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양민의 목숨을 거두어 무얼 지켰나요?(堅壁淸野 견벽청야/지리산 둘레길 4,5코스) 본문

이 또한 지나가리/지리산 둘레길(完)

양민의 목숨을 거두어 무얼 지켰나요?(堅壁淸野 견벽청야/지리산 둘레길 4,5코스)

無碍人 2021. 4. 14. 13:03

2021년 4월 11일 일요일 청명 곱방 친구 4

 

지리산 둘레길 4,5코스(금계-동강-수철 23km)

풍경은 아름답지만 슬프고 잔인한 구간이다.

혼돈의 시기 인간의 무도하고 잔인함이 어디까지 인지 보여주는 현장

정부 수립이 끝나고 철학 부재의 이승만 정권은 제주 4.3 과 여수순천 사건을 해결하면서

친일파를 대거 기용, 스스로 정통성 없는 권력을 만들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친일파에겐 불리한 입지를 뒤집는데 좌/우 대결 만큼 좋은 소재는 없었다.

제주 4.3과 여순사건에서 숙정대상이 된 군인과 노동자 농민들은 빨치산이 되어 지리산으로 갔다.

1948년부터 마지막 망실 공비 정순덕이 체포된 1963년까지 15년간 지리산은 해방구였다.

낮엔 대한민국 태극기가 펄럭이고, 밤이면 인민공화국 인공기가 휘날리는...

밤엔 빨치산이 총칼을 들이밀며 쌀과 보리, 닭,소,돼지를 공출해가고, 낮이면 국군이 들어와

부역자를 색출하고 빨갱이를 잡는다고 온 마을을 들 쑤셔되는 야만의 시대, 

 

산청 함양 양민 학살 사건

이어서 거창 양민 학살사건

사건은 둘이지만 같은 부대 같은 사람이 같은 시기에 저지른 한 사건이다.

1950년 11월 29일 남원에서 열린 사단본부 참모회의에 참석하려던 미 군사 고문단의 리 대령과 장교 2명

사병 28명이 산청 금서면 수철리에서 방곡리로 넘어가는 고동재에서 빨치산의 공격으로 사망한다.

이 일로 11사단(사단장 최덕신)  9연대(연대장 오익경 중령) 빨치산에 대한 적개심이 극에 달한다.

작전명 견벽청야(堅壁淸野)

1951년 2월 7일 음력 정월 초이틀, 설 다음날

제1진은 산청 방면에서 고동재로..

제2진은 함양 유림 방면에서

제3진은  함양 마천 방면에서 포위하여 산청군 금서면 가현, 방곡, 화계, 주상, 자혜리와

함양군 휴천면 점촌, 유림면 손곡, 지곡, 서주리 등에서 10시간 동안 705명 학살

1951년 2월 9일 거창 신원면으로 이동, 3일 동안 양민 719명 학살(어린이와 노인 여자가 50%였다)

책임자 대통령 이승만, 국방부 장관 신성모, 11 사단장 최덕신, 9 연대장 오익경, 3 대대장 한동석

처벌, 국방장관 사단장은 무죄

오익경 무기, 한동석 징역 3년,

대통령에 의해 사면 복권돼 현직 복귀 후 잘 먹고 잘 살다 천수를 다하고 죽었다.

 

다음은 함양 유림면 서주리에서 8살에 엄마 등에 업혀 현장을 목격한 강희근 시인의

헌시(獻詩)다.

시인의 증언처럼 살아남은 자의 지은 죄 없는 속죄의 글이다.

 

"양민을 적이라 하고

 작전을 수행한 이상한 부대

 하늘 아래 있었습니다.

 

 가현, 방곡, 점촌 사람을 몰살하고

 그 아래 야지 마을 사람 반으로 나눠

 무차별 사살했던 이상한 부대

 이나라 땅 위에 있었습니다.

 

 대대로 살아온 것 죄가 되는가

 흙 파고 씨 뿌린 일 죄가 되는가

 제 나라 군대의 총알에 맞아 죽은 백성들

 산발한 채 원혼으로 반세기

 하늘을 떠돌아다니는 나라

 이 나라 말고 어디 있겠습니까

 

 그 부대 대장들이 붙들려

 눈 가리기로

 재판받고 감옥 갔다 풀려나

 승진해 가는 동안

 나라의 권력은 善으로부터 고개 돌렸으니

 하늘 아래 권력이 이처럼 오래 죄인의 손

 들어주고 다닌 나라

 이 나라 말고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역사는 義人들 내고

 진실 화안히 드러나니

 이제는 냇물이 제 소리 내며 흐르고

 노을과 이슬 저희 허리 펴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오! 반세기

 자리에 한 번 앉아 보지 못한 7백여 원혼 들이여

 이제는 나라가 법으로 그대들 양민이라 하고

 겨레가 입으로 그대들 님이라 부릅니다.

