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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4구간종주(답운재-통고산-937봉-955봉-애미랑재) 본문

이 또한 지나가리/낙동정맥(完)

낙동정맥 4구간종주(답운재-통고산-937봉-955봉-애미랑재)

無碍人 2016. 5. 29. 20:17

2016년 5월 29일 일요일 약간흐림 내친구(배병선.최복순)


답운재(踏雲峙 619.4m)는 36번 국도가 지난다.

항상 안개가 끼어 있어 구름을 밟고 넘는 듯한 고개라 하여 답운(踏雲)재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대의 소나무 군락지인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를 가려면 경북 영주에서 봉화를 거쳐 울진으로 넘어가는 36번 국도 답운재를

넘어 917번 지방도를 따라 15km를 더 가야 한다.

소광천이 흘러 내리는 삿갓재 기슭에 자리한 울진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는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 으로 선정돼 있다.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는 여의도 면적의 8배,1800ha의 면적에 수령 200년이 넘은 8만 그루의 금강송이 기운차게 하늘로 솟아 있다.

그곳에 가려면 바로 이 답운재를 넘어야 한다.

소광리 숲이 이렇게 잘 보존 된것은 1980년대 초 36번 국도가 개통돼기 전까지는 접근 방법이 없어 금강송 군락지가 잘 보존 돼기도 했고,

조선 숙종6년 (1680년)부터 숲을 보호하기 시작한것도 이 숲이 오래도록 보존 될 수 있었다 한다.

그 길목 답운재의 금강송도 만만찮다.

울울창창 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금강송이 이른 새벽 산꾼을 천국으로 맞이 하는 듯 하다.(05:50)

금강 소나무(금강송)는  생산지역이 백두대간의 금강산과 강릉,삼척의 강원 남부와 낙동정맥에 속하는 경북 북부의 울진,봉화,영양에서

나는 소나무다. 속이 붉다하여 적송,생산 집결지가 영동선의 '춘양역'으로 이곳을 통해 전국으로 이동 됨으로 지역 이름을 따 춘양목이라 부른다.

참고로 우리 소나무는 지형에 따라 분류 하는데 강원도와 함경남도 일대는 '동북형' 강원 남부와 경북 북부 일대를 '금강형'포항 경주 일대를

'안강형' 황해도부터 경기 충청 전라 경상도의 서남해안의'중남부평지형' 내륙의 '중남부 고지형'그리고 전북 완주의 '위봉형'이 있다.

그중에 금강송이 위치한 강원 남부와 경북 북부의 낙동정맥의 소나무는 곧고 나이테가 촘촘해 목재를 가공했을때 결이 단단하고 아름답다.

이는 낙동정맥의 소나무들이 해발 600m 에 주로 분포하며 겨울에는 내륙쪽보다  온도가 높아 따뜻하고 여름에는  5 정도 낮아

선선하여 나이테가 다른 자역 소나무보다 촘촘해 곧게 자라고 단단하다는 특징이 있다.

답운재로부터 통고산 정상까지는 4.5km 정도로 완만하게 400여m 의 고도를 꾸준히 올린다.

등로는 완만한 오름으로 새벽 바람이 선선하고 두 사람이 껴안아도 모자라는 장대한 금강송이 산꾼을 압도한다.

통고산(通高山,1067m)은 울진군 서면에 있는 산으로 산세가 웅장하고 넓게 펼쳐져 숨어 살기 딱 좋은 형국이다.

전설에 의하면 부족 국가 시기 삼척의 실직국 안일왕이 예국과의 전쟁에 쫒겨 이산을 넘을때 통곡하며 넘었다하여 통곡산(通谷山)으로

부르다가 통고산이 되었다.

통고산에서 발원하여 울진군 근남면 중앙부를 관통하는 왕피천은 울진읍에서 흘러드는 광천(光川)과 원남면에서 흘러드는 매화천(梅花川)을

받아들여 동해로 흘러가는 61km의 하천이다.

왕피천 역시 실직국의 안일왕이 예국과의 전쟁에 쫒겨 피난 왔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삼한시대 강원도에는 실직국(悉直國,삼척),예국(濊國,강릉),맥국(貊國,삼척)등의 고대 국가가 있었다.

예국과 맥국은 잘알려져 있지만 실직국은 잘알려져 있지 않으며 마지막 왕인 안일왕만이 그 이름이 남아 있다.

실직국에 대해서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간략히 기록이 남아 있다.

신라 파사 이사금(18대) 때 패망한 실직국을 건설한 사람은 실직인(悉直人)이라 부르고 임금을 실직왕(悉直王), 그 부족을 실직씨(悉直氏)라

불렀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성씨로 잃어버린 왕손이요 성씨다.

울진군 금강송면에는 왕피천 말고도 왕피리(王避里) 마을이 있다.

왕피리에는 안일왕(安逸王 애밀왕)과 관련한 지명이 남아 있다.

