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나폼소(나폴리 폼페이 소렌토) 본문
2018년 5월 30일 수요일 맑음 천사랑
아름다운 저 바다여 그리운 그 빛난 햇빛
내 맘 속에 잠시라도 떠날 때가 없도다
향기로운 꽃 만발한 아름다운 동산에서
내게 준 고귀한 언약 어이하여 잊을까
멀리 떠나간 벗이여 나는 홀로 사모하여
잊지못할 이 곳에서 기다리고 있노라
돌아오라 이곳을 잊지말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돌아오라
"돌아오라 소렌토로"
1900년에 소렌토에 극심한 가믐이 들어 이탈리아 총리가 방문 하였다.
그때 소렌토에 우체국이 없어 주민들이 불편해 했다.
주민들이 총리에게 청원을 했고 총리가 들어 주기로 했는데 나이 많은 총리가 미덥지 않았다.
그래서 소렌토 시장은 그당시 유명한 작곡가 구르티스 형제에게 부탁해 4시간 만에 만든 노래다.
이 아름다운 노래가 원래는 총리에게 꼭 잊지말고 우체국 만들어 달라고.....
창공의 빛난 별, 물 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아름다운 동산, 행복의 나폴리
산천과 초목들 기다리누나
내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루치아 산타루치아
정든 나라에 행복아 길어라
산타루치아 산타루치아
"산타루치아"
산타 루치아는 나폴리 수호신의 이름이다.
그리고 나폴리 해안거리의 지명이다.
이 노래는 이 해안에서 황혼의 바다로 배를 저어 떠나는 광경을 노래한곡이다.
1850년에 발표된후 나폴리의 어부들 사이에서 애창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나폴리"
호주 시드니,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와 더불어 세계 3대 미항의 하나였다.
1787년 2월 괴테는 나폴리를 방문하고는 이렇게 적었다.
"나폴리는 천국이다.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 도취된 듯한 자기 망각 속에 살고 있다.
이곳에 온지 며칠 된 나도 마찬가지다."
그랬던 나폴리가 지금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가졌던 나폴리인데 근간의 이태리처럼....
이태리 국민소득이 평균 36,000$인데, 나폴리는 겨우 15,000$ 이란다.
베수오산 폭발로 화산재에 덮였던 폼페이
지중해연안 소렌토
세계3대 미항 나폴리 산타루치항
나폴리
이탈리아 반도의 서해안에 자리잡고 있다. 거대 항구도시이자 지적 활동의 중심지이며, 이탈리아 남부지역의 금융중심지이다.
나폴리 왕국과 양시칠리아 왕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의 하나를 끼고 있다.
전통산업으로는 자기제품·직물·강철 생산이 있으며, 신흥 산업으로는 전자공업·정유업·자동차조립공업이 있다.
관광업도 이 지방 경제에서 중요하다. 로마와 이탈리아 남부지역을 연결하는 철도의 중요한 연결지점이다. 항만시설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재건되었지만 여객항으로서 차지하던 나폴리의 중요성은 감소되었다.
폼페이(Pompeii )
나폴리에서 남서쪽으로 23km 떨어진 베수비오 산 근처에 있으며, 사르누스 강 어귀 북쪽으로 흘러든 선사시대의 용암에 의해 형성된
돌출부 위에 건설되었다.
폼페이는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강한 폭발에 의해 헤르쿨라네움 및 스타비아이와 함께 매몰되었다.
이 고대도시들의 유적들은 그리스·로마 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독특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오늘날의 폼페이 시는 고대도시의 동쪽에 있으며, 순례요지인 산타마리아델로사리오 바실리카가 있다
이 징검다리 용도는?
오물을 거리에 버려 건너다니는 용도란다.
베수비오산(Vesuvio 1281m)
해발 약 600m 지점에서 솜마 산으로 불리는 반원형의 산릉이 시작되어 북쪽에서 화구구를 둘러싸고 있다.
정상에 있는 큰 분화구는 1944년의 분화로 생긴 것이다.
