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백두대간 14-1구간 (이화령-조령샘-조령산-신선암봉-795봉-조령관) 본문

이 또한 지나가리/백두대간(完)

백두대간 14-1구간 (이화령-조령샘-조령산-신선암봉-795봉-조령관)

無碍人 2011. 1. 19. 09:30

2011년 1월15일 토요일 영하16도,강풍 체감온도 영하30도이하,천사랑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딱 그교훈을  깨닿게 하는날이다.

1월15일오후부터 오랜 고향친구들과 수안보모임에 참석하기전에 근처를 진행중인 대간코스를 한번 가야한다는 욕심이, 이강추위에

나는 대간길에 나섰다.

며칠전부터 날씨를 예의 주시했는데 일기예보는 주말에 최고의 강추위라고...

그러나 마음에 작정하고나선 마당에 일기예보 정도는 참고사항이 아니였다.

눈만 오지않는다면....그래서 자동차가 못다닐정도는 아니라면...욕심이 과했다.

새벽3시기상 준비된 배낭을 차리고 시동이 간신히 걸리는 자동차(LPG연료사용으로)로 한참을 실랑이하다가...겨우

자동차가 이정도이니 오늘 아침 도대체 온도가 ...궁금하다. 영하16도  크 ~ 최악의 상황이다.

7시 이화령에 도착하니 강풍에 흣날리는 눈발은 쌓인눈이 다시 날리는....바람에 차문도 열리지않는 전쟁터상황이다. 

여기에 주차를해도 걱정이다.이날씨에 자동차 시동이나 걸릴까?다행히 구름없으니 낮에는???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출발이다.

바람이덜한 산장 가까이 주차하고 개스를 잠그고...

다행히 산속에 진입하니 견딜만하다.

조령산까지는 평범한 겨울산행, 천안에서 왔다는 30대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분 세분이 앞서고있다.

간단히 수인사를하고....목적지가 하늘재란다. 욕심이생긴다. 이분들 하늘재에 자동차 한대주차하고 왔다고...같이도착하면 태워준다고..

사실 나도 처음 계획을 하늘재로 잡았다가...오늘 날씨가 심상찮아...이미 조령관으로 마음 정한상태였다.

조령산까지 진행속도로 보아...충분히 하늘재까지 갈수있다는 생각이...

그런데 문제는 우리보다 천안에서 온 젊은이 세분중에서 먼저발생했다. 

한분이 배탈이 났는지 몇번 지체하더니 설상가상으로 발을 삐친것인지 힘들어한다.

이미 우린 이산행중 난코스 40~50여개의 밧줄타기가 시작되고 ....

천사와 내가 앞서고...눈온뒤 지나간 산꾼이 있기는한데....이코스는 강풍으로 쌓인눈의 발자욱도 없애고, 무릅이상 쌓인눈을 러셀까지

해야한다. 체력소모가 심하다.

선답자의 산행기에는 이코스의 밧줄은 심하게 메달리지않아 수는많아도 아기자기하다고...

오~ NO다. 눈쌓인..강풍에 체감온도는 이미 30도 아니 50도이하인거같다.

손발이 시리고,얼굴은 들수가없고....생수병은 꽁꽁.사과,귤모두 냉동상태로 먹을수있는게 없다.

더군다나 손이 시리니 밧줄잡는손에 힘이안들어가....결국  천사가 두번이나 미끌어지고..한번은 언 밧줄이 다리에 걸려 낭떨어지 직전에

멈췄다. 아찔하다. 천사를 부축해 올리고 밧줄을 당기니 힘없이 들어올려진다. 이게 미끌어졋다면...온몸에 힘이빠진다.

바람을 피할곳에 서서 보온병에서 물한잔씩 마시고...몸을녹이고 있으니...천안팀이도착하고..

천안팀이 끓인 라면 국물 한모금 얻어마시고...천안팀이 앞서가고 따라가기로했다.

러셀을 하지않아 체력 소모가 덜하긴한데....두번 미끌어진 울 천사 충격이 심한것같다.

온몸에 한기가 들고...춥단다. 자꾸 천사를돌아보고 서있는시간이많아, 지체되고...

카메라도 작동이 안된다. 계속 밧데리가 없다고...새걸로 교환해도 없다고...온도가 낮아 오작동이다.

신선암봉 표지석 사진도 찍을수없다.작동했다 안했다. 이래저래 지체다.

795봉지나 새재길로 하산을 제촉하고...설상가상으로 탈출에 급급하다보니 조령관으로 바로가지못하고 조령관과 2관문중간으로 탈출한거 같다.