임광(林光)터는 안일왕이 쉬던 곳, 그 서쪽의 포전(飽田)은 군사들이 취사를 하던 곳, 속사 서남쪽의 병위(兵衛)는 군사들이 주둔하던 곳,

톡거리 서남쪽의 거리곡(巨里谷)은 군량미 창고가 있던 곳, 핏골은 안일왕이 적에게 잡혔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안일왕(애밀왕)은 지금의 소광리 애밀왕성(安逸王城)에 피난해 있다 신라 파사 이사금에 패해 성이 함락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역사적 오류가 있다.

기록 대로라면 실직국은 신라에 의해 패망하였는데 남아 있는 전설은 예국에 쫒기고 예국을 피해 안일왕이 남하 해 왕피리 애밀왕성에

머무른걸로 돼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했다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이 신라 유민 출신이라 그리 된건 아닌지....

삼국사기가 신라 편향적이란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니...

아니면 안일왕이 실직국의 마지막 왕이 아닐 수 도 있다.

부족국가 시절엔 끊임없이 영토 전쟁을 했을 터이니 어느 시기 예국과 실직국의 다툼 한토막이 전설로 남아 있는지 기록 없는 역사는 궁금하다.

울진에는 아이들이 울음보를 터트리면 "예 나온다 그쳐라" 하며 달랬는데 이는 실직국 안일왕(애밀왕)이 예국에 쫒겨 왕피리에 애밀왕성을  

수축 한것과 관련이 있다.예국이 쳐들어오니 울음그쳐라 할 정도로 예국과 실직국의 다툼이 민초들의 삶속에 남아 있다 할 수 있다.

통고산으로 부터 애미랑재의 긴 내림은 완만하고 편안한 등로로 11km의 낙동 4구간은 거져 먹기로 쉽다.

애미랑재(605m)는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에 있는 고개로 안일왕(애밀왕)이 삼척을 떠나 봉화군 승부,옥방,남회룡리를 거쳐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 애미랑재를 넘어 왕피리 안일왕성(애밀왕성)으로 피한데서 유래 했다.(11:20)


1. 산행코스

   답운재-임도-통고산 휴양림 갈림길-통고산-왕피리 갈림길-임도-937봉-애미랑재

   (11.5km, 5시간30분)


2. 산행경로

   05:50분 - 답운치-헬기장-홍이동 갈림길(좌 능선길)-폐 헬기장
   06:40분 - 임도
   07:45분 - 휴양림 임도등산로 합류
   08:25분 - 휴양림갈림길
   08:40분 - 통고산(1066.5m)
   15:37분 - 휴양림 등산로 갈림길(우:왕피리방향)/폐 헬기장
   09:30분 - 임도
   09:47분 - 937.7봉/삼각점/안내판
   10:10분 -  955봉/폐 헬기장
   11:20분 -  애매랑재
                   광비이동(옥방밸리 차량이동)
   11:56분 - 영주행탑승
                  터미널 근처 왕청국밥 점심만족
   14:25분 - 부천행탑승


@. 교통편

   옥방밸리-답운치.애미랑재 옥방밸리 차량이동

   광비-영주 울진발 11:20분 동서울행 탑승

   영주-부천소풍터미널


3. 산경표



답운재(踏雲峙 619.4m)는 36번 국도가 지난다.

항상 안개가 끼어 있어 구름을 밟고 넘는 듯한 고개라 하여 답운(踏雲)재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대의 소나무 군락지인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를 가려면 경북 영주에서 봉화를 거쳐 울진으로 넘어가는 36번 국도 답운재를

넘어 917번 지방도를 따라 15km를 더 가야 한다.

소광천이 흘러 내리는 삿갓재 기슭에 자리한 울진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는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 으로 선정돼 있다.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는 여의도 면적의 8배나 큰 1800ha의 면적에 수령 200년이 넘은 8만 그루의 금강송이 기운차게 하늘로 솟아 있다.

그곳에 가려면 바로 이 답운재를 넘어야 한다.

소광리 숲이 이렇게 잘보존된것은 1980년대 초 36번 국도가 개통돼기 전까지는 접근 방법이 없어 금강송 군락지가 잘 보존돼기도 했고,

조선 숙종6년 (1680년)부터 숲을 보호하기 시작한것도 이 숲이 오래도록 보존될 수 있었다 한다.







금강 소나무(금강송)는  생산지역이 백두대간의 금강산과 강릉,삼척의 강원 남부와 낙동정맥에 속하는 경북 북부의 울진,봉화,영양에서

나는 소나무다. 속이 붉다하여 적송,생산 집결지가 영동선의 '춘양역'으로 이곳을 통해 전국으로 이동 됨으로 지역 이름을 따 춘양목이라 부른다.

참고로 우리 소나무는 지형에 따라 분류 하는데 강원도와 함경남도 일대는 '동북형' 강원 남부와 경북 북부 일대를 '금강형'포항 경주 일대를

'안강형' 황해도부터 경기 충청 전라 경상도의 서남해안의'중남부평지형' 내륙의 '중남부 고지형'그리고 전북 완주의 '위봉형'이 있다.

