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낙동정맥 9구간종주(화매재-시루봉-황장재-대둔산갈림봉-통천문-두고개-먹구등-명동재-느지미재-큰골-내원동-용연폭포-후리메기삼거리-대전사) 본문

이 또한 지나가리/낙동정맥(完)

낙동정맥 9구간종주(화매재-시루봉-황장재-대둔산갈림봉-통천문-두고개-먹구등-명동재-느지미재-큰골-내원동-용연폭포-후리메기삼거리-대전사)

無碍人 2016. 11. 18. 12:10

2016년 11월15일 화요일 쾌청 친구배법이랑


1948년 이후 68년만에 가장 큰 슈퍼문이 뜬다는 날이다.

인천을 출발할때 하늘은 잔뜩 찌푸려 달을 볼수 없었는데 자정을 넘겨 안동권으로 접어드니 휘엉청 하늘엔 슈퍼문이 구름 사이를 흐른다.

슈퍼문은 달과 지구의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지구에서 보는 달이 크게 보이는 현상이다.

달은 평균 약 38만 4,400㎞ 거리에서 지구 주위를 서에서 동으로 공전한다.

달은 자전축을 중심으로 29.5일 만에 1바퀴씩 자전하는데, 이 주기는 달이 지구 주위를 1바퀴 공전하는 시간과 같다.

공전주기 동안 달의 위상은 삭(달이 지구와 태양 사이에 위치해 볼수 없는 상태 음력 29,30일)과

망(지구를 중심으로 해와 달이 일직선이 될때 음력 15일)을 오간다.

달이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과 일직선이 될때 완전하게 빛날때 망, 즉 만월,보름달이다.

보름달 중에서 지구와 달의 거리가 평소보다 가까워지는 시기에 뜨는 보름달을 슈퍼문이라고 부른다.

달은 거의 19년 주기로 지구와 가까워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슈퍼문은 평소 보름달보다 크기가 10% 이상 크고, 밝기도 30% 이상 밝다.

슈퍼문 현상은 달이 지구를 타원형 궤도로 공전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

안동터미널에서 택시를 흥정해 화매재로 이동한다.(01:00)

화매재(330m)는 영양군 석보와면과 영덕군 지품면을 잇는 고개로 911번 지방도로가 지나며 화매리의 지명을 따 화매재라 하는데,

이지역 사람들은 선들재라 부른다,

등로는 가을 낙엽으로 걷기 편하고 슈퍼문이 유난하지만 내 디카로는 한계가 있다.

오룩스 앱의 음성 지원이 안돼 만지작 거리며 걷다가 예전에 만들어진 참호에 굴러 떨어지고 정강이와 팔꿈치에 영광의 상처를 입는다.

친구 배법의 큰일날뻔 했다는 위로에 아픔을 참고 진행한다.

황장재(黃腸峙405m)는 청송군 진보면 괴정리와 영덕군 지품면 황장리를 잇는 고개로 34번 국도가 지난다.

임물현(, 임물령·임울령·임울현) 또는 황장재산()이라고도 부른다.

황장재궁궐의 건축자재로 쓰던 질 좋은 소나무인 황장목()을 함부로 벌채하지 못하도록 입산을 금지하던 산인 '황장봉산()'

으로부터 비롯된 명칭이다.(03:15)

야간 산행은 현 위치와 지형을 제대로 살필 수 없어 답답하지만 산행하긴 참좋은 날씨다.

대둔산 직전 묘지에서 묘지 좌측으로 마루금은 이어지는데 살짝 알바를 하고 이내 복귀한다.

대둔산(大遯山 905m)은 청송읍 월외리와 영덕군 지품면에 있는 산으로 일명 대돈산이라 부른다.

골이 깊고 접근하기 어려워 피난민들이나 선사들이 살았다하여 대둔산(大遯山 905m)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엔 둔동산(山)으로 기록돼 있고, 둔동산 옆 용두봉에 기우제를 지내면 효험이 있다는 기록도 있다.