조령관으로 새재길을걸어서 마루금에 합류하고...덕분에 새재길을 걷는 불로소득은 얻은셈이나...알바를한거다.

천안팀도 더이상 진행은 못할거같다고...2관문쪽으로 하산하고...

난 조령관으로 대간길에  합류하고 싶어 거슬러 올라갔다. 천사도 밧줄만 잡지않아도 살거같다고...새재길을 손잡고 걸었다.

조령관 직전까지 빙판길을 올라와 기다려준 연풍택시 백종석 기사님(011-459-5206)덕분에 강풍과 추위에 기다리는 수고는 없었다.

이화령은 강풍으로 지옥을연상케한다.천안팀 자동차는 가고 없고 내차만 강풍에날려온 눈발에 맛서고있다.

택시기사님께 시동후까지 기다려달라 부탁하고 10여분만에 간신히 시동하고...수안보로...

서울시 수안보연수원에 이미 도착한 친구와 합류하고 씻기도전에 독한 양주한잔 들이키고 과매기로 안주하니 살아온게 감사하다.

저녁후 노천온천에서 바라본 반달은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했다.

무모한 도전이었고...지나친 내욕심에 나는 손가락4개가 얼음박힌것같고...천사는 손가락 발가락까지 동상이다.

혹한기 대간종주는 무모하다. "過猶不及" 이 진리를...신선암봉의 교훈을 잊지말자.

 

1. 산행코스

   이화령-조령샘-1005헬기장-조령산-신선암봉-795봉-깃대봉갈림길-조령3관문

   (약9.5km,7시간10분)

 

2. 산행경로

   04:00분 - 부개집출발

   07:00분 - 이화령도찯

                 영동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경유 연풍 IC진출 이화령구길 이화령산장도착

   07:20분 - 이화령출발

   08:10분 - 조령샘도착

                 샘은 꽁꽁얼고 천안에서온 산님3분 만남

   08:40분 - 조령산(1025m)

                 카메라 작동됐다 안됐다 오작동시작 강풍에 서있기 힘듬

   10:20분 - 신선암봉 갈림길

                신선암봉가기전 천사두번 미끌어짐

                신선암봉 카메라 담지못하고 안부에서 천안팀이 끊인 라면으로 요기

                계속된 러셀로 체력 그로기상태, 선두 천안팀에 양보했으나 천안팀도 부상자로 이후도 계속 앞서거니 뒤서거니함

   12:30분 - 795봉

                 이곳에서 알바한 발자욱따라 내려가다,새재길 동화원으로 하산

                 천안팀은 2관문으로 가고 우린 삼관문으로 진행

   14:30분 - 조령3관문도착

                 연풍택시 미리도착 기다려줘 쉽게 이화령도착

   15:20분 - 이화령도착

                백종석기사님 조령산농원 같이경영으로,집에들러 선물용곳감 두박스 택배예약하고, 친구와 먹을것 한박스 구입후수안보연수원

   14:30분 - 수안보연수원도착

 

@ 교통편

   자동차이용 영동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 연풍IC이용 이화령 옛길 이화령산장도착

   수안보연수원에서 괴산IC이용 중부내륙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 이용 인천도착

 

3. 산행개념도

 

 

  이화령(548m)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경계에 있는 고개.높이 548m로 조령산과 갈미봉이 맞닿는 안부에 위치한다.

  이화령의 남동부에는 조령천의 지류가 흐르며, 북서부에는 쌍천의 지류가 곡류한다

 

 조령샘

 

  조령산(1025m)

조령산은 나는 새도 쉬어 넘는다는 험준한 새재를 품에 안은 백두대간의 산으로 충청북도 괴산군과 경상북도 문경시의

경계를 이루면서 이화령 (523m)을 연결하며 크고 높은 능선들이 줄기를 이루고 있어 가히 첩첩산중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신라가 북쪽에 계립령과 산 아래 조령고개를 열어 고구려와 물물교환 등 상업교류로서의 역할과 국경 분쟁 때 주요 통행로로서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 또 고려를 세운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조령산을 사이에 두고 큰 싸움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문경 쪽 제1관문 근처에서부터 협곡의 양안은

층암절벽으로 나는 새가 아니고서는 넘기 어려움에 이것을 가로막아 성채를 쌓아 천혜의 요새를 만들었으니 일부가 당관이면 만부가 범하지 못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조령산 등산은 이화령 고개에서 산행을 시작 , 정상에 오른 후 하산은 서북쪽 절골을 거쳐 내려오거나 산행에 자신이 있을 경우 삼관문까지 종주하는 코스가 있다.

