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물소리길 1코스(양수역-국수역 문화유산길) 본문
2018년 11월 11일 일요일 연무 천사랑
11월이다.
나이 만큼이나 11월은 참 거시기하다.
나태주 시인은 11월을....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이라 했다.
지금 내 나이가 그렇다.
뭘 새로 시작 하기엔 너무 많이 온것 같고...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너무 아까운 나이...
지난달로 1+9(1대간 9정맥) 완주가 끝났다.
10년동안 내 일상을 지배해 왔던 일이였다.
홀가분 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다시 그 같은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지금은 엄두도 못낼것 같은... 그런데 왜 가슴 한구석이 뻥 뚫려 있는 이 느낌은..
1+9 완주는 마침표(.)가 아니라 그저 쉼표(,)일뿐이다.
애써 위로 하지만...많은 산님들이 이어 가는 기맥종주를 시작 해야 하나???
썩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홀산의 위험을 잘 알기때문이다.
지난 10년은 겁없다고 해야 할지...무모하긴 했다.
나이 탓으로 신중 모드일까?
좀더 고민 해 봐야겠다.
虎視牛行 (호시우행)..
호랑이처럼 관찰하고 소처럼 실행 하라....
호랑이는 먼곳을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너무 가까운 곳을 보지도 않는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는 먹이만 노린다.
소는 달리는 법이 없다.
한발한발 신중하지만 우직하게 걸어간다.
너무 급히 달리다가 엉뚱한 곳으로 가지도 않는다.
라틴어에 Festina lente(천천히 서둘러라)
때를 기다리고 때가 되면 행동하라...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좌우명으로 알려져 있다.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 천천히 서둘러라... 虎視牛行 (호시우행)..호랑이처럼 관찰하고 소처럼 끈기있게 실천하라..
지금 내게 필요하다.
물소리길은 양평군을 대표하는 자연 친화적 도보여행길이다.
양수역에서 용문사까지 70여㎞에 이르는 이 길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총 5개의 코스로 구성돼있다.
코스마다 몽양 기념관, 양평 5일장, 용문사, 상원사 동종, 회현리 동화마을 등 다양한 관광지, 문화재, 체험마을을 만날 수 있다.
양평물소리길은 태백산 검룡소에서 시작한 남한강, 실개천이 흐르는 흑천길, 시원한 바람과 맑은 계곡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오늘 1코스는 양수역에서 국수역까지 13.8km로 문화유산길로 명명돼 있다.
오늘 만나는 인물로 정창손, 한음 이덕형, 몽양여운형이 있다.
한인물의 일생을 한마디로 평하고 이해 할수는 없으나 정창손은 그 후손들에게는 청백리로 추앙받고 있지만
그가 세종의 한글 창제에 반대해 파직됐다는 사실을 관가해서는 안된다.
"백성들이 죄를 짓는 것은 그들의 본성이 그러할진대 언문이 만들어 진다고 죄가 줄어 들겠습니까?
백성들이 아는 것이 많아지면 더욱 범죄가 늘어날 것입니다."
그가 한글 창제에 반대했던 말이다. 그는 반 백성주의자 였다.
또 그는 사육신과 단종복위를 모의했던 김질의 장인으로 단종복위 모의를 세조에 고변한 인물이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86세 장수를 한 인물로 세종부터 성종까지 5대왕을 모시며, 관료로서 청렴했지만 그의 선택이
정의롭거나 인본주의적이진 못했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에 연산군의 생모를 폐출하는 논의에 참여한 죄로 윤필상(尹弼尙),한명회(韓明澮),등과 함께
십이간(十二奸)으로 몰려 부관참시(剖官斬屍)되었다 중종때 신원되었다.
한음 이덕형은 오성 이항복을 떼어놓고 논할 수가 없다.
이둘은 서로 당파를 달리했지만 돈독한 우정으로 여러 일화를 많이 남겼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관직에 나가 국란을 극복한 두 인물은 남아 있는 일화가 정사가 아니라도 당시 민초들이
두사람의 각별한 우정을 많이 부러워 했고 좋아 했음을 알 수 있다.
