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오늘 또 천국을 살았습니다.(지리산 둘레길 6,7코스:수철-성심원-운리) 본문

이 또한 지나가리/지리산 둘레길(完)

오늘 또 천국을 살았습니다.(지리산 둘레길 6,7코스:수철-성심원-운리)

無碍人 2021. 6. 16. 14:25

2021년 6월 13일 일요일 맑음 곱방친구4(석기, 기수, 환춘, 병선)

 

요맘때면 이 땅에 가장 힘든 삶이 있었다.

보릿고개

지난해 가을에 수확한 양식이 떨어지고 아직 보리는 미쳐 여물지 않은 5~6월이

식량 사정이 가장 나빴다.

이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유사 이래 계속 반복되는 슬픈 굶주림이다.

국토의 70%가 산지인 데다 교통이 불편해 물류 이동이 제한돼 가뭄, 홍수, 해충의 피해가

심한 흉년이면 그 정도가 심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서 한국전쟁을 거치는 기간엔 굶주려 부황이 나거나 죽는 이 가 많았다.

전후 세대인 우리는 그 보릿고개 마지막 세대다.

처음 학교에 들어갈 때 가슴에 이름표 보다 무명 손수건을 먼저 달았다.

코 찔찔이들의 콧 수건이었다.

우리에 겐 손수건이라는 원래 이름보다 콧 수건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다가왔다.

지금 초등학교 어디에도... 아니, 어린이집, 유치원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이 시절 아이들이 코를 흘린 원인이 영양실조 때문이었다.

그 시절 우리들 아침밥 그릇은 지금 냉면 그릇만 했다.

가을부터 보릿고개가 시작되는 이맘때 까지는 밥솥에 무를 깔고 보리쌀과 쌀을 반반 넣은 

밥 한 그릇과 가을에 담은 김치가 전부였다.

점심은 고구마, 저녁은 수제비에 김치 넣어 끓인 국밥 한 그릇

밥그릇이 지금 공깃밥 그릇 3배쯤 됐지만 늘 배가 고팠다.

그때 우리들 간식은 없었다.

날이 풀리고 봄이 돼야 우리 아이들은 들로 산으로 간식거리를 찾아다녔다.

그때

가장 먼저 우리 입 맛을 다시게 한 게 싱아(물고숙), 찔레 줄기였다,

싱아는 줄기를 먹는데 그 시큼한 맛에 뱃속의 회충이 요동을 치기도 했다.

상큼하고 푸르른 맛의 찔레가 끝날 즈음 찔레꽃  뒤에  수즙게 익기 시작하는 빨간 산딸기다.

엄마가 산나물 뜯으러 다녀온 바구니 속엔 탐스럽게 살찐 찔레와 영롱하게 빛나던

산딸기가 있었다.

아직도 그 산딸기 맛은 내 혀끝으로 기억된다.

또 이맘때, 학교는 농번기 방학이다.

바쁜 농번기 일손 도우라 1주일 정도 주는 방학이 있다.

그때 어김없이 주는 숙제도 있다.

오디 씨 모아 오기

보리 이삯주워 오기

마을단위로 만들어진 애향단에 퇴비 모우기

한 달 농사였던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오디 씨를 모았다.

그 오디 맛

지금은 건강식품으로 오디 열매를 목적으로 재배를 많이 하지만 그 시절 그 맛이 아니다.

보리 밴 논, 밭에서 이삯줍는건 참 재미없는 노동이었다.

그보다는 추수 끝난 논, 밭 가장자리 어떤 연유로 익지 않고 푸른빛을 띤 덜 익은 보리는 이삯줍기에 싫증난

아이들에게 좋은 먹거리다.

모닥불에 슬쩍 그을려 손바닥에 비벼 먹던 청보리 맛,

배고픈 아이들의 간식거리였다.

학교엔 수 십 년 된 벚나무가 운동장 가장자리에 여러 그루 있었다.

쉬는 시간에 그 버찌 열매 주워 먹고 선생님한테 혼나던 일은 재미난 추억이 됐다.

선생님은 배앓이가 흔하던 시절 배탈 날까 봐 쉬는 시간 끝나면 손바닥과 혀를 검사하기도 했다.

