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호남정맥 19구간종주(오도치-파청치-방장산-배거리재-주월산-무남이재-천치재-존재산-주릿재-석거리재) 본문

이 또한 지나가리/호남정맥(完)

호남정맥 19구간종주(오도치-파청치-방장산-배거리재-주월산-무남이재-천치재-존재산-주릿재-석거리재)

無碍人 2015. 9. 7. 11:04

2015년 9월4일 금요일 청명 나홀로

 

오도재(260m)는 보성군 득량면에서 겸백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845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난다.

방장산에서 흘러내리는 산세가 다섯마리의 새끼 돼지가 내려 오는 것 같다 하여 오돈재(五豚峙)가 되었다. 이것이 다시 음차되어 오도재가 되었다.

현재 시각 4시 30분 택시는 돌아갔다.

명 직전의 칠흑 같은 어둠에 불을 밝히고, 음산한 숲으로 몸을 밀어 넣으려는 순간, 어디선가 장엄한 음악이 들려 온다.

딱 장송곡이라 하면 맞을것 같은 음울한 음악 소리에 전신에 소름이 쏴~악...(04:30)

어딘가 절이나 기도원이 있나보다 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새벽 예불(예배)을 알리는 음악이 여명 직전의 어둠과 맞물려 산꾼에겐 장송곡으로 들리나 보다.

숱하게 야등을 하고 있지만 첫발을 내딛는 순간은 늘 긴장이 된다.

숲에 들면 어느 순간 편안해 지는데...

오늘도 숲은 여전히 이슬로 온통 젖어 있다.

일교차가 심한 계절에다가 득량 앞바다의 해무가 밤새도록 숲을 적셨나 보다.

스패치를 착용하고 국사봉(355m) 오름을 올라 어둠에 몸을 맡긴다.(05:00)

국사봉부터 파청재까지는 편안한 등로다.

파청재(270m)는 옛날 인근 마을 뒷산에 있던 절에 빈데가 많아 스님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며 마을를 없앴다.

마을 폐했다는 뜻으로 파정이라 했다.

250년전 김해 김씨들이 입촌하여 마을을 형성하며 그대로 쓴 것이라 한다.

파정은 불교에서 수행자가 사리(事理)의 본성을 깨닫기 위해 먼저 한 혼미한 생각을 깨트려 없애는 것을 말한다.

파정이라 했던 것이 음차되어 파청이되고 인근 파청마을 이름이 고개 이름이 됐다.(05:30)

파청재에 이르자 어둠은 가시고 동쪽 하늘이 붉어진다.

파청재로 부터 한국통신 송전탑이 있는 방장산은 완만한 능선 오름이지만 시멘트 포장이 돼 있어 걷기는 편해도 꾸준히 올라야 한다.

특히 요즘 같은 날씨의 한낮이라면 그늘이 없어 꽤나 힘든 코스다.

다행히 여명 직후라 선선한 아침 바람에 쉽게 방장산(535m) 정상에 선다.

방장산(方丈山)은 보성군 득량면 예당리와 송곡리, 겸백면 수남리와 조성면 덕산리에 걸쳐 있다.

신선이 노니는 산이라 하여 방장산, 놀기 좋은 산이라 하여 예당산, 파청에 있는 산이라 하여 파청산이라 불렀다.

옛 패주현(보성)과 조양현(조양면)의 경계로 파청역이 있었다.(06:10)

고흥지맥의 능선으로 솟아 오른 태양이 득량만을 비추는 아침 일출이 장관이다.

산꾼으로 숱하게 일출을 맞이 하지만, 산에서 바다를 향해 비추는 일출을 맞이 하는 것은 처음이다.

한동안 송신탑 옥상에서 득량만과 고흥지맥의 일출 감상에 발길을 멈추고 이른 아침을 해결한다.(06:30)

방장산으로 부터 주월산 무남이재는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오르 내림없이 편안하게 진행한다.

잔뜩 이슬을 머금은 등로는 젖어 있어도 스패치로 충분하고 등로 정비도 잘 돼 있다.