둔동산(山),대둔산(山),대둔산(大遯山)으로 산이름이 변해왔다.

알바를 하는 과정에 대둔산 정상을 놓쳐 다녀 오진 못했다.(05:25)

대둔산 갈림길 까지 급하게 고도를 높이던 등로는 편안하게 바뀌고 제법 아기자기한 암릉도 지루한 산행을 긴장케한다.

작은 통천문을 지나 두고개에서 이른 아침을 해결한다.(07:30~08:00)

두고개(700m)는 청송읍 월외리와 영덕군 지품면 기사리사이에 있는고개로 먹구등 바로 아래에 있다.

또 두고개는 먹구등과 두수람사이에도 같은 이름의 고개가 있다.

아마 이 고개 두개를 합쳐 고개가 두개라 두고개 인지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없다.

먹구등(846m)은 근처에 평평한 돌이 있어 올라 구르면 소리가 울린다하여 벅구등이라 하다가 변음돼 먹구등이 됐다.

'벅'은 야무지게 긁거나 문지르는 소리나 모양,혹은 엷고 질긴 종이나 천 따위를 한번에 찢는 소리나 모양을 뜻하는 단어로 바위에

올라 구르면 그런 소리가 났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주변 어디도 평평한 바위는 없고 등로가 평평한 제법 넓은 봉우리다.(08:20)

명동재(875m)는 먹구등에서 편안하게 진행하며 시그날이 없다면 그냥 지나는 봉우리다.(08:50)

명동재로부터 급하게 200여m 고도를 낮추면 느지미재다.

느지미재,느즈미재,느즈매기(650m)라고  부르며 옛날 이곳 내원동 사람들이 영덕에 장보러 가면 아침 일찍 출발해도 저녁 느즈막이

도착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09:20)

정맥길은 오늘 여기 끝이다.

지난번 우천으로 황장재 까지 이동 못하고 화매재에서 끝는 관계로 우리 체력으로 피나무재 까지 한번에 갈 수 없어 주왕산 산행을

정맥 종주 코스에 넣기로 했다.

이번엔 느즈미재에서 내원동 주왕산계곡 코스를 다음엔 피나무재에서 북진하여 왕거암에서 정맥을 마치고 가메봉 주왕산 정상 코스로

하산하여 주왕산을 샅샅이 뒤지기로 한다.

느즈미재에서 큰골 내림은 등산로가 없다.

예전엔 고갯 길이 였는데 국립공원 지정으로 내원동 마을이 소개돼며 사람들이 나가면서 길도 끊겼다.

장마철 우중에는 진행이 불가능 할정도로 원시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주왕산은 각기 달리 빚어진 다양한 절경만큼 많은 전설이 서려 있다.

주왕산의 이름은 원래 돌로 병풍을 친 것 같다하여 석병산()이라 하였다가, 골이 깊고 접근하기가 어려워 피난민들이나 선사들이

살았다하여 대둔산()이라고도 불렸다.

후에, 중국 주나라의 왕이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으로 쳐들어갔다가 크게 패하여 피난했던 곳이라 하여 지금의 주왕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주왕산의 아름다운 지형들의 명칭 또한 다양한 전설을 품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절벽 위에 청학과 백학 한 쌍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학소대(),

주왕과 마장군이 격전을 가졌던 기암을 빼놓을 수 없다.

급수대()의 유래는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37대 왕인 선덕왕이 후손이 없어 무열왕의 6대손인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하였으나,

대신들의 반대로 왕위를 양보하고 주왕산으로 피신하여 대궐을 건립하였다.