베수비오는 홍적세 말기에 처음 생겼다. 79년에 대규모의 화산 폭발을 일으켜 폼페이와 스타비아이가 화산재와 화산력으로 뒤덮이고,
흘러내린 진흙에 헤르쿨라네움이 파묻혔다. 79~1631년에 화산이 몇 차례에 걸쳐 폭발했고,
그 이후에는 화산의 분출형태가 바뀌면서 화산활동이 계속되었다.
이 화산은 휴지기에는 화구가 막히는 반면, 분출기에는 화구가 계속 열려 있다. 분출기의 기간은 6개월~30년 9개월로 다양하며,
휴지기의 기간은 18개월~7년 6개월이다. 분출기에는 사면의 식생이 화산 가스 때문에 모두 죽어버린다.
사창가
수도시설
납으로 만들어졌다.
남자 성기모양으로 사창가표시
대중목욕탕
빵가게
비극의 현장 폼페이는 오랫동안 잊힌 땅으로만 존재했다.
대분화의 기록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누구도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18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에스파냐 국왕 카를로스 3세의 후원 아래 대대적인 발굴이 시작되었다.
에스파냐는 물론이고 뒤를 이어 이 일대를 점령한 프랑스도 초기에는 값나가는 유물을 빼돌리느라 발굴은 뒷전으로 미루었다.
1850년대 말 이탈리아가 통일을 이룬 다음에야 제대로 된 고고학자들의 투입되어 폼페이 최후의 날이 조금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질식의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끝내 화석처럼 굳어 버린 희생자의 형체가 드러났고, 화려했던 로마의 건축 양식도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발굴된 폼페이는 전체의 절반 내지 5분의 3 정도로 추정된다.
처음 사람들의 눈길을 끈 것은 ‘인간 화석’이었다.
순식간에 굳어 버린 사람들의 얼굴에는 2,000년이 지난 후에도 공포가 생생하게 묻어 있었다.
X선 투시 결과 화석 안의 장기는 모두 없어진 상태였다.
폼베이 최후의날
79년 8월 4일 오후 1시.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만 연안의 고대 도시 폼페이에 굉음이 울려 펴졌다.
사람들은 평소와 같은 지진으로 생각하고 굳이 대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새끼 돼지를 잡아 양념한 후 오븐에 넣으려던 여인도, 밀가루 반죽을 밀어 빵을 빚던 제빵사도,
해변에 누워 더위를 식히던 귀족도 모두 그랬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었다.
굉음의 진원지는 나폴리에서 동쪽으로 1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베수비오 화산이었다.
천 년이 넘게 침묵하던 화산이 분화한 것이다.
화산은 멀리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보일 정도로 거대한 연기를 내뿜었다.
붉은 용암 덩어리가 흘러내리며 곳곳에서 불길이 일었다.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는 위치에 있었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화산재가 더 치명적이었다. 18시간에 걸쳐 100억 톤에 가까운 화산재가 쏟아져 내렸다.
집시
한국관광객을 상대로 구걸
엄마가 뒤에서 싸이"강마스타일"을 틀고 아이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어디를 가도 이런 낙서가 많다.
표현의 자유라는데....
흉물스럽기도 하다.
들어오는 객차도 온통 낙서투성이
쏘렌토(Sorrento)
나폴리 만과 살레르노 만을 가르는 반도의 나폴리 만 연안에 있다.
배후에는 산탄젤로 산(1,443m)을 정상으로 하는 반도의 척량 산맥인 라타리 산맥이 있다.
그리스인이 처음 건설한 것으로 추정되며 고대 로마 시대에는 수렌툼이라는 휴양지였다. 7세기에는 자치 공작령의 수도였으며,
1137년에 노르만족의 시칠리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시인 토르쿠아토 타소가 1544년 이곳에서 태어났다.
역사적 의의가 있는 건축물로는 여러 차례 개축된 주교 성당과 14세기에 건축된 아름다운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
캄파니아의 장식미술품과 중세의 조각·그림 및 고전양식의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는 코레알레디테라노바 박물관이 있다.
소렌토는 기후조건이 좋고 경치가 아름답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휴양지로 인기가 있었으며, 포도주·올리브유·감귤류로도 유명하다.
소렌토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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