이화령휴게소는 해발 523m의 높이에 있으므로 이곳에서부터의 시작이 순조롭다. 이화령휴게소에서 차를 주차한 후 북쪽으로 경북 관광안내지도가 세워져 있는

곳으로 진입하여 산허리를 타고 40분 쯤 따라가면 주능선의 안부에 있는 헬기장에 도착한다. 헬기장에서의 조망은 충북 연풍면과 경북쪽의 탁 트인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헬기장을 뒤로하고 소나무 터널을 지나 20분 정도 더 오르면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왼쪽으로 약 100m 쯤에 조령샘이 흐르고 있고 주위에는 갈대가 무성히 자라고 있다.

조령샘은 시골의 아낙네처럼 조심스레 생겨져 있으며 이 부근 일대는 무수히 자란 갈대와 억새풀이 뒤덮여 있어 장관이다 . 억새풀사이로 나가면 잣나무가 빽빽한 숲길을

지나 참나무 숲길로 들면서 약 20분 만에 전망이 확 트이면서 1,017봉의 헬기장이 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 주흘산 (1,106m)의 전경이 멋지게 펼쳐지며 조령관문으로 들어가는 차도가 계곡 아래로 내려다보이고 남으로 건너편에 백화산(1,063m)의 육중한 모습도 보인다.

여기서 약간 내려가는 듯하다가 5분쯤 올라가면 정상이다. 정상은 조령산이라는 표석이 있어 쉽게 알 수 있는데 주변에 커다란 나무들이 있어 전망은 그리 좋지 않다 .

서쪽 아래로는 신풍리와 원풍리 일대가 보이고 북쪽으로는 월악산(1,097m)이 아득히 보이는 앞부분이 멋지다.

정상이 지도상 높이는 1,025미터이고 헬기장의 높이가 1,017미터로 표기되어 있다. 하산길은 정상에서 북쪽으로 약 5분 정도 내려가면 안내 표지판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신풍리와 삼관문을 알려주고 있어 쉽게 등산로를 알 수 있다. 이곳을 지나면서 부터는 곳곳에 세미클라이밍 지대와 급경사지대가 있어 매우 조심스러운 산행이 시작된다 .

이우릿재에서 정상까지의 산행이 쉽고 편한 코스라면 , 거칠고 험한 남성적 코스는 바로 정상 아래부터의 코스이다. 정상에서 약 30분 정도를 가면 두 번째 이정표를 만날

수 있고, 다시 20분 정도 더 가면 세 번째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을 지나면 정면으로 암릉지대가 눈앞에 펼쳐진다 . 칼날능선과 바위봉우리을 지날 때는 바로 발밑으로 천혜의 절벽이 있어 아찔하나 이러한 전율을 맛보면서 몇 곳의

급경사와 절벽길을 지나면 813봉에 닿게 된다. 잠시 쉬노라면 주변에 군데군데 피어있는 철쭉 , 진달래 등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마지막 봉우리를 지나면 삼관문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이고 이곳을 지나 약 30분 정도 내려가면 성곽이 눈에 들어온다. 성곽을 따라 100m쯤 가면 조령산 자연휴양림으로

연결되어 등산을 마치게 된다. 이곳에서는 삼관문이 웅장한 모습을 간직한 채 오랜 역사를 지키고 있는데 등산을 마치고 이곳을 구경해도 좋을 듯하다. 정상에서 하산길은

북쪽능선을 타면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신풍리 하산로를 택할 경우 절골 , 신풍마을로 하산할 수 있다. 상암사 하산길을 따라 내려갈 경우 주능선이 약간 왼쪽으로 휘어져

나가게 되는데 내리막길에 나무계단을 설치해 어렵지 않게 내려올 수 있다.

상암사에서 20분정도 하산하면 계곡의 합수지점 북쪽으로 거대한 암벽이 나타나는데 그 길이가 400m 높이가 200m로 등반인들의 암벽훈련장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곳을 지나면 점점 길도 넓어지고 계곡도 크게 열리면서 다시 40분쯤 내려가면 민가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신풍리 절골 마을이다.

 

 

 

 

 바람이 만들어논 눈벽이다.

 사람키높이다. 여기를 러셀하며 지나야한다

이 줄이 시작이다

이런줄타기를 40~50번 했으니.....

 신선암봉

 

 칼등능선

 

 

 

 

 울 천사 줄만봐도 경기 할지경...

 

 

 

 이줄 지겹다...글고 미안하다.

 

 신선봉...마역봉

  이사진 찍고 추락...

 

  먹을수 없을정도로 꽝꽝이다 우린 강풍부는 냉동실을걷고있다.

  새재길

 

 

  눈을 뜰수없는 이강풍...

