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봉화산(919.8m) 본문
2011년 5월19일 목요일 날씨 맑음 가인산님 34명
봉화산은 백두대간상의 지리산과 덕유산의 중간에 위치한 산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발원한 백두대간은 동에서 서로 지리산 주능선을 따라오다가 노고단 성삼재에서 만복대로 이어지고
만복대는 정령치를건너 고리봉을만들고 고리봉에서 세걸산지나 바래봉줄기를 만들더니 대간길은 고리봉에서 운봉분지를
건너 수정봉 여원재를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북진의 자세를 취한다.
고남산에서 사치재를 건너 봉화산에 이르니 그 이름에서 보듯 봉화산은 우리나라에 흔히 있는 산이름으로 봉수대가 있었던
산봉우리라는 뜻으로 대간길이 열리기전에는 "봉수대 있었던 산"이라불리며 이름도 변변히 없던 산이다.
1988년 한국체대팀이 처음 대간길을열면서 봉화산이라는 그럴듯한 이름도 얻고,봉화산,백운산,영취산지나 육십령 그리고
덕유산에 이르는 대간길과 영취산,무령고개,장안산으로 갈라지는 금남호남정맥길이 만나는 지지계곡과 더불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다.봉화산이 더욱크게 알려지게된것은 대간꾼에 의해서 세상에보여지는 철쭉군락지가 소개되면서부터다.
사실 이 철쭉은 이지역 주변 산 어디나 지천으로 널려있어 소위 경제적 수목에 방해가 된다고 내가 어렸을적에는 땔나무로 마구
베어내고 소나무를 심기위해 뽑아내던 식물이다.
더욱이 진달래는 참꽂이라 하여 배고프던시절 구황식물 대접을 받았지만 철쭉은 개꽃이라 하여 먹을수없고 독이 있다하여 천시하고
무시하던 꽃인데 요즘은 진달래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이곳 봉화산을 세상에 알리는 꽃이되고있다.
이처럼 봉화산은 백두대간길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가장 빠르게 유명세를 탄 산중에 하나다,
이산아래 번암에서 유년과 청년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가슴뿌듯할 수 밖에..
특히 봉화산이있는 번암의 지지계곡은 산경표에서 인문학적으로 빼놓을수없는 "산자 분수령"의 논리를 잘증명해주는 사례로 뽑힌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란 무엇인가?
뫼산(山) 스스로자(自) 나눌분(分) 물수(水) 고개령(嶺) 한문 해석 그대로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른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라는 뜻이 된다.
더 쉽게 표현하면 “두 능선(稜線) 사이에는 계곡이 하나 있고 두 계곡 사이에는 능선(稜線)이 하나 있다” 라는 말이된다.
그러므로 나라 안에 산(山) 없이 시작되는 강(江)이 없고 강(江)을 품지 않은 산(山) 이 없으니 산(山) 과 강(江)은 하나인 것이다.
지도에 나라의 물줄기란 물줄기를 모조리 그려 놓으면 나머지 공간이 몽땅 다 산줄기가 되는 것이다.
강은 이골 저골에서 흘러나온 물줄기들이 모이고 모여서 하나의 강이 되어 결국은 바다로 빠져나가는 것이고 산줄기도 마찬가지다.
무질서하게 보여도 절대로 서로 얽히거나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길이 있는 어느 곳이라도 결국은 하나의 강이 되어 하구(河口)로 흘러 나가며 산줄기가 있는 어느 곳에서든 능선(稜線)만 따라가면 백두산에
지리산에 도착(倒着)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산따라 물따라 살아왔다.
지지리 사람들은 나들이 갈 때 주로 어디로 갈까?
당연히 "남원"이다.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그래서 "남원 100리길" 해가면서도 주민들은 남원을 생활권으로 산다
그 까닭이야 물론 남원 가는 길에는 재(峙)가, 다시말해 넘어야할 산이 없기 때문이다. 물길 흐르는 대로 걷기만 하면 된다.
함양 쪽으로는 1278.6m의 백운산에서 발원한 높이 750미터의 중고개재가, 장수 방향에는 장안산(1236.9m)에 대변되는 어치재, 밀목재 하여 그만한 높이의 장벽이
두개나 버티고 있다.
결국 거리상으로 가장 가까운 장수읍이 산과 강의 이치에 따라 가장 '먼' 동네로 간주되는 것이다.