대략 7가지의 설화(일화)가 남아있는데 설화로 비추어 보면
한음은 어려서부터 조숙하여 아이들이 놀때에도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아 아이들이 함부로 하지 않았다 한다.
이에비해 오성은 의리를 좋아하고 기개가 당당했다.
씨름을 잘하고 무예에 능해 여러 소년들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이런 두 사람의 성격에서 보듯, 전하는 설화(일화)도 대개 오성이 한음을 놀리고 한음은 수동적인 이야기가 많다.
오성이 한음을 골탕먹이고 한음이 당하고 내기에서도 한음이 지는 설화지만 설화속에서 한음의 넉넉한 포용력과 관용
오성의 재치와 기지를 엿볼 수있다.
한음과 오성이 어린시절을 함께 보내지 않았는데 이런 설화가 남아 있는 것은 이 두사람의 우정이 백성들에게
존경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한음이 항상 오성에게 당하는 설화뿐인데 오성이 당하는 설화가 있어 여기 옮겨 본다.
하루는 오성이 '한음 부인의 배꼽 밑에 큰 점이 있다'고 소문을 냈다.
그래서 한음은 그 소문을 듣고 화가 나서 '이것을 어떻게 없애나'하고 부인과 상의하였다.
그러자 한음 부인이 '좋은 수가 있다'고 하며,
"내일 재상들을 다 집으로 초대하십시오. 저녁 식사 대접으로 만두국을 낼 것이 옵니다."라고 말하였다.
한음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부인이 시키는 대로 조정 재상들을 초대하였다.
술을 한 잔씩 먹고 다들 취하여 기분이 좋을 때, 한음 부인이 직접 상을 들고 왔다.
그리고 한음에게 몰래 맨 마지막에 들어가는 만두국은 반드시 오성 대감 앞에 놓으라고 하였다.
그래서 한음은 시키는 대로 오성 앞에 만두국을 놓았다.
모두들 맛있게 먹기 시작하는데 오성이 만두 하나를 꽉 깨물더니, "어!"하고는 쩔쩔매기 시작하였다.
다들 '왜 그러냐'고 하니, 한음 부인이 그 광경을 밖에서 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거짓말하는 입에는 똥바가지를 안겨야 합니다!"
부인이 오성에게 똥을 넣어 만든 만두를 주어서 복수를 한 것이었다.
한음 이덕형과 오성 이항복의 우정이 부럽다.
몽양 여운형...
암울한 시절 우리에게 잊혀졌던 인물이다.
민주화가 돼고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제대로 평가 받고 있는 지도자다.
마침 낡은 책자를 들고 여운형 기념관을 찾은 촌로 한분을 만났다.
80세쯤 되어 보이는 어르신인데 청계천 길거리서 1000원 주고 샀다는 여운형 전기를 읽고 감명 받아 찾아 오셨단다.
날 더러 여운형이 빨갱이냐고 대뜸 물으신다.
"절대 아니죠?" 라고 했더니 반색을 하며 자기는 잘 몰랐다고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고....
연세드셔도 늘 깨어 있으시며 새로운 것에 감동하는 모습이 부럽고, 배우고 싶다.
몽양 어록 중에...
"나는 연합군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즉 만났으니 'How do you do ?'라고 인사를 할 것이고
둘째는 'Thank you' 라고 감사의 뜻을 표해야 할것이고
셋째로는 'Good bye'가 있을 뿐이다."
몽양이 1945년에 한말이다.
그로부터 73년 아직도 이땅에 연합군으로 들어왔던 외국 군대가 있다.
물론 그후 한국전쟁이 있었으니...몽양이 염려했던 자주 독립이 아직도....
천사랑 함께한 물소리길 깊은 가을 만큼 내 생각도 깊어졌으면...
@. 탐방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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