그중에 금강송이 위치한 강원 남부와 경북 북부의 낙동정맥의 소나무는 곧고 나이테가 촘촘해 목재를 가공했을때 결이 단단하고 아름답다.

이는 낙동정맥의 소나무들이 해발 600m 에 주로 분포하며 겨울에는 내륙쪽보다  온도가 높아 따뜻하고 여름에는  5 정도 낮아

선선하여 나이테가 다른 자역 소나무보다 촘촘해 곧게 자라고 단단하다는 특징이 있다.

답운재로부터 통고산 정상까지는 4.5km 정도로 완만하게 400여m 의 고도를 꾸준히 올린다.

등로는 완만한 오름으로 새벽 바람이 선선하고 두 사람이 껴안아도 모자라는 장대한 금강송이 산꾼을 압도한다.





아깝다

300년은 됨직한 거목이 지난겨울 눈을 못이겨 뿌리졎혀 누웠다.

산행을 하다보면 바람보다는 소복소복 조용히 내리는 눈이 거목을 넘어트린다.






통고산(通高山,1067m)은 울진군 서면에 있는 산으로 산세가 웅장하고 넓게 펼쳐져 숨어 살기 딱 좋은 형국이다.

전설에 의하면 부족 국가 시기 삼척의 실직국 안일왕이 예국과의 전쟁에 쫒겨 이산을 넘을때 통곡하며 넘었다하여 통곡산(通谷山)으로

부르다가 통고산이 되었다.








통고산에서 발원하여 울진군 근남면 중앙부를 관통하는 왕피천은 울진읍에서 흘러드는 광천(光川)과 원남면에서 흘러드는 매화천(梅花川)을

받아들여 동해로 흘러가는 61km의 하천이다.

왕피천 역시 실직국의 안일왕이 예국과의 전쟁에 쫒겨 피난 왔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강원도에는 실직국(悉直國),예국(濊國),맥국(貊國)등의 고대 국가가 있었다.

예국과 맥국은 잘알려져 있지만 실직국은 잘알려져 있지 않으며 마지막 왕인 안일왕만이 그 이름이 남아 있다.

실직국에 대해서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간략히 기록이 남아 있다.

신라 파사 이사금(18대) 때 패망한 실직국을 건설한 사람은 실직인(悉直人)이라 부르고 임금을 실직왕(悉直王), 그 부족을 실직씨(悉直氏)라

불렀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성씨로 잃어버린 왕손이요 성씨다.

울진군 금강송면에는 왕피천 말고도 왕피리(王避里) 마을이 있다.

왕피리에는 안일왕(安逸王 애밀왕)과 관련한 지명이 남아 있다.

임광(林光)터는 안일왕이 쉬던 곳, 그 서쪽의 포전(飽田)은 군사들이 취사를 하던 곳, 속사 서남쪽의 병위(兵衛)는 군사들이 주둔하던 곳,

톡거리 서남쪽의 거리곡(巨里谷)은 군량미 창고가 있던 곳, 핏골은 안일왕이 적에게 잡혔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안일왕(애밀왕)은 지금의 소광리 애밀왕성(安逸王城)에 피난해 있다 신라 파사 이사금에 패해 성이 함락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역사적 오류가 있다.

기록 대로라면 실직국은 신라에 의해 패망하였는데 남아 있는 전설은 예국에 쫒기고 예국을 피해 안일왕이 남하 해 왕피리에 애밀왕성에

머무른걸로 돼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했다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이 신라 유민 출신이라 그리 된건 아닌지....

삼국사기가 신라 편향적이란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니...

아니면 안일왕이 실직국의 마지막 왕이 아닐 수 도 있다.

부족국가 시절엔 끊임없이 영토 전쟁을 했을 터이니 어느 시기 예국과 실직국의 다툼 한토막이 전설로 남아 있는지 기록 없는 역사는 궁금하다.



한 그루 일까 ? 아님은 연리근일까?

어느쪽이든 명품이다.




울진에는 아이들이 울음보를 터트리면 "예 나온다 그쳐라" 하며 달랬는데 이는 실직국 안일왕(애밀왕)이 예국에 쫒겨 왕피리에 애밀왕성을  

수축 한것과 관련이 있다.예국이 쳐들어오니 울음그쳐라 할 정도로 예국과 실직국의 다툼이 민초들의 삶속에 남아 있다 할 수 있다.

통고산으로 부터 애미랑재의 긴 내림은 완만하고 편안한 등로로 11km의 낙동 4구간은 거져 먹기로 쉽다.

애미랑재(605m)는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에 있는 고개로 안일왕(애밀왕)이 삼척을 떠나 봉화군 승부역을 지나 옥방 남회룡리를 거쳐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 애미랑재를 넘어 왕피리 안일왕성(애밀왕성)으로 피한데서 유래 했다.(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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