방장산에서 20여분 이면 고개 흔적만 남은 안부에 이르는데 표지기도 없지만 이곳이 이드리재다.

이드리재(410m)는 보성군 조성면 덕산리에 있다.

겸백면 수남리와 조성면 덕산리에 있는 고개로 옛날 어느 무속인이 이고개가 내(川)가 되어 흐를 것이라 해서 '이냇고개'라 불렀다.

한자로 이천치(以川峙)라 했다. 이천치가 이드리재로 변이 되었다.(06:50)

이드리재로 부터 20여분 뚜렷한 고개 흔적이 있고 최근까지도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고개가 배거리재다.

배거리재는 겸백면 수남리와 조성면 우천리 사이의 고개다.

배가 걸렸다는 뜻으로 전설에 의하면 이곳까지 물이 들어와 이고개에 배를 대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07:12)

주월산(舟越山557m)은 보성군 겸백면 대곡리 덕산리 봉능리 우천리에 걸쳐 있다.

배가 넘어 갔다 하여 주월산이라 부른다.

옛날 득량 앞 바닷물이 홍수로 밀려와 배가 이산을 넘어갔다는 이야기가 이곳에 구전돼 오고 있다.(07:22)

무남이재는 보성군 겸백면 수남리에서 조성면 대곡리를 잇는 고개다. 시멘트 포장이 돼 있는 임도다.

옛날 득량 앞바다의 물이 홍수로 고개를 넘어 물넘은 고개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드리재, 배거리재, 주월산, 무남이재 모두가 득량 앞바다의 홍수와 연관돼 생겨난 지명이다.

옛날 어느 시기 득량 앞바다에 큰 해일이 일어 홍수가 난 일이 있었기에 생겨난 지명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가 지진 해일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구전 돼오는 전설에서 배워야 한다.(08:04)

무남이재로 부터 가파른 오름을 20여분 극복하면 초암산 갈림길 광대코재다.

광대코재는 멀리서 보면 광대의 얼굴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08:30)

초암산(草庵山576m)은 정맥길에서 비켜서 있는 철쭉 산행지로 유명하다.

보성군 겸백면과 율어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큰바위가 많다.

금화사지와 마애석불 ,길이 20m의 베틀굴로 유명하다.

초암산은 다른 이름으로 금화산이라 하는데 금화산은 존제산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광대코재로 부터는 지옥 산행길이다.

호남정맥이 가시덤풀과 넘어진 나무와 전쟁이라면 이곳 광대코재로 부터 천치재구간 3km는 억새, 철쭉, 싸리나무 군락의 옛 방화선

구간으로 길이 전혀 없다.

며칠 전 누군가 지나간 흔적으로 꺽여진 억새 사이로 어림하여 가는 등로는 5분도 지나지 않아 온몸이 이슬에 젖는다.

스패치도 이제는 무용지물이다.

팬티까지 젖은 몸이 스패치라고 내 발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

등산화는 이미 벌컥 거리고 끝도 없는 이슬과 가시덤풀과의 전쟁은 한숨만 난다.

언제 고흥지맥 분기봉을 지났는지 2시간여 사투를 벌이다 보니 천치재(모임재)가 저아래 내려다 보인다.

철쭉과 싸리나무 크기가 사람 키 정도로 자라 숲을 헤치고 가는 길이 점점 힘들어질거 같다.

뒤에 오는 정맥 꾼들은 이곳을 지날때는 날씨 좋은 한낮을 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가능한 동절기에 지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슬 많은 오전이나 비오는날은 오늘 나처럼 지옥을 갔다 왔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구간이다.

고흥지맥은 존제산 남쪽 2km지점의 적지봉(571m)에서 분기하여 남동진 하며 태봉, 가마봉, 장군봉, 삼봉, 혼백산, 천봉산,

소대방산, 운암산, 반월산, 수덕산, 오무산, 벼락산, 천등산, 우마장산, 유주산등을 일구고 지죽대교앞 고흥반도 남단 남해바다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90.9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원래 지맥 이름에는 산이름을 쓰는데 고흥반도를 남북으로 온전하게 종단하는 특수성을 고려해 지역 이름을 따 고흥지맥이라 부른다.