강은 사람을 흐르게 하고, 산은 가둔다. 강이 동질성을 품는 동안, 산은 이질성을 키운다.
이 땅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자 할때, 산과 강을 보는 눈부터 가다듬어야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물론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산맥이 모두 다 틀리다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렇게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산경표 이론이 있는데 이는 모르고 일본학자에 의해 정립된 산맥만 가르치는것은 아니다 싶다.
나는 대간과 정맥을 종주하면서 모든 능선은 결국 백두산(지리산)으로 통한다는 이론을 증명하고 있으며, 모든 능선길은 곧하나다는 것을 보고있다.
1. 산행코스
복성이재-짓재-꼬부랑재-다리재-봉화산(919.8m)-임도-하동마을(약10km,4시간소요)
2. 산행경로
06:30분 - 인천 만수동 출발
08:00~30분 - 옥산휴게소 아침
10:00분 - 번암면 자매반점과 번암시장
바퀴벌레가 나왔다는 그 자장면집, 은희가 가만히 수저를 놓고 영수가 맛있게 자장면을 먹는 모습을 그윽히 바라보던 그 대나무 발도 있다.
바퀴벌레가 나왔다는 설정은 영화일뿐이고 이집 자장면은 쫄깃쫄깃 이동네 유일한 반점이다.
번암시장에서 번암 막걸리 몇통사고 출발' 번암 막걸리는 걸죽하고 달달하여 목넘김이좋고 다음날 머리가 아프지않다.
11:00분 - 복성이재 출발
11:20분 - 짓재
아뿔사 철쭉은 온데간데 없고 몇년전 왔을때 없던 등산보행용 닥트가 설치되고 철쭉 군락은 더욱 넓어졌다.
여기 철쭉 제대로 맞추려면 3대는 공들여야할듯
금년에는 이상한파로 꽃봉우리질때 얼어서 개화가 안됐단다.
12:00분 - 꼬부랑재
짓재부터 봉화산에 이르는 길은 우리나라 산중에 산과일과 두릅,산나물이 가장많다.
좌우 등산로 따라 두릅이 지천으로 하동마을로 하산하는길에도 두릅천지고,이름도 다양한 산나물이 즐비하며.으름,다래,보리수가
이렇게 많이 자생하는 산은 아직만나지 못했다.
올가을 으름,다래따러 다시와야겠다.
13:00분 - 봉화산(919.8m)
정상에는 철쭉이 만개해있다.
다행히 지난 한파때 봉우리가 생기지않았던 철쭉이 한파를피해 피고있으니 고도가 높아 봉우리가 나중나온것도 생존에 도움이된거다.
없던 봉수대도 생기고 산불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첨단화됐는데 감시초소는 치우지않아 흉물스럽다.
30여분 정상주 한잔씩하느라 부산을떨다 임도따라 좌측하동마을 방향으로 하산
봉화산정상에서는 대간길 남서쪽으로 고남산이보이고 남쪽으로는 멀리 지리산 천왕봉에서 노고단에이르는 주능선이 아스라이 펼쳐지고
그 앞쪽으로는 바래봉에서 고리봉으로 이어지는 세걸산도 보인다.
서쪽으로는 번암면건너 대성산이.북서쪽에는 속금산이 코앞이고 뒤로 장안산 장안산오른쪽 무령고개에서 영취산,백운산으로 이이어지며 바로
코앞에 백운산에서 달려온 산줄기가 월경산으로 다가오면 북에서 남으로내려오는 여기가 봉화산이다.
서쪽은 장수군 번암면으로 동화댐이 장관이고 동남쪽으로는 남원시 아영면의 너른들이 막 모내기하려 받아논 무논에 빛난다.
15:30분 - 하동마을 은희네집
봉화산에서 하산하는 임도는 빙글빙글 돌아 산을내려오므로 2시간여 걸린다.
그러나 이길은 전혀 심심하지가 않다.비록 시멘트포장이되어 있어 걷기불편하나 주변에 지천으로 두릅과 산나물이 있으니 나물채취하는재미가
시멘트길의 다리아픈정도는 충분히 상쇄하니 지루하지않다.
시멘트길을벗어나지않고 채취한 두릅이 한보따리다.
시멘트길을내려와 개울을건너면 은희와 영수가 영원히 행복할것같던 하동마을 은희네 집이다.
은희네 집은 하동마을 마을회관 에서 다리건너 농로로 연결되어 있다.
