10m 이상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그밖에도 노루용추·절골·내원(內院) 등의 계곡이 있다. 주왕계곡 입구에 있는 대전사(大典寺)는
최치원·나옹화상·도선국사·보조국사·무학대사·서거정·김종직 등이 수도했고, 임진왜란 때에는 사명대사가 승군(僧軍)을 훈련시키기도 했던 곳이다. 주왕암은
자하성에서 동남쪽으로 약 500m 되는 곳에 있으며, 이곳을 둘러싸고 나한봉·지장봉·관음봉·옥순봉·칠성봉·호암봉 등이 병풍처럼 솟아 있다.
주방산성이라고도 하는 자하성(紫霞城)은 대전사에서 약 1㎞ 지점에 있으며, 주왕이 고려군을 방어하기 위해서 3년에 걸쳐 축성했다고 한다.
달기약수탕은 주왕산관리공단 입구에서 서북쪽으로 약 8㎞ 지점인 청송읍 부곡리에 있으며, 철 이온이 함유된 탄산수로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
조선시대 철종 때 발견되었으며, 약 300m 간격으로 하탕·중탕·상탕이 있다. 푸른 이끼의 독특한 내음이 짙게 배어나는 사창계곡의 비경과 우거진 수풀림
속의 아름다운 오솔길은 아직 공해에 찌들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주변에 보경사12폭포·울진성류굴·백암온천과 동해안의 해수욕장 등이 있다. 호텔을 비롯한 숙박시설과 음식점·주차장·상가 등 위락·편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서울에서 달기약수탕·주왕산까지 버스가 운행되며, 안동 시외 버스 터미널에서 주왕산까지 직행 버스가 운행된다.
후리메기 삼거리
제 3폭포
3폭포
제2폭포
학소대(鶴巢臺)
하늘을 찌를듯이 솟은 절벽위에는 청학과 백학한쌍이 둥지를 짓고 살았다하여 학소대라한다.
어느날 백학이 사냥군에 잡혀 짝을잃은 청학은 슬피울며 바위주변을 배회하다 자취를 감추었다는 전설이 있다.
시루봉
시루봉은 그 생김새가 떡을찌는 시루와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측면에서 보면 사람 옆모습처럼 보인다.
시루봉에는 엤날 어느도사가 바위에서 도를 닦고 있을때 신선이와서 불을지펴 주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바위 밑에서
불을피우면 그연기가 바위전체를 감싸면서 위로 치솟는다고 한다.
춘양목
금강산에서 울진 봉화를거쳐 영덕 청송(주왕산)에서 자라는 소나무
@ 억지춘양
우리는 "억지 춘양이다"라고 말하면 흔히 춘향전의 춘향이를 억지로 흉내 낸다는 뜻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흔한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적송(赤松) 군락이 있다.
적송 역시도 일본 소나무로 생각하는데 사실은 우리나라 특종의 소나무이다.
특히 춘양면의 적송은 그 크기가 아름드리에 곧게 뻗고 재질 또한 매우 단단하여 세계 어느 나라의 건축 재료에도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 특산 자원이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궁궐이나 사찰, 사대부가의 집을 지을때 이 춘양목을 사용해 왔는데 그 양이 많지 않아 일반인이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이에 거만떨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른 나무로 집을 짓고는 춘양목을 사용했다고 으쓱대며 우겨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되니 이를 빗대어 사람들은 억지 춘양이라했다.
연화봉 병풍바위 급수대
주왕암
이 암자는 대전사와 함께 창건되었다고 하며 주왕의 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지은것이라 한다.
나한전뒤로 보이는게 촛대봉
주왕굴
신라때 중국주왕이 피신하여 머물렀다는 주왕굴은 촛대봉아래 날렵하게 지어진 암자가 주왕암이다.
주왕암에 서면 양사면이 바위봉우리로 되어있다.왼쪽은 촛대봉이 높게 절뒤를 막아서고 오른쪽으로 큰 절벽사이로 작은협곡이 나있다.
길따라 30여m가면 절벽아래 주왕이 피신하였다가 떨어지는 폭포수로 세수를하다가 촛대봉에서 신라장군 마일성이 쏜 화살에 최후를 마쳤으며
주왕과 그 군사 식솔들이 흘린피가 주방천을 흐르면서 수달래가 됐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무장굴
주왕이 무기를 숨겨두었던 곳이라고...
자하성
자하성은 대전사에서 동편으로 약 1km 지점에 있으며 주왕암 입구에 나한봉을 걸쳐 가로막은 돌담이다.
이 성은 주왕이 신라군사를 막기 위해 쌓은 성이다. 천년 세월을 입증하듯 지금은 덤불 속에 묻힌 이끼 낀 돌덩이로 초라하게 남아있다.
지금은 자하성의 잔해만 남았지만, 그 옛날에는 30여리에 이르는 거대한 성이었다 한다.
주왕이 패전한 지 이미 천여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그 당시 주왕이 쌓았다는 30여리의 자하성 일부가 그 때를 입증하듯 이끼 낀 돌더미가 칡 넝쿨등이 얼크러진
덤불 속에 묻혀있다. 주왕굴을 중심으로 사방을 방어할 수 있는 요새지였으니 그 성에는 돌문과 사창 등이 있었으며 곳곳에 부서진 성지의 잔해가 지금도
남아 있어 산꾼들의 마음을 숙연케한다.
대전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672년(신라 문무왕 12) 의상(義湘)이 세웠다는 설과 919년(고려태조 12) 눌옹(訥翁)이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절이 있는 산과 절의 이름은 주왕의 설화에서 유래한다.
《주왕내기(周王內記)》에 따르면, 중국 당나라의 주도(周鍍)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에 쳐들어갔다가 크게
패하고 신라로 건너와 주왕산에 숨었다. 이에 당나라가 신라에 주왕을 없애달라고 부탁하자 마일성 장군 오형제를 보내 주왕의 무리를 죽였다고 한다.
그 뒤부터 주왕이 숨었던 산을 주왕산이라 하고, 절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의 이름을 따서 대전사라 하였다는 것이다. 절 이름은 나옹화상 혜근(惠勤)이
붙였다고 한다. 또한 신라의 주원왕(周元王)이 수도했던 산이라서 주왕산이라고 부른다는 설도 있다.
창건 이후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신동국여지승라랍》에는 주방사(周房寺)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승군을 훈련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조선 중기에 불에 탄 것을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부속 암자로는 백련암(白蓮庵)과 주왕암(周王庵)이 있다.
여기서 국화차를 준다기에 입장료 생각나서 가보았더니 먼지만 풀풀난다.
인심사나운 절간이다.
돈독이 오른 조계종 각성하시라...그래서 ??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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