천치는 모암재(帽岩峙), 선암재, 유재 등으로 불리며 보성군 율어면 선암리에서 벌교읍 옥전리 느재골을 잇는 고개다.

천치(天峙)는 부처님과 하나님이 모이는 고개라 하여 천치라 부른다.

존제산(尊帝山712m)은 벌교의 진산으로 보성군 율어면,벌교읍에 걸쳐있는 해발 300m이상의 고지가 65㎢ 나 되는 큰산이다.

원래 이름은 존자산(尊者山)이나 고려 충렬왕이 존제산이라 했다. 금화산(金華山), 장광산(光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고장의 산수의 조종산 격인 제암산을 잊지 못해 돌아 보고 높이 받든다는 뜻에서 그리 불렀다.

존제산은 정상에 공군부대가 있어 출입금지 구역이다.

존제산 오름을 50여분 극복하면 첫번째 철조망이 나온다.

쉽게 넘어갈 수 있다. 10여 분 후 2번째 철조망도 그닥 어렵지 않게 통과하고 3번째 철조망 앞에 선다.

이리저리 길을 살피는데 경고 방송이 시작된다.

내용인즉 과거 지뢰가 설치된 지역이라 위험하니 출입이 금지된 지역이며 출입시는 처벌 받는다는 녹음된 경고 방송이 영어와

우리말로 반복된다. 선답자의 산행기 따라 좌틀 두번하여 넘어진 철조망을 넘어 폐쇄된 군막사를 지나도

부대 누구도 아는척 하지 않는다.

다소 긴장된 마음으로 정상의 군부대 동정을 살피며 부대 정문을 통과한다.(11:20)

군부대 정문으로 부터 주릿재까지는 부대 진입 비상도로로 비포장이지만 정비가 잘돼 있다.

원래는 존제산 정상에서 주릿재까지 마루금을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마루금이 개방이 전혀 안 된 지뢰 지대 인데다가 한국통신

송신탑, 백동농장 등으로 마루금 연결이 안된다.

부대 정문으로 부터 40분 되는 지점 반사경 옆으로 주릿재로 내리는 지름길을 이용하면 1시간여면 주릿재에 이른다(12:30)

주릿재는 보성군 벌교읍에서 율어면으로 이어지는 고개다.

한자로 '주로치(周老峙)라고 한다.

긴 밧줄을 풀어놓은  구불구불한 모양새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수세식 화장실과 정자,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문학비가 있다.

문학비에는 조정래의 필체로 ‘징광산과 제석산은 태백산맥이라는 거대한 나무의 실가지에 피어난 잎들이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나 같은 대간,정맥 종주꾼에겐 '태백산맥'이라는 글귀가 거슬리지만 어쩌랴....이름은 달라도 맞는 이야기 인걸....

언제쯤 우리 산줄기를 우리가 지은 이름으로 표현할 날이 올라나???

왼쪽은 율어면이다.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

염상진이 무상분배에 의한 토지개혁을 단행한곳으로 소작농민들의 높은 호응을 산곳이다. 

여순사건과 한국전쟁 근간에 벌교에서 일어난 좌,우익의 대립으로 선택의 기로에 섰던 소작농과 민초들의 삶의 현장을 가고 있다.

나라가 망하고 양반과 지도층은 재빠르게 친일의 길로 들어서 부를 축적하는데 골몰하고 일반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한다.

광복을 맞고 조선 반도는 토지개혁이라는 혁명을 기대하는데...

철석같이 믿었던 이승만 정권은 유상보상 유상분배의 토지개혁을 발표하며 소작농과 빈농의 반발을 산다.