은희와 영수가 사랑을나누고 행복을 꿈꾸던 방한칸에 거실하나 그리고 부엌,다정하게 앉아있던 마루, 비맞아 감기걸려 쓰러진 은희를
없고 달리던 문밖담장길...그 담장길옆에 작약꽃이 흐트러지게 슬프게 피어있다.
집은 낡아 무너지기 직전이고 마당에는 온갖 잡초가 무성하고 서울서 찾아온 애인 공효진을위해 사과를 씻던 수도는 이미 오래전에
끊긴듯 쓸쓸하다.
영화 말미 행복이 망가진 여운이 그대로 이 은희네 집에 남아 은희의 슬픔을 아직도 대변하고 있는듯 작약꽃만이 처연하다.
15:30분~17:00분 - 하동슈퍼
늦은점심은 하동슈퍼 마당에서 고향친구 승기의 배려로 할수있었다.
여기가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취사가 곤란한데 슈퍼마당을 이용할수 있어 다행이였고 승기친구가 미리 준비해준 오미자 원액과 오미자술로
반주하니 지상낙원이 예아닌가 싶다.
17:00분 ~ 21:00분 - 작은구월 사거리도착 귀가
3. 산행개념도
@. 교통편
서울,인천에서 남원행 고속버스 다수, 서울남원행 기차
남원 번암행 노선버스 2시간간격 운행
서울남부터미널 장수행 버스이용,장수번암 노선및군내버스
번암에서 택시이용 복성이재(10000원)
도보로 두동마을에서 꼬부랑재나 신기마을에서 짓재 접근가능(1시간정도 추가소요)
오늘 산행일정은 은희와 영수가 자장면 데이트를 하던 여기부터다.
은희보다 더 이쁜 이 아짐씨는 누구시래....자매반점 자매같다. ㅋㅋㅋ
복성이재(610m),복성이마을입구
장수군 번암면과 남원시 아영면을 잇는재
복성이마을 이야기(출처 장수군지)
봉화산에서 짓재를 내려서면 번암면소재지에서 올라온 751번 지방도를 만나고 여기가 복성이재이며, 이곳이 소 천엽 속같은 험준한 백두대간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남향한 골짜기에 10여 호 남짓한 마을이 복성(福星)이다.
400여년 전 임진왜란때의 일이다. 변도탄이라는 천문지리에 밝은 기인이 있었다. 일명 변도사로도 부르는데 이 분은 조정에서 군량미를 관리하는
관원으로 있으면서 어느날 우연히 천기를 보니 멀지 않아서 나라에 전란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므로 국난에 대비할 것을 상소했으나 평화시에 혹세무민
(惑世誣民)의 행위를 한다는 이류로 삭탈관직을 당했다.
변도사는 허탈한 심정으로 집에 와서 앞날을 염려 한탄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밤 북두칠성의 왕별이라는 복성(福星}이 유난히도 남쪽으로 빛을 발하고
있어서 천문지리에 밝은 변도사는 평시에 비치했던 많은 양식을 달구지에 싣고 복성의 빛을 따라 여러날 걸려서 이 곳에 당도한 뒤에 움막을 지으면서 나무로
얼개를 짜고 벽과 천정을 쌀가루로 반죽해서 발랐다.
그렇게 되자 아무도 쌀가루로 집을 지은지를 몰랐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가서 왜구의 침입으로 국토는 유린당하고 이리저리 몰리는 피난민은
아비규환이였다. 이렇게 되자 백성들은 적에게 살상 당하는 자, 피난길에 굶어 죽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이 때에 변도탄의 움막은 이 지역에서 싸우던
의병과 관군과 난민의 양곡간이 돼서 천정과 벽을 떼어 죽을 쑤어 먹고 연명하면서 왜구를 무찌를 수가 있었다.
난이 끝난 뒤에 조정에서는 앞을 내다 본 변도탄의 충성심과 뛰어난 지혜에 감탄하고 큰상을 내렸다. 변도사의 선성이 주위에 알려지자 한 사람 한 사람씩
모여들어 복성(福星)마을이 됐다.
이렇게 번성했던 마을이 이즈음은 10여호정도나 무엇보다도 이마을을떠나 왜지로간사람은 모두 갑부반열에 들었다하니 아직도 변도탄의 선성은
계속돼고있는것이다.