 

 새재길

『문경새재』는 조선 태종 14년(1414년) 개통된 관도 벼슬길로 영남지방과 기호지방을 잇는 영남대로 중 가장 유명하며 조선시대 옛길을 대표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초점(草岾)’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조령(鳥嶺)’으로 기록된 길로 조선시대 영남도로에서 충청도(한강유역권)와 경상도(낙동강유역권)를

가르는 백두대간을 넘는 주도로의 역할을 했다.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관도로 제1관문 주흘관, 제2관문 조곡관, 제3관문 조령관 등 3개의 관문과 원(院)터 등 주요 관방시설과 정자와 주막 터, 성황당과

각종 비석 등이 옛길을 따라 잘 남아 있고, 경상도 선비들의 과거길로서 수많은 설화가 내려오고 있는 등 역사적, 민속적 가치가 큰 옛길이다.
또한 문경새재가 위치한 주흘산, 조령산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식생 경관과 옛길 주변의 계곡과 폭포, 수림터널 등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경관 가치가 뛰어나며,

문경시의 ‘옛길 걷기 체험“, ”과거길 재현“ 등 옛길과 관련한 다양한 체험 행사가 매년 개최되고 있어 현대인들이 조선시대 옛길 문화 및 선비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훌륭한 옛길 자원이다.

 

 

 

 이진터

 

 

 

 

 조령관

 

@조령삼관문(鳥嶺三關門)

사적 147호

명칭 : 문경관문(제1,제2,제3관문 및 부속성벽)(聞慶關門(第1,第2,第3關門및附屬城壁))

이 관문은 고려 태조가 경주를 순행차 고사갈이성을 지날때 성주 흥달이 제 아들을 차례로 보내어 귀순하였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이 관문은 영남 지방과 서울 간의 관문이며 또한 군사적 요충지이다. 삼국시대에는 이보다 동쪽 계림령이란 중요한 곳이 있는데, 고려초부터는 이곳을 새재라고 하므로

조령이라 이름하고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하였다.

조선 선조 25년(1502) 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시 유끼나가'가 경주에서 북상해오는 '카토오 키요마사'의 군사와 이곳 조령에서 합류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다. 이때 조정에서는 이곳을 지킬것이라 생각했지만 신립 장군은 때가 늦었으므로 충주로 후퇴하였다. 그후 충주에서 일어난 의병장 신충원이 오늘날의

제 2관문에 성을 쌓고 교통을 차단하여 왜병을 기습하였다. 이곳의 군사적 중요성이 재확인되자 군사시설을 서둘러 숙종 34년(1708)에 이르러서야 3중의 관문을

완성하였다. 문경에서 충주로 통하는 제 1관문을 주흘관, 제 2관문을 조동문 혹은 조곡관, 그리고 이곳 제 3관문을 조령관이라 이름한다. 제1관문에서 2관문까지

거리는 3km, 2관문에서 3관문까지의 거리는 3.5km이다.

 

제1관문 주흘관(主吃關)

영남 제1관문인 주흘관은 새재 입구에 있는 성문으로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어 있다.

숙종 34년(1708년)에 축조하였고, 영조 때에 조령진이 설치되어 문경현감이 수성장을 겸하였다. 한말 항일의병전쟁 때 일본군이 불태웠던 문루를 1922년에 다시 지었다.

주흘관은 정면 3칸, 측면 2칸, 협문이 2개가 있고 팔작지붕이며 홍예문은 높이가 3.6m, 폭 3.4m, 길이 5.4m이고, 대문의 높이는 3.6m, 폭 3.56m, 두께 11cm이다.

좌우의 석성은 높이 4.5m, 폭 3.4mm, 길이 188m이고, 부속산성은 높이가 1-3m, 폭 2-4m, 길이는 동측이 500m, 서쪽이 400m이다. 개울물을 흘려 보내는 수구문이

있으며 3개의 관문 중 가장 옛 모습을 지니고 있다


▪ 제2관문 조곡관(鳥谷關)

조선 선조 27년(1594)에 축성 하였으며 중성,조동문,주서문으로 불라고 있다. 선조27년에 충주 수문장 신충원이 단독으로 축성한 곳으로 중성이라고도 하며 숙종조에

관방 을 설치 때 구성을 개축하였으나 관은 영성(제3관문)과 초곡성(제1관문)에만 설치하고 이곳에는 조동문만 설치 하였다.

그 후 1907년에 훼손되어 1975년에 복원하고 문루를 옛 이름 도동문이라 부르지않고 조곡관이라 개칭하게 되었다. 누각은 정면3칸, 측면2칸, 좌우협문2개, 8작지붕이며,

홍예문은 높이3.6m, 폭3.56m, 두깨11cm, 좌우 성벽높이4.5m, 폭3.3m, 길이73m 좌우에 부속된 산성 높이2m, 폭2.3m길이 동측 400m, 서측이100m 이다.


