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리 부부 산방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르네상스 꽃 피렌체) 본문
2018년 6월1일 금요일 맑음 천사랑
로마와 더불어 피렌체 여행도 답사 여행이 될 수 밖에 없다.
서유럽 여행이 전반적으로 역사속으로 여행이지만 로마와 피렌체는 더욱 그렇다.
높은 첨탑, 끊임없이 하늘에 오르려 했던 중세 신 중심 사회에서 인간을 생각하고 인간을 바라 보기 시작 한게 르네상스다.
르네상스의 뜻이 프랑스어로 '새로운 시작' 'renaissance', 이탈리아어의 'rina scenza, rinascimento' 에서 왔다.
그 르네상스 중심에 피렌체가 있었고 피렌체엔 후원자 메디치 가문이 있고 한 세기에 한명이나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들이 한시기 10여명이나 나왔던 곳이 피렌체다.
그 천재들 중 첫번째로 화가이며 조각가이며 건축가 과학자인 레오르도 다빈치"최후의 만찬" 수태고지" "암굴의성모" "모나리자",
두번째로 미켈린젤로 "최후의 심판"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은 바티칸 궁전의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그림이다.(천장화,벽화)
최후의 심판은 1541년 10월 로마 시민의 찬탄속에 공개됐다.
그림속 인물들은 모두 나체였다.
시민과 교회 권력자들은 모두 뒤집어졌다.
불경하다고....그래서 교황 비오4세는 나체의 부끄러운 부분을 모두 가리라 명령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피렌체로 내려와 버렸다.
연로한 미켈란젤로가 피렌체에서 더이상 움직일수 없다 하자 제자인 다니엘레 다 볼테리가 나체에 기저귀를 채웠다.
그래서 그는 브라케토네(Braghettone, 기저귀를 채우는 사람)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다른 제자 마르첼로 베누스티가 기저귀 채우기전 작품을 모사해 놓아 후대에 원작의 모습이 전해졌다.
피렌체에는 다빈치,미켈란젤로 외에도 보티첼리,라파엘로,단테,갈릴레이 갈릴레오,도나텔로,마키아벨리,브르넬레스코등
이름만 들어도 탄성이 절로나는 천재들의 고향이다.
미 모두를 메디치 가문에서 후원했다.
메디치가(Medici)는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피렌체에서 강력한 영향력이 있었던 가문이다.
메디치가는 세 명의 교황(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레오 11세)과 피렌체의 통치자 로렌초 (르네상스 예술의 후원자)를
배출하였으며, 나중에는 혼인을 통해 프랑스와 영국 왕실의 일원까지 되었다.
메디치 가문의 위대함은 중세 천년을 지배해온 종교적 도그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메디치 가문은 먼저 시민들이 자신의 이익보다도,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덕목을 심어주려 했다.
그리고 그 가치를 고대 로마제국의 공화정 시대에서 찾으려 했다.
이를 위해 메디치 가문은 그리스와 비잔틴 제국에 흩어져 있거나, 수도원 도서관에 숨겨져 있는 고전 문헌을 수집하고,
번역을 후원했다
지금 메디치 가문은 사라졌고 후손도 끊겼다.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었던 안나 마리아 루이사(1667~1743)의 마지막 유언이
"가문이 수집한 예술품과 고전 문헌은 피렌체를 떠날 수 없다" 였다.
그 유언은 지금도 지켜 지고 있고 피렌체에 잘 보존돼고 있다.
짧은 몇시간에 피렌체의 역사를 다 볼수는 없다.
그러나 주마간산으로 스쳐가는 패키지 여행이라도 이 정도는 이해하고 보아야 보이는게 있다.
그래서 "알고 떠나라 아는 만큼 보인다"
내 불러그 대표 구호다.
알고 떠나라 아는 만큼 보인다.....
꽃의성모마리아성당 피렌체두오모성당
단테교회
시뇨리아광장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산타크로체성당
스칸디치복귀
피렌체로 가기위해 트램탑승
산타마리아노벨라성당
1278년에서 1350년 도미니크 수도회에서 처음 건축하였고, 1458년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축된 성당으로,
특히 기하학적인 문양이 있는 파사드가 특징인 곳이다. 내부 길이가 100m가 넘는 성당의 내부는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졌으며,
르네상스 최초의 원근법 작품인 마사치오의 "성 삼위일체" 를 비롯해 기르란다요, 브루넬레스키 등이 만든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피렌체 두오모성당
1292년 아놀드 캄비오 설계하여 지오토가 짓기 시작해 170년에 걸쳐프란체스코 달렌티와 라포기니가 완성했다.
르네상스기 부르넬레스키가 돔을 증축했다.
단테생가
단테의 흉상이....
베키오궁전
‘옛날 건물, 혹은 오래된 건물’이라는 뜻이다.
베키오 궁전 앞이 시뇨리아 광장이다.
1294년에 지어졌고 나중에 부온탈렌티와 바자리에 의해 확장 건설되었다.
처음 만들 때는 요새로 만들어졌지만 1540년에 메디치 가문이 이 궁전에 들어와 10년 정도 이곳에 머물다가 피티 궁전으로 이사를 갔다.
이때 사람들이 새 건물을 누오보, 옛 건물을 베키오라고 부르게 되었다
시뇨리아 광장은 중세 이후 지금까지 피렌체의 행정의 중심지다.
지금도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는 베키오 궁전과 르네상스 시대 유명 예술인들의 조각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옥외 미술관 로지아
데이 란치를 볼 수 있다.
주변으로는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회화 걸작들을 모아 놓은 우피치 미술관과 아르노 강에 놓인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폰테 베키오가 있다.
시뇨리아 광장은 메디치 가문이 살고 있던 베키오 궁전과 함께 융성한 곳이다.
폰테키오다리
폰테는 ‘다리’라는 뜻이고, 베키오는 ‘오랜’혹은 ‘낡은’이라는 뜻이다.
이 다리를 건너면 피티 궁전이 있는데 바로 우피치와 피티를 잇는 다리였다.
피렌체에는 현재 총 10개의 다리가 있다.
하지만 나머지 다리는 2차 세계대전과 홍수로 파괴되었고 이 폰테 베키오만이 1345년의 원형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다
시뇨리아 광장의 조각상
베키오궁전
‘옛날 건물, 혹은 오래된 건물’이라는 뜻이다.
베키오 궁전 앞이 시뇨리아 광장이다.
1294년에 지어졌고 나중에 부온탈렌티와 바자리에 의해 확장 건설되었다.
처음 만들 때는 요새로 만들어졌지만 1540년에 메디치 가문이 이 궁전에 들어와 10년 정도 이곳에 머물다가 피티 궁전으로 이사를 갔다.
이때 사람들이 새 건물을 누오보, 옛 건물을 베키오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 > 해외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옌뜨 국립공원(베트남) (0) | 2019.01.04 |
---|---|
베네치아(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0) | 2018.06.05 |
로마 역사 속으로 시간여행 (0) | 2018.06.05 |
카프리섬투어(그대는 아는가? 저 남쪽 나라를...) (0) | 2018.06.05 |
나폼소(나폴리 폼페이 소렌토) (0) | 2018.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