번암면(番岩)
[장수군지]에 따르면 논곡리 앞 요천에 <두꺼비 바위의 전설>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에서 남원으로 통하는 19번 국도를 따라 3키로미터쯤 가면 작은 논실(論谷 )입구 도로변에 천야만야(千也萬也) 충암절벽으로 된
동산치(동산머리)가 솟았는데 그 아래 굽이치며 흐르는 요천수 파란 물 가운데에는 동산치를 바라보며 영겁을 애원하듯 두꺼비 모양의 망암(望岩)이 있다.
이 바위를 두꺼비바위 또는 섬암이라 부르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아주 먼 옛날 비길데 없이 경관이 빼어난 동산치는 신선이 바둑 두며 래세(來世)를 논하는 선경이었다.
어느날 두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다 문득 건너편을 바라보니까 두꺼비 한 마리가 급한 표정으로 어그적 거리며 이 쪽으로 기어오면서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하는 것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뒤에서는 커다란 뱀이 두꺼비를 쫓고 있지 않은가 ! 이 때에 신선은 뱀을 향해서 '두꺼비가 비록 약자이기로서니
생명은 다 같이 소중하거늘, 천하에 힘센 자가 날뛰면 무법천지가 되는 법 평화로운 선경에서는 용납하지 못한다' 하며 혼찌검을 낸 뒤에 도술로 뱀을
그 자리에서 산이 되게 하고, 두꺼비는 저 갈곳을 보냈으나 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신선을 우러러보며 은혜를 고마워하다 화석이 됐다는데 지금도
동산치의 건너산을 사두봉(蛇頭峯) 물 가운데 있는 두꺼비 모양의 바위를 섬암이라고 부른다.
또한 번암면에서 동쪽으로 12키로미터 지점에 있는 지지(知止)마을 앞 요천 상류에는 개구리 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와암(蛙岩)이라 부른다. 전설에 의하면 먼
옛날 장안산 계곡에서 놀던 개구리가 어느날 갑자기 뱀에게 쫓긴 몸이 되어 동산치의 선인에게 구원을 얻으려고 요천수를 헤엄쳐서 지지마을 앞에 흐르는
내까지 왔다. 마치 그 곳에는 많은 개구리들이 놀고 있었기에 위급사정을 털어놓게 됐는데 그 때에 수염 센 개구리가 이르기를 '여기서 동산치까지는 멀고,
뒤에서 뱀은 쫓아오고 있으니 우리 다 함께 구원의 소리를 크게 외치자' 하며 개굴개굴 큰 소리로 외치다 수많은 개구리가 일제히 큰 소리로 개굴개굴 울었다.
그러자 개구리들이 애원의 울음소리가 동산치에서 놀던 선인에게 메아리 쳐서 신선은 뱀을 쫓아 버리고 개구리떼를 구해 주었다 하며 그 뒤부터
개구리들은 한데 모여서 동산치를 바라보고 밤낮없이 고마워서 울다가 바위가 됐다는데 비가 많이 와서 개구리 바위가 약간 떠내려가서 위치가 바뀔
때가 있으나 머리는 항상 신선이 놀던 동산치를 바라보고 있단다.아무튼 '번암(番서릴번,혹은 磻강이름번,岩바위암)'이라는 면 이름은 개구리와 두꺼비 모양을
한 전설어린 바위들이 서려 있어서 붙여진 이름 같다고 전한다."
봉화산(919.8m)
짓재
아영면
언제쯤 짓재의 철쭉 장관을 제대로 볼수 있을까?
으름넝쿨
다래넝쿨
보리수
두릅나무
봉화산정상에는 이렇게 철쭉이 만개했다.
남원시 아영면의 너른들엔 모내기준비가 한창이다.
고남산
지리산 주능선
장안산
백운산
속금산
하동마을가는임도
영수가 은희를 업고뛰던 대문밖에는 작약꽃이 슬프게 피었다.
금방이라도 은희가 약초꾸러미를 내려놓고 나타날것같은...
영수의 애인 공효진을위해 은희가 저 수돗가에서 사과를 씻던 처연한모습이...
영수가 저 장독대에 술을 숨겨두고 먹기도하던...그 시점부터 이미 예견돼가던 불행은,,,,
영수와 은희가 나란히 앉아 있던그모습...저기
영희와 은희의 이행복한 모습이 자꾸 오버랩된다.
하동슈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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