▪ 제3관문 조령관(鳥嶺關)

새재 정상에 북적을 막기 위해 선조 때 쌓고 숙종조(숙종 34년 : 1708)에 중창하였다. 1907년에 훼손되어 육축만 남고 불탄 것을 1976년도 홍예문과 석성 그리고 누각을

복원했다. 조령관을 기준으로 남쪽은 경북 문경 땅이고 북쪽은 충북 충주 땅이다. 이곳에서 북쪽으로는 마폐봉을 지나 북암, 동암문, 부봉, 주흘산으로 가고 남쪽으로는

깃대봉, 조령산 공산진, 이화령으로 이어진다.

이 누각은 정면이 3칸,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2개 있으며 팔작지붕이다. 홍예문은 높이 3.88m 폭 2.98m, 길이 6.12m이며, 좌우의 석성은 높이 4.5m, 폭 3.2m 길이

185m이고 부속산성의 높이는 2-3m, 폭 2-3m 길이는 동측이 400m, 서측이 400m이며 대문의 높이는 3.9m, 높이는 3.9m, 폭 3.56m, 두께 19cm이다.

조령관 앞에는 10여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화전민 이주정책에 따라 이주했다.


 

 ▪ 신립과 조령관문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부산에 상륙한 왜군은 파죽지세로 경상도를 연파하고 한양으로 향한다.

그들 역시 영남대로를 따라 거슬러 오던 참이었다. 조선의 조정은 신립 장군에게 왜군을 격퇴할 것을 명한다. 신립은 어디서 적을 막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제일감으로 떠오른 것이 새재다.

새재는 넘는 길을 제외한 주변의 산세가 가파르고 험해 새재에 든든한 방어막을 구축하고 험한 산 위에서 공격을 한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신립이 새재로 향하던 어느 날 밤, 꿈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여인은 탄금대에서 남한강을 배수진으로 치고 싸운다면 능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신립은 꿈속에 나타난 여인의 말을 따른다. 그러나 신립이 이끄는 군사는 노도처럼 밀고 오는 왜적을 막아내지 못하고 탄금대에서 전멸하고 만다.

이 싸움을 두고 훗날의 사가(史家)들은 새재에 방어막을 쳤더라면 속절없이 당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정은 새재에 3개의

성을 쌓고 문을 만들었다. 조령 1, 2, 3관문이 그것이다. 성문은 모두 남에서 치고 올라오는 왜적을 막기 위해 북쪽에서 잠그게 만들었다

  깃대봉

  백종석기사님 미리와 대기중이시다.감사하다

 조령(643m)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경계에 있는 고개.
높이 643m. 이화령으로부터 북쪽 약 7㎞ 지점인 조령산(1,017m)·신선봉(967m)·마폐봉의 안부에 위치한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 만큼 험하다 하여 새재·문경새재라고도 한다. 영남지방에서 소백산을 넘어 서울에 이르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로 조선시대의 주요교통로였다. 고

개를 따라 조령천이 남류하며, 동·서 사면은 절벽을 이룬다. 삼국시대에는 죽령과 계립령(鷄立嶺)을 이용했으나, 조선초 태종 때 새로 조령을 개척했다고 한다.

산골짜기의 기슭을 돌아 오르게 되어 있는 천연의 요새지로 임진왜란 이후인 1594년(선조 27)에 조령 제2관문인 중성(中城)을 설치했다.

그후 1708년(숙종 34)에 중성을 중건하고, 초곡성(草谷城:제1관문)과 영성(嶺城:제3관문)을 축조했다. 즉 문경읍에서 이화령 쪽으로 2㎞ 떨어진 곳에 문경새재의

진입로가 있고, 진입로를 따라 약 3.5㎞ 거리에 제1관문인 주흘관(主屹關)이, 이곳에서 약 3㎞ 떨어진 산 속에 제2관문인 조곡관(鳥谷關)이, 다시 3.5㎞ 떨어진 곳

인 조령에 제3관문인 조령관(鳥嶺關)이 있으며, 관문 좌우로 성곽이 둘러져 있다. 1925년에 이화령에 국도가 건설되면서 서울과 영남을 잇는 관문으로서의

역할은 상실했으나 1966년 3월 22일에 제1·2·3 관문과 성벽이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었다. 1970년대 중반에 관문들을 복원하여 주변을 관광지로 개발했고,

1981년 6월 4일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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