이미 북한에 들어선 북조선 인민위원회는 1946년 3월5일 "북조선토지개혁법"에 의해 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에 따라 빈농 머슴을 중심으로

농지개혁 위원회를 조직하고 일본인, 민족반역자, 5정보 이상의 토지를 소유한 대지주의 땅을 무상 몰수하여 토지가 없거나

부족한 농민에게 가족수에 따라 무상으로 분배한다.

대부분이 소작농이거나 빈농이였던 벌교 지역 농민들은 이 소식을 접하고 크게 반발한다. 좌우가 대립하며 수많은 희생자를 낸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어떤이들은 '불그락 불그락'한다고 이념의 색깔을 씌운다.

그러나 우리가 잃어버린 70년의 역사중 반쪽을 기억할 때다.

주릿재로 부터 석거리재 4km는 다시 가시덤풀과의 싸움이다.

석거리재(240m)는  순천시 외서면 장산리와 보성군 벌교읍 낙성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15번 국도가 지난다.

석거리재는 원래 '섶거리재'로 이 고개에 섶나무가 많았던 데서 유래한다.

섶거리재를 한자로 표기하면 신거치(), 혹은 신치()가 된다.

석거리재는 승려들이 모여 문장을 자랑하던 곳으로 전해진다.(15:50)

1. 산행코스

   오도치-국사봉-파청재-방장산-이드리재-배거리재-주월산-무남이재-광대코재-고흥지맥분기봉-천치재-존재산-주릿재-석거리재

   (11시간 20분,21.6km)

 

2, 산행경로

   21:40분 - 집출발
   22:53분 - 영등포 전라선 무궁화호 탑승
   03:26분 - 순천역
   04:30분 - 오도재
   05:00분 - 국사봉(355m)
   05:30분 - 파청재(270m)
   06:10~30분 - 방장산(535.9m)-김밥으로 아침해결
   06:50분 - 이드리재(이천치)-이냇고개
   07:12분 - 배거리재
   07:22분 - 주월산(557m)
   08:04분 - 무남이재
   08:30분 - 광대코재-571봉
   09:35분 - 고흥지맥 분기점
   10:14 분 - 천치재(모암재)
   11:10분 - 존재산 지뢰지대 및 철조망 통과
   11:15분 - 존재산(704m)/ 군견묘 빈막사
   11:20분 - 군부대 정문 통과
   12:00분 - 도로 좌숲길 진입(반사경 부근)
   12:30 ~12:50분 - 주릿재(태백산맥문학비)-캔맥주 빵으로 점심
   13:30 분 - 2차선 포장도로 철계단-485봉
   14:44분 - 임도5거리
   15:50분 - 석거리재(240m)15번국도 -석거리재휴게소
   16:20분 - 순천방향 1km지점 외서면 장산 63번탑승
   19:37분 - 용산행 ktx(금요일이라 표가없다)

 

@. 교통편

   영등포-순천역 22:53분 무궁화호

   순천역-오도치(택시 45000원)

   순천역-득량역 05:55분

   득량역-오도치(득량택시8000원) 접근가능

   석거리재-순천역 63번버스(80분간격배차,순천방향 외서면 장산이동1km탑승)

   석거리재-벌교-순천 이동가능

   순천-용산 ktx

 

3. 산경표

 

 

 

오도재(260m)는 보성군 득량면에서 겸백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845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난다.

방장산에서 흘러내리는 산세가 다섯마리의 새끼 돼지가 내려 오는 것 같다 하여 오돈재(五豚峙)가 되었다. 이것이 다시 음차되어 오도재가 되었다.

 

 

 

파청재(270m)는 옛날 인근 마을 뒷산에 있던 절에 빈데가 많아 스님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며 마을를 없앴다.

마을 폐했다는 뜻으로 파정이라 했다.

250년전 김해 김씨들이 입촌하여 마을을 형성하며 그대로 쓴 것이라 한다.

파정은 불교에서 수행자가 사리(事理)의 본성을 깨닫기 위해 먼저 한 혼미한 생각을 깨트려 없애는 것을 말한다.