손바닥을 맞으면서도 탐스런 버찌를 그냥 지나치긴 쉽지 않았다.

 

오늘

우리는 딱 그 시절로 돌아갔다.

왕산과 필봉산이 내려다 보이는 수철 마을 뒤 농로 따라 걸으니 갓 올챙이 신분을 벗어난 

개구리가 모내기 끝낸 논에서 자맥질하고 오디는 끝물이긴 해도 그 단맛에 모두 환호성이다.

덕계 오건과 스승 남명의 일화가 있는 지막 마을...

자연 동천(紫煙洞天)

글자 그대로  산안개가 왕산과 필봉산 중턱을 감싸고 있다.

마을길 양옆으로 군데군데 잘 익은 앵두는 누군가 "철없이 믿어버린 당신의 입술"이라 했던가?

맛나고 신나고...

지천으로 널려 있는 산딸기 따먹는 재미... 제대로다.

천천히.. 천천히.. 오늘 못 가면 내일 가도 되고..

웅석봉 아래 선녀탕 알탕..

아직 아무도 없는 깊은 산 계곡

홀라당 벗고 동심으로 돌아간다.

친구 기수 말대로 선녀탕 바닥에 가라앉아 썩고 있는 나뭇잎을 흘러 보내야 한다나? 어쩐다나?

청정 지리산 오염이라 너무 야단치지 마소... 선녀탕 바닥 청소 좀 하고 왔다.

성심원지나 곰 바위산이라 불리는 웅석봉 오름

지리산 둘레길 중 최고 난이도 오름

곰이 떨어진 산이라니... 사람인들..

그래도 다들 잘 오른다.

어천계곡 상류, 폭포 물맞이 한번 더하고 가파르게 오른 웅석봉 중턱 헬리 포터...

언제 달뜨기 능선으로 웅석봉 한번 오르고 싶다.

저 능선 바라보며 살아 고향 돌아 가고팠던 젊은 청춘들의 피 끓는 삶이... 그들의 육신이 썩어 푸르른 

저 지리에 한번 더 안겨 보고 싶다.

그 청춘들의 눈물과 피와 땀이 헛되지만 않았다고...

언젠가 당신들도 님들이라 기억되는 날, 당신을 쫒던 자도 쫓기던 당신들도 모두 한마당에 모여

굿판 한번 크게 벌려 보자고..

이제 길게 임도 따라 내린다.

단속사(斷俗舍)

원래 금계사였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수도에 방해가 된다고 이름을 속세와 인연을 끊는다는

단속사로 바꾸고 정말 속세와 완전히 인연을 끊었다나...

절이든 교회든 사람 속에 있어야지 사람을 버리면 이렇게 된다.

탐동마을이라 불리는 단속사 가람터를 둘러보니

단속사 일주문에 벗어두고 들어간 미투리가 절 한 바퀴 돌고 나오니 썩었더라는 말이 허튼소리는

아닌 듯 이곳은 딱 절터다.

3대째라던가?

정당매(政堂梅)

나이 들어 노쇄해도 노랗게 익고 있는 매실이 소임을 다하지만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답다.

오늘 또 친구들 덕분에 천국을 살았습니다.

 

1. 탐방 경로

   05:10분-수철마을

   05:30분-지막마을

   06:20분-평촌마을

   07:00분-대장마을

   08:00분-내리교

   08:50분-선녀탕

   09:20분-바람재

   10:20분-성심원(15.9km)

   11:20분-아침재

   12:30분-웅석봉 헬리 포터

   14:40분-운리마을(12.1km)

    총 28km, 8시간 30분

 

@. 교통편

    동서울-함양(왕복)

    이후 기수 석기 승용차 픽업

수철마을

모내기 끝낸논에 개구리가 자맥질중이다.

밤꽃 풍년들겠다.

호두나무

자연동천(紫烟洞天)

왕산과 필봉산에 드리운 산안개

 

철없이 믿어버린 그 입술(앵두)

오디맛이 달더냐?

살구

경호강

내리저수지

버찌

지곡사

선녀탕

까치수염(개꼬리풀)

바람재

성심원

정당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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