그 당시 산 위에 샘이 없어 계곡의 물을 퍼 올려 식수로 사용하여, 이곳을 급수대라 부르게 되었다.
또한, 주왕산 중턱에 있는 시루봉은 그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어느 겨울에 한 도사가 이 바위 위에서 도를 닦고 있을 때 신선이 와서 불을 지펴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이 밖에도 주왕의 아들과 딸이 달구경을 하였다는 망월대, 멀리 동해가 보이는 험준한 지형의 왕거암, 주왕이 숨었다가 숨진 주왕굴,

폭포, 약수 등 경관들이 어우러져 있다.
주왕산국립공원의 내주왕 지구에 위치하고 있는 주산지()는 1721년 10월 경종 원년에 준공한 인공호수로, 길이 100m, 넓이 50m,

수심 8m의 규모로 인근 60여 가구의 6,000여 평 남짓한 농토의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주산지는 신기하게도 아무리 극심한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다고 한다.

이에, 주산지 아래 마을 사람들은 매년 호수 주변을 정리하고 제사를 올린다.(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1. 산행코스

   화매재-시루봉-황장재-대둔산-두고개-먹구등-명동재-느즈미재-큰골-내원동-후리메기삼거리-용추협곡-대전사

   (23.5km(정맥17.5km,주왕계곡6km),11시간 50분(정맥 8시간 20분,주왕계곡 3시간 30분))


2. 산행경로

   20:40분 - 동서울터미널

   23:30분 - 동서울터미널

   01:00분 - 화매재(330m) -시루봉(532.0m)
   03:15분 - 황장재(405m)-갈평재
   04:30분 - 591봉( 황장재3.1km7.5km,먹구등5.8km)
   05:25분 - 대둔산갈림길
   06:30분 - 849봉-742봉
   07:08분 - 작은통천문 14km
   07:30분~08:00분 - 두고개 아침
   08:20분 - 먹구동
   08:50분 - 명동재
   09:20분 - 느지미재 17.4km
   10:30분 - 큰골
   10:50분 - 내원동
   11:30분 - 용연폭포(후리메기삼거리)
   11:38분 - 절구폭포
   12:50분 - 대전사
   14:08분 - 동서울행탑승


@. 교통편

   인천-동서울 전철

   동서울-안동 심야버스

   안동-화매재(택시 50000원)

   주왕산-동서울


3. 산경표


 절구폭포


화매재(330m)는 영양군 석보와면과 영덕군 지품면을 잇는 고개로 911번 지방도로가 지나며 화매리의 지명을 따 화매재라 하는데,

이지역 사람들은 선들재라 부른다,


수퍼문

1948년 이후 68년만에 가장 큰 슈퍼문이 뜬다는 날이다.

인천을 출발할때 하늘은 잔뜩 찌푸려 달을 볼수 없었는데 자정을 넘겨 안동권으로 접어드니 휘엉청 하늘엔 슈퍼문이 구름 사이를 흐른다.

슈퍼문은 달과 지구의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지구에서 보는 달이 크게 보이는 현상이다.

달은 평균 약 38만 4,400㎞ 거리에서 지구 주위를 서에서 동으로 공전한다.

달은 자전축을 중심으로 29.5일 만에 1바퀴씩 자전하는데, 이 주기는 달이 지구 주위를 1바퀴 공전하는 시간과 같다.

공전주기 동안 달의 위상은 삭(달이 지구와 태양 사이에 위치해 볼수 없는 상태 음력 29,30일)과

망(지구를 중심으로 해와 달이 일직선이 될때 음력 15일)을 오간다.

달이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과 일직선이 될때 완전하게 빛날때 망, 즉 만월,보름달이다.

보름달 중에서 지구와 달의 거리가 평소보다 가까워지는 시기에 뜨는 보름달을 슈퍼문이라고 부른다.

달은 거의 19년 주기로 지구와 가까워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슈퍼문은 평소 보름달보다 크기가 10% 이상 크고, 밝기도 30% 이상 밝다.

슈퍼문 현상은 달이 지구를 타원형 궤도로 공전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





황장재(黃腸峙405m)는 청송군 진보면 괴정리와 영덕군 지품면 황장리를 잇는 고개로 34번 국도가 지난다.

임물현(, 임물령·임울령·임울현) 또는 황장재산()이라고도 부른다.