파정이라 했던 것이 음차되어 파청이되고 인근 파청마을 이름이 고개 이름이 됐다

 

 

 

 

 

득량만

고흥지맥 능선으로 솟아 오르는 일출

 

 

송신탑 옥상에서 비박하기 딱 좋다

 

방장산(方丈山)은 보성군 득량면 예당리와 송곡리, 겸백면 수남리와 조성면 덕산리에 걸쳐 있다.

신선이 노니는 산이라 하여 방장산, 놀기 좋은 산이라 하여 예당산, 파청에 있는 산이라 하여 파청산이라 불렀다.

 

이드리재(410m)는 보성군 조성면 덕산리에 있다.

겸백면 수남리와 조성면 덕산리에 있는 고개로 옛날 어느 무속인이 이고개가 내(川)가 되어 흐를 것이라 해서 '이냇고개'라 불렀다.

한자로 이천치(以川峙)라 했다. 이천치가 이드리재로 변이 되었

 

배거리재는 겸백면 수남리와 조성면 우천리 사이의 고개다.

배가 걸렸다는 뜻으로 전설에 의하면 이곳까지 물이 들어와 이고개에 배를 대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방장산

 

 

 

주월산 정상은 패러글라이딩 장

주월산(舟越山557m)은 보성군 겸백면 대곡리 덕산리 봉능리 우천리에 걸쳐 있다.

배가 넘어 갔다 하여 주월산이라 부른다.

옛날 득량 앞 바닷물이 홍수로 밀려와 배가 이산을 넘어갔다는 이야기가 이곳에 구전돼 오고 있다

 

 

득량만

 

 

 

 

 

 

 

무남이재는 보성군 겸백면 수남리에서 조성면 대곡리를 잇는 고개다. 시멘트 포장이 돼 있는 임도다.

옛날 득량 앞바다의 물이 홍수로 고개를 넘어 물넘은 고개라는 뜻을 갖고 있다

 

 

지나온 주월산 방장산

 

 

 

 

 

 

지옥길이 이런걸까?

 

청명한 날씨에 이정도 젖는다.

집에와보니 양 겨드랑이와 허벅지에 온통 풀독이다.

 

 

대책이 없는 길이다.

 

 

존제산(尊帝山712m)은 벌교의 진산으로 보성군 율어면,벌교읍에 걸쳐있는 해발 300m이상의 고지가 65㎢ 이나 되는 큰산이다.

원래 이름은 존자산(尊者山)이나 고려 충렬왕이 존제산이라 했다. 금화산(金華山), 장광산(光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고장의 산수의 조종산 격인 제암산을 잊지 못해 돌아 보고 높이 받듯다는 뜻에서 그리 불렀다

천치는 모암재(帽岩峙), 선암재, 유재 등으로 불리며 보성군 율어면 선암리에서 벌교읍 옥전리 느재골을 잇는 고개다.

천치(天峙)는 부처님과 하나님이 모이는 고개라 하여 천치라 부른다.

 

 

 

첫번째 철조망

두번째 철조망

 

세번째 철조망

경고방송이 나온다.

 

 

군부대 정문

 

 

존제산 한국통신 송신탑

 

 

 

 

 

 

주릿재는 보성군 벌교읍에서 율어면으로 이어지는 고개다.

한자로 '주로치(周老峙)라고 한다.

긴 밧줄을 풀어놓은  구불구불한 모양새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수세식 화장실과 정자,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문학비가 있다.

문학비에는 조정래의 필체로 ‘징광산과 제석산은 태백산맥이라는 거대한 나무의 실가지에 피어난 잎들이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석거리재(240m)는  순천시 외서면 장산리와 보성군 벌교읍 낙성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15번 국도가 지난다.

석거리재는 원래 '섶거리재'로 이 고개에 섶나무가 많았던 데서 유래한다.

섶거리재를 한자로 표기하면 신거치(), 혹은 신치()가 된다.

석거리재는 승려들이 모여 문장을 자랑하던 곳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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