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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리 부부 산방
2021년 10월 23일 일요일 맑음 환춘이랑 오색의 새벽은 부산하다. 열이레 달이 처연히 밝고 아직 이른 추위지만 옷깃을 자꾸 여미게 하는 바람이 차다. 수천쯤 될 산님들이 설악의 단풍을 맞으러 모였다. 굳게 닫힌 철문 앞엔 발 디딜 틈도 없다. 가까스로 차지한 자리에 두 발을 모으고 철문이 열리길 기다려 어둠 속으로 몸을 마낀다. 산님들의 거친 숨소리와 스틱과 바위가 부딪히는 둔탁함이 고요를 깨운다. 선두로 치고 나가지 못하면 산님들 엉덩이를 바라보며 내내 올라야 한다. 군중 속 산행의 불편함을 알기에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 초반 속도를 올려 스무 명 정도의 선두 그룹에 선다. 후미와는 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청에 오른다. 5km, 2시간 20분 오전 5시 20분이다. 오늘 대청봉 일출이 6시 40..
2021년 10월 17일 일요일 기수, 석기, 환춘, 병선, 복순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개학이 시작될 때쯤 매미소리는 잦아들고 쓰르라미 울기 시작하면 나는 하교 후 책가방을 내 던지고 뒤뜰의 감나무에 매달렸다. 이때부터 익기 시작하는 감을 따먹기 위해서다. 뒤뜰에 고목나무 감나무와 옆집 기석이네 감 과수원이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감은 스스로 낙과하는 과수다. 낙과는 열매가 지나치게 많이 열리면 감나무가 스스로 낙과시키는 현상이다. 적당히 열매를 남겨 제대로 키우기 위한 감나무의 지혜다. 이때 다 크지 못하고 떨어지는 감 중에 빠무래기라고 하는 덜 익은 감이 있다. 아직 홍시가 되기 전 감나무의 선택에 밀려난 낙과 직전의 감을 말한다. 제대로 자라지도 못했는데 낙과로 선택된 열매가 서둘러 익은 척하는..
2021년 10월 11일 일요일 맑음 천사랑 博學之하고 審問之하고 愼思之하고 明辨之하고 篤行之하라 (박학지하고 심문지하고 신사지하고 명변지하고 독행지하라) 널리 배우고 살펴서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분별하고 독실하게 행하라
2021년 10월 2일 토요일 맑음 천사랑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같은 게 있다 그건 딱히 재미난 일이 없다는 거다" 요즘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우리 드라마 '오징어 게임' 대사 중 하나다. 부자는 돈이 너무 많아 무얼 해도 재미가 없고 가난한 사람은 뭘 해볼 여가가 없으니 사는게 재미가 없다. 사는 게 재미없는 건 맞는데 그 접근 경로는 정 반대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 한건 일 할 수 있음 일 하라 그리고 쉴 때는 확실하게 쉬라. 나이 들어 일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놀 줄 안다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언제부터 24시간을 쪼개서 살고 있다. 하고 싶은게 너무 많다. 근육질 몸을 갖고 싶다. 타고난 물렁 살, 비지 살, 몸매라 근육이 안 만들어진다.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몸만들기 수년째 아침저녁으로 ..
2021년 9월 26일 일요일 맑음 석기, 기수, 환춘, 병선 운리에서 원정 마을로 이어지는 임도는 이제 막 초록의 빛에서 연두로 색을 갈아입기 시작한 감들이 길손을 맞는다. 연둣빛이 점점 짙어져 분홍으로 분홍이 붉은 홍시가 될 때쯤 감잎은 소명을 다하고 보살핌을 거두어 드릴 게다. 길가에 잘 익은 알밤이 여명 전인데도 허리를 굽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게 한다. 가능한 농장이나 농가 주변의 밤은 줍지 않기로 다짐하지만 내 안의 물욕이 스믈스믈... '밤은 이미 추수가 끝났어' 말도 안 되는 논리로 합리화한다. 어느새 몇 번의 오름과 굽이를 돌아 참나무 군락지에 이른다. 도토리가 지천 일 거라는 예상은 완전히 빛나갔다. 도토리가 없다.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은 생존이다. 가뭄이나 자연재해가 심해지면 열매를..