황장재궁궐의 건축자재로 쓰던 질 좋은 소나무인 황장목()을 함부로 벌채하지 못하도록 입산을 금지하던 산인 '황장봉산()'

으로부터 비롯된 명칭이다.





대둔산(大遯山 905m)은 청송읍 월외리와 영덕군 지품면에 있는 산으로 일명 대돈산이라 부른다.

골이 깊고 접근하기 어려워 피난민들이나 선사들이 살았다하여 대둔산(大遯山 905m)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엔 둔동산(山)으로 기록돼 있고, 둔동산 옆 용두봉에 기우제를 지내면 효험이 있다는 기록도 있다.

둔동산(山),대둔산(山),대둔산(大遯山)으로 산이름이 변해왔다.

알바를 하는 과정에 대둔산 정상을 놓쳐 다녀 오진 못했다.(05:25)

대둔산 갈림길 까지 급하게 고도를 높이던 등로는 편안하게 바뀌고 제법 아기자기한 암릉도 지루한 산행을 긴장케한다.





통천문



두고개(700m)는 청송읍 월외리와 영덕군 지품면 기사리사이에 있는고개로 먹구등 바로 아래에 있다.

또 두고개는 먹구등과 두수람사이에도 같은 이름의 고개가 있다.

아마 이 고개 두개를 합쳐 고개가 두개라 두고개 인지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없다.




먹구등(846m)은 근처에 평평한 돌이 있어 올라 구르면 소리가 울린다하여 벅구등이라 하다가 변음돼 먹구등이 됐다.

'벅'은 야무지게 긁거나 문지르는 소리나 모양,혹은 엷고 질긴 종이나 천 따위를 한번에 찢는 소리나 모양을 뜻하는 단어로 바위에

올라 구르면 그런 소리가 났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주변 어디도 평평한 바위는 없고 등로가 평평한 제법 넓은 봉우리다



명동재




느지미재,느즈미재(650m)라고  부르며 옛날 이곳 내원동 사람들이 영덕에 장보러 가면 아침 일찍 출발해도 저녁 느즈막이

도착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왕산은 각기 달리 빚어진 다양한 절경만큼 많은 전설이 서려 있다.

주왕산의 이름은 원래 돌로 병풍을 친 것 같다하여 석병산()이라 하였다가, 골이 깊고 접근하기가 어려워 피난민들이나 선사들이

살았다하여 대둔산()이라고도 불렸다.

후에, 중국 주나라의 왕이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으로 쳐들어갔다가 크게 패하여 피난했던 곳이라 하여 지금의 주왕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주왕산의 아름다운 지형들의 명칭 또한 다양한 전설을 품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절벽 위에 청학과 백학 한 쌍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학소대(),

주왕과 마장군이 격전을 가졌던 기암을 빼놓을 수 없다.

급수대()의 유래는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37대 왕인 선덕왕이 후손이 없어 무열왕의 6대손인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하였으나,

대신들의 반대로 왕위를 양보하고 주왕산으로 피신하여 대궐을 건립하였다.

그 당시 산 위에 샘이 없어 계곡의 물을 퍼 올려 식수로 사용하여, 이곳을 급수대라 부르게 되었다.
또한, 주왕산 중턱에 있는 시루봉은 그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어느 겨울에 한 도사가 이 바위 위에서 도를 닦고 있을 때 신선이 와서 불을 지펴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이 밖에도 주왕의 아들과 딸이 달구경을 하였다는 망월대, 멀리 동해가 보이는 험준한 지형의 왕거암, 주왕이 숨었다가 숨진 주왕굴,

폭포, 약수 등 경관들이 어우러져 있다.
주왕산국립공원의 내주왕 지구에 위치하고 있는 주산지()는 1721년 10월 경종 원년에 준공한 인공호수로, 길이 100m, 넓이 50m,

수심 8m의 규모로 인근 60여 가구의 6,000여 평 남짓한 농토의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주산지는 신기하게도 아무리 극심한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다고 한다.

이에, 주산지 아래 마을 사람들은 매년 호수 주변을 정리하고 제사를 올린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