 자리에 앉아 편히 쉬세요

 진달래 피고 보리가 익는데

 님들이 그리워 새들이 재잘거립니다.

 님들이시여 힘들어도 오히려 불쌍한 죄인 

 죄인들

 새들의 노래 안에 불러들이세요

 

 중매재 고갯마루

 깨 곰이 달리고 산머루 탐스레 익으면

 거기 그 빛깔로 도란도란 오세요

 

 오세요 저희 살아남은 자 곁으로

 나라 잘못된 나라 되지 않게

 염원 알알이 목에 걸고 어서 오세요"

 

견벽청야(堅壁淸野)

성벽을 튼튼히 하고 들판을 깨끗하게 한다.

적의 공격에 대비해 성벽을 튼튼하게 다지고 들판의 곡식을 모조리 거두어들여 적의 군량 조달을 미리 차단하는 전술을 말한다.

손자병법 어디에도 양민의 목숨을 거두어들이라 하진 않았다.

 

임천이 제 소리 내며 흐르는 4,5코스

진달래 피고 보리가 익어가는 들판, 우리는 이렇게 웃고 떠들며 갑니다.

님들이여

편안히 잠드소서..

지나는 모든 이, 당신들을 기억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야만의 시대가 없도록 우리가 기억합니다.

 

@ 탐방 경로

0430 금계마을
      의중마을(0.7km)- 의탄소 , 숯

0535 모전 마을(용유담)(3.1km)
      마적 도사, 나귀, 9마리용
0614 송전(세동마을)(2.4km)

      닥종이, 억새집(샛집)
0700 운서마을(3.3km)

      함양 휴천에서 가장 좁은 마을
구시락재(0.7km) 김종직 "두류 유록"
0800 동강마을(0.8km) 

      옛 임천면 소재지 걸은 거리 11km
자혜교(1.2km) 신틀바위 , 짚신 틀 모양
0850 방곡마을

      산청 함양 추모공원(1.5km)
0951 상사폭포(1.8km)
      남녀의 애틋한 사랑 전설
1030쌍재 (1.7km) 보부상, 고령토
산불감시초소(0.9km)
 조망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왕산, 필봉산, 멀리 정수산, 둔철산, 웅석봉, 산청읍이 보이며

 반대편으로 천왕봉, 중봉을 비롯해 지리산 동부 능선의 연봉을 감상할 수 있다.

 참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은방울꽃 군락지를 즐기며 가다 보면 고동재에 이른다
1145 고동재 (1.4km) 고동형 모양

  1950년 11월 29일 남원에서 열린 사단본부 참모회의에 참석하려던 미 군사 고문단의 리 대령과 장교 2명

  사병 28명이 수철에서 방곡으로 넘어가는 고동재에서 빨치산의 공격으로 사망한다.

 산청 함양 양민 학살,거창 양민 학살의 원인이 된다.

1240 수철마을(3.6km) 12.1km(23.1km)
  솥이나 농기구를 만들던 철점이 있어서 무쇠점 또는 수철 동이라 불리었다.

 

용유담

모전마을(세동)

1년이면 2000잔 정도 무료 서비스란다.

대부분 매점들이 돈의 노예가 돼있는데...

특히 쌍재 매점 아줌씨 그러면 안돼요

다시 안온다고...

임천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서 발원하여 인월면,산내면,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휴천면,유림면을 지나

산청군 생초면에서 남강에 합류한다.

오늘 임천 따라 간다

울시유가 할아버지 산에 갈때 드시라고 어제 종일 만들었다.

방곡리

산청 함양 양민 학살 추모공원

상사폭포

쌍재 매점

성질 고약한 주인장 있음

웬만하면 그냥 지나소

비싸고 불친절하고 까칠하고 바로 후회되는 막초 맛

지리산 동부능선 하봉 중봉 천왕봉

왕산 필봉산

금서면 멀리 산청읍

통한의 방곡리

고동재

1950년 11월 29일 남원에서 열린 사단본부 참모회의에 참석하려던 미 군사 고문단의 리 대령과 장교 2명

사병 28명이 수철에서 방곡으로 넘어가는 고동재에서 빨치산의 공격으로 사망한다.

금서면 수철리 마을회관

지리산둘레길 5코스 종점 6코스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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